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2010년 12월에는 관심을 가질만한 책이 많이 나온 것 같다. 12월에 출판된 인문/사회/자연과학 서적 중 관심있는 책을 전부 골라보니 총 25권이었다. 이 중에 5권을 고르라니…. 1/5 확률이니 5지선다 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읽을 만한 책을 고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직접 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볼 여유가 없어 인터넷 상의 소개만 보고 골라야 한다는 점인데 되도록 꼼꼼히 글쓴이+옮긴이+출판사 등의 책 정보를 살피고 고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되도록 다른 신간 평가단 분들이 선정한 책과 겹치지 않도록 노력했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오늘날 사학 재단 문제는 하루 이틀 계속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교육 기관인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여기고 전횡을 일쌈는 일이 비일 비재하고 특히 대학 민주화를 가로막는 사학 재단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일임에도 이슈화 되지 않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2MB 정부 들어 교과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상지대에서 비리 재단의 복귀를 허용하고 조선대, 세종대, 덕성여대, 대구대, 동덕여대, 광운대 등 수많은 비리 재단의 복귀를 허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덕성여대 교수 재직시 대학 민주화에 참여했다가 부당 해직당한 글쓴이의 5년간의 복직 투쟁기이다. 이 책을 통해 사학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기를 소망한다.

  

  

  사실 나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잘 모른다. 과거 몇 번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찾아 보았으나 국내에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책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만큼 한 번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특히 사람이 이미 살고 있던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유럽인들의 문명 파괴사 및 학살사에 대해 한 번은 알고 지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되도록 [신대륙 발견]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의식적으로 그런 단어를 사용하지만 [신대륙 발견]이라 함은 유럽인 기준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즉, 원주민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륙을 발견했다는 뜻이므로 오늘날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이 책도 앞서 소개한 책과 맥락을 같이 하는 책이다. 이른바 [신대륙 발견] 이후 그대로 ‘절멸’에 이르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난 500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사실 책 내용이 한쪽에 편향된 듯한 느낌도 받지만 서로 다른 편의 주장을 곰곰히 살피다보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듯 지금까지 [미국인] 입장에서의 인디언 역사만 소개된 것을 감안하면 한 번은 철저하게 토착민 입장에서의 인디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타 좀 애매한 책들

 

   

이 책의 출판사인 [나남출판]은 좋은 인문서적을 많이 내는 출판사이고 이미 평화적 방법으로 통일을 성취한 독일의 예를 면밀하게 검토해 벤치마크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중요한 일이므로 한번쯤 읽어 보고 싶은 책이긴 하였으나 옮긴이가 16~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누군가가 나의 사상과 다른 사람이 옮긴 책이라고 무조건 안 읽는다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최고위원, 사무총장을 역임한 3선 의원이 [번역] 작업을 하고 있겠는가? 보나마나 제 3자가 번역하고 이름만 올린 것으로 보여 단호히 선호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 

 

   

 

이 책을 애매한 책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미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틴어 고전 번역에 있어 첫 손가락에 꼽히는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이 있는데 과연 이 책이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을 뛰어 넘을 수 있을까? 펭귄클래식 100권 출판 기념으로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데 내가 직접 두 권의 책을 비교해보지 못해서 뭐라 평가하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만약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을 뛰어 넘는 번역이라면 추천 리스트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책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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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13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과학 도서 중에는 읽어볼만한 신간이 생각보다 많이 없던거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펭귄클래식에 나온 <시학> 같은 경우에는
이전에 국내에서 소개된 <시학>의 번역에 대한 관점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네요.
천 교수의 번역을 뛰어넘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감수하신 분이
정암학당 연구원이라서 천 교수의 번역본과 같이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거 같습니다. 댓글에 길게 설명하기에는 그렇고,
저도 <시학>에 대해서 부족한 편이라서,,
괜찮으시다면 제 서재에 <시학> 강연 후기를 올렸는데 참고하시면 좋을거 같아요.

암향부동 2011-01-14 11:18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몇몇 분들 소개글을 보니 주석 양이 꽤나 된다고 하던데 펭귄클래식에서 노력을 많이 한 것 같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 강연 후기는 읽어 보고 댓글 남겨 놓겠습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 전라도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2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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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읽은 책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중 <전라도 편>이다. 전라도 곳곳을 직접 다니면서 이중환의 택리지를 다시 쓴 책인데 리뷰를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다가 관심있는 지역에 대해서 발췌해서 쓰는 형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언제나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지도]를 첨부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같은 서울 촌놈은 구례, 고부, 정읍과 같은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가 어려워 책을 읽으면서 마치 다른 나라 지역 소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완산(전주) : 후백제의 견훤 - p.54~61

 

 오늘날 후백제에 대해 남은 사료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뿐일 것이다. 그러나 김부식의 경우 신라→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한 나머지 고구려와 후백제에 대해서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후백제의 견훤은 삼국사기 50권 끝에 보면 매우 사악하고 잔인한 악당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것을 감안하면 사료에 남아 있는 견훤에 대한 평가는 잘 걸러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글쓴이 신정일은 '대다수의 학자들은 자료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한 늘어놓고 있으며 물왕말 일대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라 곳곳에서 소설 속 인물들까지도 부활되고 있으며 지역마다 잊힌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 혈안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라고 비판하고 있다.(p.61)

 

 

 

전주 : 정여립은 모반자인가 그 시대의 스승인가? - p.63~74

 

정여립 모반사건, 혹은 기축옥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에 일어난 것으로 천여 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정여립에 대해서는 기존 사서에서 모반자로 혹세무민하는 사람으로 부정적으로 그려지다가 단재 신채호에 의해 점점 새롭게 해석되고 있는 인물이다. 정여립은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대동계를 조직하고 학문과 예법 뿐만 아니라 육예(六藝) -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모두 가르쳐 주는 등 기존 성리학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 준 사람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남에서 학문하는 사람 중에 정여립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모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자살하고 말았다.

 

 문제는 이 사건이 임진왜란 3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이다. 많은 이들은 임진왜란 때 국토가 유린된 이유가 기축옥사를 통해 수많은 조선의 인재들을 희생시킨 벌로 일어났다고 수근거렸다고 한다. 특히 <관동 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이 기축옥사를 담당했는데 자신의 당파(서인)을 위해 동인을 무차별 처벌하여 '인간백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도 신선하다. 정말 정여립 모반사건은 조작된 것일까 아니면 사실일까? 그리고 만약 기축옥사 때 조선의 인재를 죽이지 않았다면 임진왜란의 피해가 이렇게 컸을까? 역사엔 '만약'이라는 단어가 없지만 심히 궁금해진다.

 

  또한 단재 신채호는 근대에 들어 정여립 모반 사건에 대해 재조명하면서 아래와 같이 평가하였다.

'이미 안정된 사회의 인물은 늘 전 사람의 필법을 배워서 그것을 부연하고 확장할 뿐이니, 인물 되기는 쉬우나 그 공이나 죄는 크지 못하며, 혁명성을 가진 인물(정여립 같은)은 매양 실패로 마칠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한 말이나 한 일의 종적까지 없애 버림으로써 후세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영도(零度)되고, 오직 3백 년이나 5백 년 뒤에 한두 사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이가 있어 그의 유음(遺音)을 감상할 뿐이요… 인격적 자주성의 표현은 없고 노예적 습성만 발휘하여 전 민족의 항성을 파묻어버리고 변성만 조장하는 나쁜 기계가 되고 마나니, 이는 사회를 위하여 두려워하는바요, 인물 되기를 뜻하는 사람이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이다.' 즉, 안정된 사회에서는 큰 인물이 나기 어렵고 혹여 혁명적인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이렇게 세상을 바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죽어간 사람이 우리 나라 역사에 몇 명이나 될까?

 

 

 

고부, 정읍 : 조병갑과 동학농민운동 - p.134~148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다. 좋은 위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방법도 있지만 <조병갑>처럼 탐관오리로 오늘날까지도 악명을 떨치는 방법도 있다. 어찌되었건 조병갑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실력자이던 조 대비의 조카이자 이조판서 심상훈과 사돈 간이었는데 가장 큰 평야가 있던 고부에 군수로 부임하면서 사단이 발생하게 된다. 그의 악행에 대해서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보다 웃긴 것은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고부군수에서 파면된 후 새롭게 고부군수에 임명된 사람들이 전부 군수 임명을 거절하였고 1년 동안 강진군 고금도에서 근신하는 척하다가 복권되어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하였다는 점이다.

 

 신임 고부 군수가 부임을 거절한 것은 이른바 '빽'이 좋았던 조병갑의 유임 공작이 치열했고 빽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였으며 특히 근신하는 척하다가 고등재판관으로 승진되어 오히려 동학교주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을 보면 당시 조선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 수 있다. 일본에게 망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보인다.

 

 

 

나주 : 임나일본부설 - p.218

 

글쓴이는 이 책에서 나주시 반남면 자미산 일대에는 나주 반남 고분군이 있는데 그 고분군의 주인공을 마한의 부족장으로 보고 있으나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마한은 서쪽에 있는데…남쪽은 왜(倭)와 접해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에 접해 있다.'고 기록된 것을 근거로 왜는 현재의 나주 일대에 근거해 백제와 신라를 영향력 아래에 두고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맞섰던 강력한 정치 집단의 하나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주 반남 고분군은 한반도 내에서는 그와 같은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으며, 일본의 천황릉으로 추정되는 고분군들과 흡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는 허구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한편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fact)가 있다면 무조건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한 번 진지하게 사실 유무에 대해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나 일본이나 스스로에게 불리한 역사는 감추려고 노력하는 마당이라 진실은 저 너머에 계속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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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0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지금 국사학과에
다니고 있는 역사학도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에게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명했던 기억이 나네요. 역사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라 전공도 국사학과을
선택했는데,,, 이 친구가 역사책만 보지 말고 과학책 읽기를 권해주고 싶네요.
 
<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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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참 게으른 것 같다. 맨 처음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고 이번에는 되도록 빨리 읽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12월 중순에 기말고사, X-mas, TOEIC 시험으로 이어지는 콤보에 정신줄을 놓다가 이제야 바삐 이 책을 손에 들었다. 그나마 2010년을 지나기 전에 다 읽은 것이 다행이랄까? 2011년에는 좀 더 독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시간 계획을 잘 짜기로 결심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 내용에 대해 살피기 전에 이 말은 하고 가야겠다. 나는 이른바 <베스트셀러>를 싫어한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출판사가 서점에서 재구입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대중이 좋아하는 책이란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편하게' 해주는 책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편한 책' 보다는 읽고 나서 나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책'(뭔가 끓어 오르게 만드는 책)이 더 좋은 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물론 이 책의 글쓴이인 Michael J. Sandel 교수의 전작인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상하게 '불편한 책'이면서도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던 책이기는 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이명박이 휴가 때 이 책을 가져가 읽었기 때문이라는데 있다. 정의와는 수억 광년 떨어진 듯한 이명박이 이 책을 읽었다는 점도 우습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보면 행동하지 않는 독서는 읽지 않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 뿐만 아니라 대중들의 모습도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독서는 편한 현실도피 수단이 된다는 내가 존경하는 어느 분의 자조적인 말씀이 현실화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기도 하다. 

  누구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면 칭찬을 하지 이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다. 과연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것일까? 물론 어느 정도 독서량을 이룰 때까지는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과거 소극적인 지식인과 같이 책만 많이 읽는다고 모든 것을 해결되지는 않는다. 바로 행동하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다면 독서가 현실도피 수단이 되는 것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나는 여기서 주로 '스포츠(Sports)의 상업성'에 대한 글쓴이의 주장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나 자신이 FIBA 공인 농구 2급 심판이고 여자보다 농구가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포츠와 관련된 글쓴이의 주장에 관심이 갔다. 먼저 글쓴이는 "VIP 관람석의 확대가 팬들과 경기 사이의 관계, 그리고 팬들 사이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일으킨다."(p.33)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언급이 없다. 그리고 스포츠 구단이 이익을 내는 미국 사회에서는 모르겠으나 대다수 모기업에 의존하고 적자에 허덕이는 국내 스포츠 구단에서는 이익을 낼 수 있는 VIP 관람석 문제를 이렇게 나쁘게 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또한 이른바 '연고 이전' 문제도 글쓴이는 지적한다. 연고 이전은 K-리그에서 <북패륜>, <남패륜>으로 불리는 경우 뿐만 아니라 프로야구에서도 현대가 인천을 버리고 서울로 입성하기 위해 수원으로 야반도주 했던 적이 있었다. 이는 구단주들이 좀 더 이익되는 큰 시장이나 좋은 입성 조건을 제공하는 지자체로 이전하기 때문으로 이를 막기 위해 글쓴이는 지역 사회가 스포츠 구단의 주인이 되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다.(p.37) 나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수많은 미국 프로 구단에서도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나라에서 적용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배아문제>에 대해 살펴 볼까 한다. 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배아>, 특히 <배아줄기세포>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다. 과거 불교계에 계시는 분과 어디부터 생명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본적으로 그분은 <배아>부터 생명으로 보고 배아를 이용한 연구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셨다. 그러나 "만약 배아가 생명이라면 수정된 이후 착상되지 않고 그냥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살인으로 보아야 합니까?"라는 저의 질문에 말문을 돌리셨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글쓴이도 본질적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그러나 87쪽에서 91쪽에 이르는 부분은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글쓴이의 태도가 굉장히 애매하게 나타나 있다.) 나는 배아는 본질적으로 '생명'이 아니며 착상 후 심장과 뇌가 생기는 순간부터가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배아 연구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부작용은 배아 연구 윤리에 대한 교육 및 강력한 가이드라인 규제가 동반된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글쓴이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 이어 <왜 도덕인가>를 통해 다시 한 번 '정의''도덕'에 대해 살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었다고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좀 더 정의로워졌는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가로 저을 수 밖에 없다. 단순히 '아 좋은 책 읽었다'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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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과 전공하시는 분답게 생명윤리 쪽으로 서평을 쓰셨네요,
이런 관점의 글을 읽어볼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생명윤리에 관한 샌델의 입장을 알 수 있는 책은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있습니다.
저는 나름 흥미롭게 읽었는데,,, 생각보다 <정의><도덕>의 인기에
미치지 못한게 아쉽기도 했습니다. 저는 <도덕>보다 먼저 <생명의 윤리>를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바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바다 미슐레의 자연사 1
쥘 미슐레 지음, 정진국 옮김 / 새물결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솔직히 고백하건대 만약 누군가가 이 책을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외모>(책으로는 표지와 제목이 되겠다.)라는 첫인상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일단 [바다]라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바다]라는 것은 비록 명사지만 얼마나 추상적인가? 만약 [바다]라는 제목의 책을 쓴다고 하면 얼마나 두꺼운 종이가 필요할까?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나 자원 같은 것만 다 적어도 엄청난 두께의 책이 탄생할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런데 400쪽도 안되는 책이 감히 [바다]라는 제목을 들고 나왔으니….  

 사실 나 자신이 뭔가 수학처럼 딱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고 감상적인 내용이 많이 담긴 책을 별로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폭풍우를 묘사하면서 "그래 괴물아, 뭘 원하는 거냐? 사방에 보이는 난파에 취했구나, 뭘 더 바라느냐? - 너와 세계의 죽음을, 지구의 멸망을, 카오스로의 회귀를"(p.84)과 같은 문구를 보고 있으면 닭살이 돋으면서 글쓴이가 과대망상이 아닐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그나마 3부 <바다의 정복> 부분에서는 감상적인 내용에서 비교적 벗어난 이야기가 많아서 즐겁게 독서할 수 있었다.  

  글쓴이가 이 책에서 하고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처음으로 생명을 나은 바다를 인간은 존중하고…모든 종이 자연의 기능을 누리도록 해야한다."(p.295~296) 이에 대해서는 나도 적극 공감하고 있다. 사실 우리 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면서도 바다를 소홀히 다뤄오고 있었다. 예컨대 <새만금 간척사업>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군산~부안을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간척토지 28300ha와 호소 11800ha를 조성하기 위한 새만금 간척사업은 아래 사진과 같은 오늘날 환경 대재앙으로 돌아 왔다.

  

  

 이에 각계 각층에서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서명 운동도 벌였고 심지어 소송까지 했으나 법원은 정부의 손을 들어 주었다. 나 역시 유사 법조계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이와 같은 사안의 경우 법원의 고충을 모르는 바 아니다. 새만금 간척 사업을 무효화 할 경우 이에 투자된 세금을 회수할 길을 막막해지고 새만금 간척 사업을 추진한 곳에 대한 대대적인 후폭풍이 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선택의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이 바다를 희생시키는 일을 강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게임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어렸을 때 잠시 여수에서 살았던 적을 제외하면 나는 KOEI사의 명작인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통해 바다를 접했었다. 게임 상에서 [바다]라 함은 정복의 대상이고 전투의 공간일 뿐 어떤 감흥을 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물론 게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긴 하지만 게임을 통해 이렇게 바다를 정복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은 후에 바다에 대한 편견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다. 이제는 온라인 게임으로 서비스되는 것 같은데 게임과 다른 진정한 바다 이야기(여기서 바다 이야기는 도박 게임이 아니다.)를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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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다윈의 시대 - 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 제작팀 지음 / 세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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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창조되었는가? 진화되었는가?

인간은 창조되었을까? 진화되었을까? 이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고민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경쟁이 심화된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는 돈벌이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이런 질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에드워드 윌슨의 말처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안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진화와 창조의 문제가 본격화 된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2007년에 출판되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도킨스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증하였는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우리 나라에서 이에 대한 논쟁이 꾸준히 계속되었고 EBS에서도 다큐멘터리를 통해 진화와 창조의 논쟁을 소개하였고 그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는데 그 속 뜻은? 


 지금까지 수 많은 진화론과 창조론을 다룬 책을 읽어 봤지만 이와 같이 읽고 나서 화가 나는 책은 처음이었다.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은 나름 공평한 입장에서 인터뷰하고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그런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양 측 모두에게 공평한 척 하면서 실제로는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다른 진화론과 창조론 책에서 하나의 주장만을 일관되게 하는 것보다 더 문제가 많은 것이라고 하겠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 책은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주장하여 교묘하게 종교의 손을 들어주는 책이라고 하겠다.(마치 2MB처럼 친서민 정책을 외치면서 부자 감세 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 책은 과연 공평하게 집필되었는가? 

 솔직히 말해보자. 이 책이 과연 공평한 관점에서 집필된 것일까? 진화론에 대한 반대 논거로 '지적 설계론', '창조과학'그리고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등을 예로 드는데 소개하는 것 까지는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중립적인 입장에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은근히 진화론을 비판하고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듯한 표현이 담겨 있어 읽는데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물론 EBS 다큐프라임 제작팀에 대해서는 최대한 공평하게 썼다고 당연히 부인하겠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들어가는 글>을 보면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는 지적설계라는 이론을 소개하며 '그 정당성을 떠나서 진화론에 도전하는 이론이 끊임없이 존재해왔다는 사실 자체가 매우 흥미롭다'고 말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봐도 이 문장의 속 뜻은 진화론에 보다는 진화론에 도전하는 이론에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 점은 각 학자들의 인터뷰에서도 알 수 있다.

 각 챕터 마지막에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지지하는 학자들과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진화론을 지지하는 학자에게 하는 질문은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이 많았고 창조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는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에드워드 윌슨과의 인터뷰에서 "하지만 단순히 종교가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종교에도 그 나름의 설득력 있는 논리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고(p.152) 도킨스에게 한 "모든 종교에 반대하십니까? 종교에 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p.142)라는 질문은 종교의 이점을 묻는 질문을 한 데 비해 진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인 마이클 베히의 인터뷰 질문에는 "다위니즘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입니까?"(p.68)와 같이 마이클 베히가 좋아할 만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적 설계론을 소개한 것은 아직 우리 나라에 지적설계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 소개할 만하다고 하더라도 지적설계론이 지금까지 오랜 시간 검증되어 과학적 증거가 누적된 진화론과 동급 이론(지적 설계론을 Theory라 부를 수 있는 지도 의문이다.)은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설계론을 진화론과 같은 수준의 과학이라고 여기고 있다. 또한 이른바 '창조 과학'에 대해서는 웃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창조 과학을 대해 중립적으로 서술해보니 오히려 처음 듣는 사람은 이에 대해 그럴 듯 하구나 하고 생각하기 쉽다. 왜 과학자가 창조 과학을 '과학'이라고 부르지 않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창조 과학에 대한 이런 서술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마지막 결론 부분 역시 문제가 많다. 요약하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 존재하는 평면이 다른 것이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런 입장은 종교를 두둔하는 결론이다. 한 마디로 종교와 과학은 서로 다투지 말고 잘 지내자라는 뜻인데 지금까지 종교인이 과학자의 검증 요구를 묵살해 온 논리와 다른 점이 없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나마 중립적으로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 책이니 만큼 처음 이런 논쟁에 대해 접한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다. 다만 이 책을 읽은 후에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알아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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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0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BS 다큐멘터리라기에 이 책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책 속에 내용의 숨은
의도가 있었군요. 부동님 말씀대로 정확하게 알고 균형적인 시각을 보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쓴 책들도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암향부동 2010-12-09 23:33   좋아요 0 | URL
이 책 서평은 막상 써 놓고 후회하고 있는 서평입니다…. 제가 너무 '욱'해서 공격적으로 서평을 쓴 것 같습니다. 사실 내용만으로 보면 이렇게 악의적인 평가를 내릴 책은 아닌데요….

사실 저 역시 교회를 다닌다는 면에서는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확고한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이자 진화론자인지라 이런 책에서 논리적 헛점을 발견하면 울컥하게 되네요. 특히 <지적 설계론>은 그렇다 쳐도 <창조 과학>을 이렇게 겉핱기 식으로 소개한 점은 불만입니다. 예컨대 창조 과학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6000여 년으로 주장하는데 방사선 동위 원소를 통해 밝혀진 지구의 나이는 약 46억 년이라는데 의심을 품는 과학자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창조 과학회>에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여기에 과학을 억지로 끼어 맞추고 있지요.

또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과거 [만들어진 신]과 [도킨스의 망상] 서평으로 다른 분들과 심지어 만나서 7시간 가량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제가 만난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에 대한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더군요.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런 점이 굉장히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