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깨비 신이 돌아오도다 도트 시리즈 4
위래 지음 / 아작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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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깨비 신이란 우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예전부터 존재했을까. 아마도 그는 우정이란 것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줄곧 믿음의 대상이 되어왔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장난에서 유래한 그것은 막연한 힘을 가진다. 사회가 특정한 종교들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허깨비 신의 능력은 많이 다뤄지지 않는다. 언젠가 돌아올 기다림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그것만으로도 허깨비 신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허깨비 신은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자유를 준다. 모닥불을 앞에 두고 하는 이야기, 아직 도래하지 않은 희망을 향한 기다림 같은 것들을. 하지만 허깨비 신은 돌아온다. 기다림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우정이 무너지는 동시에 사신으로 현현한다.

나는 소설을 읽고 나서 무너지지 않는 우정에 관해 생각했다. 과연 그런 것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이어 친구들이 서로에게서 멀어지거나 서로를 배신하거나 하여 무너진 우정은 찢어진 마음과 죽음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믿음을 허용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실로 이 사회가 그런가? 라는 의문도 들었다. 사회는, 한 어린이가 꿈꾼 어떤 희망을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이뤄주지 않으며, 어쩌면 영원이라는 시간 동안 저버릴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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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 인 더 미러 도트 시리즈 3
황모과 지음 / 아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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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노바디 인 더 미러"의 두 주인공 이혜와 제삼은 '브레인 페어링'이라는 기술에 의해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간다. 이혜는 여러 정신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제삼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대신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고 한다. 원래 부부였으나 해로운 관계였던 이혜와 제삼은 남들이 보기에는 이전과 다르지 않으나 실상은 이전에는 결코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언젠가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한 여자가 에이즈 합병증을 앓고 있을 때 부모님이 그를 작은 방에 가두고 그가 죽도록 방치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브레인 페어링 기술을 이용해 다시 살아난 뇌사자들과 살려낼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어 이혜 씨 외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방에 안치되어 있는 사람들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고통 속에서 쓸쓸히 죽어간 그 여자를 떠올렸다. 특히 이혜 씨의 몸에 첫 번째 순서로 안착한 주희 씨가 그를 떠올리게 했다. 말 한 마디 하는 것도 힘들었을 그도 이혜 씨의 몸을 빌릴 수 있었다면 하고 싶은 바가 있었을 것이다.

거울을 보고 있지만 그 거울이 아무도 비추지 않는 것만 같은 느낌을 제삼은 이겨내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는 새로운 삶에 익숙해질 거라면서. 나는 자신의 부존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제삼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사본의 사본에 불과하다는 판단을 내린 적도 있지만 자신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사본을 보고도, 사본의 원본을 보고도, 그는 그들과 자신의 다른 점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 다른 점이 그를 살게 하는 힘이 될 테고, 어쩌면 브레인 페어링이라는 기술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죽은 사람들이 남긴 생전의 의견이 중요하다. 되살아나는 것을 바라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당연히 결코 원치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이 두 경우의 사람들이 모두 이혜 씨의 몸에 들어간다. 그리고 유언을 남기지 않은, 그럴 겨를이 없었던 일영 씨의 몸이 브레인 페어링의 대상이 된다. 소설은 망자들이 존중받지 못한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룬다. 어찌 보면 최악의 경우에서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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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며 꾸는 꿈 도트 시리즈 2
이신주 지음 / 아작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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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병기 자율기동형5와 그와 우연히 맞다뜨린 미성년자 ‘아이’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자율기동형5는 전투 병기이지만 인간적이다. 아이와 대화를 나눌 줄도 알고 인간들의 세계를 동경한다. 적과 전투를 할 때 그와 달리 인간적인 대화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율기동형5의 특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다. 그가 시간을 유영할 줄 안다는 것보다 내게 인상적인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신형이기 때문에 대화 스킬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인간 세계를 갈망했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를 공부한 티가 역력했다. 자율기동형5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전투 장면만큼이나 재밌었다. 앞으로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눈길을 휘어잡는 데다가 왈가닥인 자율기동형5를 아이가 어떻게 견뎌낼지. 세상에는 대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하는 인연이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을 읽다 문득 떠오른 문장이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한 사람만의 힘으로는 부족한 현상이다. 어쩌면 둘은 서로를 바꿀 운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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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 익스프레스 실버 딜리버리 도트 시리즈 1
이경 지음 / 아작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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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영웅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열이 나는 아기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하지만 역시 여정 동안 말도 안 되게 황당하면서도 미간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무례한 일들이 할머니 영웅 '귀자'에게 닥친다. 나는 작가의 영웅관에 흥미를 느낀다. 영웅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고. 영웅은 한 아기를 함께 돌보는 사회의 구성원들 모두라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그렇게 영웅이 바글바글한 사회가 밑바탕이 된다면 어린이들이 잘 자라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트로 표현한 겉표지 디자인이 귀엽다. 귀자가 쓰고 있는 모자가 눈에 띈다. 내게도 애착이 가는 모자가 하나 있다. 귀자를 생각하면서 나는 내 애착 모자의 챙을 매만졌다. 그러자 '나도 멋진 할머니 영웅이 되리라'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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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를 봤다. 제목이 주제인 연극이었다. 이것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면 무엇이 사랑 이야기일까? 라는 물음을 던지는. 2000년에 태어난 두 여자가 2099년까지 친구, 연인, 헤어진 연인 등 어떤 형태로든 함께하는 이야기였다. 극은 현재와 과거가 이중구조로 엮여 있는 형태였다.

레즈비언인 나는 두 여자가 거듭해서 과거로 이동할 때마다 그들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보다 한참 어린 2000년생의 여성들마저 내가 평소에 느끼던 슬픔의 연대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눈앞이 멍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이 제도적으로 묶이는 장면은 없고, 딸을 입양하기 위해 갈등하는 장면은 있어서 설마 두 사람이 겪는 머나먼 미래에도 혼인평권이 이뤄지지 않은 거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침내 가정을 이룬 두 여자가 왜 헤어졌을지 궁금했다. 제도 외에 그들을 방해하는 건 무엇일지. 어쩌면 제도의 방해 때문에 그들이 힘을 소진해버리고 늙어버린 건 아닐지. 그들 사이의 애정이 식어버린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생각으로 기울었고, 속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당신‘이라고 부르는 친구 사이가 된다는 것이 눈물겹게 묘하다고 생각했다.

연극 전체를 뚫는 ‘행복한데 불행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나는 이런 연극을 이해하며 바라보는, 동성인 연인과 어떻게 하면 더욱더 가까워질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도 종종 불안에 휩싸이는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면서도 제도가 헤아리지 못할 슬픔의 깊이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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