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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야수의 얼굴을 한 천사? 천사의 탈을 쓴 야수?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그의 진실한 모습일지 모른다. 진실은 때로 수많은 얼굴을 가졌으니까. 우리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딸, 이익에 따라 악인이기도 하고 천사이기도 하며, 교활한 사기꾼이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는 자이기도 하며, 간악한 밀고자이기도 하고 밀고의 희생자이기도 하지 않던가? 그 모든 얼굴이 거부하지 못할 우리들 자신의 진실인 것이다. (180)

 

1권을 읽으면서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어갔다. ‘히라누마 도주, 윤동주’의 등장과 형무소 내의 일련의 어떤 변화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하지만 그저 호기심만으로 글을 읽기에는 전쟁이 드리워진 시대의 암흑과 그와 더불어 식민지, 그 시대 조선인의 고통이 처절하고 암담할수록 오히려 외면하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했다. 진실을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외면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왔다. 나치의 생체실험, 학살 등은 뇌리에 박혀있는데 일제에 의한 마루타, 학살 등은 기억 저편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었다. 윤동주의 이야기를 읽게 되면서, 후쿠오카 형무소를 기억했지만, 그곳에서 자행된 끔찍한 진실들을 결코 염두해 두지 않았다. 그저 살인자를 추적해가는 과정, 죄수들의 대규모 탈출 기도와 지하에 감춰진 어떤 사건에 대한 호기심만을 키웠다. 하지만 후쿠오카 형무소 내의 실제 했던 어떤 사실, 진실에 이제야 비로소 눈을 떴다. 이제야 ‘진실은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것’이란 명백한 진리가 폐부를 찌르듯 강렬하게 다가왔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신의 죄를 실토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욱 뇌리 깊숙이 박혀 버린 진실, 그 뼈아프고 몸서리쳐지는 진실이 고개를 들었다.

 

<별을 스치는 바람 2>는 살인사건의 진실이 드러났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진실들에 깜짝 놀라며 내친걸음을 내달렸다. 악마 같은 간수 ‘스기야마’의 이면의 진실이 드러날수록 참혹한 시대의 더욱 투명해지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억압이 여전히 우리 삶의 이면을 지배하고 있다는 울분 이외에도 전쟁의 무자비한 참상이 피부로 느껴졌다. 살인사건을 파헤쳐가는 어린 간수병 ‘유이치’가 악마처럼 변모해 전쟁의 피폐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게 될까봐 조바심이 났었는데, 나의 우려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의 숱한 갈등과 고백으로 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시선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내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애환을 느끼게 되었다.

 

“....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삶을 망쳐 버려선 안 돼.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살아남아야 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고, 더러운 시대에 침을 뱉을 수 있어. 명심해라. 살아남는 게 승리하는 거야. 시체는 결코 만세를 부를 수도 침을 뱉을 수도 없어.“(168)

 

가장 아름다운 건 살아 있는 거야. 더럽고, 참혹하고, 지옥 같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거지. 천사처럼 순수하고, 영웅처럼 용감하게 죽기보다는 악마처럼 악하고 야수처럼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해. 악마처럼 간악하게 살아남아야 천사처럼 착하게 죽을 수 있으니까. 살아남아야 더러운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악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위안받는 것을 볼 수 있으니까. (180~181)

 

함부로 눈시울조차 붉힐 수가 없었다. 누구처럼 나 역시 울 자격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이치는 살아남아, 시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소설로 재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윤동주를,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혀졌다.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분명하게 울리는 하나의 외침이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죄’ 역시 분명한 유죄라는 것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란다. 문제는 To be, 즉 ‘가만히 있느냐?’ Not to be, ‘가만히 있지 않는냐’란다. 행동하느냐 행동하지 않느냐? 내게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가슴이 그간의 열기보다 더욱 뜨거워졌다. 자유를 향한 열정, 그리고 삶의 대한 뜨거운 의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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