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외출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세삼스레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밖으로 향해있는 남,녀의 사랑과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 것일까? 가정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가던 남녀의 사고로 영화는 시작되고, 그들의 배우자는 슬픔에 직면한다. 배우자가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당혹스럽고 슬프지만 그들의 사랑앞에서 배신감과 비참함을 느껴야 했기 때문에 더 더욱 슬프기만 하다. 서로의 슬픔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또 다른 외출을 꿈꾼다.
허진호. 그는 <봄날은 간다>라는 영화를 통해 사랑의 속성. 사랑은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사랑이 변한다 할지라도 그것의 소리는 간직될 수 있다는 것을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우리의 가슴속에 남겨주었다. 나는 그가 이번에 영화 <외출>에 또 다른 사랑의 속성을 담아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며 나의 가슴속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남겨줄 것이라고 믿었다. <봄날은 간다>에서 그가 남겨준 것이 소리라면 <외출>에서 그가 남겨준 것은 대사였다. 소리와 대사의 미묘한 차이. 나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되네이며 그들이 대사 하나하나가 의미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그것들은 사랑의 속성을 들어내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에서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 라고 말하는 유지태는 소리를 담아내는 음향제작사였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준 이영애는 소리를 방송으로 흘러내보내는 PD였다. 난 그 영화에서 그들의 직업이 어긋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감독이 의도했던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외출>에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하게끔 유도하는 설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용준은 조명감독으로 콘서트를 제작한다. 그의 아내는 사진을 찍는다. 조명. 사진. 그것은 꽤 비슷한 성질의 것이지만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닌다. 사진은 찍는 순간보다 찍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 더 의미가 있으며 순간을 저장할 수 있지만 조명은 비추는 순간만 의미가 있고, 멋있게 흘러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직업이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의 아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서 그들의 외출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배용준의 아내와 손예진의 남편은 같은 대학.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다. 그들이 왜 결혼하기 전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했으면서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 이라는 것의 속성이 과거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서로에게 다른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연장선에 있는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영화에서는 그들의 사랑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하고 있지는않지만 " 그 사람 죽었어. " 라는 배용준의 말을 듣고 슬프게 흐느끼는 그의 아내의 울음소리가 그들의 사랑도 꽤 아프고 힘들었으리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영화에서는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묘사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사랑으로 인해 아무것도 몰랐던 두 배우자는 너무도 큰 상처를 입게되고,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사고가 가져온 여러가지 결과물들에 책임을 다하게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배우자를 간호하고 지켜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족으로써의 책임을 다한다. 그런 면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그들과 같이 사고가 났던 젊은 사람이 죽었고, 그를 조문하러가서 단지 배우자라는 이유만으로 수모를 당하는 장면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내린 손예진은 너무도 서럽게운다. 서러운 것이 당연하다. 배우자로 인해 받은 충격과 상처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그들이 그들의 과오까지 뒤집어 쓰는 것은 너무도 억울한 일이 아닌가? 만약 그들이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단지 연인사이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관계는 결코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이 요구되어지는 관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사. 나는 그들의 대사를 통해 사랑의 속성을 엿보았다
" 할 때는 재미있는데 끝나고나면 허무해요. "
배용준이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조명감독으로 콘서트를 제작한다. 화려한 세트 화려한 조명 환호하는 관객과 열정적인 무대. 공연이 펼쳐지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고 멋있다. 정말 환상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쓰레기더미만 남아있는 세트는 정말 황량하고 적막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사랑을 할 때 우리 모두는 황홀함을 경험한다.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가슴은 행복감으로 충만하다. 그것은 환호와 열정으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 씁쓸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정도로 적막하다. 기억이라는 것. 추억이라는 것. 그것들이 만들어낸 것은 허무함을 넘어선 상처와 아픔이다. 공연이 끝나고 난 풍경은 나에게 사랑이 끝나고 난 풍경을 연상케했다.
" 우린 어떻게 될까요? "
같은 상처를 가슴에 담은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서로를 감싸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갖게된다. 솔직히 사랑을 시작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필요로 하느냐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힘들고 아프다. 그 힘듦의 무게를 덜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상황과 입장에 처한 사람이라면 그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치 거울을 보는 듯. 서로를 보며 자신의 아픔을 느끼게되고 자신의 아픔을 이해받고 치유하고 싶은 것 처럼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서로를 향한 감정은 사랑의 형태로 변해간다. 육체적인 관계까지 갖고나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그들이지만 확신은 없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 우린 어떻게 될까요? "
많은 연인들이 절대적인 사랑의 약속을 하고 사랑을 불변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은 다르다. 이미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자를 통해 알게되었고, 그들의 마음의 변화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속에서 그들이 서로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 두려운 것이다. 아름다운 청춘남녀가 만나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배우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두렵기만하다. 그들이 배우자가 깨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지? 결혼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나. 그것이 주는 모든 책임과 압박에서 벗어나서 서로를 사랑할 수있을지? 를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은 두렵다. 변화를 속성을 지니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 어떻게 될까? ' 라는 생각을 수 없이 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 어느 계절 좋아하세요? "
" 봄이요. 겨울에는 눈이 좋아요. "
" 그럼 봄에 눈이 내린다면 가장 좋겠네요. "
" 봄에 눈이 내리는 것이 가능할까요? "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그들은 봄에 눈이 내리는 것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여자의 남편은 죽고, 남자의 아내는 살아나지만 이혼을 한 듯한 설정이 영상으로 보여진 후, 그들은 또 다른 봄을 맞이하게 되고 어느날 눈이 내린다. 통화음이 이러지고.. 갑자기 영상은 차안에서 바라보는 눈내린 풍경이다. 카메라는 달리는 차안에서 차 밖은 비춘다. 마치 그들이 달리는 차안에서 차 밖에 내다보고 있는 듯. 그리고 마지막 대사를 남긴다.
" 어디로 가는거예요? "
" 어디로 갈까요? "
계절.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요. 만물의 변화이다. <봄날은 간다.> 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사랑의 변화를 나타냈다. 하지만 <외출>에서는 불가능 한 것이 가능해지는 계절의 속성을 통해 불가능 한 것이 가능해지는 사랑의 속성을 나타낸다. 그들의 사랑은 불가능해보였다. 서로의 상황과 서로의 입장을 알고 있기에 차마. 잡을 수 없었던 사람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곁에 둘 수 있게되는 것이다. 사랑은 현실과 상황을 뛰어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한 감정이다. 그래서 어떤 의도나 목적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있다. 그것은 사랑은 인간의 의지의 영역이아닌 다른 영역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만약 사랑이라는 감정이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랑 때문에 울고,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사랑 때문에 상처받는 많은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랑은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지만 우리 내면에서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 어쩌면 외출이라는 것은 사랑이 우리의 내면에서 외출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외출>은 지극히 평범한 영상으로 평범하지 못한 사랑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 평범하지 못한 사랑의 속성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사 하나하나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많은 것들에게 자극이 되었던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결코 지루한 영화는 아닐 것이다. 나는 작가와 감독이 어떤 것을 전달하느냐에 주목하기 보다는 내 내면에 있는 어떤 것들이 투영되는지를 주목했다. 결국 그것이 나에게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과 괜찮은 의사소통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과 믿었던 것들이 충족되었기에 난 이 영화를 좋은 영화로 기억하고 싶다.
평가: ★★★★★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