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를 봤다. 평범한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자꾸만 벌어지는 가운데 그들에게 살인을 교사한 인물 마미야가 있다는 걸 타카베 형사는 알게 된다. 타카베는 마미야의 정체와 살인 교사의 동기를 궁금해하지만 마미야는 거래를 제안하듯 타카베에게 요구한다.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을.

제목인 ‘큐어’는 치료법을 말한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어떤 치료가 이뤄지는 것인지 생각해보면 그건 순전히 살인 교사 가해자인 마미야의 시점에 관한 것이다. 마미야는 사람들이 절제하는 악을 향한 욕구를 부추겨서 급기야는 살인까지 하게 만든다. 마미야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풀어진 마음을 해소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살인을 저지른 어느 누구도 마미야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찰관을 예로 들면 그는 살인을 저지르기 전에 어떤 남자가 있었다는 걸 기억하면서도 이윽고 몸을 떨며 모른 척한다. 그에게 마미야의 존재는 수치와 공포로 여겨지는 것 같다. 다른 살인자들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일에 관해 비교적 침착하게 말하던 경찰관은 빛 앞에서 무너진다. 그 역시 살인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는 마찬가지다.

타인과 자신을 향한 관용과 인내를 무너뜨리는 힘을 생각한다. 누군가가 금주와 금연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그를 자극하며 음주와 흡연을 하도록 이끄는 사람은 그에게서 본능을 이끌어냈다며 희열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하고 귀한 건 어떤 욕망이 아닌 그 욕망을 절제하려는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절제가 끊어질 때 양심이 있거나 약한 사람들은 타인이 아닌 자신을 파괴하기를 택한다. 타카베의 부인과 동료를 보자. 그들은 마미야처럼 텅 비어버렸으나 자신을 해하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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