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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엽서는 죄수들까지 변화시켰다. 욕지거리가 튀던 그들의 입에 웃음이 번졌다. 한 구절의 문장에 내일을 생각지 않던 자들이 살아서 나갈 날을 꼽았고, 싸움질을 일삼던 자들이 고분고분해졌다. ....... 그것이 글이 지닌 힘일지도 모른다고. 모든 변화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한 자의 단어가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다.“ (213)

 

 

보통은 ‘책소개’를 별로 읽지 않는 편이다. ‘작가’나 ‘책 제목’을 우선시하면서 시각적인 이미지에 의존해 읽고 싶은 책을 선별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러했다. “이정명”이란 작가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정명! 항상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작가 아닌가! 두말 하면 잔소리일까? 여하튼 그의 이야기, 허를 찌르는 반전 속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떤 이야기일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먼저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한 발 앞서 달려간다. 그렇게 <별을 스치는 바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스치듯 “윤동주 시인의 생애 마지막 1년”에 두 눈에 빛나는 별처럼 총총히 박혀 버렸다.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책에 대한 소개, 화들짝 놀라며 더욱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조바심이 났다고 할까?

 

그런데 처음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예상 밖의 전개에 주인공 ‘윤동주’는 온데간데없었다. 낯선 상황들과 낯선 인물들에 거부감이 일었다. 폐전 후, 후쿠오카 형무소의 한 어린 간수병은 죄수가 되어 투옥되었다. 그리고 그의 회고로 시간을 거꾸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가 떠올리는 한 사건 속 무자비한 형무소가 그려진다. 악마라 불리는 무자비하고 냉혈한 간수 ‘스기야마’의 의문의 죽음, 형무소 내 그의 죽음은 여러 의혹들을 남긴다. 형무소라는 밀폐된 공간 속 죄수가 아닌 간수의 죽음, 감방에 갇힌 죄수에 의한 살해? 많은 의혹과 궁금증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은 바로 얼마되지 않은, 어리숙한 어린 학병 출신의 간수병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죽은 ‘스기야마’보다도 더 잔혹하게 조선인들을 학대하면서 진실을 다그칠 것 같은 조바심이 일었다. 문학을 사랑했던 한 순수한 소년이 무자비하게 변모할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그렇게 조금은 거북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갔다.

 

그런데 죽은 ‘스기야마’를 둘러싼 엇갈린 진술과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 유일한 사람, 645번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궤도에 들어섰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에 흠뻑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휘황찬란한 별들의 대우주를 항해하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종일 주먹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도살자 ‘스기야마’가 시인이었다니? 그 변화의 원동력을 바로 죄수 '히라누마 도주'에게 찾을 수 있었다. 그 변화의 과정, 팽팽한 신경전은 그 어떤 이야기보다 긴장감이 넘처 흘르며 그 어떤 이야기보다 매력적이었다. 글을 통해 아귀 지옥의 형무소에 평화와 희망이 움트는 듯, 어떤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처럼 연을 날리는 동주의 모습, 그 연을 바라보는 죄수들의 모습이 한 장면처럼 겹쳐졌다.

 

아직 파헤쳐질 이야기가 한 다발이다. 형무소를 둘러싼 충격적인 음모의 실체에 아직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였다. 충격적 비밀은 과연 무엇일지 마저 확인하진 못한 이야기는 내친걸음으로 내달릴 것이다.

<별을 스치는 바람>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임에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게 짓눌리는 기분이다. 위대한 문학의 힘을 몸소 체험한 듯하지만, 그만큼 시대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아름다운 시어들 속에 녹아 있는 고통 그리고 그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다사로운 손길의 따스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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