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아직 잠들어 있고 밖에는 비가 퍼붓고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책도 보고 하다가

갑자기 엔야를 찾아듣게 되었다. (요새는 에냐라고들 나오는데 80-90년대엔 엔야)

 

조국 교수 딸, 입시, 외고, 특례 등등이 연상작용을 일으켜

중 3이나 고 1 시기에 듣던 노래들을 찾아 듣게 되었다.

 

몇 년 전에는 중2병 돋는다고들 했지만

40대 정도라면 좀 늦되는 사람은 중 3에서 고 1 시기가 사춘기

 

요새는 중 2도 아니고 초4. 초5병이라

내가 그 직격탄을 요새 맞고 있다. ㅜ.ㅠ

 

나의 사춘기는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뉴에이지 엄청 듣고 허무해하고

세기 말 감수성 돋던 시기라고나 할까.

 

 

삼풍사고와 성수대교를 겪고 나니

아등바등 이렇게 지하철 타고 새벽에 나오는 게 뭔가 싶다.

 

이런 식으로 일기장에 끄적끄적 하던 시기. (그때는 아둥바둥이라 썼겠지 ㅋ)

 

엔야, 조지 윈스턴, 케니지 등이 나오는 심야 영화 OST 프로그램 엄청 듣던 시기 ㅋ

 

그리고

 

아아아

 

파앤어웨이 ( 파 앤드 어웨이 아님 정색 )

 

지금은 수리아버님으로 유명한 톰 크루즈가 귀족청년 얼굴로 농부랍시고 나오던 시절이었다.

 

아련 열매 먹고 육아카페에 노래 링크 하니

 

동세대 어머님들이 댓글을 달아주시고

 

역시 같은 세대 어머님들은

같은 시간대(새벽5-6시)에 기상해서 댓글 달고 계심 ㅋㅋㅋ

 

 

여러 구리구리한 일들로 뒤숭숭한 시국이지만

그래도 또 오늘도 가보자

 

 

내일은 개학이구나....

 

 

 

 

내일이면 꼭 이런 기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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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정말 좋은 책, 그냥 그런 책, 안 봤더라면 좋을 책들을 보면서 보낸 여름이다. 남부지방에 이사 와 살면서는 여름 지내기가 많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름은 그래도 며칠 빼고는 견딜 만했다.

 

 

*

유명한 <올해의 미숙>은 한참 전에 독립서점에 가서 사서 보았는데 이제야 기록에 남긴다. 폭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미숙이 친구 재이에게 온 마음을 열었지만 쓰라리게 배신당하는 이야기. 

 

'재이'는 미숙을 노골적으로 '미숙아'라 부르며 따돌린 무리들보다 더욱더 잔인했다. 미숙의 삶을 훔쳐가 멋대로 재단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 재이는 미숙의 가정사를 소설로 써서 상을 탔고 이후 승승장구한다?

 

시인인 남편에게 맞고 산 어머니는 훗날 중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며 억울하지 않냐는 물음에 본인이 더 나은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 복수라고 한다.

 

미숙도 그냥 어딘가에 재이가 있을 것이라고 무심히 넘겨버리는 것으로 나름대로 복수한 것이 아닐까? 없는 사람으로 치고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넘기는 것으로.

 

아픈 이야기를 순정만화 같은 그림체로 담담하게 전하고 있다.

 

가족들은 중병에 걸려 하나하나 사라지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미숙'은 더 이상 미숙아가 아니다.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매듭 짓고 한 발짝 더 디딜 수 있다면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숙'이었을 수도 있는 미숙은 이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익어갈 것이다.    

 

 

 

 

 

 

 

 

 

 

 

 

 

 

 

 

 

 

 

 

이런 시국에 일본작가 책을 봐도 되나 싶지만 일단은 빌려 봤다. 아이들 방학이면 늘 보게 되는 술술 넘어가는 사회파 추리소설들.

 

 

야쿠마루 가쿠를 독서 모임 회원에게 소개받고 꾸준히 보았는데 <우죄>는 그럭저럭 보아 넘겼고 <데스미션>은 진짜 보기 힘들었다.

 

<우죄>에서는 저널리스트가 되려던 마스다가 우연한 기회에 공장에서 스즈키라는 동료를 만나며 그의 엄청난 과거를 알게 되어 벌어지는 일들이 담겨 있다.

 

<우죄>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주변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그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갱생의 길을 걷고 있다면 사회에서 받아주어야 한다고 쉽게 인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가 내 주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크게 마음 쓰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고유정이 나중에 출소하여 나의 이웃이고 동료가 된다면 어떨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속죄의 방법은 없다. 그냥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며 누구와도 연을 맺지 않고 지내는 것이다. 범죄로 희생당한 그 누군가는 그렇게 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으니.

 

<데스미션>은 시한부 인생이 되어서 연쇄살인마가 된 남자와 시한부인데도 불구하고 남은 생을 그런 범인을 쫓는 데 바치는 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는 내내 불편했는데 대체 이 자가 왜 이렇게 된 건지 궁금해 끝까지 보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안 봤어도 좋았을 이야기이다. 

 

그저 요 몇년 사이 자꾸 사회파 추리소설을 읽게 되는 내 심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순간순간 불안하고 그 불안의 강도와는 정반대로 엄청 무료하게 흘려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있기에 자극적인 설정으로 도피하는 건 아닌지.

 

<데스미션>을 끝으로 진짜 이런 사회파 추리소설들에서 당분간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오래 전에 읽고 리뷰를 꼭 쓰고 싶었는데, 너무 좋은 리뷰가 이미 많아 관두었다.

일단은 정말 표지가 다했다.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편견은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10쪽 

 

진짜 내가 잘 몰랐다는 생각만 든다.

 

내가 중학교에 다녔던 90년대 초에나 상고나 공고에 대해 공부 못하거나 형편 어려운 집 아이들이 가는 데라는 편견이 있었지, 요즘 특성화고에 대한 생각은 많이 다르지 않나, 그렇게만 여기고 있었다. 그건 내가 비교적 최근에 만나본 특성화고 학생이 MB 정권 시기에 고졸 특채로 공기업에 들어온 친구였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이라든가 진로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권이 특히 고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심하고 여러 기술을 익히고 자격증을 취득해도 원하는 현장에 가기는 하늘에 별따기라는 것이 이제야 실감난다.

 

그리고 동준이 어머님이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세월호 어머님들과 같아서 마음 아팠다. 사람들이 자꾸 자식 이야기를 하지 못 하게 막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씀.  

 

이 책을 만나는 엄마들에게 꼭 권하고 있다.

 

 

 

 

 

 

 

 

 

 

 

 

 

 

 

 

육아서는 이제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래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그보다는 '존재감'이 더 중요하다고. 반에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런 아이라면 심각한 문제지만, 조용하지만 그 아이가 있다는 걸 누구나 안다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초등 시기의 '자기 중심성'은 탈피해야 할 나쁜 것만이 아니라 자기 중심성을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누려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모든 걸 알 수도 없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아이는 자기 세상과 관계 안에서 지지고 볶고 갈등하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울 줄 안다. 아이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라 엄연한 타인이다.

 

 

149-150쪽   

 

 

줄치고 매일매일 복창해야겠다.

 

 

 

 

 

 

 

 

 

 

 

 

 

 

 

 

사둔 지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거의 삼분의 이 지점을 다 읽었다. 그 많던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중에는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의 극빈에 처해 서울로 돈을 벌러 따로 나와야 했을 정도인지는 몰랐다.

 

반가의 아녀자로서 하기 힘든 삯바느질, 공장일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어가시는 부분을 읽을 때 그 심정이 어떨지 누가 정확히 알까 싶어 마음 아팠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내내 남편 걱정, 자식 걱정으로 가득했다.

 

고어투에 모르는 인물이 많아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그 어투 자체가 귀중한 자산 같다.  

 

광복절이라고 아이들이랑 <밀정>, <암살>, <박열>을 쭉 보았는데, 어투가 다 현대 입말에 복식도 현대에 맞게 화려하게 해서 그런지 뭔가 아쉽다. 차라리 흑백을 택한 <동주>의 선택이 더 탁월했을지도.

 

다만 <암살>에서 김원봉 역을 맡은 조승우 배우님이 타겟을 타겟트라고 발음한 부분에 많이 설렜다. 또 봤는데도 여전히 같은 지점에서 반하고야 마는.

 

 

 

 

 

 

 

 

 

 

 

 

 

 

 

 

이번 주말을 책임져준 <조선 정신과의사 유세풍>

 

조선정신과의사에 이끌려 빌렸는데 구르미 같은 류인가 싶어 망설이다가 다 읽어냈다.

 

사실은 구르미...성균관유생.... 이런 책들을 아예 읽지도 않았다.  

뭐든 읽지도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는 말아야겠다. 

 

역사에서 취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하구나.

 

조선시대에도 '심의' '정신과의사'가 있었다면 자결하는 수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인고의 세월을 겪어 비정상이 된 여인들과 신분과 직업, 가정사로 문제를 겪는 여러 군상을 보다보면 조선시대라고 해서 지금과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하다.

 

어투가 많이 발랄한 부분이 있어 드라마화를 노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으로 마구마구 홀로 캐스팅을 하며 즐겁게 읽었다.

 

 

 

 

 

 

 

 

 

 

 

 

 

 

 

 

 

 

중간중간 함께 보고 있는 에세이들

 

둘 다 명성이 자자한데 다 읽어내질 못하고 있다.

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빌린 책들 반납일이 닥쳐오면서 그 책들부터 해치우느라.

 

 

 

 

 

 

 

 

 

 

 

 

 

 

 

 

 

 

빌리고 나니 전에도 읽었었지, 아차 싶었다. 

 

그래도 현재 내 삶과 가장 맞닿은 책이라 그런지

또 봐도 반갑다.

 

작가님 성향이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그게 참 좋다.

 

 

*

아이들 방학을 보내며 책도 이제는 나만 읽고 (둘 다 유튜브에 빠져 살고 있음. 시야에 안 보이면 안 봐도 유튜브, 몰래몰래 좋아하는 채널 보고 있는 것.)

 

여기저기 나들이도 많이 다니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었는데

글로 남겨두질 않으니 다 흩어져 버렸다.

 

남겨도 역시 부질없겠지만

그래도 기록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부쩍 자주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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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을 읽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빅 픽처>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이니 그 비슷한 류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은 빅 픽처도 읽지 않음.)

 

미국의 정치적 격변기인 6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한나 더컨을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진보적 지식인인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나는 부모님의 불화, 예술가인 어머니의 불안정한 심리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안정적인 삶에 정착하고자 의대생 댄과 일찍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아 답답한 시골 마을에서 사서로 일하며 지내던 중에 아버지 부탁으로 진보활동가 토비아스 저슨을 숨겨주게 된다. 한나는 시아버지가 위독해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토비아스 저슨을 집에 들이는 것이 불편했지만, 아버지의 부탁을 결국 수용한다. 

 

한나는 한순간의 열정에 휘말려 저슨과 동침하게 되어 곤경에 빠진다. 저슨은 실은 무장테러에 연관되어 FBI의 추적을 받게 되어 캐나다로 도피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한나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저슨은 한나를 협박해 유유히 캐나다로 도피하고 한나는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평생 가족에게만 헌신하리라 다짐한다.

 

1부에 이렇게 한나의 초기 생애가 소개되었고, 2부에서는 한나의 안정적인 현재의 삶이 그려진다. 남편은 정형외과 의사이며 자신은 교사로 일하고 있고, 딸과 아들은 잘 성장하여 펀드매니저와 변호사로 충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은 남부러울 것 없는 모습이지만 딸 리지가 유부남 의사와 사귀다 버림 받고 실종되면서 한나의 삶 역시 철저하게 부서진다. 딸이 추문에 휩싸인 이런 최악의 상황에 이전에 한나가 도피시켰던 운동가 저슨이 회고록을 내어 과거의 불장난을 싸구려 로맨스로 포장한다.

 

한나와 그녀의 딸 리지의 삶이 황색언론과 세간의 무자비한 호기심에 의해 낱낱이 까발려지고 남편 댄 역시 그녀를 단번에 내친다.

 

한나가 평생의 진정한 벗 마지와 함께 이 난관을 타개해나가는 과정이 눈물겹다. 소소하게 한나의 삶을 응원하는 주변 인물들을 보고 나니 콧등이 시큰. 

 

딸 리지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했던 경찰이나 한나의 집을 수리해준 업자, 그리고 반전을 만들어낸 빌리까지 중요한 순간 필요한 도움을 준 이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친구 마지는 이런 친구가 현실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초인적인 인물이다. 암으로 투병하며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도 친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끝까지 열성을 다한다.    

 

결국 한나는 명예?를 회복하지만, 남편도 떠났고 딸은 여전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다 읽고 나니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어떤 식으로든 한 개인의 삶에 생채기가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각각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미미해 보여도 한 인간의 생은 시대상황에 정말 크게 휩쓸린다.

 

다음으로 부모의 어떤 면을 증오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결국 자녀 역시 부모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한나의 어머니-한나-한나의 딸 리지.

 

각자가 다르고 독립적인 여성 같지만 심리적으로 남성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어 안타깝다.

내 안에 있는 모습이기도 하기에.

왜 여성들은 그토록 사랑을 갈망하는지.

 

부모님의 불륜으로 상처받았지만 한나는 자신도 비슷한 과오를 저지르고 딸아이도 순간적으로 이상한 열정에 휘말리게 된다.

 

*

이 소설의 제목 연방의 주에서 유니언은 사전을 찾아보니 결혼생활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연방이 어떤 공동의 목적 하에 세워졌지만 주의 자치를 인정하는 것처럼 가족도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야 잘 기능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진보적 성향의 한나의 집안이지만 아들 제프리는 극우 보수에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되어 엄마를 공격한다. 나중에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어 제프리가 엄마를 용서하고 받아들이지만, 그뿐이다. 서로 가치관이 너무나 다르기에 따로 지내며 가끔 만나는 게 최선이다.

 

핏줄로 이어진 자녀와 달리 애정에 기반한 남편과의 연합 역시 오래가지는 못했다.

'오늘'은 사랑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관계가 부부 사이일지도 모른다.

 

평생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댄의 황당한 행보에 마음이 아프고 씁쓸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존엄을 저버리는 미국의 황색 저널의 현실을 폭로한 부분이 실감났다. 우리나라 티브이 00이나 채널 00 류는 아주 양반이다. 

 

 

*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았던 삶이 실은 아주 허약한 기반에 놓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는 것이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지는 캐나다 어딘가에 살아 있고

한나는 프랑스로 떠날 수 있어 다행이다.

 

가족이란...... 부부란......

실은 너무나도 허약한 연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지만

내가 있는 한

삶은 지속될 것이고

 

허약하지만

느슨하게 결합되어

서로를 인정하며

그렇게 살아내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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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다나스 영향으로 비가 퍼붓고 바람이 불던 지난 토요일,  광주에 편혜영 작가님이 오셨다.

 

전작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서늘한 글을 쓰시는데 표지 사진을 보면 엄청 단아하고 밝아 보여서 그 괴리감은 뭘까 항상 궁금했던 작가였다.

 

집에서 택시 기본 요금 정도의 거리라서 택시를 타고 도착하니 놀라운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스타벅스와 개인 카페를 혼합한 듯한 다양한 의자들이 있고 넓고 쾌적해서 신기했다. 사실 지역의 오래된 곳이라 별 기대는 없었는데 놀랍도록 달라져 있었다.

 

하도 일찍 와서 그런지 혹시 작가님 관계자냐고 행사 진행하시는 분이 물었다. ㅋ

 

10시쯤 작가님이 등장하셨는데 김애란 작가님이 <잊기 좋은 이름>에 묘사한 그대로였다. 실물이 훨씬 낫고 시종일관 미소.

 

작가의 인상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조연을 맡은 배우 이미지였다. 흰색 트위드 자켓과 잘 맞는 청바지 그리고 검정색 토오픈 슈즈 위로 단정하게 페디큐어를 받은 발가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진행을 맡은 분은 아마도 작가님 에이전시나 출판사 관계자인 듯한데 팬심을 드러내면서 매끄럽게 진행하셨다.

 

일단 광주에서 진행하는 만큼 작가님 부모님의 고향이 화순이라는 것으로 친근함을 표했다. 화순에서 서울로 가셨다는데 아마 댐이 생겨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중에 부모님이 예전 사시던 데 찾는다고 엄청 많은 가족을 이끌고 오셨는데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고 하시는데 살짝 그 풍경이 그려져 혼자 웃었다.  

 

실물이 진짜 미인이시라는 것과 수상 이력을 강조하시는 데 작가님은 민망하지만 담담하고 당당한 미소를 지으시면서 질문마다 적정한 답변을 내놓으셨다.

 

사전에 준비되어서 그런지 그간의 기사 인터뷰로 들어본 듯한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질병에 관한 이야기나 간병 에피소드를 실제로 거의 겪어보지 않으셨다는 데 놀랐다. 간접 경험만으로도 그렇게 치밀한 묘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프로라는 것이겠지.

 

앞으로 쓰실 이야기는 치매,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나  간병 살인 등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기사를 통해 짧게 드러나는 여러 사람의 인생의 이면에는 어떤 서사가 있을지 나도 궁금하기는 하다. 

 

내 옆에 소년 이로의 표지색과 비슷한 인디핑크 티를 입은 문청이 한 분 계셨는데 작가님에게 어른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귀엽고도 철학적인 질문을 했다.

 

작가님의 답이 명쾌했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이미 어른이시잖아요? 라고 가볍게 토스하셨다.

 

이 반응이 매력적이라 그 이후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두운 이야기를 쓰면 힘들지 않냐, 고 하는데 소설 쓰기의 몰입과 배우의 몰입은 다르다는 것으로 명쾌하게 정리하셨다.

 

아, 그렇지 이야기일 뿐이지.

 

작가님과 사회자의 대담을 듣고 질문 몇 개를 듣고 나니 한 시간 사십분여가 훌쩍 지나갔고 작가님은 마지막 마무리도 깔끔하셨다.

 

필리핀에서 제출한 이름인 이번 태풍 명칭 다나스는 경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작가님에게 이번 강연이 좋은 경험이었고 외롭게 소설을 쓸 때 이곳에 모인 구체적인 독자들의 모습을 기억하겠다는 말씀으로 끝을 내셨다.

 

 

    

 

 

 

 

 

 

 

 

 

 

 

 

 

 

강연이 끝나고 도시락을 먹고 다음 프로그램을 했다.

 

원래 딸은 같은 층에서 하는 아이들 행사인 이현 작가님과의 캠프를 하려고 했는데 막판에 딸이 싫다고 해서 혼자 온 것이었다.

 

해서 오래전 예능 짝과 같이 혼자 도시락을 먹는 굴욕을 ㅜ.ㅠ

 

본깨적 독서법에 따라 <당신이 옳다>를 함께 읽어가는 시간이었다.

 

각 모둠의 강사님들은 전에 양재나비라는 독서포럼의 지역 분과인 빛고을나비 분들이었다. 우리 모둠은 행사를 진행하는 요원인 청년 세 명, 강사님, 30-40대이시고 초등 자녀를 둔 분, 60대? 교수님 그리고 나 이렇게 구성이 다양했다.

 

본.깨.적 독서법에서

본 것은 저자의 주장이나 자신이 알고 있던 것

깨달은 것은 책을 읽으며 내가 알게 된 것

적용할 것은 나의 삶에서 앞으로 실천할 부분을 말하는 것이었다.

 

전에 교과교수법에서 배운 KWL 읽기 전략을 변용한 듯하여 아주 새롭지는 않았고, 나비 모임은 주로 자기계발서나 건강도서를 많이 읽는 모임이라고 하셨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년이 되고 보니 읽을 필요가 있는 책들은 가끔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임에서 열광하는 책들이 난 아직은 낯설다.

 

<당신이 옳다>는

 이런 캠프용으로 무난하게 잘 선택된 도서 같다.

 

*

<당신이 옳다>를 참여자 모두 가져온 것이 아니어서 청년들은 다른 책을 보고 발표했다.

 

청년들의 픽 !

 

재미있어 보여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원래 저녁 여섯 시까지 진행되는 행사이지만 아이들끼리만 너무 오래 있어

발표는 못 하고 일찍 일어섰다.

 

교수님이 발표를 이 '어머님'이 하시는 게 좋겠다고 하셨는데

40대인 나보다 훨씬 더 연장자인 분이 어머님이라 하시는 게 거북했지만 

그냥 있었다.

 

그리고 교수님이 약속 있어 가실 때

나도 그 '어머님'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밥 해주러 가야 해서 (행사 온다고 아이들 피자로 때움)

묻어서 함께 막간의 시간에 행사장을 나왔다.

 

명찰에 이름도 있는데

아이를 기른다고 말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어머님이 되어버리는 현실.

풋.

 

진짜 마트나 은행에서는 고객님 혹은 000 님 

모임에서는 이름 부르기 운동을 전개하고 싶다.

 

어머님이나 여사님 듣는 순간 소오름. 

60대-80대 분들도 여사님 어머님 어르신

진짜 싫어하는 호칭이라고 하는데 바뀌질 않네 

 

 

택시를 잡았는데 다행히 말이 없는 분이셨고

집에 도착하니 집안 꼴은 내가 익히 상상한 그 꼴이었지만

안락했다.

 

 

비가 와서 장도 못 보고 해서 집에 있는 자투리 채소를 모아 짜장밥을 해주고

<밤이 지나간다>를 읽었다.

 

이미 읽은 단편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는데

작가님을 보고 나니 역시 몰입이 안 된다.

 

그런데도 행사가 있으면 가게 된다.

 

 

*

나름대로 긴장을 했는지 간만에 숙면을 했다.

 

읽고 쓰는 소수의 사람들을 그래도 가끔은 만나는 것이 좋은 경험이 된다.

그 경험으로 인한 긍정적, 부정적 감정 모두가 나를 만들어간다.

 

어제의 나와는 다른 그 어떤 존재로.

 

*

 

좀더 음식을 잘 챙겨먹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더 잘 듣자.

 

내가 가보지 않은 길, 읽지 않은 책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월요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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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이 뻑뻑하고 눈물도 자주 나고 뭔가 불편해서 안과에 갔다.

마흔이 넘으셨으니 이제 노안이 올 나이라고 ......

 

울적하다가

어르신?들이 남긴 고운 그림으로 위안을 받았다.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는 남미에서 오래 이민생활을 한 두 부부의 잔잔한 일상을 담고 있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잘 하지 않는 인스타 팔로우도 해봤다. 최근에는 국내로 오신듯하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그리는 이상적인 노후가 아닐까?

 

젊은 시절 다양한 경험을 했고

부부 금슬 좋고 아이들 건강하고 화목하고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는 것이

나이들어가는 법을 찾는 것이겠지.

 

젊을 때보다 할 수 있는 것이 적어져도

그에 맞게 적응해나가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역시 두고두고 가끔 펼쳐보면 찡하다.

우직하게 온몸으로 살아온 세월이 보인다.

 

이렇게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장하고 멋진데

가까운 본가 어머니, 시어머님의 삶을 돌아보면 답답하고 안타깝고 그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죄책감이 들어 더더더 멀어지는 기분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는 청소년 문화의 집에 갔다가 휘리릭 잘 넘겨보았다.

 

위트 넘치는 그림과 글들.

집순이의 정서를 잘 표현했다.

 

사람들과의 대화 편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도 다 불편해지는 그 사이클

너무나 공감.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긴장되어 불편하고 여럿이 만나면 대화에 끼어들 타임을 찾느라 피곤하고 일대일이면 적당한 핑퐁이 되어야 하니 불편하고 너무나 친한 사람을 만나면 서로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어 무거워 힘들어지고.....그러니 결국은 혼자가 편하다는.

 

나 역시 그렇다.

 

어떨 때는 뭔가 아이들 아닌 어른과의 대화가 그리워 만남을 부러 갖기도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뿌듯하고 개운한 적이 별로 없는듯하다.

 

아 또 이상한 말을 진짜 많이 했어

거기를 같이 가기보다는 그곳이 나았을 텐데.

 

혹은 거길 가지 않았다면 그 책은 다 봤을 텐데 라든가

가지 말고 진짜 청소라도 할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교성은 없지만 사회성은 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주장은 폐기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상무알라딘에 좀비고와 엉덩이탐정을 팔고 새삼 충격받았다.

살 때는 수십만 원 주고 샀는데 팔 때는 수중에 단돈 몇 만원 쥐어질 뿐이다.

 

매입할 때 품질 판정은 엄격하고

책을 다시 살 때의 책 상태는 요즘 애들 말로 절.레.절.레.

(신간류 특히 구겨지고 표지 때탐이 심해도 신간이라고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가격이 책정된 데에는 할말을 잃곤 한다.)

 

해서 와이, 살아남기, 실험왕, 마법천자문 류는 상태 좋은 것만 추려서 청소년 문화의 집에 아예 기증했다.

 

그런데도 또 이런 책을 사들이고 있는 현실이란 ㅜ.ㅠ

 

<흔한 남매>는 웃찾사 코너에서 유튜브로까지 진출했나보다. 딸아이가 친구 소개로 보더니만 사달라고 간곡히 청해서 할 수 없이 구매했다.

 

우리집 흔한 남매도 내가 보기엔 늘 별일 아닌 걸로 티격태격이다.

 

아들이 얼마 전 일기에 우리는 다른 남매들이 그렇듯이 흔한남매이다. 아마 우리 나이에 사이 좋은 남매를 찾기란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것보다 힘들 것이다, 라고 적었다.

 

딸은 책을 보더니 둘은 싸워도 그래도 으뜸이가 결국에는 동생 에이미를 챙기는데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나.

 

학교에서 오빠를 보아도 먼저 인사도 제대로 안 한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둘이 똑같이 생겨서 아들 친구들이 딸아이를 발견하고 니 동생 간다, 하면 부끄러워서 먼저 뛰어가는 게 딸아이는 늘 불만이다.)

 

<터널>을 읽고

나도 오빠를 위해 용기를 내겠다던 갸륵한 시절도 있었는데.....

 

뭔가 남매는 참 부모 입장에서는 대하기 까다롭다.

 

늘 황희 정승 코스프레를 해도 뭔가 항상 둘 다 불만이 많다.

일상에서 늘 서로 자기부터 봐달라고 하니 머리가 아프다. 

 

엄마가 바빠서 여동생과 합심해 지냈던? (여동생을 통치했던) 내 유년기 경험으로는 도무지 참고할 수가 없는 상황이 많다.

 

 

 

 

 

 

 

 

 

 

 

 

 

 

 

 

가브리엘 제빈의 <섬에 있는 서점>을 잘 읽어서

<비바, 제인>도 읽게 되었다.

 

제인은 20대에 의원을 보좌하는 인턴을 하다 의원에게 빠져든다. 이 관계에서 상처받은 제인의 어머니 레이철,  제인의 아이 루비, 의원의 아내 엠베스 그리고 후반부에 다시 젊은 시절의 제인 아비바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림이 그려진다.

 

유력한 정치인과 그 주변의 젊은 여성.

불륜, 치정관계에서 

이미지를 망치고 삶이 파괴되는 쪽은 이런 권력관계에서 더 아래쪽인 여성이다.

 

독특한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지극히 평범한 이름을 택하고 멀리 이사를 해서 살아도 삶의 고비마다 자신의 이력이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닌다. 모르는 사람의 비난이나 멸시는 그럭저럭 넘긴다 해도 가까운 가족들마저 자신을 온전하게 이해해줄 수는 없다. 특히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된 딸아이가 제인을 맹렬하게 비난하는 데 할말을 잃었다.    

 

후반부에 예전 예능 인생극장같이 더 바람직한 쪽을 택한다면, 이라는 가정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런 가정을 따라가줄 페이지는 없다. 오로지 선택했던 결과만이 인생의 한 페이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엄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20대 인턴과 애정놀음을 하면서도 임신을 피하기 위해 온갖 추잡한 술수를 쓴 의원님의 행태가 우습고 그런 남편을 둔 부인의 처지는 더 우습게 된다. 

 

그런 남편이지만 그래도 생을 바쳐 사랑한 엠베스 시점의 이야기가 슬펐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고 정치인의 아내로서 성실했건만 조롱당한다.

결혼 30주년 기념식마저 끝없는 쇼잉이고 늘 기다리게 하고 실망을 안겨주는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멋진가, 라니.

 

너무 슬펐다. 감정적 약자의 무력한 사랑이. 

 

<잊기 좋은 이름>

기대하며 받아보았고 거의 단숨에 읽었다.

 

유년기의 소소한 기억과 당당한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 좋았다.

 

후반부에 작가들과의 인연을 서술한 장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000 작가 이야기 하시면서 실물이 낫고 그건 자신도 그렇다고 능청을 떠시는 부분에서 많이 웃었다.

 

어릴 때 신춘 문예나 문예지에 등단한다면 사진을 뭘 쓰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가당치 않게도 역시 난 실물이 나은데 사진 진짜 안 받는다,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점점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후반부.

 

'세월호'에 대해 증언하는 부분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작가님 덕분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시 찾아 읽었다.

 

잊기 좋은 이름은 없으므로.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300쪽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이름이 가득이었고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난쏘공을 수학능력시험, 전공 시험, 레포트 작성 등을 위해 읽고

나중에는 가르치느라 읽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다 잊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사람이란 한계가 있어 언젠가는 잊기 마련이지만

사실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처음부터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면 말이다.

 

모든 존재는 유일무이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떠올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른 이름도 적지 않고요.

 

이 책에는 그런 저의 한 시절과 무능 그리고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도요.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 적습니다. 302-303쪽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이 책들도 읽어야겠다.

 

표지도 같이 두고 보니 엄청 잘 어울린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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