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를 봤다. 제목이 주제인 연극이었다. 이것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 이야기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는. 2000년에 태어난 두 여자가 2099년까지 친구, 연인, 헤어진 연인 등 어떤 형태로든 함께하는 이야기였다. 극은 현재와 과거가 이중구조로 엮여 있는 형태였다.

레즈비언인 나는 두 여자가 거듭해서 과거로 이동할 때마다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보다 한참 어린 2000년생의 여성들마저 내가 평소에 느끼던 슬픔의 연대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눈앞이 멍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제도적으로 묶이는 장면은 없고, 딸을 입양하기 위해 갈등하는 장면은 있어서 설마 두 사람이 겪는 머나먼 미래에도 혼인평권이 이뤄지지 않은 거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침내 가정을 이룬 두 여자가 왜 헤어졌을지 궁금했다. 제도 외에 그들을 방해하는 건 무엇일지. 어쩌면 제도의 방해 때문에 그들이 힘을 소진해버리고 늙어버린 건 아닐지. 그들 사이의 애정이 식어버린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으로 기울었고, 속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친구 사이가 된다는 것이 눈물겹게 묘하다고 생각했다.

연극 전체를 뚫는 ‘행복한데 불행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나는 이런 연극을 이해하며 바라보는, 동성인 연인과 어떻게 하면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도 종종 불안에 휩싸이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면서도 제도가 헤아리지 못할 슬픔의 깊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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