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목소리 - 어느 나무의 회상록
카롤 잘베르그 지음, 하정희 옮김 / 파란시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표지를 보면서 한 눈에 빠져버린 책이다. 나무의 회상록, 나무가 들려주는 '초록 목소리'는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생기며, 한 그루(?)의 압도적인 나무의 늠름한 모습에 반해버렸다.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를 보면, 나무가 무엇인가를 속삭일 것 같은 환상에 젖고 했다. 사춘기 시절엔 더욱 그랬다. 사춘기 시절의 그런 환상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으리라는 기대감에 책을 읽었다. 그런데 초록 목소리는 가냘프고 힘겹게 느껴진다. 초록의 생생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아닌 아귀다툼 속 인간의 처철한 고통, 비합리,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때론 먹먹하게 가슴을 후비는 초록 목소리는 처음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공포에 떨며, 겨울 내내 여기 남아 기다려야 하는 나......" 어느 노랫말로 이야기의 포문을 열고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말의 의미가 절로 느껴졌다. 오도가도 못하는 나무가 지니고 있을 한계(不動性), 그 한계의 극치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원하지 않아도 들어야 했고, 보아야 했다. 그냥 한 귀로 듣고 지긋이 눈 감고 외면하면 될 것을 또한 그러지 못하고 이렇게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앞서 말했듯 초록의 싱그럽고 밝은 이야기는 없다. 인간사의 질곡진 아픔, 모순을 더이상 혼자 마음에 담아두기에 힘에 부쳤을까? 8가지의 실타래를 풀어놓는데, 하나같이 슬프고 잔인하고 때론 극단적인 느낌마저 든다.

 

자연과 하나되어 욕심없이 살던 한 농부의 암울한 죽음은 지금의 탐욕으로 가득찬 우리의 또다른 모습같아 힘겨웠다. 그리고 그 끝은 너무도 참담했다. 때론 사랑에 목숨을 내놓기도 하였고, 혹시나, 달콤한 연인의 사랑이야기일까? 했더니, 서로를 물어뜯고 상처를 내는 사랑이야기였다. 전쟁의 황폐함 그 이상의 메마름과 절실함 그리고 죽음의 현장에서 바이올린을 켰던 한 음악가의 쓰라린 무력감, 절망 등등....

 

"....... 사람들에게 권력을 쥐어주면 그들은 매번 그것을 이용해 고통과 죽음을 퍼뜨립니다. 변명, 웅대한 계획 내지는 옹졸한 분노 같은 것들은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문제는 그 때문에 희생자들을 만든다는 것이죠. 인간 속에 있는 악마가 배를 불리는 겁니다. 그런데 아시겠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식용은 더 왕성해지는 법이지요. 양념도 더 강해질 수밖에 없고요. 고통은 식인귀들의 매운 향신료고, 전 그놈들 잔치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 죽은 이들의 목소리인가? 中 121쪽 
 


 

이러한 비극과 극단적 고통등으로 끝나버렸다면 나는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막장드라마'처럼 '막장소설책'이라며~  메마르고 피폐해진 나의 마음을 초록 목소리가 살며시 속삭여준다.

 

"....... 비록 쓰러지고, 비록 빈자리가 나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해도, 내가 여전히 나무인 것처럼. ....... 비록 당장의 배부름과 잠자리, 그리고 다가올 새벽을 무사히 넘기는 것에 급급해야 할 정도로 무력해졌을지언정, 인간들은 영원히 일어서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는 그런 피조물로 남으리라."

 - 이것이 인간의 종말일까 中 148쪽

 

 

내 마음 속 흩트러진 혼란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 한 가득인 채로 책장을 덮는다. 그렇게 초록 목소리가 들려주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암담할 정도로 뿌리 깊이 자리한 인간의 한계가 아닐지? 그럼에도 나무는 말한지 않는가? 다시 일어나고 또다시 넘어지고.... 또다시 또! 또! 또! 일어서리라~

 

 

참고로, 얼마전에 읽었던 '천년수'라는 소설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남달랐다. '초록 목소리'는 '어느 나무의 회상록'이란 부제처럼 나무 자신이 직접 이야기를 토해놓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하겠다. 또한 천년이 아닌 2000년이란 시간의 무게감이 더해져, 영화 '메트리스'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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