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영화의 짧은 역사"

 

 

 

 

"영화의 짧은 역사"는 로도윅의 <들뢰즈의 시간기계>(그린비, 2005) 1장 제목이다. 들뢰즈의 영화론을 읽어야 할 필요가 생겨서 다른 책들과 함께 로도윅의 책을 들춰보게 되었고(이 얼마나 '유익한' 번역인지!), 나는 며칠 전에 이 1장을 읽었다(2장은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에 대한 사전독해를 요구하기에 잠시 미뤄두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면 들뢰즈의 <시네마> 읽기는 상당한 견적을 자랑한다). '짧은 역사'인 만큼 이야기도 짧은 편이지만, 그걸 요령있게 정리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이다. 나는 중요한 대목에 밑줄긋고, 오역이나 착오는 교정하면서 잠시 자리를 데우도록 하겠다.

먼저 들뢰즈의 두 책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는 영화사 연구가 아니며 따라서 연대기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1)뵐플린이 <예술사의 원리>에서 피력하고 있는 역사관이 스며 있다(미학 형식의 역사는 그러한 형식이 역사적으로 통용될 수 있었던 시대/문화와 짝지어질 수 있다는 얘기). 그리고 (2)일리야 프리고진과 이사벨 스텐저스의 과학철학/과학사 연구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특히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와 관련해서인데, 자연을 모델로 하는 개념화 전략은 들뢰즈에게 많은 통찰을 제공한 것으로 돼 있다. 참고로, 러시아의 경우 들뢰즈는 이러한 과학철학자들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되고 있다). 요컨대, <예술사의 원리>와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를 먼저 읽으라는 것(나는 후자만을 읽었다). 뵐플린의 책은 <미술사의 기초개념>(시공사)으로 번역돼 있고(그러니까 '예술사'라기보다는 '미술사'라고 해야 맞겠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정음사/고려원)도 국역본이 있는 책이다.

"들뢰즈는 베르그송을 전유해서 사유가 본질적으로 시간적이며 운동과 변화의 소산임을 주장한다. 또한 그는 퍼스의 재독해를 통해 이미지가 통일되거나 닫힌 전체가 아니라 연속적 변형 상태에 놓인 논리적 관계들의 집합이라고 논증한다."(36쪽) 사실 이런 대목은 사례를 직접 '봐야' 이해가 용이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아무튼 들뢰즈는 "소쉬르에 연원하는 영화기호론에 반대해 퍼스의 기호학을 선호"한다. 여기서 소쉬르 계보의 대표적인 영화기호학자를 든다면, 단연 크리스티앙 메츠를 꼽아야 할 것이다(사실 메츠는 영화광 언어학자였다. 들뢰즈가 영화광 철학자였던 것과 비기는 셈. 메츠가 소쉬르 등의 언어학을 영화에 가져온다면, 들뢰즈는 퍼스의 논리학과 베르그송의 철학을 영화에서 발견한다). 

메츠와 들뢰즈의 차이? "메츠의 경우, 영화적 언표에 대한 개념, 거대 통합체에서 파생된 내러티브 이론을 제시하여 이미지의 가장 가시적 속성인 운동을 제거하면서 이미지의 의미를 언어적인 것으로 제한한다. 그러나 들뢰즈의 경우, 영화의 이미지 구성성분이 움직이는 '기호적 질료'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변조 가능한 특징들, 즉 감각적인 것, 운동적인 것, 강도를 띠는 것, 정서적인 것, 리듬적인 것, 음조적인 것, 심지어 언어적인 것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대비 또한 예비적인 지식을 요구하지만, 메츠의 경우 영화가 비록 '랑그'(이중분절이 가능한 언어체계)는 아니더라도 '언어'로 규정될 수 있다고, 즉 '언어'로 환원될 수 있다고 본 반면에 들뢰즈는 그러한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정리해둔다.

이어지는 대목: "에이젠슈테인은 처음에 이를 이데올로기소에, 다음에는 좀더 심오하게도 전-언어 또는 원시 언어체계에 해당하는 내적 독백에 비유한다."(37쪽) <시간-이미지>에 인용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 대목은 오역을 포함하고 있기에 국역본 <시간-이미지>를 참조하는 게 좋겠다. '이데올로기소(ideologram)'라고 옮긴 것은 '표의문자(ideogram)'를 잘못 본 것이다('ideologram'이란 '신조어'는 어디에서 왔는지?). 들뢰즈가 퍼스 기호학을 참조하는 것은 그것이 "언어학이 아니라 논리학이며, 따라서 기호작용을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기호론이 언어적 모델을 영화 바깥에서 부과함으로써 영화적 기호를 정의하려 하는 반면, 들뢰즈는 영화 자체가 역사적으로 생산해온 질료에서 기호이론을 연역하기 위해 퍼스의 논리학을 적용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들뢰즈의 유명한 '영화기호학 비판'이 제기되는 것.

 

 

 

 

참고로,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학(퍼스는 'Semiotic'이라고 불렀다)에 관한 번역은 아직 없으며 최근에 퍼스의 사상 전반에 대한 안내서가 나왔을 따름이다. 정해창 교수의 <퍼스의 미완성 체계>(청계, 2005). 현재까지는 움베르토 에코 등이 지은 <논리와 추리의 기호학>(인간사랑, 1994)이 퍼스 기호학에 대한 가장 요긴한 참고문헌이다(물론 에코의 기호학 이론서들을 덧붙일 수 있지만, 재미에 있어서는 '추리'가 '이론'보다 한 수 위이이기에).  

이어서, "들뢰즈는 이미지 실천(image practices)이 사회적/테크놀로지적 자동기계라고 주장한다. 이 자동기계에서 각 시대가 특정한 사유의 이미지를 생산함으로써 스스로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한 시대의 사유 이미지는 곧 사유의 본질, 사유의 쓰임 및 사유하고 있는 주체의 위치를 스스로 사유하는 이미지다."(38-9쪽) 이 대목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로부터의 인용인데, 거기서 들뢰즈/가타리는 "영화를 일종의 인공지능, 데카르트의 잠수인형, 개념의 직조를 위한 기계로 간주한다." 여기서 상응관계에 놓이는 것은 특정한 이미지와 각 시대의 사유 전략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로도윅이 설명하는 것은 시간을 공간적으로 그려내는 방식의 차이로서 규정되는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의 구분이다. 운동-이미지는 시간에 대한 간접적 이미지를 제공하고, 시간-이미지는 직접적 이미지를 제공하다. "들뢰즈는 간격, 즉 포토그램, 쇼트, 시퀀스 사이의 공간이나 경계를 재고찰하는 한편, 영화가 시간을 공간적으로 표상하기 위해 이 간격들을 어떻게 조직하는지를 살피면서 이 비범한 발상을 이끌어낸다."(40쪽) 여기서 간격 개념은 러시아 영화감독 지가 베르토프에게서 차용하여 확장한 것인바, 베르토프는 <운동-이미지>에서 에이젠슈테인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감독이다(당연한 얘기지만, 시간-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러시아 영화감독은 타르코프스키이다).

그리고 물론 베르그송을 읽은 독자라면, 들뢰즈의 '비범한' 발상 자체가 얼마만큼 베르그송에게 빚지고 있는지 헤아려볼 수 있을 것이다(특히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에 관한 시론>). 이참에 겸사겸사 읽어야 할 '베르그송' 목록을 나열해 보자.

 

 

 

 

이미지상으로는 세 권이 뜨는데,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아카넷, 2001 ), <창조적 진화>(아카넷, 2005) 외에 절판된 책이지만 <물질과 기억>(교보문고, 1991)이 필독서이다(<시론>의 영역본 제목은 <시간과 자유의지>인데, 이 제목이 내용파악에 더 적합하다. 판매량에도 더 긍정적이었을 테고. 기억에 베르그송이 동의했던 제목이다). 거기에 들뢰즈 자신의 <베르그송주의>(문학과지성사, 1996)를 덧붙여야 할 것이고. 들뢰즈에게서 베르그송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 사상의 진화>(갈무리, 2004)가 친절하다(이런 식으로라면 '독서'라기보다는 '프로젝트'이지만).

<운동-이미지>에서 들뢰즈는 에이젠슈테인과 고전 헐리우드 영화를 별개로 다루지 않는다(이건 이상한 일이 아닌 게, 에이젠슈테인 자신이 고전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그리피스). 그들은 운동을 '열린 총체성'으로 설명하고자 했는데, 다르게 말하면 연속적인 운동을 단면으로 분할해서 미분하고 적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소비에트 학파와 할리우드 영화의 실천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들뢰즈는 "소비에트 학파와 할리우드 영화가 본성상 서로 다르지 않은 운동-이미지의 두 가지 변별적 표명이라고 본다."(44쪽)

이들의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은 간격들로 환원되며, 이 간격은 운동 및 (몽타주를 통한) 운동의 연결로 정의된다. 그런 점에서 운동-이미지는 시간의 간접적 이미지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19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는 시간보다는 공간 및 운동에 대한 매혹을 천명한다. 시간의 조직화는 몽타주를 통한 운동의 재현에 귀속된다. 내러티브 영화와 아방가르드 영화 모두 운동의 문제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기억과 지각에 대한 나름의 이론을 도출했다."(46쪽)

이것은 "운동-이미지의 산물인 정신기호도 마찬가지"인데, "한편으로는 연합(=연상)을 통한 연결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통합-분화를 통해 표현되는 팽창하는 전체가 있다."('통합-분화'는 '미분과 적분'(differentiation and integration)'이란 뜻도 포함하는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 여기서 "간격들과 전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행동주의적이다. 이 관계를 분절하는 것은 갈등, 대립, 해결로 조직되는 '작용->반작용' 도식이다."(46쪽) '행동주의'는 심리학에서의 행동주의를 말하는 것이겠다. 즉, 반복과 강화 등에 의해서 조건화(conditioning)된다는 얘기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운동은 미국적인 의지의 이데올로기, 즉 환경에 대한 지배와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의 연결이 필연적이며 무한히 연장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문장은 중요해서가 아니라 오역이 포함돼 있어서 인용한다. 원문은 "This movement of action and reaction derives from an American ideology of will, a belief that the mastery of environments and opponents is inevitable and infinitely extendable."(12쪽)이다. 미국식 '의지의 이데올로기'란 "환경과 적대자들에 대한 지배는 불가피하며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는 신념"을 말한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서 힌트를 얻고 있는바, 에이젠슈테인의 사유 도식에는 '운동중인 열린 총체성'(the changing whole of the open totality)이 무한한 확장과정을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함축돼 있으며, "부분들에서 집합들로의 통합, 그리고 집합들에서 전체들로의 통합은, 이미지와 세계와 관객이 진리를 재현하는 거대한 이미지 속에서 하나가 될 때 절정에 달한다."(47쪽) 그리고 그런 점에서 에이젠슈테인은 "시네마토그래프의 헤겔인 양 이 개념의 거대한 종합을 표현했다(=제시했다)."

그리고는 시간-이미지로의 이행이다. "들뢰즈가 유기적 운동-이미지를 '고전 시기'(=고전주의 영화)에, 그리고 시간-이미지를 '모던 시기'(=모더니즘 영화)에 대응시킬 때, 이는 전자가 자연적으로 진전해서 후자가 도출됐다는 말도 아니고, 모던 형식이 고전 시기 영화에 대한 비판으로서 반드시 그에 대항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전이(=이행)는 사유의 가능성 및 믿음의 본성에서 일어나는 점진적 변형을 뚜렷이 재현한다." 즉, "운동-이미지가 유지하는 유기적 체제는 유리수적인 나눔들을 열결함으로써 진행되며, 궁극적으로 총체성과의 연관 속에서 진리의 모델을 투사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유럽 영화계에 몰아치면서 이에 대한 변화가 생겨났고, 그 결과로 이전과는 다른 '상상적 관찰' 형식이 나타났다... 그 결과 운동-이미지의 작용-반작용의 도식이 붕괴되기 시작하고, 지각과 정서의 본성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난다... 혹자는 즉각 안토니오니의 영화 <정사>(1960)와 같은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무언가를 기다리지만 결국 지속으로서의 시간이 경과하는 것만을 목격하는 인물들이 남는다." 시간-이미지가 탄생하는 장면쯤 될까?

거듭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밝히자면, "들뢰즈가 시간-이미지의 비유기적 체제 또는 결정체적 체제라고 일컫는 것은 전후 재건이라는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출현한다. 그러나 모던 영화(=모더니즘 영화?)가 시간의 직접적 현시라고 할 때, 시간-이미지의 출현이 반드시 운동-이미지의 진화에 따른 결과인 것은 아니다. 들뢰즈에게 있어 영화사는 더 완전한 시간의 재현을 향한 진보의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미지의 출현이 시사하는 것은, 사람들이 시간과 사유의 관계를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새로운 기호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는 시간에 대한 각기 다른 사유방식과 연관되며,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통시적임과 동시에 공시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호는 확률물리학의 도입에 따라 시간 이미지에 발생한 변화와 생명과학의 발전을 통해 사유의 이미지에 발생한 변화의 결과다." 에이젠슈테인이 유기적 운동-이미지를 대표했다면, 알랭 레네는 결정체적 시간-이미지를 대표한다. 러시아 영화사에서라면, 에이젠슈테인과 타르코프스키가 각각을 대표하겠다. 상식적인 대립쌍을 가져오자면, 두 사람의 대립은 '과학과 시'의 대립인데, 이걸 이미지 유형학에 적용하여 운동-이미지는 과학적이고 시간-이미지는 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설명은 시간-이미지의 대표적인 감독인 레네의 작품들과 또다른 탁월한 사례로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디아 송>(1975)에 대한 분석이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탈속적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intemporal voices'를 국역본 <시간-이미지>에서는 '비시간적 목소리'로 옮기며, 나로서도 그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상대적으로 규정되어 있고(=규정적이고) 예측가능한 관계를 형성하는 유기적 운동-이미지와는 달리, 이(런) 영화(들)의 시간-이미지는 개연적이다. "시간-이미지가 산출하는 간격의 자율성은 모든 쇼트를 자율적인 것으로 그려낸다... (이때) 모든 간격은 확률물리학이 말하는 분기점, 즉 어디로 선회할지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이 된다. 운동-이미지의 연대기적 시간은 불확실한 생성의 이미지로 파편화된다."(52쪽)

물론 이러한 시간-이미지가 '불확실성의 시대'와 관련돼 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다: "모던 영화에서 만들어진 시간의 이미지가 무질서와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문화적 감각에서 피어났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이미지는 다양한 것, 여러 가지의 것, 비동일자를 수용함으로써 시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충전시킨다." 더불어 현대물리학과의 관련성: "들뢰즈가 시간-이미지에서의 간격을 무리수적인 나눔이자 공약 불가능한 관계로 정의했을 때, 그는 프리고진의 '분기점'과 맞먹는 주사위를 이미지와 사유의 관계에 던진 셈이다."(53쪽) '분기점'이란 어디로 튈지 예측 불가능한 지점이다. 시간-이미지는 그러한 '비결정성'에서 비롯한다.

정리해보자. "들뢰즈에게 있어 시간의 영화는 두 가지를 생산한다. 하나는 총체화할 수 없는 과정인 사유의 이미지이며, 다른 하나는 예측 불가능한 변화인 역사에 대한 감각이다... 운동 이미지가 사유와 이미지의 관계를 동일성과 총체성의 형태로 파악하는 지점에서 시간-이미지는 이 관계를 비동일성의 형태로 상상한다. 시간-이미지에서 사유는 탈영토화된 유목적 생성이다."(55쪽) 마지막에 두 단어가 누락됐는데, "사유는 탈영토화된 유목적 생성이며 창조적인 행위이다."로 정정하면 된다. 들뢰즈는 이를 '희소식'이라고 부른다(이 '희소식(good news)'은 '복음'으로 옮겨지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에 이상이 "영화의 짧은 역사"에 대한 짧지 않은(!) 브리핑이었다.

05. 07. 27-8.

P.S. 들뢰즈는 한국의 영화비평가나 영화학도들에게 가장 애용되는(더러는 남용되는) 이름이다(요즘은 거기에 지젝이 도전장을 내민 형국이다). <문학판>(05년, 봄호)에 실린 "한국영화평론, 어디로 갈 것인가"란 정승훈의 글도 예외는 아니다(들뢰즈와 지젝으로 가야 한다?). 거기서 적용되고 있는 들뢰즈의 이미지론을 잠시 따라가 본다. 

"유기적인 전체 구조 속에 현실을 지속적으로 재현하는 '운동-이미지'는 모든 영화의 연대기와 서사를 이끄는 현행적 이미지다. 그것은 재인 가능한 하나의 시간 덩어리로 통합되는데, (임권택의) <하류인생>이 단숨에 주파하는 한국사회를 재현하는 균질적이고 비가역적인 시간이 그러하다. 그 안에서 오이디푸스화된 개인과 사회는 결핍된 욕망을 좇아 허덕이며, 그 바깥에서 아버지 임권택을 내셔널 시네마의 한 전범을 반복한다."

"반면 현실이나 진리를 재현하지 않는 '시간-이미지'는 운동-이미지의 밑바닥에 순서 없이 뒤섞이고 분열하는 시간, 곧 현실의 잠재태를 보여준다. (홍상수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순수한 첫사랑은 이미 더럽혀진 백지고 계속 덧씌워지는 흔적이며 결코 도래하지 않는 미래다... 그 안에서 오이디푸스는 끝내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그 바깥에서 아들 홍상수는 내셔널 시네마의 한 전범을 해체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당대를 상징하는 임권택/홍상수가 근대/탈근대의 맥락과 더불어 오이디푸스/탈오이디푸스, 운동-이미지/시간-이미지를 대략 암시할 수 있다면, 한국영화 전체의 내재적인 평면을 그러한 단절적인 계기를 통해 새롭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도식화에 따르는 유보: "물론 한국영화를 억지로 두 이미지 유형을 따라 서구식 고전영화/현대영화로 쪼갤 순 없고, 엄밀하게 시간-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도 없다. 이런 접근이 또 한 판의 서구이론 빌려쓰기에 그칠 우려도 크다. 하지만 지젝과 들뢰즈가 학술적 권위로만 포장된 채 저널 비평에선 무시되거나 미미한 지적 액세서리로 전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어지는 두 문장은 내가 따라가기 어려운 문장들이다: "그간 한국영화는 로컬리티의 산물이었고 세계화 추세도 지시적 맥락에서 논의됐지만, '한국'영화기 이전에 '영화'로서 그것은 비사유/비감각의 영역을 사유하고 감각케 하는 이미지의 힘을 품고 있다. 점점 확산되는 초국가성(transnational)은 지시성 층위뿐 아니라, 정신분석과 이미지 존재론을 가로지르는 '실재' 차원에서도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사유/감각으로는 쫓아갈 수 없으므로 건너뛰기로 한다.

"꼭 지젝이나 들뢰즈가 대안적 방법론이라는 게 아니라, 임권택과 홍상수 간의 간격 등을 통해 한국영화라는 동일성에 잠복한 영화 이미지 일반의 이질성을 고고학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영화와 한국영화 평론이 함께 진화하는 길도 여기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앞으론 '저널 비평'을 읽는 데도 상당한 지력('지적 액세서리')이 동원되어야 할 듯하다. 지젝이나 들뢰즈는 기본으로 읽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게 '기본'이라면, 비평가들은 곧 다른 걸 빌려올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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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를 먹더니 알라딘에 음반, dvd가 졸라 많아졌는데
개중에는 포노에서 품절이던 녀석들까지 버젓이 재고가 있다고 뜨는 듯하다.
시험삼아 god(garden of delights)에서 나온 agitation free 1집과 harmonium 실황 dvd를 주문했는데
전자는 왔고, 후자는 없단다.

해서 조만간 god에서 나온 음반을 몇 장 더 주문해볼까 하는데
가지고 있는 god mp3 중 알라딘에 재고가 있(다고 뜨)는 녀석들부터
열심히 들어봐야겠다.

일단 zomby woof라고 심포닉록 스타일 하는 애들 음반이 재고가 있다고 하니
조만간 주문 넣어봐야겠다.
(재고 없으면 미안하다고 적립금 2천원도 넣어주니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다)

추가:
바로 이 음반 ↓ god 음반이 대부분 싸이키델릭임을 고려하면 확실히 조금 땡기는 음반이다.

 

 

 


추가2:
의외로 한방에 도착했고, 거기다 놀랍게도 아직도 재고가 있다고 뜬다 -_-;
예상대로 부클렛 퀄리티나 음질은 흠잡을 데가 없다.

음악은 안타깝게도 몇 번 들으면 질리는 타입인데,
이건 아무리 잘 만든 심포닉록이라도 마찬가지인 부분이니 패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심포닉록이라면 Locanda Delle Fate 정도일까나...

참고로 이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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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시나 품절-_-^ 그리고...
    from BLAME ME! 2007-07-12 13:43 
      전에도 했던 얘기지만. 포노를 먹은 뒤 알라딘에는, 기존 포노에서는 재고가 없던 음반들마저 버젓이 재고가 있다고 뜨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본인이 수집...
 
 
 


지껄이는 글자 나부랭이 말고

리뷰를 좀 읽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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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창고(예쓰24에 먹힌...)에 썼다가 포노에 올렸던 글인데,
포노도 알라딘에 먹히더니 이미지가 깨지길래 수정한 후 겸사겸사 포스팅.
순위는 없고, 생각나는대로(되도록 유명한 순서대로) 한 밴드당 한 장씩만 꼽아봤다.
이 밴드들은 대부분 그 멤버들이 솔로로 음반을 내기도 했는데, 거기까지는 소개하지 않겠다.

*음반에 걸린 링크는 따로 설명없는 한 모두 알라딘.

Can / Tago Mago
ment : 말이 필요없는 크라우트록의 대부 Can의 최고 명반으로 꼽히는 3집이다. 다모 스즈끼(얼마 전 내한 공연도 했다)의 전설이 시작된 음반이기도 하다. 하나 더 꼽는다면, 취향이 갈리는 음반이긴 한데, 2집도 (나는) 좋다.

Faust / Faust / So Far
ment : 마지막(!) 공연 무대 위에서, 연주는 안하고 탁구만 쳤다는 일화로 유명한, 또하나의 전설밴드 Faust의 1/2집 합본. 가물가물하긴 한데(mp3로만 들어서-_-) 2집 부클렛의 삽화가 꽤 유명했던 것 같다. 음악은 1~4집까지는 아무거나 들어도 무방.

Guru Guru / Hinten
ment : AMG 평점은 다른 앨범보다 낮은 편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앨범. 최근 Garden of Delights 레이블이 미공개 라이브를 음반화하기도 했다. 산만하기로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밴드. AMG 픽은 데뷔앨범 [UFO][Guru Guru](메타복스).

Amon Duul II / Phallus Dei

ment : 무섭다. 아니, 두렵다. 사람들은 보통 [Yeti]를 추천하는데, 다 이유가 있는 거다. [Wolf City]도 괜찮다. 이거 두 장 듣고 나서 부족하다면 이 음반을 시도해볼 만하다.

Kraftwerk / Autobahn
ment : 인간성이 배제된 음악. 크라우트록 역사상 꽤나 중요한 음반. 이긴 한데, 끼고 살만한 음악은 아닌게 사실이다. 아직까지도 음반을 내고 있는 놀라운 그룹(물론 더이상 듣지는 않지만). 이 바닥 최고의 프로듀서로 꼽히는 Conrad Plank가 프로듀스 및 엔지니어링을 맡았다. 한 장 더 꼽자면 [Radio-Activity]도 좋다.

Ash Ra Tempel / Join Inn
ment : 나름대로 스페이스록을 하는, 소위 1집'만' 들을 만하다고 하는 밴드다-_- 4집 [Join Inn]은 거의 뉴에이지적이기도 한데 그게 오히려 괜찮다. 클라우스 슐체의 키보드가 은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Neu! / Neu!
ment : 위에 위에 [Autobahn]을 내기 전에 Kraftwerk에서 탈퇴한 두 명(아직까지 둘 다 솔로로 활동중)이 만든 밴드. Kraftwerk와 같은 노선상에 있는, 뒤셀도르프 지역의 일렉트로닉 댄스(-_-!!!) 계열 크라우트록. 근데 이상하게도 Kraftwerk보다 노이!가 좋다. 강박적인 노이 비트에 빠져보시길. 역시나 프로듀스 및 엔지니어링은 Conrad Plank.

Cluster / Zuckerzeit
ment :

노이!나 Kraftwerk와 비슷한 노선의 밴드로 일렉트로닉 엠비언트,의 효시라고나 할까. 브라이언 이노와 합작 앨범도 몇 장 냈다. 이 74년 앨범은 다른 앨범에 비해 덜 스페이스록적이며, 약간 더 팝적이라고 하지만, 들어본 결과 역시나 졸라 지루하다-_- 클러스터와 노이의 멤버들이 만든 Harmonia라는 프로젝트 그룹이 있는데(국내 쇼핑몰에는 없다) 얘네가 쫌더 팝적이고 들어줄 만하다.


Popol Vuh / Aguirre
ment :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아귀레, 신의 분노] 사운드트랙(포폴 뿌는 이외에도 [노스페라투], [피츠카랄도] 등 헤어조크 감독의 사운드트랙을 여럿 만들었다). 에스닉한 명상음악인 동시에 어찌어찌 cosmic한 정서가 흐른다. 95년 타계한 윤이상 씨의 장녀 윤정 씨가 보컬 및 색소폰으로 참여하고 있다. 보통 [Hosianna Mantra]를 이들의 최고작으로 꼽는다.


Tangerine Dream / Phaedra
ment : 음반(사운드트랙을 포함해서)을 겁나게 많이 낸 밴드지만, 대부분 거기서 거기-_- 뿅뿅거리는 사운드가 특기다. 멤버 중 에드가 프로제는 솔로 음반도 많이 냈고, 더 유명한 클라우스 슐체는 저 위에 Ash Ra Tempel을 만들기 위해 70년에 탠저린 드림을 탈퇴한다(그러고는 71년에 Ash Ra Tempel도 탈퇴해서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어쨌거나 AMG 픽에 별 5개.

Agitation Free / 2nd
ment :  베를린 출신의 밴드. 이 2집이 최고 명반이라고 하는데, 사놓고 아직도 못 듣고 있다-_- Garden of Delights에서 전 앨범이 재발매되었고, 그중 미발매였던 [At the cliffs of River Rhine] 같은 라이브 음반은, 상당히 좋다.

Gila /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ment : 위에 위에 포폴 뿌의 드러머와 2001년에 고인이 된 리더 Florian Fricke, 그리고 객원 여성보컬 한 명과 원년 멤버 Conny Veit로 4인조가 된 Gila의 2집으로, 1890년 자행된 인디언 학살에 대한 동명의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집(AMG)에 비해 에스닉/포크 느낌이 강해서 평가가 엇갈리기도 하는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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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포노에 올렸던 글입니다. *

익스플로러 다운으로 세번째 씁니다(망할 -_-).
처음엔 길게 썼는데, 이제 더이상 같은 말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네요-_-
어쨌든 터너,라는 낭만주의 화가가 있는데
그 사람 작품을 이번 스킨으로 썼다,라는 요지입니다.

 

 

 

터너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1775.4.23~1851.12.19]

 

런던 출생. 14세 때부터 로열 아카데미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에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그는 주로 수채화와 판화 제작으로 일생을 보냈는데, 20세 무렵에는 유화를 시작하여 풍경유채화를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하였다. R.윌슨을 비롯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국내 여행에서 익힌 각지의 풍경을 소재로 삼았다. 24세 때에 아카데미의 준회원이 되고, 3년 후 정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802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풍경화의 소재를 모아 500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한편, 이 무렵부터 N.푸생, C.롤랭의 고전주제적 풍경화에 끌려, 특히 구도를 잡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20년 전후부터는 그의 양식에 변화가 생겨, 자연주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1819년 T.로렌스의 권유에 따라 처음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색채에 밝기와 빛을 더하게 되었다.

 《전함 테메레르 The Fighting Téméraire》(1838), 《수장() Peace:Burial at Sea》(1843), 《비·증기·속력》(1844), 《디에프항》 《노럼성과 일출》 등의 대표작은 그의 낭만주의적 완성을 보여 준다. 존 러스킨의 절찬을 받았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주목받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중 망명해 온 그후의 인상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상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무단 복사. 누가 백과사전 아니랄까봐 영양가 없는 얘기만 잔뜩.

 

 

 

 

이번 스킨으로 쓴 작품은 바로 이거. 

Colour Beginning
1819; Watercolor, 22.5 x 28.6 cm; Tate Gallery, London

 



 

터너는 그 앞에서 인간이 끝없이 미약해질 수밖에 없는, 압도적인 자연을 그렸습니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이자 눈보라 시리즈의 하나로,
기존 관념을 깨는 대담한 구도와 색체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당대의 나폴레옹을 작품 속에서 한니발로 치환했다는 해설;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한니발은 자연에 굴하지 않고 결국 알프스를 넘었다는...)

Snow Storm - Hannibal and his Army Crossing the Alps
1812; Oil on canvas, 91 x 66cm; Tate Gallery, London

 



 

또한 터너는 사회적 이슈를 종종 소재로 다루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도 주를 이루는 것은 자연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1783년 노예선에 전염병이 발생하자 선장이 그들을 바다에 던져버린 사건,
에 대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비판적인 메시지보다는 자연의 막막함(?)이 더 다가오지 않습니까? 

Slavers throwing overboard the Dead and Dying - Typhon coming on ("The Slave Ship")
1840; Oil on canvas, 90.8 x 122.6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비슷한 맥락에서, 다음은
1841년 전쟁중에 터너의 친구이자 동료가 탄 배가 바다에서 침몰하는 일이 생기자,
거기에 대한 애도를 담은 작품입니다.

War - The Exile and the Rock Limpet과 대구(?)를 이루는 작품이라고 하구요-_-a
제목에서부터 우울함이 짙게 배어나오는, 쉽게 눈을 떼지 못하는 작품입니다.
또 처음으로 터너를 알게 한 작품이기도.
(물론 기억은 안 나지만 어렸을 때 미술 교과서에서 이미 알았을지도) 

Peace - Burial at Sea
1842; Oil on canvas, 86.9 x 86.6 cm; Clore Gallery for the Turner Collection, London


 


 

끝으로, 그의 작품관과 좀 동떨어진 그림인데 예뻐서 올립니다.
아마 터너 생전에도 이런 그림은 잘 팔렸을 거에요.
자세한 정보는 못 찾겠는데, 다작을 남긴 작가라서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까봐.

Mortlake Terrace
1827; oil on canvas, 92.1 x 122.2 cm; Andrew W. Mellon Collection

 


 

이상 이미지 출처는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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