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ㅣ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책을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하지만, 그 길은 책 속으로 난 길이 아니라, 책의 가장자리와 현실의 가장자리 사이에서 난 길이다."

(11)

 
 

‘장정일’이란 이름 석 자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솔직히 ‘소설가’ 장정일보다는 <독서일기 >의 저자로 더욱 익숙하다. 물론 나는 그의 책들은 지금껏 만나‘보’지 않았다. 아니, 만날 수 없었다. 일련의 다른 책들을 통해 만난 ‘장정일’이란 사람의 매서움이 선뜩할 정도로 두려웠다고 해야 할까? 왠지 상처마저 할퀼 것 같은 날카로움이 연상되어, 실체 없는 공포에 떨며 주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번 여덟 번째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일단 책제목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신선하면서 충격적이었다. 특히 ‘버린 책’이란 세 글자를 지나칠 수 없었다. 어찌 책을 버린다는 말인가! 뭔가 석연치 않은 의혹의 눈빛으로 책을 펼쳤다. 기존의 독서일기와는 차별화된 전략이 또한 책 속에 숨어있는 듯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은 ‘독자를 홀리기’에 충분한 작명임엔 분명하다.

일단 저자의 독서 습관을 흥미로웠다. 단골 헌책방에서도 수시로 책을 산 읽으면서도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서 나름의 검증을 거친 후에 다시 사서 읽은 책들도 읽고, 때로는 공공장소에 살짝 둠으로써 버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한다. 무수히 쏟아지는 책 속에서 ‘자기 검증’을 통해 책을 곁에 둔다는 것이 최근 도서관을 자주 찾는 나의 이유와 동일선상에 있는 듯해, 책을 사서 재독하는 즐거움이 배가 된 듯하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해야만 했다. 책을 목차를 확인하면서 여전히 접하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하였다. 과연 읽지도 않은 책에 관한 책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왜?’란 의문이 수없이 반복되었다. 또한 일단 책에 대한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이 내겐 버거운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읽은 책들의 목록이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그의 깊은 사고와 통찰을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글자를 읽을 뿐 머리로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차분히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기? 아니다! 처음엔 혜안을 지닌 명석한 작가에 대한 존경과 감탄에서 기인했다면, 조금씩 책 속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해답을 찾았다. 바로 저자가 문고의 진정한 역할을 역설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바로 책 속의 다른 책이야기를 통해 ‘방금 읽은 주제에 대해 더 알아보도록 발심(發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작가, 책들에 대한 호기심에 더해지고, 이미 읽었던 책에 대해선 그의 사견에 귀 기울이다보니,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책장에 꽂아 둔 채 방치한 책들의 처절한 아우성이 크게 들려왔다.

과연 내게 있어 ‘책’이란 무엇인가? 나는 책을 왜 읽을까? 솔직히 내 지식의 깊이는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얇은 것이 나의 현실이다. 또한 비판 의식의 부재로 삶의 무척 옹졸하고 편협하다. 그렇기에 이런 문제의 돌파구를 책에서 구하고 있었다. 책을 좀 더 가치 있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시간 때우기 식의 책이 아닌 삶의 깊이를 더하는 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속이 한 순간에 ‘뻥’하고 뚫리는 통쾌함을 만끽하였다. 특히 ‘셔먼 영’의 <책은 죽었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책의 가치를 확인하였다. 책을 ‘기능적인 책’과 ‘안티 책(anti book = 나쁜 책)’ 그리고 ‘책’ 세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리고 진정한 책의 의미를 ‘책 문화’에 속한 책에서 찾는다. ‘숙성된 사고’와 동의어인 ‘책 문화’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사상을 접하게 하고 깊이 있는 통찰을 하게 만’들며 ‘그리하여 자기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고 공적인 대화와 담론을 가능하게 이끈다’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책을 덮은 순간, 나는 책에 대한 의혹들이 확신으로 변하였다. 
  

이제 슬슬 두 번째 이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2>를 만나봐야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