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인터넷 - 지구를 살릴 세계 최초 동물 네트워크 개발기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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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비켈스키의 “동물 인터넷”을 읽었다. 저자는 동물들, 특히 조류의 일상과 생태, 그리고 그것을 조사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생물학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인식표를 동물의 몸에 어떻게 하면 더 이질감 없이 달아줄 수 있을지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노고를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끼면서 그들이 동물들로 하여금 알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품을 수 있었다.
책의 도입부를 읽을 무렵 나는 생물학자들이 동물의 몸에 부착하려고 하는 인식표가 동물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했다. 단지 동물들이 어떤 생활을 할지 궁금해하는 것만으로 그래도 되는 것인지, 그건 너무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의한 태도가 아닐지 의심했다. 하지만 책을 점점 읽으면서 동물들의 일상과 생태를 통해 생물학자들이 얻고자 하는 정보는 인간뿐만 아니라 인식표를 부착한 동물들에게 이로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환경 파괴와 전쟁, 그러니까 인간들이 생물을 사유하지 않고 만들어낸 재앙 속에서 동물들은 목숨을 잃는다. 생물학자들이 개발한 인식표는 목숨을 잃기까지 동물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생물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동물들의 삶에 얼마나 깊숙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지 연구한다. 그리하여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지 방법을 모색한다.
나는 러시아의 연구자들이 저자가 소속된 팀의 연구를 가로챘다는 일화를 읽으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그 연구로 무엇을 알아내든 그들은 인간과 동물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껏해야 자신들의 심기에 거슬리는 것들을 향해 전쟁을 벌일 뿐이다.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었는가. 그들이 동물들을 위한다면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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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잭 핼버스탬 지음, 허원 옮김 / 현실문화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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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핼버스탬의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을 읽었다. 일단 나는 이 책의 핵심으로 보이는 문장을 인용하겠다.
‘밝음을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덜 밝은 것에 적응하라는 크리스프의 조언과 브룩스의 미학을 따라, 나는 퀴어 예술의 한 형식이 실패를 가장 중요한 항목으로 삼으며, 혼란, 외로움, 소외, 불가능성,거북함이라는 암울한 풍경을 퀴어성의 역할로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당연히 그 무엇도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를 이 같은 비존재 및 자발적 퇴행의 양식과 본질적으로 연결하지는 않지만, 퀴어성을 상실과 실패에 결박하는 사회적, 상징적 시스템이 없어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혹자는 그런 시스템이 없어져서도 안 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잭 핼버스탬은 실패와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퀴어의 운명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스펀지 밥’ 등의 애니메이션을 언급하면서 ‘생성적 실패 모델‘을 만들자고 한다. 파시즘과 퀴어의 연결 고리를 부인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실패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퀴어로서 퀴어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옳지도, 퀴어에게 이롭지도 않기 때문이다. 잭은 퀴어를 향한 애정을 담아 말한다. 죽음과 실망을 우회하지 말고 실패를 수용하자고. 그의 요구는 어쩌면 퀴어 당사자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퀴어에게 실패란 결코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잭은 그렇다는 것을 냉담하게도, 혹독하게도 말하지 않는다. 아무리 퀴어의 삶이 밝아진다 한들 그 밝기는 덜 밝을 수밖에 없다. 퀴어는 그 밝기에서 더 밝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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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숄트 어페어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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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홀링허스트의 장편 소설 ”스파숄트 어페어“를 읽었다. 데이비드 스파숄트와 그의 아들 조너던 스파숄트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그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게이 정체성이란 것을 언급해야만 한다. 데이비드 스파숄트는 소설 속에서 시종 암시되는 ‘스파숄트 스캔들’ 또는 ‘스파숄트 어페어’로 인해 숨겨왔던 게이 정체성이 탄로가 난 유명한 기업인이고, 그의 아들 조너던은 커밍아웃한 게이로 항상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영국에서 동성애가 죄악으로 여겨지고 실제로 그런 성지향성에 관한 대가를 치뤄야만 하는 시대에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살아야만 했던 데이비드 스파숄트에게 연민을 느낀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떨쳐내려는 듯 더욱더 깊은 곳으로 숨어 자신의 성지향성을 부인하는 삶을 살았다. 첫 번째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신의 비서였던 여자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리고 커밍아웃한 화가인 자신의 아들, 조너던과 죽는 그날까지 어색한 거리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너던은 그런 아버지의 스캔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아버지의 삶이 자식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단정과 동정이 그를 오히려 당혹감에 가뒀기 때문이다.
작가는 양성애자, 혹은 디나이얼 동성애자로 보이는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정체성을 단일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수려한 외모로 대학 시절부터 스캔들을 일으켰다. 군인으로서 활약했으며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아들 조너던에게는 근엄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작가는 데이비드와 조너던을 마냥 불행하게 그리지 않는다. 어떤 시선에도 불구하고 결코 망가지기 쉽지 않은 사람들로 그린다. 오히려 망가진 건 ’스파숄트 스캔들‘을 잊지 못하고 그에 관해 입에 올리면서도 떳떳하게 말하지는 못하는 타인들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소설의 뒤로 갈수록 소설의 처음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데이비드 스파숄트의 대학생 시절에 그에게 매혹됐던 젊은이들은 노년을 맞거나 노년을 맞이하지 못한 채 청년 시절에 세상을 떴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에 신중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조너던 스파숄트가 유일하다. 그들의 중심에는 조너던의 아버지, 데이비드가 있었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는다. 자신을 좋아해줬던 자신과 섹스를 했던 에버트에게만 다가선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피어났던 일은 좀체 언급하지 않는다.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앨리슨 백델의 “펀 홈”이 떠오른다. 데이비드 스파숄트에게서 앨리슨 백델의 부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성지향성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시절을 살다 갔다. “스파숄트 어페어”와 “펀 홈”을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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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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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드 보부아르의 “둘도 없는 사이”를 읽었다. 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스물두 살에 세상을 떠난 시몬의 가장 친한 친구 자자와의 우정을 다룬다. ‘둘도 없는 사이’라는 말은 시몬과 자자의 우정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던진 말이다.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그 말은 틀림이 없다. 시몬의 이름은 ‘실비’로, 자자의 이름은 ‘앙드레’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우정은 축복받아 마땅하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러 저서를 통해 자자를 부활케 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로소 “둘도 없는 사이”라는 장편 소설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시몬은 자자가 왜 죽었을지 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영성에 의한 범죄’ 때문이었을 거라고. 책을 다 읽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자자를 잘 모르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건 그의 부활된 몸인 앙드레지만.
앙드레를 통해 나는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긋고 그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죽음에 가까워질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신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던 앙드레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 미쳐버리고 만다. 실비가 앙드레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신에 관한 믿음을 잃었을 때 앙드레도 그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남겼는데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앙드레를 죽인 건 신을 향한 간곡한 마음의 한계였다. 그래서 앙드레는 항상 지쳐 있었던 것이다.
앙드레의 명복을 빈다. 자자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누구보다 마음이 아팠을 그의 친구 실비,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마음을 헤아린다. 앙드레가 신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시몬과 항상 일 등 자리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했던 자자가 자신 고유의 영특함을 뽐낼 수 있는 곳에서 어떤 시기와 질투에도 휘말리지 않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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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체중 - 크고 뚱뚱한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헛소리
케이트 맨 지음, 이초희 옮김 / 현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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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맨의 "비정상체중"을 읽었다. 작가는 다이어트를 관리와 제어로 보는 사회와 그런 관념을 퍼뜨리는 학자들을 고발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관리와 제어라는 관념이 사람을 얼마나 옥죄고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를 말한다.
'나는 모든 신체가 받아들여지는 세상을 꿈꾸고 이런 세상을 우리가 도덕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 아무도 체중 감량을 비롯한 어떤 이유로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작가는 단지 자기를 긍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체의 다양성이 갖춰진 사회는 신체적으로도 관념적으로도 허기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몸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그 사람이 유일하게 의도된 그 몸의 수혜자라는 의미이다. 누구의 의도인가? 우리가 정치 집단으로서 적절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의도가 될 것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내 몸도 타인의 몸도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몸은 그들 각자의 내러티브를 수용하기 때문이다. 그런 메시지는 내가 록산 게이의 "헝거"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다. 우리가 각자의 몸을, 더 나아가 서로의 몸을 존중한다면 우리의 몸에 상처를 남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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