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 The Crazie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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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다. 뭔가 오싹하면서 지속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재앙에 대한 영화들은 많다.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재앙영화들을 굳이 나눠보면,
크게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재앙 (2012, 투머로우 등) 과 인간의 탐욕과 욕심으로 인한 재앙
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할 것은 재앙을 통한 무차별 살인을 형상화 하여 좀더 섬찟
한 상황들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과 더불어 찜찜함을 감수 해
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장점이 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보의 통제와 권력
의 만행이 심리적 불편함의 밑바닥에 있는 실체라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편안한 컨트리 음악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화염과 함께 종막을 구성한다. 그 시작과 끝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정체모를 화학약품과 그 약품에 노출되어 미쳐가는 사람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권력의
무자비한 통제와 민간인 제거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며 생존을 향해 투쟁
하는 주인공...그리고 또 반복... 

'나비와 전사'를 읽다 보니 근대에서 질병은 바이러스를 제거함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청결과 위생이 개인적 덕목으로 자리잡았고, 그로인한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질병의 원인을 외부의 바이러스에서 찿는 근대의 시선은 이 영
화에서도 날 것으로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어떤 화학적 작용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노출
된 사람은 미쳐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고... 이로서 공동체는 무너져 내리게 된다.
문제는 그 외부적 작용이 자연의 돌연변이로 생긴 것이 아닌 국가의 정책집행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이며, 그 사고를 무마하기 위한 국가의 조치는 사고 지역 인구의 말살과 사고지역의
소거라는 점이다.  

원래 삐딱해서 그런지...공포영화를 보면서도 현실과 겹쳐지는 부분이 자꾸 상상이 된다.
권력의 눈에는 언제나 주변으로 몰려 타자화되는 사람들이 마치 이 영화에서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어 죽음으로 이를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겹쳐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 속에서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권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이 조직화 되면서 발생하는 극히 사회적인 현상이 아닐까?

여전히 권력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의 지시로 누가 시행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 시행의 효과는 분명하다. 점점 미쳐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로 부터 다른 사람들을 지키
기위한 명분으로 감염된 사람들을 처단하는 권력, 그 양자로 부터 도망다녀야 하는 주인공
의 처절한 분투기로 읽히는 이 영화는 그냥 이 사회의 축소판을 뿐이다. 
 
피와 살점이 튀기지는 않아도... 일상에서 피튀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공포는 용산에서 천안함에서 영화처럼 재현되고 반복된다.
물론 진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앵무새같은 언론의 지껄임을
우리는 진실이라 하지 않듯이 모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진실은 사람들이 죽어 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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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4-2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때 느끼는 것중에 하나는...
인간의 정신,영혼이 참 위대하고 신비로운 것이지만 바이러스와 질병같은 외부존재에 의한 육체적(직접적으론 뇌)타격을 입는 것으로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아직 현대 좀비 영화의 단골소재인 광기바이러스 같은 경우는 다행이도 없지만 영화에서 표현되기론 정말 착하고 평범했던 사람들이 미치광이 살인마가 되어가는 모습이 항상 나오죠. 비슷한 예는 치매, 주위사람들을 점점 잊고 마침내 자신까지 잊고마는데 그때가서 영혼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정신이란 곧 뇌이자 기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좀 두서없었지만 즉,참 멋진 우리의 마음이란게 이렇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것이 뭔가 덧없고 아쉽다는거요.^^;

머큐리 2010-04-21 09:01   좋아요 0 | URL
저도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그닥...ㅎㅎ 영혼의 존재와 상관없이 그냥 뭐든 생명으로 존재하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죠..

2010-04-25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둠의 아이들 - Children of the Dar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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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달 4월에 잔인한 영화를 본다.
만일에 자유주의자들이 있다면, 시장의 자유를 외치는 것 만큼 (더 바라지도 않는다) 가난으로
부터의 자유, 공포로 부터의 자유도 외쳐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등가
교환물로 측정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렇지만 사람의 생명이나, 권리를 등가로 교환할 수 있
을까? 가난하기 때문에 생명이, 신체가 물건처럼 매매된다면 그것은 이미 지옥이다.  

어둠의 아이들에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지옥이다.  희망도 없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봄날처럼 훈훈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된다.
부모에게 얼마되지 않는 돈으로 팔려나가 또래들과 뛰어놀고 배움을 가져야 할 아이들이
성노예로 전락하고 육체적 학대를 당한다면 그게 사람사는 세상일까?
심지어 살아있는 상태에서 아픈 아이들의 장기를 제공해주는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인정하기 싫은 부분을 알게되면 그것을 직시하고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는 그 처참함을 피해자의 문제로
돌려 가난하거나, 못배웠거나, 게으름으로 인한 비극으로 몰아 세우고, 그것과 연관없는  
자신은 도덕적으로 그리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는 구조적 문제가 지리잡고 있고, 그것을 외면하는 순간 인간은
야수로 돌변한다.  

영화 내내,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하면서도 나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한 존재인지 생각
하게 된다. 아이들까지 노예로 만드는 이런 사회가 존재하며, 여전히 인권의 가치는 땅에
떨어진 돈보다 못한 상태임을 고발하고 있다. 더불어 조금 잘사는 나라들이 저지르는
섹스관광에 대한 그 내면의 실태를 밝히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희생시키는 황폐한 현대의 성을 바라보기도 역겹다.  

문제는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더 참혹한 현실이 있을 것이란 느낌이다. 이미 세계화로 지구촌
이란 단어까지 등장한 마당에 전세계에 대항하는 자본의 투쟁만이 세계화가 아니다.
전세계를 무대로 움직이는 자본과 돈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문제도 과제가 아닐까? 한국 사람들의 동남아 매춘관광에 대한 단편적 사실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그 단순한 현상 뒤에 잠재한 참혹한 인권 침해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인식이 있어야
할 듯하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사람들, 잉여인간으로 이 사회에 섞이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아이들이 아직도 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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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2 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박신우 감독, 고수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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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고의 대표적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되었다.
일본에서는 이미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를 보니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진다.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지만, 중독성이 강하고 잘 읽히는 반면 무언가 허전
한 느낌이 드는데 사실 백야행은 그렇게 허전함을 느끼진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이 게이고
의 대표작이라고 하나 보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분법적 구도를 취하며 시작하고 있다. 지아(손예진 분)의 정사장면과
요한(고수 분)의 살인 장면이 번갈아 등장하면서, 양극단으로 갈리어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을 시작부터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4년전 살인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지아/미호와 요한의 어두운 삶의 궤적은 영화가 진행
되면서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만의 세계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모두가
제거된다. 어두운 밤길을 걸어야 하는 둘에게 어둠의 그림자를 걷어내려는 사람들은
모두가 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 니체 '선악을 넘어서'

 
   


앞길을 막기 위한 장애물을 치우기 위해 살인마저 불사하는 이들은 이미 괴물이다. 괴물은 그냥
생기지 않는다. 이 두사람이 괴물이 되어야 했던 이유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살인이었고
두려움에 떨던 어린 영혼은 살인이라는 사건을 통과하여 어느새 괴물이 되어 버렸다.
표면적인 살인의 배후에는 결국 '돈'과 '생존'의 문제가 있음은 이 사회의 법칙 상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자신들을 괴물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
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돈'이었다. 그리고 '돈'이라는 폭력적 매개 수단은 이들이 괴물로
변하도록 더욱 가속화 한다. 결국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 할 수록 괴물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속에 주된 비극이 된다.   



기성세대에게 상처를 받으면서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을 유일하게 이해하는 기성세대는 한동수
(한석규 분)형사다. 14년전 살인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면서 폐인이 되다시피한 형사는 새로운
사건이 14년전의 사건과 연관되면서 새롭게 이 두사람을 추적해 나간다.
14년이나 흘러 알게된 사실을 접하며, 한동수형사는 이 둘의 삶과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아니 그 처지에 대해 동정하게 된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이 두 사람을 잡기위해 집요하게 쫓아다닌 형사야 말로 이 두사람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소년은 어버지를 소녀는 어머니를 죽이고, 그 어두운 밤길을
걸어 세상의 태양으로 나오기 위해 몸무림칠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미래를 위해
발버둥칠때... 난 이런 것을 사랑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사랑일까? 
이 두 사람이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 사랑은 너무도 잔인하다. 그 둘에겐 사랑이 아닌 밝은
빛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대사들...
지아/미호가 자신의 브랜드를 단 점포를 개설하면서....너무 부럽다는 사람의 말에..
" 태양은 없었어...가느다란 빛줄기만 있었지 ! 태양만큼 밝진 않았지만, 나에게는 충분했어" 

요한의 독백 " 걷고 싶어... 태양 아래서...."  





요한과 지아의 정사장면이 때때로 나온다. 그 장면들을 볼 때 느끼는 그 허무함.
거기에 그들이 탈출하고자 하는 지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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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0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지는 않았고, 영화를 봤는데. 엄청 힘들었어요. 저는 이런 소재가 무척 힘들어요. 그래서 책을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어쩐지 더 힘들것 같아서요. 뭔가 더 섬세하게 표현했을것만 같아서.. 어휴-

그런데 이 영화속에서의 고수는 무척 멋있지요? 전 이 영화 보면서 고수가 원래 저렇게 멋있는 남자였나 싶었답니다. 뭔가 성숙해져서 돌아온 것 같더라구요.


머큐리 2010-04-07 17:24   좋아요 0 | URL
락방님의 여리디 여린 감수성으로는 보시기 힘들었을지도...ㅎㅎ
이 영화로 고수의 발견은 저도 동감이에요.. 락방님이 즐기는 영화도 좀 봐야 할텐데..요즘 너무 칙칙한 영화만 봤더니.. 봄을 느끼질 못하네요

무해한모리군 2010-04-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내분이 바쁜 틈을 타서 혼자서 너무 열심히 영화를 보신다는 ㅎㅎㅎ
저는 책만 보았습니다.
생존이라는 단어 앞에 인간의 모든 가치들은 참으로 작고 작아지지요.
영화속 두 젊은이는 자기가 원하는대로 단 한순간이라도 살아보았을까요?
하긴 자기가 원하는대로 해보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많진 않은듯 하지만요.

머큐리 2010-04-08 15:22   좋아요 0 | URL
얼굴보기도 힘드니 영화나 봐야하는게지요...ㅎㅎㅎ
 
작은 연못 - A Little Pon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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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뒤집어 질 것 같았다. 속도 안 좋고....
꿈의 산업이라는 영화가 사람들에게 환영 받는 이유 중에 하나가 현실에서 꿈을 꾸게 해주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 줌으로서 꿈조자도 자유롭게 꾸지 못하게 만든다.
꿈은 커녕 과거의 사실이 미래의 묵시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평안해
보이지만, 그러한 평안함이 깨어지는 건 한순간일 뿐이라는.... 

전쟁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그리고 전쟁을 통한 최고의 수혜자는 누구일까?
전쟁을 하면 누구나 피해자라는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말자. 전쟁을 통해서 누구나
피해자라고 한다면 전쟁을 주장하는 저 호전적인 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나 정신병자
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가만보면 전쟁을 주장하는 저 호전적인 사람들이야 말로 이 땅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전쟁이란 혼란을 통한 또 다른
이윤추구의 기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수혜자의 영광 뒤에는 피해자의 피눈물이 녹아있다. 그러나 집권자들은 그 피해자의
피눈물을 회피하고 외면했다. 아니 아예 역사에서 지워버리려 했다. 전쟁후 대한민국의
정부는 계속해서 혈맹과 우방인 미군이 전쟁 수행시 민간인을 학살 했다는 사실에 대해
조사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빨간 색을 입히고 탄압
했을 뿐이다. 여기에 현대사의 비극이 녹아있다. 지금도 무슨 일만 벌어지면 전쟁을 준비
하라는 나팔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휘둘린다면 전쟁의 피해자는 아무 힘없는
민간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시작부터 산업일 수 밖에 없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윤을 떠나 영화를 제작한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러한 토대 속에서 어렵게 출발한다.
총제작기간 8년, 촬영은 3개월, 참여 배우 전원 노개런티로 촬영한 이 영화의 목표는 단순
하다. 역사적인 비극을 그대로 묻어둘 수 없다는 사명. 그리고 어떠한 전쟁에도 명분이
있을 수 없다는 적나라한 사실의 직시....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영화에 어떠한 자본도
참여하지 않았다. 내용이 빨개서? 아니다. 이윤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북은 대치 중이고 조그만 사건 하나만 잘못 건드려도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살 뿐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전시 군대의 야만적 양민학살 뿐만 아니라 평화의 불안정성에 대한 것이다.
지금껏 누리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시만큼의 노력과 힘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보면서 느껴야 하는 것... 그것은 미래에 대한 대비일 수 밖에 없다.
영화 내내 평화의 문제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건, 결국 전쟁의 문제는 시민들 스스로의
각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가 이윤의 논리에 의해 사장된다면, 그건
우리 스스로의 목을 죄는 현상일 것이다.  

영화 내내 편하지 않다. 보고 나서도 불편하고 두렵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봐야한다. 그건 지나간 역사를 직시하며 평화를 지켜내야 하는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음악은 아주 단순하다. 한 세곡 정도가 반복되는데, 김민기의 '작은 연못'과
'천리길'은 익숙해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를 보면, 우리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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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근리 미군 학살 사건,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4-05 15:16 
    어린이들에게 이런 작품을 읽히기엔 참혹하지만, 그래도 감춰지고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하기에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1950년 7월,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 노근리에서 벌어졌던 미군의 양민 학살에 대한 진실을 얘기한다. 열두 살 은실이가 겪은 그 참담한 사건을 담담하게 풀어내지만, 너무나 참혹하고 끔찍해서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임계리에 사는 초등 5학년 은실이는 이웃집 현수 오빠를 좋아하는
 
 
순오기 2010-04-0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리뷰랑 제가 쓴 노근리 책리뷰랑 먼댓글 연결해도 될까요?

머큐리 2010-04-05 10:24   좋아요 0 | URL
저야 영광이죠...^^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 Invictu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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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흑인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해 헌신적으로 싸워온 투사다.
27년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의지를 꺽지 않고 마침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야만적 아파르트헤이트를 쳘폐시키고, 흑인으론 최초로 대통령이 된 인물!

그러한 인물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백갈등을 봉합하고 단결시키기 위해 백인스포츠를
대표하는 럭비팀의 주장과 만나 만델라를 지지하는 흑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백인이 압도
적인 럭비팀 '스프링복스'를 존속시키고, 남아공에서 열리는 럭비대회에서 우승시켜 흑과
백을 하나도 만드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시킨다.    

하고싶은 얘기 하나, 스포츠 영화다운 감동과 박진감이 살아 있는 영화라는 점.
얘기 둘,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인 모건프리먼은 남아공의 정치적 배경으로 만든
'파워 오브 원' 이라는 영화에서도 흑인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싸우는 투사로 열연
했다는 점.
얘기 셋, 영화의 감동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정치적 자유는 결국 경제적 족쇄에 묶여 사실상
완전한 해방이 이루지지 못한 점. 흑인 정권이 등장함에도 세계 경제를 백인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은 결코 흑인의 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전에 국민을 바보로 만들기 위한 3S정책 (Sex, Screen, Sport) 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는데
어쩌면 이 영화가 그런 3S정책의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단지 스포츠를 통한 열광적인 민족
주의로 흑과 백을 미봉적으로 통합시키고, 실질적인 사회적 경제적 통합을 이루는데는 실패
했기 때문에 결국 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감동적 통합은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질서의 도입과 추진은 만델라가 추진하고자 하는 목표는 아니었다
그 이후의 정권에서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도입했던 여러 정책들이 그러했다는 이야기고
'쇼크 독트린'에 간단하나마 그에 대한 전말이 소개되고 있다.

만델라를 보면, 우리사회의 비전향 장기수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또한 사상범으로
신념으로 수십년을 옥살이로 견딘 사람들이니까... 인간이 위대한 것은 꺽이지 않는 신념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우뚝서서 자신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도 어찌할 수 없는 세계
체제는 남아공의 흑인 투사들에게도 넘기 힘든 가혹한 시련이고 난관이 아니었을까? 

스포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투지와 역동성, 감동을 즐길 수 있다. 단편적으로 흐르는 남아공의
아픈 역사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남아공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영화로
남아공이 지금은 흑과 백이 조화롭게 잘 살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같이 본 회사 직원은 '아파르트 헤이트'가 무엇인지 몰랐다. 물론 만델라도 이 영화
로 처음 만났단다. 그렇게 우리는 역사와 담을 쌓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 글을 쓰기전 한겨레 신문에 실린 글을 읽었다
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412108.html 

만델라가 이루려는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아직도 남아공에서는
투쟁하는 흑인들이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의 감동과 다르게 무언가 목에 걸린듯 이 영화가 불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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