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헌책방을 시작했다. 반가운 일이었다. 나에게도 처지곤란의 책들이 더러 있었지만 낑낑대며 먼 헌책방까지 가기 싫기도 하거니와 책 팔러왔다는 웬지 민망한(?)소리를 하기도 싫던터라 마음에 들지 않은 애물덩이 책들이 굴러다니고 있어서다. 누가 살까 싶었지만 올려놓으니 한 권, 두 권 팔려나가고 살때의 가격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싼 값이지만 그래도 돈 푼이나 되는것이 그리 싫지는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새 책이 좋다. 내겐 헌 책의 미덕이란 헐값에 있을 뿐이다. 한번도 제대로 된 새책을 가지지 못한 유년시절의 기억에 대한 한풀이일까. 나는 좀 비싼값을 치르더라도 새 책이 좋고 더구나 그 책이 마음에 들어 고이 책장에 모셔둘 책이라면 그건 반드시 새 책이어야만 한다. 나 전에 누구도 들쳐보지 않은 책. 처음으로 내 손을 타서 내 책장에서 끝까지 보관될 책인만큼 비싸도 좋다. 가끔 헌 책이나 헌 책방에 대한 좋은 기억들을 가진 글들을 보면 내심 부럽다. 내겐 그런 시절이 없어서이다. 그렇게나 책을 좋아했지만 가난한 부모님은 책을 사줄 형편이 안되셨고 초등시절 딱 2질의 어린이 명작선이라는 책을 사주셨다.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읽어 이젠 내용도 다 외우건만 새 책은 요원하기만 했던 그 시절들. 학교의 그저 이름만 도서관이라는 곳의 세로줄로 된 다 삭은 노란종이의 책. 심지어 드디어 나이가 먹어 가볼수 있었던 시립도서관마저도 그 수준을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 시절 너무나도 새 책이 고팠고 새로운 내용에 목이 말랐다. 내가 이미 아는 내용이 아니라 모르는 내용을 얼마나 읽고 싶었었는지...동네 헌책방에서 팔던 무협지마저도 너무나도 좋았건만 그마저도 마음놓고 사기엔 내겐 너무 비쌌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남자였다면 그래도 부모님이 내가 읽고 싶다는 책을 그리 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남자라면 책이 좋다하면 그래.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왜 책이나 사모으냐는 핀잔은 주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해본다. 이제 내가 내 손으로 돈버니 원없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목마르지 않을 정도는 원하는 책을 사본다. 방안의 세 면을 책꽂이로 채웠고 그 안에 가득 든 책들이 있건만은 나는 아직도 새 책을 더더더 하면서 원한다. 어머니는 아직도 쓸데없는 책같은걸 산다고 한탄하지만 그래도 이젠 내 돈으로 사는것이니 한마디 하는것 이상의 어떤 제재를 가하지는 못한다.

내 소원은 아직도 더 많은 책이다. 정말로 이룰수 없는 꿈이라는 의미의 꿈은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있다는 바빌론의 도서관같은 곳에서 사는것이다. 영원이 걸려도 그 곳의 책을 다 읽을수만 있다면. 아마 영원도 모자라겠지. 새 책이 계속 나올테니 말이다. 그 다음꿈은 노란방 여자 파란방 남자라는 만화에 나오는 내용인데 커다란 프랑스 창이 나있는 서재에 편한 의자와 무릎덮개 그리고 날마다 배달되어오는 새로운 세권의 책이 기다리는 서재다. 그 다음은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가 면회 간 정신병원 근처의 산속에 있는 카페같은 곳이다. 아무도 없는 곳. 근처는 온통 숲이고 어쩌다 관광객들이나 지나가는 곳에서 발 밑에는 개를 두고 햇살이 따사로운 창가에서 책을 읽다 싫증나면 어쩌다 오는 손님이 너무나도 반가운 그런 곳에서 사는 꿈. 아무리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꿈이라해도 첫번째는 너무 황당해서 안될것이고, 두번째 꿈은 돈만 있으면 가능할지도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부자가 되는것은 로또 당첨전에는 어림도 없으니 가끔 로또를 살때만 꾸어볼 꿈이다. 세번째 정도는 어디 잘 찾아보면 될것도 같기는 한데.. 그런 곳을 찾기도 어렵겠지만 돈이 안될것같다. 이루어 질수 있는 장래소망정도의 꿈이라면 책 대여점이나 책 카페 같은것이 적당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것을 밥벌이로 삼고 싶지는 않다. 책은 내게 현실과 상관없는 그 어떤 꿈과 현실의 중간되는 곳쯤에 둥실하고 떠다니는 것이었으면 싶으니 말이다. 헌책을 사야 적립금도 준다하고 돈도 모자라고하여 내가 찜해준 책들중에 헌 책이 있나 싶어서 돌아다니던 중 문뜩 든 생각이다. 나는 역시 새 책이 좋다. 헌 책은 흥분이 안돼. 그건 꼭 흰 눈에 첫 발자국을 찍는거랑 똑같은거라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책의 정신적인 면보다 육체적인 면을 더 사랑하는 속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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