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맑고 몹시 추움 

오늘의 책 : 박찬욱의 몽타주, 류승완의 본색 

두분 다 아직 자서전을 내기에는 어린(?)  나이들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책에서 약간은 자서전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고 산거같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영화와 인생에 대한 얘기가 있을거라 생각하고 샀는데 착각이었다. 막상 포장을 풀어서 책을 보니 마음산책에서 나온 책이길래 에세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마음산책에서 그런 에세이류를 많이 내시기에...(원래 책 살때 순전히 FEEL로 사지 작가,출판사등등을 전혀 고려하고 사지 않는다) 근데 읽어보니 에세이라고 하기에도 약간 부족함이 있다. 영화에 대해 한 매체나 이 책을 목적으로 하여 쭉 써내려간게 아니라 이곳저곳에 기고한 글이나 인터뷰등을 죄다 모아서 낸 책이다. 영화감독이다보니 주제가 영화이긴 하지만 일관성없이 이것저것이 모인 일종이 잡문 모음이라고나 할까. 한 영화를 발표하고 여러곳에서 한 인터뷰가 겹치기도 하고 또 정확히 연대순으로 되어 있는것도 아니고, 제법 오래된 인터뷰도 있어서 지금과 연관이 잘 안되기도 하고, 하여간 약간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는 별로 안봐도 영화에 대해 쓴 글은 좋아하는데다 중구난방의 신변잡기적인 글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책의 전반적인 느낌을 얘기하라면 조금 난잡하고 정신없다. 그 중에서 특히 류승완 감독의 경우 어린 나이에 데뷰작이 뜨면서 그때 한 인터뷰를 보면 지금과 좀 다르다. 자기가 한 말도 기억 못하고 지금이랑 너무 사람이 다르기도 하고, 여기서는 이 말하고 뒤로 가면 딴 말하고 등등 집중하기가 좀 힘들었다. 어떤 글의 경우는 도대체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가 흐르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박찬욱 감독의 경우는 대체적으로 글이 정돈되어 있고 분위기도 일관성이 있는데다 연도순으로도 맞아 들어가서 읽기 편했다. 어쩌면 류승완 감독의 책을 뒤에 읽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내용의 책을 연달아 읽을경우 아무래도 뒤에 읽는 책이 흥미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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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15분 온 세상이 조용하고 우리집도 조용하다. 드디어 말이다. 명절이란...정말이지...이쯤에서 그만두자. 여튼 이 밤에 갑자기 이책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싶어졌다. 언제나처럼 화장실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데 20분이나 걸렸다. 매번 이 짓을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화장실에서 읽을 책을 고르느라 신호를 놓쳐 변비가 더 심해지는것 같다. 오늘의 선택은 열세번째 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좋아하지 않는데 부분적으로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구절이 두군데 있어서 이 책을 자주 본다. 첫 부분에 주인공 여자가 편지를 받는다. 유명한 작가인데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서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한다. 그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진실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고. 폭풍이 부는 밤. 번개가 치는 밤. 말라빠진 진실따윈 우리에게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통통하게 살찐 이야기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고 말이다.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할수 있을까? 언제 읽어도 나는 이 글이 마음에 든다. 두번째 구절은 주인공이 자신의 본업이라고 주장하는 일에 대한 얘기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서적 매매를 한다. 실제 돈을 버는 본업은 그쪽이고 부업으로 하는 일이 바로 헌책방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므로 책방은 언제나 한가하고 고적하다. 그 책방에서 헌 책을 돌보는것이 바로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본업이다. 책을 돌보는것. 표지를 수선하고 먼지를 털고 책장을 넘겨 몇 페이지를 읽으며 그 책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일이 바로 자신의 본업이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너무 멋지고 부럽다. 이 구절을 읽을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이러고 싶다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히 책을 돌보는 일이 본업일수 있다니. 정말 그녀는 세상에서 내가 최고로 부러워하는 소설속의 주인공이다.  

나는 일년에 2~3백만원 정도의 책을 산다. 이 책들은 전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아니다. 재테크용도 아니고 더 좋은 직장을 위한 공부를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들에게는 아무런 실용성이 없다. 이런 책을 일년에 이만큼씩이나 사모으면 보관하기도 장난이 아니다. 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중고로 팔기도 하고 남에게 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들은 보관하기는 참으로 힘겹다. 책이란 그저 쌓아두기만 하면 금방 쓰레기가 된다. 그들이 처음의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길 원한다면 부지런히 보살펴 주어야 한다. 책장의 먼지도 닦아주고 책에 쌓이는 먼지도 털어주고 제일 중요한점은 절대로 책을 꽂아만 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거야 말로 책을 죽이는 최고의 길이다. 책을 오래오래 살려두려면 다만 몇 페이지만 본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펼쳐보고 읽어주어야만 한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이렇게 정기적으로 펼쳐보는 책이 오히려 오래가고 싱싱하다. 그렇지 않고 꽂아만 둔 책은 머지않아 먼지가 쌓이고 책벌레가 생겨서 오래가지 않아 그 생명력을 상실한다. 책을 오래 살려두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책을 읽는 것이다. 나역시 내 책들을 오래 살려두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하루에 9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그외에 출퇴근시간 등등의 시간을 빼면 내 책을 위해 남길수 있는 시간이 몇시간 되지 않는다. 이 시간동안 새 책을 읽기에도 바빠서 지나간 책을 보기가 힘들고 어느날 문뜩 정신을 차려보면 내 책들이 시들시들하니 나를 원망하고 있다. 화급하게 먼지를 닦고 쓸어주지만 완벽하게 먼지를 제거할수는 없다. 그럴때마다 그녀가 부럽다. 책을 돌보고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일이 본업이라고 말할수 있는 그녀가.  

이 늦은밤 문득 이 글을 쓰게된건 열세번째 이야기라는 책을 다시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내 책장에 먼지가 쌓인것을 보아서이다. 설이라고 며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방청소하고 음식준비하기도 바빠서 책장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그 사이 책에 먼지가 쌓였다. 내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여행서중에 최고지)이란 책 위에 먼지가 쌓여있다. 내일 책장청소를 하고 싶지만 그전에 먼저 동생부부에게 음식을 싸서 집으로 보내야하고 이불을 널고 말려야 하고 거실과 세 개의 방을 청소해야 하고 목욕탕 청소도 해야하고 등등등. 이 일을 다하고 책장 청소까지 하고나면 아마도 책을 펴 볼 시간따위는 없을게 분명하다. 휴우~웬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인생엔 하기 싫은 일들은 너무나도 많고 시간도 많이 드는데 하고싶은 일은 적은데도 할 시간이 없다. 이제 잠이 와서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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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사실 10권을 다 볼 자신이 없어서 1권만 읽었는데 나로서는 살짝 오싹한 소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 엄마 엄마. 이건 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도 어느 정도여야지. 물론 자식으로써 엄마를 사랑하는건 참 좋은 일이다마는 이렇게까지 집착하면 웬지 오싹하다. 

종이의 음모 - 암스테르담의 커피상인을 봤을때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미스터리와 스릴러 비슷한 수준인데 이야기가 왔다갔다 지루하기 그지 없다. 

갈릴레오의 손가락 - 일반인 대상의 과학교양서라고 보기에는 정말 너무 어려웠다. 뒤부분의 거의 절반정도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문화의 수수께끼 - 작은 인간과 너무 많은 부분에서 겹친다. 둘 중 하나만 살것을. 

스페인 너는 자유다 - 시시하고 완전 자기 자랑 수준? 은나에게 주고 말았다. 아나운서라고해서 글까지 잘 쓰는건 아니것이다. 

찰리 챈 시리즈 - 새로운 탐정. 하와이에 근무하는 탐정이라기에 하와이 얘기가 많이 나올까 싶어 기대했는데 첫 권만 하와이가 배경이고 나머지 두 권은 미국이 배경이다. 그래도 세월을 감안하면 나름 괜찮은 책이었다.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 기독교인들을 싫어하는데 왜 이 책을 샀을까. 하여간 반값할인이 문제다. 반값할인이나 쿠폰이라면 사죽을 못쓰고 사니까. 

북극에서 온 편지 - 톨킨의 책이라기에 샀더니만 이건 순전히 자기 가족들끼리나 볼 책이다. 제발 이런거 작가가 유명하다고 아무 책이나 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수집 - 너무 재미가 없다. 

스타쉽 트루퍼스 - 영화를 봤을때 내가 알아챘어야 했는데 정말 너무 불쾌한 소설이다. 전쟁광들이나 좋아할만한 소설. 

영원한 전쟁 - 이하동문이다. 

오 그레이트 로젠펠트 - 귀엽기는 하다만은 참 웃기도 뭐하고. 

인간의 미래 - 지나치게 낙관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과학의 한계를 어디로 정해야할지 참으로 많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다. 

둔감력 - 책 내용이 너무 한가지뿐이다. 그저 둔감한것도 좋은 것이라는 점을 예시를 들어서 얘기하는데 이걸로 책 한권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다. 

유토피아 - 그저 고전이라 한번 읽어볼 정도.  

일렉트릭 유니버스. E=mc2 - 어렵다. 시크릿 하우스가 너무 재밌어서 샀는데 이 두권은 별로다. 

땡땡의 모험 - 총 24권짜리를 걍 질렀다. 추억속의 땡땡이 너무 좋아서 샀는데 역시 추억은 추억일뿐. 다 큰 내게는 시시할뿐이었다. 

제목을 못정한 책 - 너무 힘차게 인생을 산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웬지 약간 무섭게 느껴지는건 나만의 자격지심일까? 

세포전쟁 - 너무 많은 책을 읽는 중에 읽었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시간을 가지고 다시 한번 봐야겠다. 

용의자 X의 헌신 - 너무 유명하길래 샀더니만 너무 시시하다. 추리소설 볼려고 샀지 로맨스 소설을 보려고 산건 아닌데. 

미트포드 이야기 - 이야기 자체는 내가 좋아하는 얘긴데 주인공이 목사인 관계상 내가 안좋아하는 예수님이 너무 많이 등장하네. 

그리스 성 풍속사 -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얘기. 하권을 어찌하나. 살려니 아깝고 안살려니 궁금하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역시나 단편은 별로다 

지구로부터의 편지 - 유쾌한 독설. 이정도는 돼야지. 

타임퀘이크, 제 5도살장, 갈라파고스, 고양이 요람 - 나라없는 사람들을 퍽 괜찮게 봤길래 반액세일때 일제히 샀더니 대실패다. 타임퀘이크정도나 볼만할까 나머지는 진짜 보기 싫다. 특히 갈라파고스에 와서는 읽기 싫어서 미칠지경이었다. 반값할인. 앞으로는 신중해야겠다. 

마니아를 위한 SF걸작선 - 여러작가들의 작품이다보니 괜찮은 것. 그럭저럭인것. 읽기도 역겨운 것들이 섞여있다. 평하기 어려운 책이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 - 거야 당연한거고. 그저 한번 쭉 읽어볼만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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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이 가지는 의미는 그저 남이 읽은 적이 있는 책만이 아니다. 헌 책이란 다른 누군가가 읽고는 마음에 들지 않아, 즉 소장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내놓은 책이란 점이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서일수도 있다. 좁은 곳으로 이사를 한다던지, 먼 곳으로 간다던지, 경제적으로 어렵다던지 등등의 피치못할 사정이 있을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말 소중하다면 끝까지 간직하지 않겠는가. 이유가 어떻든 헌 책으로 팔았다는 것은 그 책에서 소장할만한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적어도 내게는..이제 막 새로운 책을 사서 그 책과 첫 만남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이 책은 다른 누군가가 보기에는 매력이 없었어 라는 선입관은 웬지 모르게 그 책에게 선뜻 정을 주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나 여러권의 재고가 있는 헌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재미없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손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책을 내가 아주 재미있게 봤을때는 다른 고민이 생긴다. 아니 남들은 재미없어한 책이 내겐 왜 이리 좋은 거야? 내가 이상한가? 취향이 독특한가? 하는 고민. 너무 비싸서 헌 책이라도 사야지 하는 책의 헌 책이 없을때는 실망스러움과 뿌듯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무렴 내가 잘골랐지 하는 생각. 물론 그 책이 너무 인기가 없어서 아예 산 사람이 없어서 헌 책이 없을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도 가끔은 들지만 말이다.

첫 정이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 내게는 책에도 아니 물건에도 해당된다. 더러 이 책은 다시 볼일은 없을것 같아 싶어도 내가 이 책을 처음 샀을때의 기분이, 박스 포장을 뜯고 그 희고 순결한 책장의 첫 장을 펼치던 순간이 생각나면 아무래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남에게 빌려줄때도 그렇다. 나 말고는 아무도 그 책에 손 댄적 없는데. 저이가 내 책에 나도 남긴적 없는 상처나 흔적을 남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래도 노심초사하게 된다. 마치 내 자식 나도 손 한번 댄적 없는데 하는 심정과 비슷하달까. 그에 비해 헌 책은 다소 쉽게 남에게 빌려준다. 나 전에 다른 사람이 이미 손 댔는데 뭘 하는 생각에. 얼마전 산 헌책의 첫 속지에 누군가가 글을 써놓았다. 정말 악필이라서 무슨 말인지 잘 알수 없었지만 아내에게 선물로 준 책같았다. 와이프라는 글이 있었으니까. 그 글을 봤을때의 기분이란. 뭐랄까. 실망이랄지 환멸이랄지...누군가 내 책에 낙서를 했어라는 울고 싶은 기분. 아니 그 아내라는 여자는 어떤 여자길래 남편이 선물로 준 책을 갔다 팔어하는 환멸스러운 기분. (후에 혹시 이혼했나 라는 생각을 하긴했다) 순간적이지만 그 책에 대한 정이 뚝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난 친구에게 선물하는 책에조차 따로 메모를 넣었지 속지에 쓰지 않았는데 라는 생각과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에서 보면 그녀는 책 속지의 그런 내용을 보며 책의 역사를 유추하며 즐거워하던데 나는 울고 싶어지다니... 내가 너무 속물적인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싫다라는 생각에 오래도록 그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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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헌책방을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었다. 나에게도 처지곤란의 책들이 더러 있었지만 낑낑대며 먼 헌책방까지 가기 싫기도 하거니와 책 팔러왔다는 웬지 민망한(?)소리를 하기도 싫던터라 마음에 들지 않은 애물덩이 책들이 굴러다니고 있어서다. 누가 살까 싶었지만 올려놓으니 한 권, 두 권 팔려나가고 살때의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싼 값이지만 그래도 돈 푼이나 되는것이 그리 싫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새 책이 좋다. 내겐 헌 책의 미덕이란 헐값에 있을 뿐이다. 한번도 제대로 된 새책을 가지지 못한 유년시절의 기억에 대한 한풀이일까. 나는 좀 비싼값을 치르더라도 새 책이 좋고 더구나 그 책이 마음에 들어 고이 책장에 모셔둘 책이라면 그건 반드시 새 책이어야만 한다. 나 전에 누구도 들쳐보지 않은 책. 처음으로 내 손을 타서 내 책장에서 끝까지 보관될 책인만큼 비싸도 좋다. 가끔 헌 책이나 헌 책방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가진 글들을 보면 내심 부럽다. 내겐 그런 시절이 없어서이다. 그렇게나 책을 좋아했지만 가난한 부모님은 책을 사줄 형편이 안되셨고 초등시절 딱 2질의 어린이 명작선이라는 책을 사주셨다.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어 이젠 내용도 다 외우건만 새 책은 요원하기만 했던 그 시절들. 학교의 그저 이름만 도서관이라는 곳의 세로줄로 된 다 삭은 노란종이의 책. 심지어 드디어 나이가 먹어 가볼수 있었던 시립도서관마저도 그 수준을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 시절 너무나도 새 책이 고팠고 새로운 내용에 목이 말랐다. 내가 이미 아는 내용이 아니라 모르는 내용을 얼마나 읽고 싶었었는지...동네 헌책방에서 팔던 무협지마저도 너무나도 좋았건만 그마저도 마음놓고 사기엔 내겐 너무 비쌌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남자였다면 그래도 부모님이 내가 읽고 싶다는 책을 그리 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남자라면 책이 좋다하면 그래.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왜 책이나 사모으냐는 핀잔은 주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해본다. 이제 내가 내 손으로 돈버니 원없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목마르지 않을 정도는 원하는 책을 사본다. 방안의 세 면을 책꽂이로 채웠고 그 안에 가득 든 책들이 있건만은 나는 아직도 새 책을 더더더 하면서 원한다. 어머니는 아직도 쓸데없는 책같은걸 산다고 한탄하지만 그래도 이젠 내 돈으로 사는것이니 한마디 하는것 이상의 어떤 제재를 가하지는 못한다.

내 소원은 아직도 더 많은 책이다. 정말로 이룰수 없는 꿈이라는 의미의 꿈은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있다는 바빌론의 도서관같은 곳에서 사는것이다. 영원이 걸려도 그 곳의 책을 다 읽을수만 있다면. 아마 영원도 모자라겠지. 새 책이 계속 나올테니 말이다. 그 다음꿈은 노란방 여자 파란방 남자라는 만화에 나오는 내용인데 커다란 프랑스 창이 나있는 서재에 편한 의자와 무릎덮개 그리고 날마다 배달되어오는 새로운 세권의 책이 기다리는 서재다. 그 다음은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면회 간 정신병원 근처의 산속에 있는 카페같은 곳이다. 아무도 없는 곳. 근처는 온통 숲이고 어쩌다 관광객들이나 지나가는 곳에서 발 밑에는 개를 두고 햇살이 따사로운 창가에서 책을 읽다 싫증나면 어쩌다 오는 손님이 너무나도 반가운 그런 곳에서 사는 꿈. 아무리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꿈이라해도 첫번째는 너무 황당해서 안될것이고, 두번째 꿈은 돈만 있으면 가능할지도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부자가 되는것은 로또 당첨전에는 어림도 없으니 가끔 로또를 살때만 꾸어볼 꿈이다. 세번째 정도는 어디 잘 찾아보면 될것도 같기는 한데.. 그런 곳을 찾기도 어렵겠지만 돈이 안될것같다. 이루어 질수 있는 장래소망정도의 꿈이라면 책 대여점이나 책 카페 같은것이 적당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것을 밥벌이로 삼고 싶지는 않다. 책은 내게 현실과 상관없는 그 어떤 꿈과 현실의 중간되는 곳쯤에 둥실하고 떠다니는 것이었으면 싶으니 말이다. 헌책을 사야 적립금도 준다하고 돈도 모자라고하여 내가 찜해준 책들중에 헌 책이 있나 싶어서 돌아다니던 중 문뜩 든 생각이다. 나는 역시 새 책이 좋다. 헌 책은 흥분이 안돼. 그건 꼭 흰 눈에 첫 발자국을 찍는거랑 똑같은거라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책의 정신적인 면보다 육체적인 면을 더 사랑하는 속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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