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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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누히 느끼는 거지만 선입관은 정말 무섭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어 오면서 책 광고라 요란한 책 치고 괜찮은 책을 별로 보지 못하였다. 이른바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고 하지 않던가? 잠시 책 광고를 그대로 옮기자면 '작가는 공상과학소설의 고전인 <1984>나 <멋진 신세계>의 미래상을 닮은 묵시론적 예언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또한 인지과학, 분자생물학, 진화론, 플라톤 철학을 곳곳에서 다루고 있다.' 이다.

 

 묵시론적 예언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다치자. 그런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라… 고작 200페이지도 안되는 공상과학소설에서? 그리고 인지과학, 분자생물학, 진화론, 플라톤 철학을 곳곳에서 다루고 있다라니… 그 하나 하나가 현대 과학과 철학의 정점에 서 있는 것들인데 그것들을 자신있게 다루고 있다고 주장하다니… 맨 처음 이 광고를 읽고 나서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고작 199쪽에 불과한 소설이지만 읽고 나서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감히 단언컨데 근래 읽은 책 중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일단 소설의 구성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의 형식을 택하고 있으며 국가 형태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온 플라톤의 주장대로 노동자, 기술자, 군인, 철학자 계급으로 나뉘어 철저히 나누어 교육되고 철학자가 나라를 이끄는 이상 국가 형태이다. 이어서 시대 배경은 2058년에 전 지구가 일본+중국 vs 미국 간의 핵전쟁 및 치명적인 전염병으로 멸망하고 현재 뉴질랜드로 여겨지는 고립된 국가의 모습이다. 여기서 아낙시멘더(아마 이오니아 철학자인 아낙스만드로스를 비유한 것 같다.)가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학술원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관과의 문답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미리 경고하건데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사람은 이 문단은 건너뛰길 바란다.) 바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답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간인 아담과 생각할 수 있는 로봇 아트간의 치열한 문답은 과연 생각하는 로봇과 인간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생명공학을 전공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근원적인 생명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한 학문인 Life science를 배웠기 때문에 자연스레 철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쉽게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리처드 도킨스는 Meme을 주장하였는데 이 책에서도 아트는 '말은 오래되고 굼뜬 매커니즘으로 사유는 카드로 쉽게 복제할 수 있는 기계를 선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물론자로서 아트의 의견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만약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과 다르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는 아래와 같은 아담의 주장으로 아트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트에게 작은 흠집이 남게 했지만 말이다.

 

 "기계가 어떻게 아침의 풀잎 냄새와 아이의 울음소리를 알겠어? 나는 내 피부에 쏟아지는 따뜻한 햇살의 느낌이고, 나를 덮치는 차가운 파도의 감각이야. 나는 절대 가 본 적 없지만 눈을 감고 상상해 볼 수 있는 모든 장소이고, 다른 이의 숨결과 그녀의 머리카락색이야."

 

 그런데 마지막 반전은 정말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의 창세기(Genesis)와 원죄… 아담과 아트는 결국 하나… 간만에 읽은 정말 대단하고 멋진 책이다.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는 나로 하여금 두 번 읽게 하였으며 하루 종일 생각에 잠기게 만든 책으로 모든 이에게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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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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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책 중에서 <십각관의 살인> 이후 두번째로 읽은 책이다. 사실 추리 소설에 대해 추천 받을 때 이른바 '관' 시리즈를 추천받으면서 가장 많이 추천받은 책이 바로 이 책 <시계관의 살인>이었다. 하지만 처녀작부터 읽어 나가면서 글쓴이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에 <십각관의 살인>부터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확실히 이 책은 처녀작 이후 10번째 추리 소설이니 만큼 트릭의 구성이나 책의 분량 역시 만족스러울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특히 우리가 일본 이름에 익숙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등장인물 소개하는 페이지를 따로 구성한 점이나 소설의 장소가 되는 시계관의 구조를 그려놓은 점, 그리고 전작과 달리 작가 후기를 넣은 점은 칭찬할 만하다. 다만 여전히 역자 후기는 없는데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역자 후기는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역자도 한 명의 독자인 이상 분명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을텐데 말이다…
 
 이 소설의 장소적 배경 역시 건축가 '나카무라 케이지'가 설계한 '시계관'이란 건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시계처럼 생겨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인데 여기에 바로 트릭이 있다. 우리는 '시간''시계'를 통해 인식한다. 만약… 시계가 없거나 잘못되어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심리학 실험은 이미 과거에 있었으면 결론은 우리는 빛이 완전 차단된 상황에서는 시간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독자를 속이기 위한 글쓴이의 트릭이 숨겨져 있다.
 
 사실 그동안 많은 추리 소설을 읽어왔고 현재 이런 추리 소설의 대세는 바로 주인공이 범인인 경우가 많다. 아마 영화 <식스센스> 이후 이런 트릭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은데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건물'에 트릭이 숨겨져 있는 추리 소설을 만나게 되니 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간만에 좋은 추리 소설을 만나게 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한 번 건물에 트릭이 숨겨져 있는 추리 소설을 읽는 것 역시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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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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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더이상 국내에 추리 소설 작가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나라 추리 소설 시장이 작은 것은 절대 아니다. 분명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 다만 언제까지 고전이 된 추리 소설만 읽고 있을 것인가? 더 이상 새로운 추리 소설이 등장하지 않는 국내 추리 소설계가 아쉬울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는 꾸준히 실력 있는 신인 추리 소설 작가들의 작품이 발표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의 글쓴이인 <아야츠지 유키토>이다. 모름지기 추리 소설로 롱런하려면 셜록 홈즈 같은 명탐정을 탄생시켜 계속 출판되는 책에 등장시키던지 아니면 어떤 특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하나의 완성된 추리 소설 시리즈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글쓴이는 바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를 등장시켜 이른바 <관>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xx관의 살인> 이런 식으로 이름 붙여지는 글쓴이의 추리 소설에는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등장한다. 그가 설계한 건물마다 특유의 컨셉을 가지고 건물을 설계하게 되는데 이런 건물의 특징이 살인 사건에 이용되게 된다. 여기서는 십각형의 모양을 가진 십각관이 살인 장소로 이용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건물을 특징으로 한 추리 소설은 나름 산뜻하다. 보통 트릭이 살인 도구나 방법에 숨겨져 있는 것에 비해 트릭이 건물 자체에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블루 오션을 찾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트릭이 숨겨져 있는데 한 가지 힌트를 주자면 '숫자'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의 이름이 낮설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데 잘 살펴보면 여기에 트릭이 숨겨져 있다.
 
 사실 책 표지만 보면 과연 재미있을까도 싶지만 생각보다 번역도 깔끔하고 편집도 무난하게 되어 있다. 이 책이 글쓴이의 처녀작인데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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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지음, 이우일 그림, 이수은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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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고 난 후 원본을 한 번 읽어 볼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해서는 대충 어떤 줄거리인지는 알았지만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보았는데 현재 너무도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을 골라봐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에 과거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해왔었는데 내가 여러 판본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이레 출판사>에 대한 믿음과 함께 책 디자인을 굉장히 공들여 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존 테니얼의 삽화가 있는 판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판본 중에는 영국의 유명한 풍자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존 테니얼의 삽화가 있는 것이 가장 유명하다. 존 테니얼은 최초 루이스 캐롤이 출판했던 판본에서 삽화를 그린 사람인데 지금까지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루이스 캐롤의 의도 및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분위기에 맞게 삽화를 그려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이 책은 존 테니얼의 삽화는 아니지만 이우일씨가 굉장히 공들여 그린 일러스트가 있고 공들인 책 디자인와 편집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할 것이다.
 
 책 내용으로 들어가면… 솔직히 별로 할 말이 없다. 내가 이미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글쓴이인 루이스 캐롤이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다양한 언어 유희만 있었는데 영어가 아니고 한국어로 번역되다보니 쌩뚱맞은 소리만 같고 어떤 의미나 웃음을 찾기는 힘들었다. 말 그대로 나에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상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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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Alice in Wonderland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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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보통 소설을 영화화하는 경우 대개 '원작의 맛을 못 살렸다.'라는 영화 전문가의 평가를 대다수 받게 된다. 아마 대부분 유명한 소설을 이미 읽어 감동을 받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면 아무래도 두번째로 접하는 내용이다보니 원작만한 감동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영화화하는 것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성공한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영화화하기는 수월하나 그대로 영화화할 수는 없으니 '어떻게 원작 소설을 해석하여 스크린으로 보여주느냐'에 감독들은 골머리를 썩게 된다.
 
 바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그 유명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이다. 본인의 경우 이 소설을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고 이 영화를 본 후 수많은 번역서 중 중에서 아래의 것으로 읽게 되었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위 영화에 대해 그렇게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막연히 그저 책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겼겠거니 생각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원작 소설과 부각시킨 차별점을 찾아보는 것이 좋은 영화 접근 방법이 될 것이다. 사실 영화에서는 악으로 대표되는 '붉은 여왕'과 선으로 대표되는 '하얀 여왕'이 대립하고 있으며 앨리스는 모자 장수와 고양이, 토끼 등의 도움으로 붉은 여왕과 맞서 싸우는 용사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는 원작 소설과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영화는 어렸을 때 앨리스가 이미 겪은 책에서의 내용 이후에 앨리스가 성장한 후 다시 이상한 나라에서 겪게되는 이야기를 감독의 상상력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사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면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였다. '왜 이상한 나라의 사람들은 앨리스만 기다리며 붉은 여왕의 공포 정치에 그냥 순응하며 지낼까?' 붉은 여왕은 신하가 파이 한 쪽을 훔쳐 먹었다고 바로 목을 베라고 명령하는 절제 군주로 공포 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그런데 하얀 여왕은 붉은 여왕의 힘이 미치지 않은 곳에서 공주님처럼 전쟁과 상관없다는 듯이 지내고 모자 장수와 토끼, 쥐 등은 오직 앨리스가 다시 와서 예언서에 적힌대로 '좋마운 날'에 붉은 여왕을 무찔러 줄 것만 기대하고 있다.
 
 이는 현재 우리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한다. '잃어버린 10년' 이후 다시 돌아온 경찰 정치, 공포 정치 앞에서 우리는 촛불 시위를 하였으나 결국 승리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영화 속 모자 장수 처럼 미친척을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누가 더 미쳤나 비교하면서… 그러면서 오직 약 3년 후에 붉은 여왕이 왕 자리에서 물러날 '좋마운 날'만 기다리면서 현실에 순응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때 되면 과연 <앨리스>가 나타나서 붉은 여왕을 무찔러주고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 언제 올지도 모를 <앨리스>를 기다리면서 현실에 눈 감고 미친척하며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 그 대답은 여러분 및 저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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