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내가 듣는 강좌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2월 강좌를 신청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어제만 들으면 내가 1월에 신청한 강좌가 끝..종강..마지막..이었다. 대학로까지 갔지만 아아, 수업 들어가기 싫어, 마침 같이 듣는 친구를 혜화역에서 만났다. 친구의 팔짱을 끼고 강의실을 향해 걸었다. 속으로는 계속 듣기 싫다, 놀자고 할까, 술이나 마시자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또 마지막이니만큼 듣자! 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의 주제는 <섹슈얼리티:쾌락과 위험> 이었다.


크- 이 얼마나 재미있는 주제인가. 그러나 내 생각만큼 이 주제의 강좌가 막 재미있진 않았다. 사실 내가 기대한 건, 강좌 아닌 다른 무엇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모두가 자신만의 페티쉬를 고백한다든가, 어떤 변태행위를 연인이 했을 때 싫었다든가..하는 그런 경험의 교류..였던 것 같아.. 하하하하하. 그런 거 기대하고 강좌에 참석한 것 같아. 그렇지만 강좌에서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지. 나는 무얼 바랐던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성이 억압되어 있었고 그걸 해방하자고 부르짖고 행동으로 옮기는 등의 운동이 시작되면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부작용들이 생겨났다. 성이 단순히 성만으로 해방을 주장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종적인 것과 부딪치면서 '모두가 원하거나' 혹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겨버리기도 했던 것. 이런 역사를 얘기하면서 푸코의 [성의 역사]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푸코는 성이 억압됐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성이 오히려 생산됐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 중에 하나가, '동성애'와 '동성애자' 였다.


동성애는 말 그대로 동성을 사랑하는, 동성과 연애하는 '행위'다. 그러나 '동성애자'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이렇게 동성애'자'가 발화되는 순간, 이 사람과 다른 사람들은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 그렇게 '동성애자'로 자기가 규정되어져 버리면서 동시에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이 규정된다는 거다. 동성애'자'라는 말이 없었을 때에는, 그냥 동성애가 있고 또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간으로 함께 사는 사회였는데, 그것이 어떤 특별한 혹은 특이한 행위가 아니었는데 '동성애자'를 발화하는 순간 규정되어지고 또 구분되어진다는 것. 내가 설명을 잘한건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강사쌤의 이 설명을 들으면서 뭔가 진짜 크게 깨달음이 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쌤이 이걸 설명하시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냐'고 수강생들에게 물으셨고, 나는 진짜 완전 알겠고 깨달음이 뽝- 하고 와가지고, 


"네!"


하고 크게 대답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대답을 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용한 강의실에 나의 목소리만 크게 울렸고 ㅋㅋㅋㅋㅋㅋㅋㅋ다른 사람들도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사쌤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이 상황 웃겨서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강사쌤은 나를 보며 고맙다고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아는 것 같다며 고맙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근데 나는 진짜 저 부분에서 너무 깨달음이 온거다. 그러면서 페미니스트들이 너무나 부르짖는 '우리에겐 언어가 없다, 언어가 필요하다' 하는 걸 절실히 느꼈달까. 그러니까 언어가 없다는 것은 언어로 규정지어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닌가. 하나의 언어로 규정되어지고 그걸 설명하는 다른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 다른 식으로 나를 설명할 수 없게 되어버리잖아. 그러자 갑자기 언어라는 게 너무 궁금해지는 게 아닌가! 언어란 뭘까! 언어가 대체 뭐기에 발화되는 순간 집단으로 나뉘고 정체성이 규정되어지는 걸까. 언어란 뭐지? 아, 언어가 궁금하다, 언어를 알고싶어!! 나는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자 머릿속에 갑자기 '촘스키' 가 떠올랐다. 그간 촘스키에 대한 저서를 읽어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몇 해전에 내가 방통대를 반학기 다니는 동안, 그때 봤던 교재에서 '촘스키-언어학자'를 본 것 같은 기억이 나는거다!! 그래서 프린트물에 까먹지 않으려고


언어, 촘스키


라고 써두었다. 촘스키 읽어봐야지, 그렇게 언어학을 공부해봐야지. 그런데 촘스키가 언어 맞나? 하고 오늘 아침에 와서 검색해보았더니 맞더라. 그는 언어학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모르겠고, 그의 여러권의 저서 중에서 '언어'가 들어간 책들은 다 절판이더라.. 히융- 나는 촘스키 말고는 모르는데... 갑자기 또 앞길이 막혀버리네... 물론 집에 촘스키 책은 있다.


















위의 책들중에 1권을 가지고 있는데, 1권 다 읽고 2권 사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아직 1권을 펼쳐보지도 못했어? 다른 많은 책들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어쨌든 저것은 세상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지, 내가 궁금한 언어학에 대한 것이 아니렸다. 자, 여기서 나는 알라디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러분, 제가 언어학이란 것에 대해 알고싶어졌어요. 언어란 게 대체 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조금 공부를 해보고 싶어요. 혼자 책을 읽으면서 기초를 다져보고 싶습니다. 이런 제가 읽을만한 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여러분의 추천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분야에 대해서 진짜 아무것도 모르므로 지식이 전무하므로, 아주 쉬운, 기본적인, 기초적인 책으로 부탁드립니다. 네, 절판 아닌 책으로요....




요즘엔 공부란 게 무엇인가 계속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워런'의 《싸울 기회》를 나는 2016년의 책으로 꼽았었는데, 궁극적으로 공부는 이런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여러분, 이 책 아직 안읽었으면 어서 읽으세요. 어서 사요!) 내가 궁금하고 내가 알고 싶었고 그래서 내가 공부하지만, 그걸 단지 '나의 지식'을 풍부하게 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 엘리자베스 워런은 그렇게 했다. 자기 혼자 똑똑해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현상과 문제점에 의문을 품고 거기에 대해 공부하고, '님들아, 님들 그렇게 고생하는 거 님들 탓이 아니야, 이건 이런 문제가 있는 거야, 우리 이거 이렇게 함께 해결해보자' 라고 하는 거다. 와- 진짜 짱멋지지 않나? 나는 궁극적으로 나의 공부가 이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엘리자베스 워런처럼 저렇게 근사하게 살기엔 난 지독하게 변방의 사람이 아닌가. 그래도 한 명에게라도 혹은 두 명에게라도 나의 공부가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또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내가 더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한다. 지금만해도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가 큰 회사의 경영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회사내의 성교육 때문인데, 얼마전에 한 성인 남성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들으면서,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맛이지' 라는 말이 성희롱이라고 강사가 그랬는데, 그게 왜 성희롱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듣자마자 빡치는 발언인데!! 



이런 식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런 교육을 듣는다면 그건 '암기'다. 이해가 아니다. 우리 모두 학창시절을 겪어봐서 알겠지만, 암기는 응용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해를 해야 한다면, 단순히 성희롱예방교육을 할 게 아니라, 페미니즘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누누이 얘기하지만 사람들은 무식할 때 용감하고 더 크게 소리친다. 알면 그렇게 못한다. 알면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되고, 알면알수록 내가 이건 틀릴 수도 있으니까 더 조심하자 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큰 회사의 경영자가 되어서, 정기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을 받게 하는 거다. 페미니즘 강좌를 열어두고. 기초 페미니즘 이론 같은 것은 무조건 듣게 하는거지. 이건 외국어공부처럼 선택적이어서는 안되는 거니까. 이건 성평등에 대한 거니까, 성차별 금지에 대한 거니까, 무조건 듣게 하는 거다. 



주변 내 친구들도 그렇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덩달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무지했고 또 성차별에 참여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이고 시야가 넓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달라지고나면 결코 옛날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는 순간 저절로 성희롱은 '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성희롱 예방교육을 암기로 따로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위에 예시로 든 저 발언이 성희롱이란 걸 이제 '이해는 못하지만', '암기' 했으니, 저 교육을 들은 남자들은 저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적인 다른 발언들은 또 숱하게 하게 되겠지. 중요한 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알고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순간, 아, 이런 식의 발언은 안돼, 하고 암기 대신 이해가 찾아온다. 


아아, 내가 좀 더 큰 인물이 되어야 하는데!1

Orz



공부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이건 굉장히 원대한 포부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점점 더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공부로 내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면, 내가 한 공부를 사람들과 나눌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이렇게 글로 쓰기도 하지만, 수업을 듣고 집에 들어갈 때는 내가 그날 무얼 배웠는지,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망고남에게 조잘조잘 얘기하고, 다음날에는 회사 직원과 밥 먹으면서 얘기한다. 이런 걸 배웠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 하고. 공부해서 알게 되는 걸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도 내가 지향하는 바다. 우리는 결국 더 알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깨닫고 그리고 나눠야 하는 게 아닐까?




강좌가 끝나고 친구와 둘이 닭볶음탕을 먹으러 가서 각자의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건배하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서로를 다독여주었다. 회사 끝나고 공부하는 거 이거, 정말 쉽지 않은데, 그동안 8주동안 하느라 고생 많았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얘기했다. 나는 친구에게 '사실 오늘 공부하지 말고 놀자고 할까 많이 고민했어' 라고 말하니, 친구 역시 '나도 지하철역에서 널 만나니까 가지 말자고 말하고 싶었어' 라고 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우리 둘다 마지막 수업이니만큼 서로에게 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수업을 들었고, 그건 잘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우린 공부의 후기를 나눴다. 확실히 들으니까 좋았어, 피곤했지만 좋았어, 라고. 나는 친구에게 공부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너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어, 라고 하니까 친구도 자기도 그랬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그동안의 얘기도 하고 그러니까 참 좋았다고. 그래서 우리는 만약 토요일 강좌가 열린다면 또 듣자, 라고 얘기했다. 퇴근하고 와서 듣고 집에 가고 다음날 출근하는 거 너무 힘드니까, 토요일이라면 꼭 다시 듣자고. 토요일 오후라면 뭔가 더 여유롭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게시판에 토요일 강좌 개설해달라고 건의를 해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진짜 행동력 장난 아니야 짱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친구와 밥을 먹고 집에 가서 씻고 자려고 하니 밤 열두시였다. 진짜 겁나 피곤했어. 내가 아침 다섯시 반에 일어나 해 뜨기 전에 출근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늦은 밤에 내 방 침대에 들 수 있었다. 아 겁나 피곤해. 주경야독은 정말 엄청 피곤한 일이구나. 지난 주에도 그랬는데 이번 주도 마찬가지. 공부한 수요일을 보낸 다음날 아침이면 목소리가 착 가라앉는다. 피곤에 쩐 목소리. 아 더 자고 싶다... 수요일 밤에는 다음날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잠든다. 딥슬립.....




오늘은 술약속이 있고, 몹시 피곤했던 나는 아아, 취소하고 싶다...하고 생각했는데, 취소하고 집에 가서 자고 싶다, 생각했는데, 또 회사 와서 사무실 책상에 앉고 컴퓨터를 켜고 보쓰 방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니까 겁나 술먹고 싶어지네?????????????????????????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무언가를 했던 하루여서 밤에 피곤하긴 했지만, 잠들기 전에 '아 충족된 하루였다', '풍족한 하루였어' 라고 생각했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이동하고 공부하고 소주를 한 잔 했지만, 그 틈틈이 좋아하는 사람과 꽁냥꽁냥 즐거운 수다를 지치지도 않고 떨었다. 하루종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같은 게 들어서, 잠들기 전에 '아 좋은 하루였다, 풍족한 하루였어' 하고 미소지을 수 있었다. 물론 개피곤했어... 그 와중에 느끼는 풍족함! ♡




어쨌든 강좌를 듣는 공부는 이제 멈췄다. 그렇지만 언제고 다시 시작할거라고 생각한다. 좋은 시간들이었다. 여러분 주경야독 페이퍼는 이제 없어요..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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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7-02-0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쉬르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찾아보다가 구 인문엠디님이 쓰신 페이퍼 발견
http://blog.aladin.co.kr/pop/3088090

다락방 2017-02-09 13:53   좋아요 0 | URL
어머! 심지어 ‘언어와 진화‘에 관해 책 추천해놓은 페이퍼네요. 완전 짱이다... 이런 맞춤한 추천이라뇨. 감사해요 ㅠㅠ

2017-02-1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4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이달 2022-03-19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