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레드몬과 애슐리 사빈의 영화, '킴스 비디오'를 봤다. 한국계 미국인인 용만 킴이 운영하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에서 비디오와 DVD를 종종 빌려 보던 데이빗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킴스 비디오를 추억하다가 비디오의 행방을 추적해 이탈리아까지 가서는 비디오를 해방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영화를 향한 무차별적인 사랑이 영화를 자유롭게 한다는 메시지가 남는 영화다.

인상적인 점은 아카이브의 주인인 용만 킴의 태도였다. 용만 킴은 디지털 시대의 부상으로 오만오천 개나 되는 영상물들을 어딘가에 기증하기로 한다. 뉴욕대학교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있는 소도시 살레미 등에서 그의 아카이브를 보관하겠노라고 했는데 용만 킴은 왠지는 몰라도 영상물들을 살레미에 맡기기로 한다. 살레미에 찾아오는 킴스 비디오 회원들에게는 아카이브를 열어주기로 했지만 살레미는 어떤 마피아와 정치가에게 얽힌 정치적인 이유로 그의 아카이브를 제대로 보존하지도 대여하지도 못한다. 감독의 도움으로 용만 킴은 오랜 세월이 지나 살레미에 있는 자신의 아카이브를 찾아보고는 열악한 환경에 실망한다. 하지만 영상물들이 자신의 손을 이미 떠난 관계로 영상물들에 더 이상의 관심을 쏟지 않기로 한다. 감독은 이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아녜스 바르다, 장 뤽 고다르, 히치콕 등 영화인들의 혼령의 도움으로 모든 영상물들을 훔친다. 그리고 뉴욕시의 어느 영화관의 도움으로 다시 킴스 비디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영상물을 대여하는 데 일조한다.

영화들이 살려달라고 꺼내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는, 고다르의 메시지를 들어 도둑질을 했다는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용만 킴은 감독이 자신의 아카이브를 훔쳐 뉴욕까지 다시 가져왔다는 말에 '고다르의 뜻을 존중해야지'라고 말하며 호방하게 웃었다. 자신의 손을 떠났던 것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의 그 만족감은 경이에 가까운 것일 테다. 뉴욕에 가게 된다면 나도 킴스 비디오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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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봤다. 평범한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자꾸만 벌어지는 가운데 그들에게 살인을 교사한 인물 마미야가 있다는 걸 타카베 형사는 알게 된다. 타카베는 마미야의 정체와 살인 교사의 동기를 궁금해하지만 마미야는 거래를 제안하듯 타카베에게 요구한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제목인 ‘큐어’는 치료법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치료가 이뤄지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그건 순전히 살인 교사 가해자인 마미야의 시점에 관한 것이다. 마미야는 사람들이 절제하는 악을 향한 욕구를 부추겨서 급기야는 살인까지 하게 만든다. 마미야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풀어진 마음을 해소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인을 저지른 어느 누구도 마미야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관을 예로 들면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어떤 남자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면서도 이윽고 몸을 떨며 모른 척한다. 그에게 마미야의 존재는 수치와 공포로 여겨지는 것 같다. 다른 살인자들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 비교적 침착하게 말하던 경찰관은 빛 앞에서 무너진다. 그 역시 살인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타인과 자신을 향한 관용과 인내를 무너뜨리는 힘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금주와 금연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그를 자극하며 음주와 흡연을 하도록 이끄는 사람은 그에게서 본능을 이끌어냈다며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하고 귀한 건 어떤 욕망이 아닌 그 욕망을 절제하려는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절제가 끊어질 때 양심이 있거나 약한 사람들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파괴하기를 택한다. 타카베의 부인과 동료를 보자. 그들은 마미야처럼 텅 비어버렸으나 자신을 해하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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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기요시의 ‘해안가로의 여행’을 봤다. 피아노 선생님인 미즈키가 삼 년 만에 돌아온 남편 유스케와 해안가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감독은 빛과 같이 가볍고, 명멸하고,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욕망을 지닌 영혼을 연출한다. 영혼은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노동하고, 얼굴을 가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어루만지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용소를 넘나들고, 우주를 가리키고, 시간에 따라 노화한다. 감독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 영혼의 생성과 사라짐을 포착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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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바니 레다와 니콜라 마시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케이트 보드 위의 삶: 리오 베이커 스토리’를 봤다.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세계 최정상의 스케이트 보더 리오 베이커의 삶을 다룬 이야기이다. 리오는 오랫동안 알려진 레이시 베이커라는 이름을 뒤로한다. 도쿄 올림픽에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선수로 출전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고, 코로나19로 스케이트 보드 대회들이 쉬는 동안 유방 절제술을 받는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몸속에서 자유롭게 스케이트 보드를 탄다.

리오가 자신이 좋아하는 컨셉으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자마자 반발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린다. 네가 트랜스라면 남성 팀에서 뛰지 그러냐, 너는 그래봤자 여성 팀에서 뛰는 여성 선수일 뿐이야, 같은. 예상했던 대로다. 그래도 리오는 반발들을 무릅쓰고 올림픽 출전권을 포기한다. 여성이 아닌데 여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탓에 포기와 함께 든 건 오히려 자유롭다는 느낌이다. 친구와 애인의 응원을 받으며 리오는 자신다운 모습을 부단히 추구한다. 자신이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처럼 서포터들의 지원이 끊기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기우에 불과하다. 커밍아웃을 하고 유방을 절제한 이후에도 나이키와 서포터들의 지원은 끊어지지 않는다. 퀴어 스케이트 보더들은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신나게 거리를 누빈다.

리오 베이커가 소속된 퀴어 스케이트 보더들의 그룹 ‘글루’를 응원한다. 퀴어들이 그 자신답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예상하게 하는 사회를 타파하고 더 많은 만남을 향해 발을 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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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코미디 쇼, ’해나 개즈비: 섬씽 스페셜‘을 봤다. 해나에게는 청혼처럼 흔히들 진지해야 마땅하다고 하는 이벤트 속에서도 우스꽝스러운 한순간을 뽑아내 그 일화를 더욱더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 순간에서 자신이 뜻밖에 취한 동작을 이야기의 가장 맨 앞에 배치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그 동작을 취하기까지의 묘사를 뒤로 빼고, 그 사이에 인생사의 농담들을 섞어내는 것이 그의 장기이다.

해나가 쉴 새 없이 던지는 농담들은 자신의 가족과 반려견, 이전 여자친구들을 소재로 한다. 부모님의 캐릭터가 서로에게 어떤 시너지를 주는지, 그리고 그 관계성이 해나 자신과 파트너의 관계와 얼마나 비슷한지, 해나가 이전에 만났던 여자 친구에게서 받았던 크리피한 감정이 현재의 파트너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스쳤는지. 이야기들은 연달아 이어지고 긴밀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들으면서 웃지 않기란 어렵다.

해나가 쇼의 도입부에서 취한 뜻밖의 동작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가 앞서 던지는 농담들을 들어야만 그 동작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 동작은 실로 당황스럽고 곤경에 처한 사람의 것이지만 그는 자신을 진정케 하려고 하는 파트너의 노력에 한없이 솔직해지며 난처헌 상황을 떨쳐낸다.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비명을 지르듯 외친다. 너의 아내! 해나의 농담은 결국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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