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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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여자의 시각을 알게 되고, 우리는 삶의 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배우가 어떤 역할을 하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듯 우리 또한 작품속 인물들에 강하게 빙의되어 우리의 삶을 반추한다.

 

니콜 키드먼 주연의 동명 영화 <디 아워스>를 놓쳤다. 자세한 이야기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을 보게 되었는데, 책과 영화는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것을 느낀다. 아마도 책을 읽는 사람과 영화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달랐을 수도 있다. 왜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고민을 제대로 해보기 전에 동명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배우들의 특별한 연기에 힘입어 소설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클러리사를 죽일지 살릴지 고민이다. 1949년의 로라 브라운,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고 로라를 무척 사랑하는 남편과 리치라 불리는 아이가 있다. 1999년의 클러리사 본은 리처드로부터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작가인 리처드는 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있고, 클러리사는 리처드의 파티를 준비한다.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의 변주다. 울프 부인은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클러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린다. 소설은 시대를 달리한 세 여성들의 급박한 하루를 나타냈다.

 

 

 

영화의 시작도 소설과 같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의 시선을 피해 바닷가로 달려간다. 코트속에 크고 무거운 돌을 넣고서 그대로 들어간다. 다리까지, 허리까지, 목까지 차던 물은 그대로 울프 부인을 삼켜 버린다. 영화는 소설보다 훨씬 즉각적으로 화면을 달리해가며 세 사람의 하루의 시작을 교차한다.

 

아들 리치와 함께 케이크를 굽던 로라는 이웃집 여성 키티의 방문을 받고 병원에 간다는 그녀를 안고 입술에 키스를 한다. 이 모습을 아들 리치가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 로라는 아들을 차에 태워 아이를 돌봐주는 부인에게 맡기고 자기만의 방을 빌린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는 어쩐지 처량하다. 자신을 버지니아 울프와 혼동하는 것 같다. 로라가 하루의 몇 시간을 호텔에 머무는 장면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맞닿아 있다. 지겨운 하루의 어떤 시간을 홀로 있고 싶어 아이를 맡기고 침대에 누워 하는 일이라곤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것일뿐인 로라. 우리도 어쩌면 이런 시간을 꿈꾸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소설 속 세 여성들은 모두 남성들보다 여성을 좋아한다는 거다. 댈러웨이 부인이라 불리는 클러리사는 샐리와 함께 살고 있고, 클러리사의 딸인 줄리아는 또다른 여성과 함께 한다. 클러리사가 한때 좋아했던 리처드는 루이스와 사랑을 했고, 현재의 루이스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과 사랑에 빠져있다.

 

 

 

동성애 코드가 있지만 그렇게 거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오늘의 시간을 사는 여성들의 고민과 삶의 애환이 보인다. 건강을 위해 런던에서 시골 리치몬드로 내려왔지만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댈러웨이 부인인 클러리사를 죽일까 말까,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비로소 누구를 죽일지 결정하게 된다.

 

소설의 전체적인 느낌은 우울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전체적으로 자리잡고 있고, 모두들 지난 시간에 대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리처드의 죽음이, 갑자기 사라졌던 로라에 대한 리처드의 감정이 애잔하다. 누군가는 사라질 수 밖에 없고, 사라지고 싶어하고, 사라지지 못하는 삶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시간들은 남아 있어, 그렇지 않아? 하나의 시간, 그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그 시간들을 당신이 다 견뎌낸다고 해도 또 그런 시간이 있어. 세상에, 또 그런 시간이라니. 지긋지긋해. (293페이지)

 

 

 

 

 

아주 운이 좋더라도 시간 자체에 잡아 먹힌다. 위로할 거라곤 우리 삶이, 그 모든 역경과 기대를 넘어선 우리 삶이 활짝 피어나 상상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어쩌면 아이들까지도) 그런 시간 뒤에는 필연적으로 그보다 더 암울하고 힘든 시간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도시를, 아침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은, 더 많은 시간들이다. (327~328페이지)

 

영화에서는 이 부분들을 세월로 번역하고 있었다. 시간과 세월은 어쩐지 다른 느낌이다. 시간은 현재를 말하는 것 같고, 세월은 지나간 시간을 말하는 것 같다. 이 모두 우리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수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사는 것일뿐. 전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궁금했었는데, 마이클 커닝햄이 소설을 변주할 정도면 얼마나 좋았던 것일까. 궁금함에 잠못 이룰 것 같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가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질 수 밖에 없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고, 이 소설이 퓰리쳐 상과 펜 포크너 상을 동시 수상할 수 밖에 없었는지 동감하게 된 보기드문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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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2-0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에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소설을 바탕으로 쓴 『디 아워스』라는 작품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디 아워스』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다운 받아 봤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뜻밖에도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던 당시 리치몬드에서 생활하던 버지니아 울프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정작 원작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클라리사와 피터 월시 사이의 ‘애정이 꽃피던 시절‘을 볼 수 없어서 여간 아쉬운 게 아니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