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의 나라
유홍종 지음 / 문예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새롭게 부각되면서 또다른 역사이야기에 관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또한 kbs의 역사스페셜을 통해 백제의 마지막 공주, '부여태비(의자왕의 증손녀)'의 존재를 알게되면서 역사 속 비밀이 문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망국의 뒷이야기, 승자의 기록에 의해 철저하게 은폐된 역사의 한 귀퉁이에 절로 호기심이 일고있었다. 그런데 또다른 망국의 역사를 접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아사의 나라>이다. 잃어버린 제국 가야의 마지막 왕녀 아사! 그녀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그 속에서 비운의 한 여인의 삶에 비친 피비린내 진동하는 역사 속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실제, 우리역사 속, '가야'의 비중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철저히 소외된 역사가 바로 가야의 역사가 아닐까? 교과서 속 그들의 역사가 차지하는 부분은 과연 몇 쪽이나 될까? '가야'란 이름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듯하다. 분명 가야의 많은 것이 여전히 베일에 싸인채 많은 비밀을 품고 있을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중심 배경이 되는 지금의 경남 합천 '대야주'는 패망한 옛 '다라국'이라 한다. 그런데 다라국 생소하다. 다른 금관가야, 대가야, 고령가야 등등의 낯익은 이름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이미 신라에 모든 정권을 내준 뒤, 허수아비 왕과 왕비만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가야의 독립을 꿈꾸는 비밀결사대의 항전 같은 이야기가 유독 가슴에 남았다. 이미 결과를 알기에 그들의 무모한 듯 보이는 처절함이 기존 삼국간 전쟁을 다룬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오늘의 모습이 자꾸만 비춰졌다. 역사의 한 부분이 아니라 생생한 오늘, 지구 저편 어딘가에서 펼쳐지고 있는 살생의 현장이 온전히 느껴진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데 진정으로 피가 피를 부르는 무모한 전쟁, 그 전쟁의 비극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아사의 나라>는 '아사'와 아사의 딸 '사비'의 이야기 두 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아사와 신라 장군 설오유의 사랑과 그의 결실 '사비'의 삶 속 660년의 과거로 되돌아가는 듯하였다. 특히 백제와 신라간의 음모와 첩보전(?)과 사비성내 권력 암투 속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들이 끊임없이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아사의 사랑이 더욱 처연하게 빛나고, 그녀의 가련한 삶이 애틋하게 다가왔다.

가야의 널무덤에서 출토된 흙피리(토적)에 새겨진 '그대 천 길 지옥 불을 불러들였네'라는 8언 한시를 토대로 펼쳐지는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다보니, 허구 속 역사의 진실들이 교모하게 숨어있어, 아사가 전해주는 역사 이야기가 더욱 흥미진진하였다. 그러면서 숨가프게 전개되는 삼국간 치열했던 역사가 순간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또한 의자왕의 후궁이 된 아사의 이야기, 패망으로 치닫는 백제의 역사가 크게 다가오면서 아사의 가슴 시린 사랑 아니, 그보다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에 휩쓸린 한 개인의 삶이 가슴 저미도록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게 된다. 큰물살에 몸을 맡기면서도 스스로의 자존을 지키며 자신의 삶, 운명을 개척하며 나아갈 수 있는 지혜, 용기를 아사와 사비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한 여인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맛깔스런 양념으로 버물어져 색다른 재미를 즐길 수 있는 역사소설 <아사의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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