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02Wed

이별이 오면


                                                  문태준



이별이 오면 누구든 나에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후련하게 들려주었으면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바지락과 바지락을 맞비벼 치대듯이 우악스럽게
바지락 씻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면
그러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고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겠지
가장 아픈 데가 깔깔하고 깔깔한 그 바지락 씻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겠지
오늘은 누가 나에게 이별이 되고 나는 또 개흙눈이 되어서




















여름의 끝

                                 박연준



오래된 시간 앞에서 새로 돋아난 시간이 움츠린다

머리에 조그만 뿔이 두 개 돋아나고

자꾸 만지작거린다

결국 도깨비가 되었구나, 내 사랑



신발이 없어지고 발바닥이 조금 단단해졌다

일렁이는 거울을 삼킬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수천 조각으로 너울거리는 거울 속에

엉덩이를 비추어 보는 일은

이젠 그만하고 싶다



두 손으로 만든 손우물 위에

흐르는 당신을 올려놓는 일

쏟아져도, 쏟아져도 자꾸 올려놓는 일



배 뒤집혀 죽어 있는 풀벌레들,

촘촘히 늘어선 참한 죽음이

여름의 끝이었다고

징- 징- 징-

파닥이는 종소리





















이별

                                     -박연준


천 날의 밤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밤이었다
그가 내게 이유를 물었다
구두굽으로 그저 모래를 콕콕 찍었다
모기 한 마리가 내 슬픔을 염탐하듯
발목에 슬쩍 달라붙었다
갑자기 머리 위로 비가 쏟아졌다
키 작은 나무들이 금세 흠뻑 젖었다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내 이름을 부르는 다급한 소리가 발밑으로 툭,
떨어졌다
흐느적흐느적 빗속을 걸었다
나무들이 일렁이며 저희들끼리 수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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