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하나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자신 있게 늙고 있어!

 

마음산책에서 나온 <짧은 소설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입니다. 이 책에는 모두 19편의 짧은 소설들이 실려 있는데, 틈틈이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과 감각적인 문장들 덕분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어떤 날에는 모든 것이 괜찮고 제대로인 듯하지만 어떤 날에는 반만 그렇고 또 어느 순간에는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그것이 그의 흔한 아침인 걸까. 선미도 에그머핀을 다 먹지는 못하고 남자처럼 반을 남겼다. 그리고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사람들의 화사한 일상을 SNS로 지켜보았다. 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 그들의 아침이 이 작고 완전한 프레임의 사진들처럼 온전할지, 그러니까 제대로일지, 혹시 잘려나간 어느 편에서는 울고 나서 맞는 아침은 아닐지 생각하면서.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51쪽

특히, 인상적인 소설은 할아버지에게 선물로 사드린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춤을 추며 말없이」입니다.

어릴적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던 주인공은, 직장을 얻어 서울로 떠나오면서 할아버지에게 저렴이 버전의 인공지능 로봇을 선물합니다. 그는 그것을 '꼴통' 혹은 'B품', 더러는 그냥 '기계', '폐품'이라고도 불렀는데 정식 제품명은 '말로'였습니다. 워낙 저렴이 버전이라 알람처럼 기본 기능만 장착되어 있고, 언어 능력도 현저히 떨어집니다. 알파고나 고가의 인공지능 로봇처럼 스스로 학습해서 진화할 가능성은 제로인 로봇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주인공은 로봇을 집으로 데려오는데, 이 단순한 인공지능 로봇을 통해 '할아버지 곁에 아무도 없던 시절의' 할아버지 일상을 짐작하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이 로봇과 대화를 시도하며 일상을 함께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로봇도 나름으로 진화해 할아버지가 건네는 대화에 나름의 대답을 하곤합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주인공 또한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로봇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로봇도 소진되어 버립니다.

나는 하나도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자신 있게 늙고 있어. 「춤을 추며 말없이」 165쪽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갈 수 없었던 주인공이 전화를 걸어 이유를 설명하자 할아버지가 주인공에게 호기롭게 던진 말입니다. 자신 있게 늙고 있다니. 저도도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요.

 


파리 살롱을 다시 찾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불현듯 추위를 느끼고 혼자임이 실감된다면 어디든 가장 가까운 곳에 들어가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따뜻한 것, 아주 따뜻한 것을 먹겠다고. 「파리 살롱」 69쪽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지금까지."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75쪽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 77~78쪽

주용은 어쩌면 아주 어려서부터 영란의 마음은 전혀 다른 멜로디로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히려 듣는 이의 관성화된 귀와 마음이 아닐까. 「서로의 기도」 112쪽

그것이 이것보다 어려운가, 이것은 그것보다 쉬운가 하는 삶의 온도차를 재보는 일은 늘 쉽지 않았다. 「온난한 하루」153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2-08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너무 짧은 단편들이 산발적으로 흩어뿌려진 느낌이 들었어요 주제를 향한 부각이 좀 필요한데 그럴러면 한번 읽어선 안 될 것 같은데 두번 읽기는 힘들고...저는 그랬습니다 ^^

뒷북소녀 2019-02-08 13:00   좋아요 1 | URL
저도요. 너무 짧은 단편들은 같은 이유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서 기억에 남는 부분만 정리해 두고 넘어가려구요.^^ 갈수록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은데, 이렇게 짧은 단편들까지 일일이 다 기억하기는 어렵네요.

레삭매냐 2019-02-08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가지를 너무 오래 생각하는 건
집착이 아닐까요...

제가 주용이는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대학 동창의 이름이네요 ㅎㅎ

뒷북소녀 2019-02-08 13:01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저는... 사실...어떤 생각에 사로 잡히면 밤새도록 생각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요...
집착을 버려야겠네요. 갑자기 분위기 스님.

공쟝쟝 2019-05-08 1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막 덮었는데 저도 춤을 추며 말없이가 너무 좋았어요!

뒷북소녀 2019-05-08 19:57   좋아요 1 | URL
잘 늙고 있다는 저 문장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