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15분 온 세상이 조용하고 우리집도 조용하다. 드디어 말이다. 명절이란...정말이지...이쯤에서 그만두자. 여튼 이 밤에 갑자기 이책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싶어졌다. 언제나처럼 화장실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데 20분이나 걸렸다. 매번 이 짓을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화장실에서 읽을 책을 고르느라 신호를 놓쳐 변비가 더 심해지는것 같다. 오늘의 선택은 열세번째 이야기. 나는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좋아하지 않는데 부분적으로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구절이 두군데 있어서 이 책을 자주 본다. 첫 부분에 주인공 여자가 편지를 받는다. 유명한 작가인데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서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한다. 그 편지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진실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한다고. 폭풍이 부는 밤. 번개가 치는 밤. 말라빠진 진실따윈 우리에게 아무런 위안을 주지 못한다고. 통통하게 살찐 이야기만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고 말이다. 소설이 가지는 의미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할수 있을까? 언제 읽어도 나는 이 글이 마음에 든다. 두번째 구절은 주인공이 자신의 본업이라고 주장하는 일에 대한 얘기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서적 매매를 한다. 실제 돈을 버는 본업은 그쪽이고 부업으로 하는 일이 바로 헌책방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므로 책방은 언제나 한가하고 고적하다. 그 책방에서 헌 책을 돌보는것이 바로 그녀가 생각하는 자신의 본업이다. 책을 돌보는것. 표지를 수선하고 먼지를 털고 책장을 넘겨 몇 페이지를 읽으며 그 책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일이 바로 자신의 본업이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너무 멋지고 부럽다. 이 구절을 읽을때마다 생각한다. 나도 이러고 싶다고.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히 책을 돌보는 일이 본업일수 있다니. 정말 그녀는 세상에서 내가 최고로 부러워하는 소설속의 주인공이다.  

나는 일년에 2~3백만원 정도의 책을 산다. 이 책들은 전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아니다. 재테크용도 아니고 더 좋은 직장을 위한 공부를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들에게는 아무런 실용성이 없다. 이런 책을 일년에 이만큼씩이나 사모으면 보관하기도 장난이 아니다. 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중고로 팔기도 하고 남에게 주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쌓여가는 책들은 보관하기는 참으로 힘겹다. 책이란 그저 쌓아두기만 하면 금방 쓰레기가 된다. 그들이 처음의 사랑스러움을 간직하길 원한다면 부지런히 보살펴 주어야 한다. 책장의 먼지도 닦아주고 책에 쌓이는 먼지도 털어주고 제일 중요한점은 절대로 책을 꽂아만 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거야 말로 책을 죽이는 최고의 길이다. 책을 오래오래 살려두려면 다만 몇 페이지만 본다고 하더라도 정기적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펼쳐보고 읽어주어야만 한다. 역설적일지 몰라도 이렇게 정기적으로 펼쳐보는 책이 오히려 오래가고 싱싱하다. 그렇지 않고 꽂아만 둔 책은 머지않아 먼지가 쌓이고 책벌레가 생겨서 오래가지 않아 그 생명력을 상실한다. 책을 오래 살려두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책을 읽는 것이다. 나역시 내 책들을 오래 살려두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하루에 9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그외에 출퇴근시간 등등의 시간을 빼면 내 책을 위해 남길수 있는 시간이 몇시간 되지 않는다. 이 시간동안 새 책을 읽기에도 바빠서 지나간 책을 보기가 힘들고 어느날 문뜩 정신을 차려보면 내 책들이 시들시들하니 나를 원망하고 있다. 화급하게 먼지를 닦고 쓸어주지만 완벽하게 먼지를 제거할수는 없다. 그럴때마다 그녀가 부럽다. 책을 돌보고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일이 본업이라고 말할수 있는 그녀가.  

이 늦은밤 문득 이 글을 쓰게된건 열세번째 이야기라는 책을 다시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내 책장에 먼지가 쌓인것을 보아서이다. 설이라고 며칠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방청소하고 음식준비하기도 바빠서 책장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그 사이 책에 먼지가 쌓였다. 내가 좋아하는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여행서중에 최고지)이란 책 위에 먼지가 쌓여있다. 내일 책장청소를 하고 싶지만 그전에 먼저 동생부부에게 음식을 싸서 집으로 보내야하고 이불을 널고 말려야 하고 거실과 세 개의 방을 청소해야 하고 목욕탕 청소도 해야하고 등등등. 이 일을 다하고 책장 청소까지 하고나면 아마도 책을 펴 볼 시간따위는 없을게 분명하다. 휴우~웬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인생엔 하기 싫은 일들은 너무나도 많고 시간도 많이 드는데 하고싶은 일은 적은데도 할 시간이 없다. 이제 잠이 와서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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