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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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연수’의 이야기를 이제야 처음으로 만났다. 이미 익히 들어 낯익은 이름, 아니 인이 박힌 이름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조금은 나와 맞지 않을 것 같아 망설였다. 왠지 그의 이야기가 나에게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 그런데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신간 소식을 꾸준히 전해 듣고서도 외면했지만 <원더보이>만큼은 손에 쥐고야 말았다.

암호처럼 뭔지 모를 이야기를 숨긴 듯, 또는 그 자체가 이야기인 것 같은 차례도 호기심을 자극하고,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나는 시간이 멈출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의 첫 구절을 읽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깜짝깜짝 놀라며, 자꾸만 호기심에 온몸이 들썩거렸다. ‘뭐지?’ 궁금증은 샘솟고 뒷이야기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미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압도당했다.

 

‘책을 읽을 때 바보는 자기가 아는 것만을 읽고, 모범생은 자기가 모르는 것까지 읽는다. 그리고 천재는....... 저자가 쓰지 않은 글까지 읽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말하지 않은 것들을 듣는다.’(233)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바보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것만 겨우 읽을 수 있었고 그에 대해서만 말해야겠다.

 

일단, 내게는 열다섯에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된 한 소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빠와 함께 타고 가던 차 안과 기적적으로 살아나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되었다는 원더보이, ‘정훈’의 이야기가 그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내겐 고아가 된 한 소년이 느끼는 절망과 좌절 그리고 그 2여 년의 시간 동안의 성장에 마음이 쏠렸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휩쓸리는 않고, 그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한 소년의 성장을 지켜본다고 할까? 솔직히 나라면 무척 두려움에 떨며, 마냥 권 대령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았을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는 용기’는커녕. 그러나 우리의 정훈은 그렇지 않았다.

 

자꾸만 소중한 그 누군가의 죽음과 그로 인한 상실감과 헛헛한 마음들에 마음이 쓰였다 ‘그런 사소한 일들까지도 이렇게 아쉬움이 남을 줄 알았다면 말이다’(231)에 뭉클하게, 가슴이 저몄고,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가정의 달 5월, 나는 나의 뿌리인,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나와 세상과의 줄, 그 탯줄인 부모님의 존재가 가슴 깊이 와 닿았다. 그저 나는 그렇게 고아가 된 한 소년의 삶이 안타깝고, 애틋하고 절절했고, 그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그가 ‘그러므로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걸 뜻한다.‘(399)는 말하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홀로서기를 한 듯, 의젓해진 정훈에게서 희망을 엿볼 수 있어 절로 흐뭇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내가 읽고 볼 수 있었던 이야기는 바로 갈 곳 없는 정훈이 찾아가는 곳인 ‘베드로의 집’과 주변의 철거 장면이다. ‘여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와서 명동 거리로 나왔는데,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았어요. 행복은 이토록 훤히 드러나는데, 고통은 꼭꼭 감춰져 있어요. 때리고 부수고, 가두고 불태우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어둠 속에 밀어넣고 감추기만 하면 되니까. 지금 우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캄캄한 밤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없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그들의 고통도 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신부님, 과연 이 고통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을까요?’(286) 갈 곳 없는 많은 이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니 정훈이 처한 현실이기에 더욱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숱한 강제 철거의 기억이, 그리고 그 고통이 오롯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마치 나의 고통처럼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러고 보면. 정훈은 진정 ‘원더보이’였다. 강토 형(희선씨)이 보았던 정훈의 그 초능력이 능히도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것보다 고통을 전하는 능력!

 

초반 한 소년의 이야기에 분명 크게 들떠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예상 밖의 상황들, 1980년대의 여러 상황들이 이야기 속에 섞이며, 주인공의 삶을 맴돈다. 그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상황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상 밖으로 홀로 덩그러니 ‘툭’하고 내던져진 정훈을 어떻게든 이용하고 착취-분명 권대령은 그러했다-하려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들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내가 읽을 수 있는 것,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정훈’의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작가의 의중을 헤아리려, 나름 씨름하고, 골머리를 썩였다. 작가의 숨은 뜻을 읽어 낼 수가 없었기에, 오히려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재진 아저씨의 말에 정곡을 찔렸다. 미처 읽지 못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정훈의 이야기 속에 숨겨둔 이야기, 그 의중이 궁금했다. 분명 고아가 된 한 소년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닌 듯했다. 정훈의 이야기 속 또 다른 이야기, 내가 아직 읽지 못하고 있지만, 반드시 읽어내야만 하는 어떤 이야기가 숙제처럼 내 의식 속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정훈의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현대사의 일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많이 읽어내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만을 읽고 보았다. 바로 ‘정훈!’

 

그리고 역시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너무 깊었고, 가볍게 읽고 시시덕거리기엔 숨겨 둔 이야기가 너무 많다고 것! 하지만 또한, ‘김연수’의 이야기를 또 읽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자기가 몰랐던 부분만을 반복해서 읽는 거야.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234) 모범생의 책 읽는 방법,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내가 입버릇처럼 늘 하는 말이기에, 그 숙제를 다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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