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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1-2 [류시화]  

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류시화

길에서 검객을 만나거든 나의 검을 보여 주고,
그가 시인이 아니거든 너의 시를 보이지 말라.
임제선사(중국, 9세기)

1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형태로 유명하다. 여기 한가지 일화가 있다. 프랑스 어느 대학에서 하이쿠를 강의하던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교수님, 제목에 대한 강의는 그만하고 이제 본문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한 줄밖에 안 되는 하이쿠 시를 학생들은 시의 제목으로 오해한 것이다.
하이쿠는 한 줄의 운문으로 계절과 자연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의 실존에 가장 근접한 문학으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 바쇼와 이싸의 작품은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으며, 연습 문제에는 실제로 하이쿠를 지어 보라는 요구도 있다. 뉴욕타임스 지는 지난 한 해 동안 뉴욕 시민을 대상으로 교통과 계절을 주제로 한 하이쿠를 공모해 날마다 신문 한구석에 싣기도 했다.
오늘날 하이쿠는 그토록 세계적이 되었다. 유럽에는 아예 스스로 하이쿠 시인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고 영문 하이쿠 시집이 계속 출간되고 있다.
하이쿠의 영향을 받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은 적지 않다. 알렌 긴스버그나 게리 스나이더 같은 대표적인 현대 시인이 그렇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체슬라브 밀로즈는 하이쿠 애독자였다. 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해도 하이쿠적인 시인 역시 많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대표적이다. 다음 시를 봐도 그가 얼마나 하이쿠의 세계에 근접해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시는 압축이 생명이다.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생각나는 대로 글을 풀어 나가는 다른 문학과의 차별성이 거기에 있다.
시는 압축이고, 생략한다. 말을 하다가 마는 것, 그것이 시의 특성이다. 시는 하나의 말없음표...... 그 말없음표로 자신의 가장 내밀한 것을 표현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감정이나 깨달음 같은 것을 표현하기에?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

짧은 시는 긴 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다. 몇 마디의 말, 눈빛, 손짓 같은 것으로 언어 너머의 것을 이야기한다. 바쇼는 문하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은 뒤로 감추라."


시의 의미는 뒤로 감추고 모습을 , 풍경을 먼저 보는 것이다. 설명하지 말고 묘사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것은 이류시인이나 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하이쿠는 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인 것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서정적으로 풍경을 묘사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한 줄의 풍경을 읽는 순간, 시에 묘사된 가시적인 것들은 내면의 공간으로 바뀌어 간다. 외부의 풍경이 갑자기 존재의 깊이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승려 시인 모리다케의 대표작이다. 봄날 벚나무에 꽃이 만발해 있다. 발마이 불자 꽃잎들이 하늘하늘 허공에 떨어진다. 그 지는 꽃잎들 중 하나가 도로 나뭇가지 위로 펄럭이며 올라간다. 놀라서 자세히 바라보니 그것은 꽃잎이 아니라 나비!
지상의 모든 존재는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때로 어떤 존재는 그 허무의 심연에서 벗어나 부활의 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지상의 중력을 이겨내고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것이다.
하이쿠를 서양에 소개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R.H.블라이스는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예수를 따르게 된 것은 예수가 본질적으로 시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우리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었다. 반면에 예수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세상 만물을 자세히 보라고 가르쳤다.
하이쿠는 우리가 살아 있다면 곧 우리 모두는 시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선의<무문관>에서 '평상심이 곧 도이다'라고 못박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물의 본질을 자세히 보는 것, 거기에 시의 본질이 있고, 살아 있음의 의미가 있다. 자세히 보지 않는 눈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눈이다. 태양은 비치고, 바람은 불고, 눈은 내린다. 풀은 푸르고, 꽃은 붉다.
바쇼처럼 자세히 보라. 그러면 '울타리 옆에 냉이꽃이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때 중세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표현대로 '내가 신을 바라보는 그 눈을 통해 신이 나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원본 출처: http://www.haiku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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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예전 마라톤을 하면서 헥헥~ 숨 넘어가게 들숨날숨을 쉬던 것이 갑자기 그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채찍질, 달리기 등등에 항상 매혹되는 것을 보니 전생에 말(馬)이 아니었나 싶다.-_- 물론 그것보다는 번쩍거리는 무기류-특히 검-에 더 흥분되기는 하지만...) 아니..그것보다도 땀방울을 흘리고 난 후 시원한 우유를 한잔 들이키고 하는 시원한 샤워가 그리웠다.  날씨도 많이 풀렸고 해서 뛸 때 부담스럽지 않을 거 같다.

다행히 집 근처에 좋은 공원이 있다. 아침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구 질주해 줄테다..(아니다..마구 질주는 우아한 나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 경쾌하게 폴짝폴짝 뛰어줄테다. 하하~)

목표는 4월 17일(일요일)

4.19기념 삼각산 우이령 마라톤대회
http://www.gangbukmarathon.com/

이젠 겨우내 이불속을 구르던 돼지에서 날렵한 종마로 변신할 때 !!

모든 마라톤 일정에 대해서는 http://www.run114.com/main/main.asp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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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귀한 손님께서 직접 집을 방문해 주었다. 그녀는 예전 함께 봤던 영화전단지 2개를 챙겨서 들고 와주었다. 올해 본 영화들은 빠짐없이 영화평을 쓰고 싶다는 나의 말을 기억했었던 모양이었다.

그 중 하나가 짐캐리가 나오는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었다. 얼떨결에 고른 영화였으나(원래는 '말아톤'을 보려고 했는데 '조승우'가 직접 나와서 팬 싸인회 및 관객인사를 하는 조조영화를 보겠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급선회하여 보게 된 영화였거든.) 선택은 만족스러웠다.

'반지의 제왕','해리포터'등 환타지 물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이들 책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영화로 보면서 무척 만족했던 것이 기억난다.환타지 물의 상상력은 항상 나를 자극시키는 뭔가가 있다. 마술..특이함..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사이에 숨겨진 키워드..또는 일상적인 것들이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는 생각의 전환등등,그리고, 환타지 물 속에서 전형적으로 나오는 대립구조는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주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며 집중하게 만든다. 거기다 시각적인 볼거리는 얼마나 풍부한가? 이 영화 속에서도 그런 요소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며, 아동영화 속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과의 대립, 그 대립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들어있다.

그러나, 이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은 "그 후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잠자리 동화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첫 시작부터 착한 요정들이 노래하는 영화가 잠시 소개되더니 이 영화의 작가(주드 로 분)가 타자기 앞에 나와 글을 치면서 나레이션을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옆 상영관으로 옮겨서 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 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갑작스런 의문의 화재로 부모를 잃은 삼남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고 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작가의 모습을 나는 여기서 보게 되었다. 얼굴은 어두운 작업실내의 그림자 때문에 절대로 보이지 않으나 끊임없이 타자기를 쳐대고 있는 옆모습의 씰루엣과 조명을 받아서 오로지 그의 손만 하이라이트를 받고 있는 풍경.. 종이위에 자신이 많들어 놓은 주인공들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은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을 평탄한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만들어낸 주인공들에게 그 길을 넘어갈 수 있는 하나하나의 능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그런 능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씨실과 날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옷감처럼 주인공들의 대화와 그들이 능력이 함께 얽히고 설켰을 때만 그들 앞에 놓여있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오~ 작가 당신,,너무 자비심이 없다고!!' 라고 책을 읽다 말고 외치고 싶어도 책 속의 재미를 반감시키면 안되기 때문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마는 어린시절의 나의 손...그런것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났다.

흐~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항상 옆길로 새는 것이 주특기인지라..흠흠..) 갑작스럽게 집이 전소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바이올렛(15살,천재적인 발명가, 창의력의 대가, 머리속으로 꿍시렁거려서 뭔가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첫째딸), 클라우스(14살,천재적인 암기력의 대가, 아버지의 거대한 책장의 책을 모두 암기하고 있으며 머리 속의 책장 속에서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 내어서 그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둘째아들.)써니(1살을 조금 넘김, 아기말의 통역이 절대 필요함. 모든 것을 깨물어 버리는 튼튼한 이를 가진 세째딸.)는 부모를 잃게 된다. 이 아이들을 맡아줄 후견인으로 겁나먼 친척 울라프 백작(짐 캐리분. 연극배우이면서 변장의 천재. 그러나, 그가 노리는 것은 단하나..아이들의 유산뿐!)이 지명되고 울라프 백작은 아이들을 처치하고 아이들의 유산을 가로채려고 한다. 그의 의도를 간파한 아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에게서 벗어나고 다른 친척 몽티 삼촌(파충류 학자, 그 또한 의문의 화재사고로 아이들과 아내를 잃은 적이 있었다.), 조세핀 숙모(문법을 사랑하는 신경과민한 미망인, 거머리에게 남편이 당하고 말았다..-_- 신경과민할 수 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벼랑끝 집에 살고 있다.)에게 자신들의 후견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이들의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어야 할 것 같은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더 단순하게 울라프 백작에게 속아넘어가 죽임을 당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아이들과 울라프 백작의 대결은 더욱 치열한 구도로 가게 된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가 끝나고 스탭롤이 흐르는 와중에도 앤딩롤 배경에는 세 아이들(바이올렛, 클라우스, 써니)의 그림자 인형과 그 뒤를 쫓는 울라프 백작(짐캐리 분)의 그림자 인형들이 끊임없이 추적씬을 펼치고 있는 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울라프 백작이 탈출했다는 나레이션에 맞추기 위해 한 것이겠지만, 아이들이 커나가는 과정 속에 '울라프 백작'과 같은 시련이 끈임없이 그들을 괴롭힐 것이란 것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의 시련을 대표하는 '울라프 백작'과 조금씩 성장하는 아이들 사이의 끈임없는 대결을 만들어내면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이들이 커가면 '울라프 백작'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와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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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 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서로를 통과해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감각이여!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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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햇빛 쏟아지는 내 방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을 설치해준 아저씨에게 감사를..

그동안 쭉 금단현상을 참지 못하고 10리를 달려 PC방으로 갔던 것이 몇 번이었던고!!

나의 후 디에(새 노트북의 이름: 중국어 발음으로 '나비'라는 뜻이다.)도 훨훨 날고 있고,  나 또한 잠정적인 백수인지라 오후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훨훨 날고 있다.

우아함이란 것이 별 거더냐?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생활에서 묻어나오는 것, 그런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

여튼, 나비라는 카테고리를 처음으로 쓰면서 '후 디에'란 이름의 노트북과의 조우는 꽤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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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3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레어 2005-03-03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 접근성도 확보했으니 본격적으로 활동할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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