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거짓말 - 명화로 읽는 매혹의 그리스 신화 명화의 거짓말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난 이상하게도 그리스신화를 싫어했다. 신이라는 것들이 하는 짓거리가 바람피우는 거나 질투로 사람죽이기를 예사로 생각하거나 가장 싫었던 것은 제우스가 걸핏하면 변신해서 여자를 취하는 그런 자유분방함이 싫었던 것 같다. 반면에 동양화는 어떠한가. 아름다운 자연을 그린 우리나라 동양화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러나 이건 내생각이고 ... 서양화는 대부분이 사람이 대상이다. 그리고 올누드화다. 명화로 보여지는 그림속의 주인공들은 마치 임산부처럼 배가 불뚝하게 나오거나 풍만한 엉덩이에 비해 조그마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것 참 볼만하다. 요즘처럼 삐쩍마른 몸매보다 더 생명력있게 느껴지고 오히려 더 섹시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 명화, 즉 서양화를 말하려면 그리스신화를 피할 수가 없다. 유명한 서양고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독교문화를 알아야하는 것처럼 서양화 또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화의 거짓말>은 무서운 그림으로 유명한 나카노 쿄코가 명화속에 숨겨진 이야기들과 함께 그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크게 제우스를 시작하여 아프로디테, 아폴론과 관련된 명화를 살펴보게 되는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 푹 빠져 읽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치정관계가 많다보니 ^^;)

 

제우스가 황금비로 변신하여 좁은 통기구 틈으로 들어와 다나에에게 쏟아져서 임신하게 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다나에]를 세명의 화가가 시기를 달리하여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그 그림들을 비교하는 재미뿐만 아니라 그림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 또한 재미있다. 여기서 더 재미있는 그림은 [불카누스에세 발각된 비너스와 마르스]인데 바람 핀 아프로디테의 천을 들추고 있는 남편 헤파이스토스와 식탁아래 숨겨진 정부 군신 아레스의 그림이다. "가시를 신경 쓰면 장미를 가질 수 없다. 샛서방을 신경 쓰면 아내를 가질 수 없다." 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신들중에 가장 못생겼던 헤파이스토스는 아름다운 애욕의 여신 아프로로디테의 부정을 눈감아주었는데 아마도 그저 아름다운 아내를 가졌다는 것에 만족하였기 때문인가보다. 이 그림은 남편인 헤파이스토스가 천을 들춰도 창피한 기색없이 다리를 벌리는 모습에서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과거 명화는 오락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이 그림으로 볼 수 있는데 텔레비젼이나 영화같은 영상매체가 없는 시대에 즐길 수 있는 것은 그림이었던 것이다.이런 오락적인 그림은  제우스가 아이가 굶어 죽을 까봐 헤라에게 억지로 젖을 빨게 하는 그림인데 헤라가 아기를 뿌리치려 하는 동시에 솟구치는 젖은 하늘로 튀어올라 수많은 별로 변해서 마침내 하늘의 강인 은하수(milky way)가 되고 땅에 떨어진 젖이 흰백합이 되었다는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명화는 대중매체를 대신하여 시대를 즐기는 오락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의 이야기이다.

너무도 생동감있는 나체를 껴안고 있는 한 남자, 여자는 다른 그림들의 풍만한 여체와는 달리 미끈하게 빠진 몸매에 다리부분만 희고 단단한 석고이다. 피그말리온이 자신이 만든 동상을 사랑하게 되자 신에게 생명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얻은 신부 갈라테아, 그러나 이 이야기는 후에 남성의 로망으로 변하게 되는데 일본 소설 [겐지이야기]에서처럼 남성이 어린 소녀를 성숙한 여인으로 교육시켜 이상적인 여자가 된 후에 아내로 삼은 이야기이나 [현기증]이라는 영화에서 자신의 죽은 아내 마들렌을 대신한 완벽한 여자를 만드는 것에서 보여진다.  명화를 통해 그리스 신화가 펼쳐지기도 하고 신화와는 다른 명화를 통해 역사와 고전, 다른 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뻗어 나간다. 명화라는 관문을 통해 신화와 인문학을 여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화가 미치는 영향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위의 그림 아래부분은 미성년자 관람불가라 잘랐는데 (사실 사진이 너무 커서 ^^) [히아킨토스의 죽음]을 통해서는 너무 고와서 여자인 줄 알았던 그림이  꿀처럼 달콤하고 보고있으면 왠지 가슴이 떨리는 매끈한 살결과 나긋나긋한 몸매를 지닌 미소년들이란 사실, 그러나 히아킨토스는 원반에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고 있는 그림이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너무 아름다운 들판의 모습과 왠지 모를 야릇함이 가득한 그림에 잠시 넋이 나간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그림을 그린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히아킨토스의 죽음]은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한편으로는 히야킨토스를 동성애의 대상으로 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식물신이었다는 설로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머리가 다쳐, 본래의 모습대로 식물인 꽃이 되어 사라졌다는 말도 있는데  일반인에 불과한 내 눈에는 너무 곱기만한 그림이다. 그 옆의 그림은 귀스카브 모로의 [오르페우스]인데 오르페우스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트라비키아의 처녀의 표정에서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 '잘린 머리'는 세기말 미술에서 크게 유행했다. 아내를 두차례나 죽게 만들었던 오르페우스는 비탄에 빠져서 그 후 여성을 가까이 두여 하지 않았는데 오르페우스에게 외면당하자 화가 난 트라키아의 디오니소스 무녀들이 돌을 던져 오르페우스를 죽이고 광란 상태에서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발긴후 , 머리와 리라를 헤베로스 강에 던져 버렸다. 잘린 머리를 주워서 바라보고 있는 트라비키아의 여자,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잘린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허연 시인은 중년의 나이를 일컬어 모든 죄악이 이해되는 나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사실 이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그 말이 각인이 되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 내가 그리스신화를 이해하지 못해 싫어했던 이유들이 그나마 순수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내 안에 이미 과거의 순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까 그리스 신화가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오다니 .. 이제 정말로 허연시인의 말이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명화의 거짓말>은 그런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탐구이다. 생경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명화들 속에 들어가 그리스 신화를 재조명하고 그 안에서 또 한가닥의 이야기들을 뽑아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의 한 부분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봐 온 신화가 사랑과 배신, 질투와 오해, 쓰라린 좌절과 슬픔의 이야기였다면 우리사 사는 삶의 모습 또한 신화속의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 <명화의 거짓말>을 통해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매혹적인 그림과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라 누구라도 명화를 맘껏 즐길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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