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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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하게도 그리스신화를 싫어했다. 신이라는 것들이 하는 짓거리가 바람피우는 거나 질투로 사람죽이기를 예사로 생각하거나 가장 싫었던 것은 제우스가 걸핏하면 변신해서 여자를 취하는 그런 자유분방함이 싫었던 것 같다. 반면에 동양화는 어떠한가.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우리나라 동양화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나 이건 내생각이고 ... 서양화는 대부분이 사람이 대상이다. 그리고 올누드화다. 명화로 보여지는 그림속의 주인공들은 마치 임산부처럼 배가 불뚝하게 나오거나 풍만한 엉덩이에 비해 조그마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것 참 볼만하다. 요즘처럼 삐쩍마른 몸매보다 더 생명력있게 느껴지고 오히려 더 섹시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명화, 즉 서양화를 말하려면 그리스신화를 피할 수가 없다. 유명한 서양고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문화를 알아야하는 것처럼 서양화 또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화의 거짓말>은 무서운 그림으로 유명한 나카노 쿄코가 명화속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함께 그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게 제우스를 시작하여 아프로디테, 아폴론과 관련된 명화를 살펴보게 되는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푹 빠져 읽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치정관계가 많다보니 ^^;)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하여 좁은 통기구 틈으로 들어와 다나에에게 쏟아져서 임신하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다나에]를 세명의 화가가 시기를 달리하여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그림들을 비교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림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 또한 재미있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그림은 [불카누스에세 발각된 비너스와 마르스]인데 바람 핀 아프로디테의 천을 들추고 있는 남편 헤파이스토스와 식탁아래 숨겨진 정부 군신 아레스의 그림이다. "가시를 신경 쓰면 장미를 가질 수 없다. 샛서방을 신경 쓰면 아내를 가질 수 없다." 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신들중에 가장 못생겼던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애욕의 여신 아프로로디테의 부정을 눈감아주었는데 아마도 그저 아름다운 아내를 가졌다는 것에 만족하였기 때문인가보다. 이 그림은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천을 들춰도 창피한 기색없이 다리를 벌리는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과거 명화는 오락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이 그림으로 볼 수 있는데 텔레비젼이나 영화같은 영상매체가 없는 시대에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림이었던 것이다.이런 오락적인 그림은  제우스가 아이가 굶어 죽을 까봐 헤라에게 억지로 젖을 빨게 하는 그림인데 헤라가 아기를 뿌리치려 하는 동시에 솟구치는 젖은 하늘로 튀어올라 수많은 별로 변해서 마침내 하늘의 강인 은하수(milky way)가 되고 땅에 떨어진 젖이 흰백합이 되었다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명화는 대중매체를 대신하여 시대를 즐기는 오락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이야기이다.

너무도 생동감있는 나체를 껴안고 있는 한 남자, 여자는 다른 그림들의 풍만한 여체와는 달리 미끈하게 빠진 몸매에 다리부분만 희고 단단한 석고이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동상을 사랑하게 되자 신에게 생명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얻은 신부 갈라테아, 그러나 이 이야기는 후에 남성의 로망으로 변하게 되는데 일본 소설 [겐지이야기]에서처럼 남성이 어린 소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교육시켜 이상적인 여자가 된 후에 아내로 삼은 이야기이나 [현기증]이라는 영화에서 자신의 죽은 아내 마들렌을 대신한 완벽한 여자를 만드는 것에서 보여진다.  명화를 통해 그리스 신화가 펼쳐지기도 하고 신화와는 다른 명화를 통해 역사와 고전, 다른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뻗어 나간다. 명화라는 관문을 통해 신화와 인문학을 여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화가 미치는 영향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위의 그림 아래부분은 미성년자 관람불가라 잘랐는데 (사실 사진이 너무 커서 ^^) [히아킨토스의 죽음]을 통해서는 너무 고와서 여자인 줄 알았던 그림이  꿀처럼 달콤하고 보고있으면 왠지 가슴이 떨리는 매끈한 살결과 나긋나긋한 몸매를 지닌 미소년들이란 사실, 그러나 히아킨토스는 원반에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고 있는 그림이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들판의 모습과 왠지 모를 야릇함이 가득한 그림에 잠시 넋이 나간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그림을 그린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히아킨토스의 죽음]은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한편으로는 히야킨토스를 동성애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식물신이었다는 설로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머리가 다쳐, 본래의 모습대로 식물인 꽃이 되어 사라졌다는 말도 있는데  일반인에 불과한 내 눈에는 너무 곱기만한 그림이다. 그 옆의 그림은 귀스카브 모로의 [오르페우스]인데 오르페우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트라비키아의 처녀의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잘린 머리'는 세기말 미술에서 크게 유행했다. 아내를 두차례나 죽게 만들었던 오르페우스는 비탄에 빠져서 그 후 여성을 가까이 두여 하지 않았는데 오르페우스에게 외면당하자 화가 난 트라키아의 디오니소스 무녀들이 돌을 던져 오르페우스를 죽이고 광란 상태에서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발긴후 , 머리와 리라를 헤베로스 강에 던져 버렸다. 잘린 머리를 주워서 바라보고 있는 트라비키아의 여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잘린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허연 시인은 중년의 나이를 일컬어 모든 죄악이 이해되는 나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사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 말이 각인이 되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내가 그리스신화를 이해하지 못해 싫어했던 이유들이 그나마 순수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내 안에 이미 과거의 순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그리스 신화가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오다니 .. 이제 정말로 허연시인의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명화의 거짓말>은 그런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탐구이다. 생경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명화들 속에 들어가 그리스 신화를 재조명하고 그 안에서 또 한가닥의 이야기들을 뽑아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의 한 부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봐 온 신화가 사랑과 배신, 질투와 오해, 쓰라린 좌절과 슬픔의 이야기였다면 우리사 사는 삶의 모습 또한 신화속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 <명화의 거짓말>을 통해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매혹적인 그림과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라 누구라도 명화를 맘껏 즐길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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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
브렌다 매독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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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전기 작가 브렌다 매독스의 <노라: 노라 조이스의 전기 >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우수전기상, 국제작가협회(PEN) 은상 등을 수상한 작품으로, 1989년판(개정판)이 올해 어문학사에서 발간되었다.

20세시 아일랜드의 거장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일생 동안 수많은 수난들을 겪어야 했다. 대표작인 [율리시스]는 조국 아일랜드는 물론 영어권에서 음란물로 외면 받았고 [더블린 사람들] 또한 출판사에 여러번 거절당했다. 율리시스에 대한 소송위협으로 스위스 취리히로 옮긴 뒤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브렌다 매독스는 이번 전기문에서 20세기 세계문학의 최고로 꼽히는 [율리시스]가 제임스 조이스의 손끝에서 탄생하기까지 아내 노라가 노라가 기여한 힘은 실로 대단하다고 서술한다.한마디로  제임스에게 있어 노라는 애인이요, 동료요, 조력자로서, 격려와 영감의 원천인 것이다.

 

1904년 운명같은 만남의 시작으로 사랑이 시작되었지만 1년후 노라가 낳은 첫 아이 조오지는 끊임없이 제임스의 의심을 산다. 1년전 첫 경험때  노라가 숫처녀가 아니라는 사실과 아들이 9개월만에 태어나자 제임스는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확신하게 되고 제임스의 추궁에 노라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노라의 순결을 요구하기에는 제임스 역시 깨끗한 입장은 아니라는 것, 14살 때부터 더블린의 사창가를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노라를 만날 떄 이미 성병에 걸려있던 상태였다. 그러나 남자에게 있어서 순결이라는 문제는 자신의 부정과는 다른 문제인가 보다. 제임스는 노라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자신을 괴롭히는데 첫관계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제임스의 이런 방황은 첫관계뿐이 아니라 둘이 삼십년이라는 부부생활 내내 이어진 행동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열두살까지 수녀원에서 공부한 것이 전부이며 호텔의 하녀로 일하는 노라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조이스는 노라의 손을 잡고 배를 타고 유럽으로 도망친다. 둘이 도망치게 된 것은 둘다 가정환경이 불우했기 때문이며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둔 것 또한 같았다. 우스개 소리로 버나클이 조가비란 뜻인데 버나클이란 이름으로 인해 제임스 가족은 노라는 이름 그대로 죽어도 제임스를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는데 이름처럼 노라는 제임스의 숱한 성적 기행과 가족을 부양하지 않는 무책임에도 제임스가 취리히에서 숨을 거둘때까지 부인으로 남아 있었다.

 

조이스는 어릴 때부터 파산지경에 이른 가정의 혼란과 불확실성,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 이를 신앙심으로 극복하려는 어머니 등의 모습을 매일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는 내면에서 솟는 알 수 없는 성적 욕망과 싸워야 했다.그 과정에서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해방감과 죄의식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어머니와 사이가 멀어지고 아버지를 죄인으로서 자신과 동일시하고 어머니는 희생자로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등장인물의 내면을 통해 표현한다. 1914년 [더블린 사람들]을 출간하고,[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연재를 시작하고 [율리시스]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1921년 율리시스를 완성하지만 출간되자마자 음란 출판물 판정 등의 소동을 겪게 된다. 그 사이 노라는 첫째 아이에 이어 둘째 아이 루치아를 낳았고 제임스와는 여전히 법적인 관계가 아닌 정부인 관계 상태로 남아 있었다. 제임스와 27년을 정부로 남아있는 여자로 노라는 제임스의 성적 기행과 무책임에 대한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은 채 양육에 관심을 두는데  제임스가 양육비 미지불로 인해 집주인에게 퇴출권고를 받게 되자 그제서야 제임스에게 이별의 편지를 쓴다. 제임스는 노라의 편지를 받고 그제서야  집에 돈을 부친다. 

제임스 조이스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았던 아일랜드를 떠났을 때 노라는 그의 천재성을 의심치 않았으며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과는 달랐던 그녀의 단순성과 관찰력을 높이 샀던 것 같다. 율리시스에서 보여지는 표현들이 대부분이  노라에 대한 사적인 감정의  표현들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이스는 종종 노라에게 자신의 작품을 읽기를 권고하는 편지를 쓰곤 한다. 또한 제임스와 노라의 고향인 아일랜드에서는  제임스의 문학 전체를 지배하는 문학터전과 동시에 끈임없는 비난과 위협의 진원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조이스 삶의 아이러니로 남아있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아일랜드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노라의 전기를 읽는 동안 제임스 조이스의 숱한 삶의 부침속에서도 자신의 작품세계를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노라라는 여인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높은 교육을 받은 제임스 조이스에 반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한마디로 무식했던 여인이 제임스 조이스의 창조의 원천이었다는 것은 한 여성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위대한 작가와 그 작가를 내조한 여인의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노라의 전기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으며,  더욱이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을 이해하고 싶다면 노라의 전기는 꼭 필독할 전기문학이다. (그러나 율리시스가 몇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것처럼 노라의 전기도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 ^^ 을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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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반역 유광남 역사소설 1
유광남 지음 / 스타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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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다시 우리 백성, 우리 강산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단 한 척의 배도 통과할 수 없도록 수장시키리라.

내 함대는 할 수 있다.

나의 수군은 최강이며 내 함대는 무적이다.

-이순신의 심중일기 1597년 정유년 3월15일 을시-

 

우리나라의 위대한 인물하면 손가락안에 드는 충신 이순신의 역사는 무능한 왕 선조에 대한 원망과 당쟁만을 일삼았던 부정한 관리들의 역사와 함께 한다. 명종이 후사없이 죽게 되자 왕위계승에 있어서 원칙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인 계승자인 선조는 조선왕조에서 왕의 직계가 아닌 왕실의 방계에서 처음 왕위를 계승한 왕이다. 그래서인지 왕위에 오른 선조는 자신의 적통성에 항상 불안해 하였고 전란중에 백성의 신임을 한몸에 받게 된 이순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심은 도를 넘어 이순신을 억지 모함하여 죽이고자 한 사건의 재구성을 한 책이 <이순신의 반역>이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선조의 모함에도 옥중에서 가슴속에 있는 심중에 남아있는 말들을 적은 심중일기心中日記와 김충선의 亂中日記 를 통해 왕 선조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과 조정대신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일본에 대한 철저한 응징으로 서술되어 있는 글을 통해 이순신의 진심을, 과거 선조실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이순신의 '장계' 가  선조수정실록에서 발견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자 하는 역사픽션소설이다. 

 

 1592년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이 되는 해였다. 200년간 조선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러나 오랜 기간 지속된 평화는 국방체계를 무너뜨렸고, 국력에 기울여야 할 에너지는 동서분당 등 정권 다툼에 쏟아 붓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정세는 명이 쇠퇴하고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세력을 키우고 있었으며 일본은 히데요시가 막부정권을 세우고 명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다. 조선왕조 중에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남는 임진왜란에서 수군으로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이순신은 전쟁중에 압송되어 옥에 구속된다. 이순신이 압송당하여 죽게 될 운명에 처하자 항왜인 사야가 김충선은 반역을 도모하게 되는데 ,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 곳만 바라보는 이순신은 김충선이 꿈꾸는 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을 끝내 허락하지 않은채 ,


 무능한 왕 선조와 당쟁부패(黨爭腐敗)의 신하들/이들은 병마(病魔)이며 내 절망적 고통의 시작과 끝이다./그들을 모조리 달 밝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목을 베고 싶다./아마도 그들의 피는 붉지 않을 것이다./오염(汚染)된 그 피를 거북도 외면하리라. /길은 외길이다. 반란(反亂)!
-이순신의 心中日記 중에서-


 이후 이순신은 반란의 꿈을 꾼다. 그러나 그  반란의 꿈은 선조를 죽이고자 함이 아니다. 그저 임진왜란으로 인해 백성들의 아픔을 , 고통을 위로해 주기 위해 일본 천황이 머리 숙여 사죄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는 사실, 그러나 이순신이 그런 꿈을 꾸고 있을 때 선조는 이순신을 역모의 죄를 묻기 위해 선전관에게 장계를 빼내 날짜를 조작하게 한다. 그러나 조작된 장계마저 사라진다. 장계가 사라짐은 이순신이 역모를 하지 않았어도, 반역자로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에 김충선은 사라진 장계를 추격하고, 결국 장계는 의외의 인물에게서 발견된다. 

이순신의 반역, 차라리 장계가 발견되지 않고 반역이 일어났었다면 이순신이 전쟁중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의 역사에 가장 안타까운 죽음을 손꼽으라하면 이순신의 죽음과 소현세자의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 권력의 희생자라는 안타까움 때문이랄까. 그래서 항상 이들을 떠올리면 만약 , 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만약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켰더라면 당시 중국과 일본이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기에 발맞추어 조선의 역사 또한 그들과 비교적 동등한 위치를 써내려가지 않았을까한다.이 시점을 기하여 급속도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는 조선의 역사는 이후 비극으로 점철된 역사를 남기게 되니,  아마도 이순신은 죽어서도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합병되었을때 지하에서 통곡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아무도 일본천황이 조선에 무릎꿇고 사죄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조선의 오래된 기득권세력의 부정과 횡포는 그때와 다름없이 내려오고 있다는 증명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꿈이었던 강한 조선, 당당한 조선의 모습을 그려보며 그래도 마음에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 픽션일지라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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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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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미스테리의 공식은 이렇다. 한정된 공간에서 피해자와 동시에 범인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이 탐정이 범인의 트릭을 잡아내는 것, 그러나 그 밀실 미스테리의 공식을 깨뜨리는 추리소설이라면?   <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은 독자와 함께 읽어나갈 것을 원한다. 추리소설은 몇년 사이에 무척 친숙한 장르가 되어버였기에 웬만한 트릭은 눈치채 버린다. 그래서 작가의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본격 미스테리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치기가 느껴졌다. 흠 이래뵈도 나름 코난의 추종팬에 최근 범죄스릴러 <TEN>의 열혈시청자라구 ... 했지만 반전에 ...흠 졌다.

 

일단 이 작품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화자이자 이름자 왓슨 역이다.

즉 모든 정보를 독자와 공유하는 입장이며

사건의 범인이 아니다.

 

첫장의 시작의 멘트이다. 이런 식으로 독자와 사건의 전개를 공유하는 식의 서술인데 작가는 독자에게 조금씩 단서를 제공하며 스스로 추리해 나가는 방법을 요구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스기시타 가즈오로 열혈총각이다. 광고대행사에 일하는 가즈오는 친한 동료를 지나치게 대하는상사의 부당한 행동에 화가 나 직장내 물의를 일으키고 회사의 다른 부서인 컬쳐 크리에이티브 부서로 발령이 난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해 스타제작사 같은 곳이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은 것은 회사사장이 가즈오가 닮고 싶은 인물로서 존경하기 때문이다. 바로 새로운 일터로 떠나게 되는데 가즈오가 맡은 역은 요즘 최고 인기 스타워처인 호시노조의 심부름꾼이다. 호즈노조는 조각같이 생긴 외모에 하는 행동과 천상유수인 언변, 집게 손가락을 항상 하늘을 가리키는 행동 등에서 느끼함이 가득하지만 그래도 가끔 보이는 진지함에 가즈오는 호시노조를 신뢰하게 된다.  (여기서 오류를 범하는 것은 평범한 밀실미스테리의 패턴이 머리에 박혀서이다. 아마도 여기까지 읽고 난 독자는 아마도 나처럼 가즈오와 호시노조가 홈즈와 왓슨같은 관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

별이 아름다운 도가리다케 산장마을을 홍보하는 일을 맡게 된 호즈노조를 초대한 건설회사 사장 이와기시 고조, 그의 부하 사이노 마사타카, 인기 작가 구사부키 아카네, 아카네의 비서 아사코, UFO연구가 사가시마 , 여대생 두명, 이렇게 9명은 산장에서 모이게 되는데 , 이 가운데 이들을 초대한 장본인인 사장 이와기시가 살해되고 이어 사이노가 살해된다.

 

 

 

 

눈사태로 고립된 상태, 전화선도 들어오지 않는 고지대, 눈은 계속 내린채 연속 살인이 일어나자 남겨진 이들은 패닉상태에 빠지고 범인이 누구인지 서로 의심하게 되자 호시노조가 나서서 각자의 알리바이를 확인한다. 호시노조는 범인을 "위치 관계’, ‘흉기의 선택’, ‘알리바이’, ‘심인적 요소’, ‘신체적 특징’, ‘행동’ 이렇게 여섯 가지의 조건을 통해 용의자를 한정한 후 범인을 지목하지만 .... 범인은 바로 당신이 아니라는 것 !!!!!!! 

 

작가 구라치 준은 처음 접해 본 일본작가이다. 일본 본격 미스테리를 대표하는 작가중의 한 명으로서  이 소설은 무척 참신하다.  작가는 작품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며 어떤 복선이 깔려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며 추리라는 게임에 참여시킨다. 멋모르고 읽다가 점점 사건의 미스테리에 빠져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추리소설이다. 전형적인 밀실 미스테리의 공식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헛점을 노리는 ~  아주 재미있고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이라 작가와 두뇌싸움을 벌이고 싶다면 도전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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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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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philosophy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유래된 말이다. 철학적 탐구는 문명의 지성사에서 핵심요소이다. 17세기까지 동아시아의 과학과 기술은 서양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이 기계론적자연관에 기초한 고정역학이  탄생하게 되자 과학혁명으로 연결되면서 서양은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무장한 서양의 과학은 핵전쟁을 불사하며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따라서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기계론적 자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신과학 운동'이다. 신과학 운동은 기계론적 자연관 대신 '유기체적 자연관'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동아시아의 사유를 지배하는 것은 '유기체적 자연관'으로서 현대과학의 위기를 중국의 과학사상과 철학 사상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유기체는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낳을 수 있고 , 전체의 변화가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데 제자백가의 사상들은 모두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제자백가는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국가적 장치에 따라 시조유행을 달리했는데 <철학의 시대>는 바로 그런 제자백가의 사상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삶과 사유가 어떤 조건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첫번재 프롤로그이다. 따라서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 전 12권)중의 첫걸음인 셈이다.

 

1부 <중국 고대사의 낯선 풍경들> 에서는 제자백가의 활동 배경이었던 고대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을 살펴본다. 신정 국가로 출발한 고대국가 상나라는 신들의 세계를 믿었으며 주변 국가들에게 신과 대등한 권력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은 주나라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이 없었기에 중원의 패권은 주나라로 넘어간다. 인간의 가치를 중시했던 주나라의 정신은 유학의 창시자 공자에게로 이어져 지끔까지 동양 인문 정신의 원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2부 <고대 경전 들여다보기>에서는  [주역]을 통해 서주 시대로부터 춘추시대까지를 관통했던 고대 중국인의 종교적 사유를 맛보면서, 덤으로 아직도 다양한 형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점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다. [주역]과 [춘추좌전]이 지배층의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면 [시경]은 민중의 삶, 피지배층의 삶과 사유생각을 알수 있다. 저자는 [시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오로지 이 택스트만이 거의 유일하게 주류문화로부터 소외되었던 당시 사람들 대부분의 삶과 심정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시경은 그들의 삶의 질곡속에서도  건강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3부< 제자백가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서는 제자백가를 분류하는 일반적 방식인 유가, 도가, 법가 등의 분류가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 제국 시대의 역사가들이 자의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한 것임을 설명하고, 자의적 분류 방식의 허점과 위험을 지적한다.

 

 

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였다. 각 제후국들은 부국강병을 도모하여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사인의 역할과 위상을 부각시켜주는 사상을 원했다. 이런 시대적인 요구에 발맞추어 등장한 사인들의 무리가 바로 이 제자백가라고 불리는 사인무리다. 이들은 모두 공자의 가르침을 목적으로 삼았던 순수한 학자가 아니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공자를 선택한 이들이 더 많았다. 신분제 사회에서 제자백가라는 사학 집단으로 인해 평민들의 신분 상승이 가능해지자 제자백가는 춘추전국시대에 유독 번성하게 된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누볐던 제자백가 철학은 2500여 년을 가로지르며 동양의 필수 고전이자 경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쟁과 혼란으로 아비규환에 빠져 있던 제자백가 시대, 즉 철학의 시대는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사유의 표현이다.흥미로운 것은 고대 중국인에게 있어 신체의 유기체적 작동 메커니즘이 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제자 백가의 분류법도 바뀌고 사회의 사상에 따라 사상사도 바뀌어 갔다. 따라서 저자는 제자백가 각각의 사상을 다른 사상으로 환원 불가능한 고유한 사유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1권의 철학의 시대는 제자백가의 텍스트를 통한 맛배기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제자백가의 이야기들은 2권 <관중과 공자>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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