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선전·선동·예바·음모는 탈출·잠입을 시도한다

바다건너 흙냄새가 궁금해서

밀항(密航)은 언제나 설렌다

나는 매일 불고지죄(不告知罪)를 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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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전화‬

엄마는 주말 드라마를 보면서 울곤 했다
왜 울어요?
울 곳이 없어서

나는 드라마 속 엄마를 보며 운다
파르르 떠는 통화 연결음이 듣고 싶어
가끔 
저장된 엄마 번호로 전화를 건다
엄마 목소리를 닮은 여자의 여보세요
나는 죄송하다는 말만

그에게 전화가 온다
연애할 땐 무료통화 시간이 모자랐는데
요새는 많이 남아 서운하다고
나는 다시 미안하다는 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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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개론







깨알 같은 글씨가 적힌 쪽지를 시험지 밑에 깔고

정신없이 답안지를 채워나가는데 손이 불쑥 들어왔다

그 손은 조용히 쪽지를 뒤집었다






 

나는 다시 답안지를 채워나갔다

어느새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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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

#저울


저울의 무게는 누가 잴까
양팔의 벌려 바람의 무게를 재어 볼까
양다리와 양가슴은 평형이 아니다
다리가 무거우면 가슴은 가볍다
머리에서 발까지 긴 여정을 떠나는 사람
가벼워야 한다 가벼움마져 버려야 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바람은 가늠할 수 없지만
바람은 분명 다르다
나는 바람을 안고 양다리를 차례로 내딛으며 걷는다
나는 가장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존재인가 가벼움인가
가장은 참을 수 있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 꿈을 꾸었다
주사위는 몸을 뉘이지 않고 떠 있다
육면의 숫자가 쏟아져 몸을 누른다
하나는 가볍게 둘은 나란히 셋은 뾰족하게
넷은 갑갑하게 다섯은 찬란하게 여섯은 무겁게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무서운 다리를 건너는 꿈
나는 새롭다 나는 가볍다고 되뇌이며
아이처럼 가벼워지고 싶어 나이를 먹는다
그림자에도 무게는 있다
밝을수록 그림자는 무겁고 어두워질수록 가볍다
티브이에는 영근 얼굴들이 스웨그를 꿈꾸고
고개 숙여 인사할 줄 모르는 뻣뻣한 모자는 가볍다
스웨그는 무거운 것을 가볍게 만드는 것
옥상에서 떨어지는 것보다 집값이 떨어지는 것이 더 두렵다
가장 콤플렉스, 장남장녀 콤플렉스 없는 작품의 이름은
"공동가장"
거기에는 두 개의 심장과 두개의 척추를 매달은
평형을 이룬 저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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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신문‬

뜨겁고 고요한 아침
정확한 시각에 배달되는 신음소리
폭탄 터지는 소리와 비명소리를 함께 내는 자명종

노려보고 흘기다가 악수하며 웃는 글자들
자음이 없어 받침이 없는 세상에서 둥둥 떠도는
아야 아야 소리만 들리는 박스형 기사
공기주머니를 찬 핏덩이 같은 크렌베리가 떠오르는 사진

나는 오늘도 흐물흐물한 비명을 밟으며 걷는다
닮아빠진 구두로 지하세계의 침묵과 사라진 시간과 
죽음의 악취의 밟는다

사냥꾼이 쫒아오고 있다
숨이 가쁘다

어둡고 닫힌 미로를 몇 바퀴 돌면 멀미가 난다
손을 따고 등을 쓸고 두드리고 토하고 손가락을 집어넣어도
멈추지 않는다 
청각과 시각의 불균형은 눈을 감아야 멈춘다
평형을 생각한다

나는 아큐도 
치숙을 둔 조카도 아니다
나는 본 것만 쓴다
본 것과 생각하는 것은 같다 
나는 생각하는 것만 쓴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떠도 감아도 똑같은 색깔인 벽을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스미고 베인 검은 물이 벽을 타고 흐른다
물 위에 떠다니는 뼈들은 빙산에 부딪혀
점점 가라앉는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

물방울은 아무런 자극을 주지 못했다
나는 어두운 독방에서 하루 종일 지난 몇 년간 내가 무슨 일을 했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며 부족한 자극을 보충한다
현재를 즐기면 된다는 말은 전혀 자극이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빛을 볼 수 있다는 말은 자극이 아닌 혐오다

나의 뇌는 바다에 떠 있다
나는 신문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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