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아름다운 것만 만나기를
다치바나 가오루 지음, 박혜연 옮김 / 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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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두부 한 모와 레몬즙, 크림치즈, 메이플 시럽으로" 만드는 두부 크림 레시피를 메모했다.(68쪽)

가오루에게는 딸 요모기가 있고, 가오루는 요모기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


요모기는 분명 가오루의 뱃 속에서 열 달을 지내고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왜 나는 요모기가 가오루를 낳았다고 느껴질까

요모기는 두부 크림처럼 부드러운 빛이다


쳐다보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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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1
강성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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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나이로 막 세 살이 된 딸이 엄지손가락을 자주 빤다. 다섯 손가락 중에 

왜 하필 엄지손가락만 빨고 있을까.


thumb이라는 단어에서 'b'는 묵음이다. 형태는 있으나, 소리가 없는 '눈'이다.

내 주먹을 바라보다가 나도 아이처럼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본다.

나는 아이의 행동을 승인한다(thumbs-up). 그리고 나도 돌아간다.


엄지가 있어 사피엔스는 물건을 집을 수 있고, 도구를 만들 수 있었다.

엄지는 왕이 아니라 하인이다. 

엄지는 '덤'이라 발음한다. 소리는 있으나 형태가 없는, 줄기 없는 가지다.

엄지는 엄지다. 덤은 덤이다. 


"천천히 생겼다 천천히 사라지는/ 믿음 때문에" 

나의 엄지는 항상 하늘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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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밤이, 밤이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
박상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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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미세먼지 때문에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폭격을 피해 동굴로 숨어든 피난민처럼 우리 세 식구는 거실에서 살을 맞댄다. 초미세먼지, 보이지 않아서 두려운 것들.


몇 권의 책을 쌓아두고 본다. 그 중에 박상순 시집이 있다. 


꽤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쓴 시와, 쓸 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가 인식할 수 있고, 남들이 예상가능한 시에서 제임스 설터의 단편 '어젯밤'처럼 일어나버린

사태를 어찌할 수 없이 바라만 보아야 하는 허망함을 지닌 그런 글을 갈망한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내가 쓸 시를 생각한다. 기다린다. 찾고 있다.


연미가 물었다. 왜 읽냐고.



이 시집을 읽은 느낌은 시간의 그물 속을 드나드는 오브제와 사건들.

빛, 어둠, 목소리, 바람, 향기 등


물체나 감정이 시 속에 던져져 그것들이 저절로 스스로 영역을 확보하고 확장하도록

내버려두는 방식으로 시가 씌여졌다는 생각.


앞에 펼쳐 놓은 시선이나 사건을 작품의 후반부에서 수습하고 정리하는 방식으로 씌여졌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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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애슐리 테이크아웃 1
정세랑 지음, 한예롤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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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대표인 심석희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재판 및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소위 '그루밍' 성폭력이 의심되는 사안인데, 나는 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심 선수가 떠올랐을까.

책의 말단에 있는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 소설 집필 동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은은한 폭력 속에 살아온 사람이 어렵게 껍질을 벗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은은한 폭력'이라는 말이 책을 덮고도 자꾸 떠올랐다.

사전적 의미로 첫째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고 어슴푸레하며 흐릿하다"는 뜻이 있고, 세 번째 정도의 의미에는 "냄새가 진하지 않고 그윽하다"라는 뜻도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냄새가 나는(fishy) 폭력, 그 내음이 몸에 새겨져 아무리 닦고 씻어내도 절대 빠져나가지 않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구멍에 고이는 시퍼런 폭력의 잔해들.

주인공 애슐리의 애칭인 애쉬(ash), 섬에는 수백 명의 애슐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았고, 주인공 애슐리는 본토 사람의 얼굴을 갖고 태어나 섬에 사는 경계인. 가족으로부터 섬의 직장에서도 언제나 주변을 떠돌아야 했던 그녀가 살아가며 ‘은은’하게 체득한 체념과 수동성이 슬펐다. 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년회의 대표로서 ‘아투’가 ‘앞서가는 거북이’라는 애슐리는 ‘꼬리를 물고 끌려가는 거북이’ 중의 하나다.

애슐리는 이미 자신이 되어버린 폭력의 껍질을 벗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싱처가 난 줄도 모르고 덧나고 굳어버린 껍데기는 이미 그녀의 일부이기에 체념과 수동성이라는 날카로운 칼로 그녀의 온몸에 새겨진 슬픔의 문신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단지 가릴 수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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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크아웃 11
최은영 지음, 손은경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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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몫'이라는 글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슬펐다.

몫이라는 지붕 아래 '목'과 '숨'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제 몫을 다하고 하루치의 생명을 소진하고 눈을 감은 채

꿈을 꾸고 있을 그들



내일이 오늘이고 오늘이 어제인 그들

그들의 의무의 몫은 늘어나는데 여유의 몫은 어디 꽁꽁 숨어 버렸는지

꿈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사회에 던져져 살아갈 때

한 사람은 인간을 생각하고

한 사람은 사회를 생각한다

사실 그 둘의 차이는 없는데, 사회 안에 인간이 살고 인간 안에 사회가 거주하는 것인데,



치열한 논쟁과 싸움이 한 사람을 지치게 하고 생채기를 낼 때

그 아픔이 모여 사회는 조금씩 틈을 열어갈 것이다.



'해진'은 글을 쓰고, '희영'은 쉼터에서, '정윤'은 낯선 이국에서 그렇게 조금씩

안간힘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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