일본 가정식 레시피 100 - 요리가 즐거워지는
도이 요시하루 지음, 김은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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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나는 요리가 서툴다. 부모님과 같이 살기에 어머니께서 요리를 주로 하시니, 그렇다. 내 입맛은 아무래도 어머니 음식이 맞고. 어머니의 한식. 내가 주로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일식 가운데 가끔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다. 특히 겨울이면 생각나는 그 음식. 바로, 우동이다. 나의 이런 우동 사랑은 어느 광고로부터 비롯됐다. 김현주의 우동 광고였다.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그 광고. 그리고 나의 우동에 대한 애정 행각에 날개를 달아 줄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일본 요리 책과 나의 만남이다.

 

 (사진 출처: 소담출판사)

 

(사진 출처: 소담출판사)


 '이 책에는 소위 단시간에 뚝딱 만드는 요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이 많이 가서 부담스러운 요리도 아닙니다. 일상의 활력소 집밥을 더 맛있게 해 먹는 방법을 담았습니다. 요리 책은 '일종의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구를 제대로 활용해서 요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리를 알면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맛있어집니다!' 중에서. (4쪽)


 다섯 묶음인 이 책. 우선, 눈에 띄는 건 '재료별 레시피'였다. 고기, 생선, 채소, 기타. 더욱이 생선, 채소는 시기와 계절에 따라 그 식재료의 신선도와 맛이 다를 수도 있으리라. 제철에 맞는 식재료로 만든 제철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리라.

 생선 요리의 하나로 '도미 다시마 찜'을 소개하고 있다. 도미는 비린내를 감안하여, 신선도가 좋은 가을이나 겨울에 맛이 좋다고 한다. 산란기인 여름철에는 아무래도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방어 무 조림'에서는 방어와 무도 겨울이 제철이라고 한다. 특히 방어와 무는 찰떡궁합이라고.  

 채소 요리의 하나로 '소고기 우엉조림'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이 둘의 음식 궁합이 좋다고 한다. 덧붙이기를 여름에 수확한 우엉은 부드러워서 조리하기 쉽다고. 겨울이 제철인 시금치 요리는 3가지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도이 쌤에게 배우는 집밥 10선', '오늘의 밥, 면, 파스타, 국, 스프, 간식'에도 좋은 요리가 가득하다. 남녀노소에 맞게 잘 선정한 것 같다. 중간중간 실린 칼럼도 유용한 것 같고. 그나저나 내가 좋아하는 우동 요리는 '키자미 우동'과 '미소 조림 우동'이 소개되어 있다. 좋다.


 나는 식도락(食道樂)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미식가(美食家)가 아니기에. 물론,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한국 가정식도 훌륭하다. 어머니의 음식도 충분히 맛있고, 그로 인해 인생이 즐겁다. 별미(別味)도 잘해주시는 어머니. 그런데, 그 별미를 다채롭게 해 줄 도구를 만났다. 일본 가정식 100가지 요리 책. 지은이의 말처럼 손이 많이 가서 부담스러운 요리는 아닌 것 같다. 책을 보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

 집에 오래 있게 되는 요즘. 집밥과 더 가까워졌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먹으며, 마음으로 '국물이 끝내줘요'라고 말할까. 그럴 때, 이 책이 착한 도우미가 되어 줄 것 같다. 앞으로 인생이 즐거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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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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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물질은 우한 외곽에 있는 DNA 재조합 연구소에서 개발되어 ‘우한-400’이라는 이름이 붙었소. 그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미생물 중 400번째로 개발된, 독자 생존이 가능한 종이었기 때문이오."' -435쪽.


 글에도 성지가 있다. 지난날에 앞날을 정확히 예측한 글을 성지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글에 성지 순례를 한다. 본문을 읽고, 댓글을 남기며. 그런 성지의 글이 담긴 소설이 있다고 한다. 우한에서 시작된 지금의 '코로나 19'를 오래전에 예견했다고 한다. '우한-400'이라는 바이러스가 나온다는 소설. 신기하다. 물론, 소설에서 중요한 단서를 미리 안다는 건 흥미를 줄일 수도 있는 일이다. 다행히 이 소설은 그런 기우를 멋지게 빗나가게 하는 듯하다. 그 단서의 화제성은 과거의 이 소설을 지금으로 다시 소환하는 힘이 되고 있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소환된 이 책이 반갑고.


 '"있죠, 마치...... 밤 자체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밤과 그림자와, 어둠의 눈이요."' -249쪽.


 티나. 아들 대니가 사고로 죽었다고 안 지 1년이 지났다. 열두 살이었던 아들. 그녀는 그 일로 엄습하는 슬픔에 힘들어 한다. 그 불안에 공포로 이어지고. 악몽에 시달리며. 게다가 불가사의한 일까지 일어난다. 자꾸만 '죽지 않았어'라는 글이 칠판에 나타나고. 컴퓨터가 스스로 켜지고. 대니의 방이 엉망이 되고. 그밖에 여러 이상한 일이 생긴다. 누군가의 장난이라 생각했지만, 티나는 대니가 살아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그 와중에도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서 무대 공연 기획, 제작을 하고 크게 성공하게 되는 그녀. 또한 이혼녀인 그녀는 매력적인 변호사 엘리엇을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대니의 관을 열어 보기로 한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이 다가오는데. 그렇게 긴장감이 감돈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아이, 또 어린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소재가 우리 마음속 원초적인 심금을 울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 중에서. (454쪽)


 가족의 죽음. 더욱이 자녀의 죽음은 부모에게 큰 아픔이리라. 나도 친지의 죽음을 겪으며, 아픔을 느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처음, 티나의 슬픔에 나도 공감이 갔다. 그녀의 울음에 나도 마음이 울었다. 그렇게 이 소설의 세계에서 나도 동행했다. 너무나도 간절히 아들을 찾는 티나. 그녀에게 응원을 하게 되고. 엄마의 사랑이 나에게도 따스하게 이어지며.


 미국에서 1981년에 초판이 나왔다는 이 소설. 그 당시에 일어난 나흘 동안의 이야기. 마치 비빔밥 같다. 액션, 서스펜스, 로맨스와 더불어 초자연적 현상이 섞여 있다. 그 재료를 어머니인 여성의 능동적인 서사로 비볐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이 비빔밥을 맛보며 나는 생각한다. 단지 그 옛날에 지금의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를 예언한 소설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너무 좁게 한정하는 것이기에.

 이 이야기에서 그리는 인간의 어두움과 빛. 도박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의 높은 건물이 만드는 찬란한 밤. 그 안의 인간이 지닌 어두운 심연. 교만, 혐오. 그래도 사람에게는 희망, 사랑이라는 빛이 소중하게 이어지고 있다. 어둠이 깃들 때, 빛이 더욱 빛난다. 교만, 혐오라는 어둠에서도 희망, 사랑이라는 빛이 더욱 빛난다. 빛은 그 없음을 채우며, 오랜 시간을 견디며, 더욱 빛나기에. 

 이 '코로나 19'라는 어둠의 눈이 보이는 시기에, 많은 이의 그 눈에 빛이 비추기를 바란다. 강한 흡인력으로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로. 성지 순례하며.   

 덧붙이는 말.

 하나. 이 소설은 딘 쿤츠가 '리 니콜스'라는 필명으로 쓴 초기작이라고 한다.

 둘. 이 책은 1981년 출간된 초판본의 내용을 수정해 1996년 재출간한 개정판을 번역본으로 따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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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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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 이야기만큼이나 익숙하고 많은 이야기가 사랑 서사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고, 중요한 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사랑은 나만의 사랑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서 사랑에 빠진 이들을 두고 테리 이글턴은 이렇게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사랑에 빠진 인물들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이고, 가장 진실하면서도 가장 허위적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궁극적인 자기 인식이며, 제일 소중하고도 유일한 존재양식이다. 그렇지만,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해왔고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또 하게 될 지겹게도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기도 하다."1 이렇게 사랑은 양가성(兩價性)을 지니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사랑의 양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상의 여인과 불륜이라는 불완전하고 위험한 사랑. 그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사랑을 '도쿄 타워'라는 소설에서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오후 4시, 이제 곧 시후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 사람의 전화를, 이렇듯 기다리게 되었을까.' -10쪽.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57쪽.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117쪽.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122쪽.


 두 소년이 있다. 고등학교 동창.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이 된다. 두 소년은 연상의 연인과 사랑을 한다. 토오루는 시후미와, 코우지는 키미코와 사랑을 한다. 시후미는 스무 살 이상이 많고, 키미코는 열다섯 살이 많다. 이 연상의 두 여인에게는 남편이 있다. 불륜이다. 토오루는 시후미 하나만을 바라본다. 코우지는 귀여운 여자 친구 유리도 있고, 여러 여자를 만난다. 전에 여자 동급생의 엄마인 마흔두 살의 아츠코와 사랑을 하기도 했고. 두 소년, 각자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 그 다름이 실처럼 교차하며, 촘촘한 이야기를 직조(織造)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9쪽.


 '"......'하지만' 난 너의 미래를 질투하고 있어."' -131쪽.


 '"같이 살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아 있어."' -251쪽.


 슬픔의 씨앗을 품은 불완전하고, 위험한 사랑이기에 더 애틋한 것일까.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안타까운 사랑. 그럼에도 사랑으로 함께 살아 있는 연인. 사뭇 다른 토오루와 코우지는 앞으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어떻게 채울까. 따스한 행복에 물들 수 있을까. 헤어짐의 쓰라림과 상처의 차가움도 녹일 수 있을까.


 사랑이 진부하고 평범한 것이라며 기대 없음에 무한 수렴하고 있을 때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틈새에서 낯선 사랑의 감각을 마주하게 되면, 기대 있음에 무한 발산하게 된다. 에쿠니 가오리의 이 소설에서 내가 그랬다. 상투적인 불륜 이야기로 보였다. 그런데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라는 말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거나.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라는 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때 사랑을 다시 기대하게 된다. 사랑은 '궁극적인 자기 인식이며, 제일 소중하고도 유일한 존재양식'이라고. 알다시피 김현식도 노래하지 않던가.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웃고,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2라면서도. '내 사랑 그대. 내 곁에 있어 줘. 이 세상 하나뿐인 오직 그대만이.'3라고. 이런 사랑의 양가성. 에쿠니 가오리는 그녀만의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 냈다. 너무나 다른 두 소년의 이야기로 잔잔하게. 

 그나저나 나도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불륜은 아니 될 것이고. 나이 차이가 많은 연상의 연인은 이제 내 나이에는 무리고. 내 사랑은 어디에 있는지.    




 덧붙이는 말.


 이 '도쿄 타워'는 2005년 국내에 처음 나온 책의 2020년 출간 15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개정판이다.  

                  


 

  1. 테리 이글턴,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 김창호 옮김, 민음사, 2018, 46쪽.
  2. '사랑 사랑 사랑'의 가사 중에서.
  3. '내 사랑 내 곁에'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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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4-01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각주 달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저는 논문 쓸 때만 해 봤어요. ㅋ

이 저자의 <반짝반짝 빛나는>이란 소설을 읽었어요. 느린 흐름이어서 마치 수필을 읽는 것 같은 소설로 기억합니다.

사과나비🍎 2020-04-02 00:57   좋아요 1 | URL
아, 각주요?...^^; 나름 인용한 건 하려고는 해요~^^; 칭찬의 말씀 감사해요~^^* 페크님~^^*

아, 저는 그 책 안 읽어 본 것 같아요~^^;
에쿠니 가오리의 책은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네요~^^;
맞아요~ 저도 잔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느린 흐름~ 역시 페크님도 그렇게 느끼셨네요~^^*
그나저나 좋은 하루 보내셨기를, 그리고 지금은 좋은 꿈을 꾸시고 계시기를 바랄게요~^^*
 
인생의 특별한 관문 - 아이비리그의 치열한 입시 전쟁과 미국사회의 교육 불평등 걸작 논픽션 20
폴 터프 지음, 강이수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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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지도 벌써 오래됐다. 어떻게 대학교에 갔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수학능력시험을 봤고, 그 점수에 맞게 지원했던 것 같다. 물론, 담임 선생님과 진로 상담도 했던 것 같다. 부모님도 하셨고. 별로 특별할 것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상류층이었다면 어땠을까. 더 쉽게 진학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다양한 경로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 옳은 일이다. 그러나 악용이 문제다. 입시 비리. 학벌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쉽게 근절되지 않는 그것이다. 미국은 어떤가. 우리의 학생부종합전형이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도에서 비롯됐다고 알고 있다. 그런 미국. 그곳의 교육 불평등을 적시한 책을 만났다.


 '개인이나 집단이 새로운 사회적 위치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사회이동social mobility(또는 사회유동성)'이라고 부른다.' -23쪽.


 '대화를 나누다보면 1세대 대학생들(부모의 학력이 고졸 이하)이 공통되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미국 최고의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면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정서적으로는 매일매일 진이 빠진다고 했다. 그들은 엄청난 부와 특권이 집중된 환경에 둘러싸여 소외감과 혼란을 느꼈고, 때로는 그냥 미친 짓이라고 느꼈다.' -154쪽.


 '그들은 빈곤층을 교육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최대로 확보하고 있음에도 최소한만 사용한다.

 왜 그럴까? 베켄스테트가 생각하는 답은 이렇다. 이른바 '엘리트' 대학의 이름값을 유지하려면 단순히 공부 잘하는 학생만 많이 선발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돈 많은 학생도 많이 선발해야 한다. 학자들은 대학에서 인종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다양성을 확대하는 입장을 취하면, 이듬해부터 지원자가 줄어드는 경향을 확인했다. "아마도, 혹시 어쩌면 '엘리트'라는 말이 '가난한 사람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죠. 아마 그게 문제일 겁니다." -238쪽.


 이 책의 지은이인 폴 터프는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그런 그의 특색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취재했다. 입학사정관, 수험생, 명문대생, 교수, 입시 관계자 등. 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그리고 객관화했다. 미국의 대학 입학은 불평등을 품고 있다고. 그리고 좋은 대학 안에서도 가난한 이들은 소외감과 혼란을 느꼈다고. 그래서 사회이동이 어렵다고. 이런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린다. 가난한 학생들의 사투, 좌절과 성취 이야기쉽게 다가오기에 가독성이 좋다.   


 ''공교육을 활성화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아주 간단한 원칙이다. -450쪽.


 '우리 모두는 동등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재능을 발전시킬 동등한 기회는 가져야 한다.' -존 케네디.


 미국. 그곳의 교육 제도를 살짝 알게 된 건 홍정욱의 '7막 7장'을 어릴 때, 만나서다. 솔직히 부러웠다. 성공한 유학 생활. 미국의 상류층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1989)', '러브 스토리(Love Story, 1970)'와 가십걸(Gossipgirl, 2007~2012)'이라는 미국 드라마로 그들 상류층의 그림에 채색을 할 수 있었고. 물론, 영화와 드라마는 현실과 다를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 둘은 하나의 사회에서도 마치 두 개의 국가를 이룬 것 같았다. 이 책, '인생의 특별한 관문'은 그 작은 이름처럼 '아이비리그의 치열한 입시 전쟁과 미국사회의 교육 불평등'을 그리고 있다. 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의 얼굴도 그리고 있다.

 대학도 학교다. 학교는 교육이 목표인 특수 성격의 기관이다. 돈보다 사람의 재능을 보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럴 의무와 책임이 있다. 물론, 누구나 대학, 그것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재능이 뛰어난 학생이 가난 때문에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될지어다. 공교육이 활성화되면, 모두가 재능을 발전시킬 동등한 기회를 가지면, 가난이 교육의 장애가 되는 일이 적어지리라. 사회이동이 역동적인 나라를 위하여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소중한 외침들. 깊게, 높이, 멀리 울리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도 교육 불평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드라마 'SKY 캐슬(2018~2019)'에서처럼 지나치게 뜨거운 교육열에 부자들의 일그러진 얼굴이 많다.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우리의 옳은 뜻이 하나하나 모여 이 안타까움이 흐뭇함으로 변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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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도시, 서울 - 당신이 모르는 도시의 미궁에 대한 탐색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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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취(搾取) 명사 1. 계급 사회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 생산 수단을 갖지 않은 직접 생산자로부터 그 노동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함. 또는 그런 일.


 착취라는 낱말. 무섭다. 우선, 강자와 약자가 있다. 계급처럼 고착화된 그들의 관계. 강자는 약자의 성과를 무상으로 취득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그 취득하는 과정에는 기만과 강압이 따르기도 한다. 그것이 착취다. 요즘 세간에 언급되는 일명, 'n번방 사건'은 성 착취의 민낯을 확실히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착취. 이른바, 경제적 착취. 성 착취와 함께 착취의 가장 만연한 형태라 할 것이다. 책, '착취도시, 서울'은 경제적 착취를 다룬다. 빈자에게 집을 매개로 한 경제적 착취. 즉, 쪽방촌 이야기다.


 '쪽방(쪽房): 방을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한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 놓는 방.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5쪽.  


 ''빈곤 비즈니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 -58쪽.


 '"쪽방은 세를 놓는 거고 건물주들은 부자 동네 가서 살죠. 솔직히 원룸처럼 시설을 잘해 놓은 것도 아닌데 월세를 그렇게 받는 건 폭리를 취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화장실도 없고, 주방도 없는 쪽방이 태반인데 이론적으로 따지면 월세 5만 원만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1평에 25만 원 수준이면 웬만한 아파트 평당 월세의 다섯 배는 될걸요." -80~81쪽.


 아팠다. 마음이. 쪽방촌의 빈곤 비즈니스를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사업에는 중간 관리인도 있다. 그리고 집주인. 가족 사업으로까지 하고 있는 이도 여럿이다. 마치 사악한 거대 포식자 같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추악한 욕망에게 삼켜지고 있는.

 책은 두 묶음이다. '지옥고 아래 쪽방'과 '대학가 신쪽방촌'으로 묶였다. 특히, 대학가 청년들의 주거 빈곤. 그리고 착취 이야기. 기자인 지은이는 대학생 시절. 자신도 주거 난민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닫힌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힌 것이 된다."(E. H. 카)' -67쪽.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 중에서.


 자본주의의 그림자. 그 짙은 그림자는 빈부 격차일 것이다. 부자는 강자. 빈자는 약자. 영화 '기생충(PARASITE, 2019)'에도 그것이 있다. 부에 의한 하층 계급, 상층 계급. 영화에서 이 둘의 구별은 냄새로도 가능하다. 상층은 하층의 냄새에 익숙하지 않기에. 그리고 계급적 혐오를 한다. 영화 밖, 쪽방촌의 빈곤 사업가들도 냄새를 맡았다. 빈자들의 고혈을. 또, 그것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그 피를 탐욕스럽게 계속 수확하고 있는 그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쪽방촌의 재개발과 지자체의 복지 정책을 막고 있다. 악질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지 않았고, 두려움이 없지 않았으며, 그리움을 버리지 않았고, 사랑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안타깝다. 그렇게 닫힌 방 안에서 생각조차 닫힌 것이 되어 간다. 쪽방촌 주민은 말한다. 이곳을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하나는 죽는 것. 다른 하나는 노숙인이 되는 것. 이들의 관계를 보니, 겹치며 떠오르는 것이 있다. 제국주의자와 식민지인. 기생충과 숙주. 마지막으로 착취라는 낱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쪽방촌의 아픔을 새기며.

 생각의 끝에 나즈막히 읊조린다. 가난하다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덧붙이는 말.


 이 책은 2019년 5월, 그리고 10월~11월에 연재된 한국일보의 <지옥고 아래 쪽방> <대학가 新쪽방촌> 보도에 대한 뒷이야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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