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어딘가에서
오재철.정민아 지음 / 미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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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진 식탁에서
뾰족한 밥알을



씹는듯
마는듯



같은 지붕 아래서
아주 오랫동안



각자의 시간을 갖는 너



방문의 배꼽을 누른채
침대에 누워



일이 바빠 통 만나지 못한
연인을 생각한다



끝나지 않는 연속극의
엔딩크래딧이 어느새
거실을 가득 채웠다





- 몇십 년을 함께 보낸 가족보다 겨우 몇 달 사귄 친구나 연인과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들 때가 있다.

"이건 가족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어. 차라리 남한테 속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얘기"라며 망설이기도 한다. 가족이라 얘기하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쓰린 아픔과 고통이라는 것,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내가

가족에게 내가 느끼는 슬픔을 나누어 주고 싶지 않기 때문 아닐까,그만큼 가족을 생각하니까, 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은 너무나 바빴고,

네 식구만의 가족여행은 없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여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여행은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신혼여행과 신혼집 대신 세계여행과 캠핑카를 선택한 그들을 지지한다.



생활이라는, 부유하는 먼지들이 빛을 머금고 사진과 글로 새롭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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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7
김행숙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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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



꿈에서 깼음을 자각한 뒤 바로 시각을 확인했다.

2019년 1월 29일 오전 6시 32분,


28일 오후 11시 경에 잠자리에 들어

29일 오전 3시 경에 한 번 깬 뒤 두 번째 잠을 깬 것.


첫 번째는 꿈 없는 잠이었고,

이번 잠은 꿈의 스케치가 비교적 선명했다.



나는 노비였다.



주인 집에 함께 거주하지 않고 별도 가구를 이루고 사는 외거노비였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주인 혹은 주인의 아들을 죽였다.

물론 기억에는 없지만,



관우가 들었던 청룡언월도 만한 칼을 든 칼잡이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머리칼로 나를 베어버리겠다는 눈빛으로 파도처럼 찰랑이며 다가온다.



나는 어느 가게로 도망쳤다.

주인은 나를 다락으로 숨겨주었다. 다락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할머니 몇 분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가,

단번에 눈치로 나의 다급함을 눈치 채고

나를 창문 밖 난간 사이에 있는 좁은 틈으로 안내했다.



거기까지가 꿈이 내게 들려준 얘기였다.

잠의 외줄타기로 내 귓속에 부려 놓고 간 보이지 않는 알갱이, 씨앗이었다.



그것들이 흩뿌려져 산과 들, 하늘과 바다에서

꿈틀거리는 생명을 잉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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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파씨의 입문 2 창비 국내문학 큰글자도서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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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의 마지막 날 새벽, 


며칠 만에 꿈을 꾸었다.


잔디밭이 아닌 옛날 초등학교 운동장 같은 

먼지 풀풀 날리는 맨땅 그라운드에서 

한국과 일본이 축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라운드에는 22명의 선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 훈시가 있는 조회 시간처럼

수백 명의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공간에서,


운동회 때 공중에 매달린 박을 터뜨리는 데 쓰이는

작은 고무공을 두고 나와 상대 선수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한 골을 먼저 먹은 우리는 맘이 급했다.

남은 시간 만회골을 위해 분주했다.

떄마침 상대의 반칙으로 프리킥을 얻었는데,

상대팀의 뚱뚱한 선수가 프리킥을 빨리 진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6시 20분이었다.


한국이 아랍에미레이트 연합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전에서 

좋지 못한 경기력으로 1:0 패배로 탈락한 뒤 그 잔상이 남았나보다.

일본은 우리를 꺾은 카타르와 결승전을 치를 예정이다.

애써, 결과를 회피하고 


그래도 "한국이 결승에서 일본과 만났다면 우리가 이겼을 거야.

한일 전은 병역면제가 걸린 경기 다음으로 선수들에게 힘을 주거든."

자위했다.



"파씨의 입문"의 마지막 구절을 빌려 온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1994년에서 열린 미국 월드컵을 참가를 위한 예선에서, 극적으로 '도하의 기적'으로 일본이 떨어지고 한국이 월드컵에 참가케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이긴 사건, 1998년 월드컵 예선에서 '도쿄 대첩'으로 일본을 이긴 사건의 부근을 지나, 


  20세기 말의 기억, 한 세기의 문이 닫히고, 21세기의 문이 열리는 지점, 학창시절과 성인의 국경을 가르는 경계선을 왔다갔다하며 현기증을 느끼던 바로 그 "조그만 주름"에서 시작되었다 할 것이다.



"파씨의 입문"과 "디디의 우산" 두 작품만 두 번씩 읽었다.


"디디의 우산"에서 디디가 어릴 때 빌린 우산을 돌려주지 못한 부채감에서 도도에게 자기 우산을 건네는 장면, 그 장면 바로 뒤에 동거를 시작한 그 시기의 분위기와, 


"파씨의 입문"에서 열 살의 파씨가 선생님의 지시로 국군 장병에서 위문

편지를 썼는데, "파씨는 세계라는 것은 잘 모르지만 거기가 춥고 아저씨가 너무 추워서 지금 울고 있다면 세계는 빌어먹게 나쁜 곳입니다."라는 글을 군인인 내가 받았다면 천편일률적인 위문보다 훨씬 더 위로를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최근 나온 소설집 "디디의 우산"을 읽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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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토끼 머리에게 테이크아웃 9
오한기 지음, 소냐리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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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인간, 토끼 머리와 인간의 몸통, 토끼 몸통과 인간의 머리

반토끼, 반인간, 반인반수, 반신반인



하나의 몸에 이질적인 형체가 둘이 있다.

이를 공간적으로 확대해보면 이곳과 저곳을 가르는 경계에 너는 있다.

이를 시간적으로 적용해보면 너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갈림길에 서서 운다.



내가 지금-여기에서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이지만

내가 과거 혹은 미래-저기에서는 그들이 되는 지점

내가 토끼 머리가 되고, 토끼 몸통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여성, 어린 아이들, 노인들

기본적인 생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가난의 구석에 웅크린 존재들

밝은 햇빛과 눈빛 한 번 쬐지 못한 채

젖고 얼고 사라져 간 존재들을 위해 이 소설은 씌여진 것 같다.













"토끼 머리라는 별명을 지닌 사람이 진짜 토끼가 되는 과정.(오한기, 67쪽)



- 토끼 머리. 어쩌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게 내 별명이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외삼촌은 나를 토끼 머리라고 불렀다. 그렇게 나는 토끼 머리가 됐다. 10쪽





- 그 뒤 묘하게도 나는 외삼촌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외삼촌이 토끼이고, 외삼촌이 잘라 놓은 머리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었다. 22쪽



- 그 점괘대로 나는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시마로를 만나서 완벽한 존재, 아니, 완벽한 토끼가 됐다. 46쪽





- 마시마로, 고집 그만 피우고 밖으로 나오렴. 죄를 인정하기만 하면 돼.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고. 안타깝게도 내가 아무리 말해 봤자 마시마로는 듣지 않았다.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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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파씨의 입문 1 창비 국내문학 큰글자도서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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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 주연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가 2019. 1.20. 16작으로 끝이 났다. 증강현실이라는 소재를 드라마에 끌어들인 점에서는 신선했지만,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회상 장면이 반복되고 앞부분에 던져 놓았던 실마리들을 다 주워담지 못하고 끝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궁금한 것은 게임용 특수렌즈를 끼지 않았는데도 버그로 추정되는 원인 떄문에 죽은 사람의 형체가 유저에게 왜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다. 현실의 비존재가 내 눈앞에 말 없는 형체로 출몰한다면 얼마나 섬뜩할까. 그는 가상의 캐릭터나 게임의 오류가 아니라 진정 특정한 누군가(게임을 진행 중 유저 혹은 게임을 하고 있지 않은 유저)에게 전달하려는 말이 있었던 게 아닐까. 


황정은의 이 소설집의 전반부 네 작품을 읽었다. 

첫 작품 "야행"을 제외하고 세 작품이 직접적("대니 드비토") 또는 간접적으로든 몸체 없는 유령의 형태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자꾸만 자신의 꼬인 생각과 내면을 파고드는 바늘처럼 날카로운 뿌리들. 어디가 끝인지도 예상하거나 예감할 수 없이 끝없이 "낙하"하고 떠밀리고 부딪히는 존재들의 슬픔이 느껴졌다. 한밤에 들려오는 희미한 울음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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