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philosophy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philosophia에서 유래된 말이다. 철학적 탐구는 문명의 지성사에서 핵심요소이다. 17세기까지 동아시아의 과학과 기술은 서양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양이 기계론적자연관에 기초한 고정역학이 탄생하게 되자 과학혁명으로 연결되면서 서양은 동양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무장한 서양의 과학은 핵전쟁을 불사하며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게 된다. 따라서 20세기 후반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기계론적 자연관'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신과학 운동'이다. 신과학 운동은 기계론적 자연관 대신 '유기체적 자연관'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다. 동아시아의 사유를 지배하는 것은 '유기체적 자연관'으로서 현대과학의 위기를 중국의 과학사상과 철학 사상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유기체는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낳을 수 있고 , 전체의 변화가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데 제자백가의 사상들은 모두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제자백가는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국가적 장치에 따라 시조유행을 달리했는데 <철학의 시대>는 바로 그런 제자백가의 사상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삶과 사유가 어떤 조건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첫번재 프롤로그이다. 따라서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 전 12권)중의 첫걸음인 셈이다. 1부 <중국 고대사의 낯선 풍경들> 에서는 제자백가의 활동 배경이었던 고대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을 살펴본다. 신정 국가로 출발한 고대국가 상나라는 신들의 세계를 믿었으며 주변 국가들에게 신과 대등한 권력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은 주나라 사람들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이 없었기에 중원의 패권은 주나라로 넘어간다. 인간의 가치를 중시했던 주나라의 정신은 유학의 창시자 공자에게로 이어져 지끔까지 동양 인문 정신의 원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2부 <고대 경전 들여다보기>에서는 [주역]을 통해 서주 시대로부터 춘추시대까지를 관통했던 고대 중국인의 종교적 사유를 맛보면서, 덤으로 아직도 다양한 형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점의 논리를 살펴볼 수 있다. [주역]과 [춘추좌전]이 지배층의 속내를 보여주고 있다면 [시경]은 민중의 삶, 피지배층의 삶과 사유생각을 알수 있다. 저자는 [시경]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오로지 이 택스트만이 거의 유일하게 주류문화로부터 소외되었던 당시 사람들 대부분의 삶과 심정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 말한다. 시경은 그들의 삶의 질곡속에서도 건강성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3부< 제자백가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에서는 제자백가를 분류하는 일반적 방식인 유가, 도가, 법가 등의 분류가 춘추전국시대 이후 한 제국 시대의 역사가들이 자의적으로 분류하고 명명한 것임을 설명하고, 자의적 분류 방식의 허점과 위험을 지적한다. 전쟁과 살육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으로 고통과 상처에 신음하던 시대였다. 각 제후국들은 부국강병을 도모하여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사인의 역할과 위상을 부각시켜주는 사상을 원했다. 이런 시대적인 요구에 발맞추어 등장한 사인들의 무리가 바로 이 제자백가라고 불리는 사인무리다. 이들은 모두 공자의 가르침을 목적으로 삼았던 순수한 학자가 아니라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공자를 선택한 이들이 더 많았다. 신분제 사회에서 제자백가라는 사학 집단으로 인해 평민들의 신분 상승이 가능해지자 제자백가는 춘추전국시대에 유독 번성하게 된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누볐던 제자백가 철학은 2500여 년을 가로지르며 동양의 필수 고전이자 경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쟁과 혼란으로 아비규환에 빠져 있던 제자백가 시대, 즉 철학의 시대는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사유의 표현이다.흥미로운 것은 고대 중국인에게 있어 신체의 유기체적 작동 메커니즘이 사회의 작동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제자 백가의 분류법도 바뀌고 사회의 사상에 따라 사상사도 바뀌어 갔다. 따라서 저자는 제자백가 각각의 사상을 다른 사상으로 환원 불가능한 고유한 사유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1권의 철학의 시대는 제자백가의 텍스트를 통한 맛배기에 불과하고 본격적인 제자백가의 이야기들은 2권 <관중과 공자>에서부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