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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관하여
정보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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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의 소설, "고통에 관하여"를 읽었다. 일단 지워지지 않는 생각은 이 소설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것만 같다는 것이다. 고통과 쾌락을 감각하는 기관들을 통해 둘 사이가 역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둘 사이의 공간에 삶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어서는 좋았다. 그리고 성소수자의 지금보다 나은 삶을 보여주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소설의 가장 처음에 표현되는 '경'과 '태'가 보여주는 성적인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충동을 느끼기까지의 경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있지만 그런 심리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독자가 할 수 있는 가늠보다 저자가 할 수 있는 적확한 설명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본다.

의문이 남는다. 왜 경과 태가 수많은 결합 방식 중에서 성적인 결합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이해되지 않는다. 당연하게 유성애를 기반으로 둬서 생긴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왜 어떤 인물도 성정체성에 관한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필요없는 미래에 사라지지 않는 고민들은 어떤 이유로 소설 속에 존재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조금 고통스럽다고 진통제를 복용하지도, 고통을 갈망하며 사이비 종교에 들어가지도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평범함이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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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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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었다. 떠나버린 사람을 기억속에 남겨둔, 또는 떠나버린 사람에 의해 남겨진 사람이 자신의 잉여를 떠나보내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성장 소설이었다. 상반되는 관념들이 하나로 이어진 도시를 망가뜨리지 않고 작별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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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낮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
장재희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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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희의 단편집 “밤과 낮”을 읽었다.

첫 번째 단편 ‘밤과 낮’은 인물들 사이의 경계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작가는 그 경계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자가 서로에게 품는 의문을 통해 그 경계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려는 찰나를 다룬다. 그 찰나를 다루려는 작가의 욕망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두 번째 단편 ‘수몰’은 가라앉는 섬에 방문한 한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난 잔잔한 파문을 다룬다. 화자는 자신이 포착한 타인의 표정, 타인의 마음이 자신에게 이미 충분히 내려앉은 줄 알았으나 아직 정리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작가는 그것이 과연 정리될 만한 것인지 묻는 것 같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순서인 단편 ‘정오의 희망곡’은 화자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멀뚱한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카운터나 좌석에 곤히 앉아 기약이 없는 기다림을, 기다린다는 의식 없이 버티는 화자. 그런 화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뮤지컬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음악이 화자의 처지와 대조를 이루며 일렁인다. 음악이 멎은 순간에도 화자는 일렁거린다. 그리움과 긴장감 속에서도 고요하게.

장재희 작가는 일상에서 흔히들 지나치기 쉬운 순간과 감각을 포착해낸다. 하지만 그는 어떤 미련도 없는 행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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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말고 모모
로진느 마이올로 지음, 변유선 옮김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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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진느 마이올로의 “부모 말고 모모”를 읽었다. 프랑스에 사는 레즈비언인 저자가 동반자와의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임신하고 낳기까지의 여정이 이중 구조로 쓰여 있다. 하나의 이야기에는 그런 삶의 연대기가, 또 다른 이야기에는 둘째 아이를 갖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삶의 연대기를 다룬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저자와 연인의 연애 스토리와 그들이 마주한 차별, 그리고 법률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프랑스의 법과 동성애자의 현실을 사유하며 터뜨리는 분노를 느꼈다.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라고 불리는 프랑스, 동성혼이 법제화된 국가이기에 레즈비언인 내게 어떤 기대를 품게 하던 국가인 프랑스를 향해 나는 실망하고 저자와 함께 분노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진정으로 평등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저자의 건강한 마음에 탄복하기도 했다.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한 여정을 다룬 이야기 속에서는 프랑스에서 아직 모모의 보조생식술이 합법화되지 않은 당시에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 스페인까지 가서 정자공여시술을 무수히 시도하고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하는 저자의 무수한 노력과 실망을 함께 느껴볼 수 있었다. 내가 저자의 입장에 놓였더라면 거듭되는 실망을 무릅쓸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무수한 시도 끝에 성공이 있어 다행이었다. 저자가 실망한 채로 체념을 하지 않은 것이 내겐 크나큰 힘이 됐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분노에 공감보다는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저자를 사유하게 하는 제도가 부러웠다. 그것이 차별적일지언정 한국의 제도보다는 낫다는 생각, 어떤 사유를 하게 하는 체계가 부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런 생각이야말로 내가 싫어하는 감지덕지의 만족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약자는 권력자가 허용해주는 한도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나는 저자가 정자공여시술로 낳은 첫째 아이 쥘리에트를 저자의 연인이 자신의 아이임에도 입양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 분노했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 애쓰고 반복해서 실망하는 저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제 그만하지, 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 나 자신을 다그쳤다. 소중한 가족의 의미와 시민 사회는 어떻게 성숙해야 하는지 일깨워준 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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