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비행'이라는 말 (중략) '행위가 아니'라니 이건 언어도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83쪽

현대의 '우등생'의 대부분은 미리 정해진 규격에 따라 생산되고 있는 제품에 불과하므로, 운명을 선택하는 결단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의미에서는 극히 '무의지'적이고 수동적인 반(半)제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도적으로 주어져 있는 기성 목표를 향해 노는 것도 잊고 전력 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능동적이지만 이같은 '자기 제품화를 향한 능동성'은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183쪽

의지란 본래는 '운명을 향한 의지'이며 운명과 만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려 하는 정신태도입니다.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그 만남이 가져다주는 시련을 뛰어넘어 살아가려고 하는 책임과 '생에 대한 의지'를 그 속에 포함하고 있습니다.-183쪽

'비행'이라 하여 제도적으로 공인된 '행위'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소년들은, 정도의 차이나 질의 차이 혹은 방향의 차이를 각기 지니고는 있지만 아무튼 운명으로의 의지를 맹아적인 형태로나마 지니고 있습니다. '행위가 아니다'가 아니라 그쪽이 오히려 '행위'인 것입니다.-183쪽

인간의 기본적 덕성(우애라든가 다른 사람을 감싸는 의협심이라든가 사람이나 사물과의 상호성 등의 덕성)을 유린하는 자, 그는 인류 세계의 '범죄자'(그것은 반드시 법률위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로서 '비행'이나 '불량'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친구를 끌어내리기에 열심이거나 선생님 마음에 들기 위해 친구의 사소한 규칙위반(이것은 행위입니다)을 밀고하는 '우등생'들 쪽에, 인간의 기본적 덕성을 유린하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입니다.-183-184쪽

경험이란 대량생산품과 같이 미리 정해진 틀에 따라 일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의 조우를 통해서 사물의 저항을 받으면서 그것과 상호교섭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규칙으로 정해진 고정 질서의 궤도로부터 벗어난 '예기치 못한 일'에 직면하여 '숨겨진 경이'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경험의 정신적 내용입니다. 그것은 고정궤도만을 준수하는 '우량제품' 쪽에서 보면 '불량'의 경험입니다.-202쪽

진정한 정신적 용기란, 그것이 정신인 이상 조직적 전투행위에 참가하여 힘껏 용감함을 보여주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단체권력의 압박과 숫자를 등에 업은 편승적 비난에 대항하여 과감히 거기서 이탈하기로 결심하는 경우에 종종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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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2-12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지요. '비판적 지식인'이란 말을 아무한테나 붙일 수 있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책.

숨은아이 2004-12-12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딸기님도 이 책 읽으셨어요? 반가워요!

딸기 2004-12-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너무 감동해서 독후감을 못 쓴 책입니다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구판절판


'대동아전쟁'에 관해 천황은 스스로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그가 실질적으로 전쟁의 결단을 내렸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1945년 8월에 '신'이었던 자신이 4개월 남짓 사이에 갑자기 '사람'으로 바뀌었어도 그러한 엄청난 대전향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시대와 사람'으로부터 유신 때 이상으로 '비웃음'을 받아도 아무런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128쪽

모든 문제를 역사적 인과관계만으로 풀려고 하는 자는 행위당사자의 행위책임을 자타(自他)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이다.-130쪽

조지 샌섬(George B. Sansom) 경이 본 바와 같이 "고대 이래로 천황 주위에는 신비의 후광이 비치고 있다고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만큼 그 이름뿐인 지배자를 거칠게 다룬 국민은 없다"(William MacMahon Ball, Japan-enemy or ally에서 인용). 그리고 자국의 군주를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칠게 다룬 그 '국민'들이 바로 '국민'을 사칭한 '근왕주의자' 즉 지금의 우익사상과 동일 계열의 사상을 내걸고 있는 사람들이다.-131-132쪽

천황제의 권위를 떨어뜨린 것은 결코 좌익이 아니다. 좌익은 오히려 위약한 천황에 대해서까지 정면에서 전쟁 책임을 추궁하고 천황제를 정면에서 적으로 간주함으로써, 거꾸로 천황과 천황제를 '자기의 적으로서 어울리는' 실력자의 위치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다.-132쪽

천황에게 '시미(施米)'를 먹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퇴위에 의해서라도 막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천황주의자가 일본에 있는가. '국민의 의협'을 천황에게 집중시킬 방책을 세운 자는 있는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오로지 천황제가 명목적으로 '옹호'되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천황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음으로써 '취생몽사' 상태에 빠지는 것을 우려한 천황주의자는 있는가. 그리고 그 경우 천황이 받게 될 심한 '멸시'를 두려움을 가지고 예상하여 '명예롭게 퇴위할 것'을 권고하려고 했던 자는 있는가. 천황이 스스로의 의사로 전쟁에 책임을 지고 퇴위하는 것은 오히려 '제왕에 어울리는' 존엄한 행위라고 생각했던 천황주의자는 있는가. 아니, 그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천황의 행위에 대해 '철저한 혐오'를 가지고 있었던 천황주의자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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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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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야말로 건전한 정신을 낳는다.-87쪽

소수의 존중이란 본래 생활양식 및 그밖의 모든 것을 포함한 존재로서의 존중이다. ......(* "소수의 존중"은 "소수에 대한 존중"이란 뜻이겠지. - 숨은아이.)-97쪽

일본 국내에서 말하자면, 그 대표는 재일 한국 조선인이며, 그 다음으로는 일본의 역사적 책임이 걸린 것으로, 극소수가 되어버린 아이누 사람들이며 그 다음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오늘날의 '풀뿌리 배타주의'는 바깥에 쫓아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처박아넣는다. 최하층 노동의 장으로 밀어넣고 거기에 벽을 쌓으려 하는 것이다.-97쪽

일본에 온 인디오 사람과 만나고 나서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당신들이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마존의 숲속에서 풍요롭게 살아왔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중략) 이야기중에 "숲은 우리의 대학이다. 우리는 숲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 숲은 우리의 병원이다. 숲에서 우리는 병을 고친다. 숲은 우리의 약국이다. 숲이 우리에게 약을 제공한다. 숲은 우리의 거주지다. 다시 말하면 숲은 우리의 전부다. 우리들 자신은 숲에게 전부가 아니지만 숲은 우리들에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감동적이었다.-99쪽

첫째, 대지나 물 그 어느것도 인간만의 소유가 아니다. 둘째, 인간 내부의 문제에 한정해서 말하더라도 여러 민족들의 생태적 지위에 따른 고유한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적인 독립정신의 바람직한 존재형태로 생각된다.-101쪽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생물이 생겨났으며 그 한 구석에 인간이 있다는 감각, 그것이 중요하다.-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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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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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에의 예속'은 안락 상실에 대한 불안에 몰린 일종의 '능동적 니힐리즘'이었다. 억제심을 상실한 '안락' 추구에 대한 그러한 불안은 가까운 곳에서 안락을 보호해줄 자, 즉 이익보호자를 찾게 만든다. 회사에 대한 의존과 과잉충성, 모든 크고 작은 유력조직에 대한 이기적인 귀속심, 이것과 같은 계열선상에서의 국가에 대한 의존감각, 이러한 것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 강화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현상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는, 예를 들에 회사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도 불안에 가득 찬 자기 안락 추구가 모습을 바꾼 형태에 불과하므로 거기에는 타인과의 격심한 경쟁이나 아무런 억제심도 없이 타인을 걷어차 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로서 포함되어 있다.-43쪽

어느쪽이나 그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주의자' 집단 내부에는 통속적이고 사회적인 편견을 비교적 많이 내포하고 있는 부분과 적은 부분이 있었다. 집단적 형태의 것들은 그런 부분이 불가피하게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질이 높은 이데올로기라 해도 신봉자집단이 있는 한 이른바 쓰레기 같은 부분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무릇 종교에도 '완전히 순수한 크리스트교'나 '완전히 순수한 불교'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적 대표자나 창시자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완전히 순수한 이데올로기'는 사회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61쪽

'시장경제 사회' 속에서는 '생산'이라는 개념이 마구 사용되면서도 의심받는 일조차 없는 듯이 보이는데, 예컨대 '철강생산'이라고 할 때 누가 정말로 철강을 창조해낸단 말인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는 암석을 캐내어 거기서 쇠 부분을 녹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은 불가역적이어서 철제품이 무용지물 또는 무효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암석 속으로 되돌려보내어 다시 철광석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 이와같이 원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추출과정을 일반적으로 '생산'이라 부른다. 그것은 용어로서도 적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말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으면 인간이 하는 일을 신이 하는 일인 양 숭배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와같은 불손함은 현대의 독특한 최신 최강의 '야만'이다. / 이점을 생각하면 '생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경제이론 속에서 성립될 수 있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오늘날 모든 문화영역에서 그와같은 기초 '범주'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불가사의이다. 현재의 학문적 정체현상의 원인의 하나가 이 언저리에 있는지도 모른다.-73쪽

'부분'은 어느 것이나 '부분'이며 있을 수 있는 차이는 '더 중요한 부분'이라든가 '좀더 먼저 있었던 부분'과 같은 상대적인 차이뿐이다. 따라서 '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전체 그 자체다'라고 할 수 있는 특권적인 부분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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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1-1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끊임없이 님에게 밑줄을 긋게 만드는 책이니 반드시 읽어야겠어요. 살면서 지침이 되는 책을 만나는 건 참 경박하지 않은 진중한 기쁨이에요..^^ 추천 하나 하고 보관함에 우선 넣고..

숨은아이 2004-11-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고맙습니다! 어휴, 이제야 마쳤어요. 지금까지 읽은 중에(별로 읽은 것도 없지만) 가장 인상 깊은 사유책이라, 밑줄 그은 게 많네요. ^^ 그런데 일본어 원서를 거의 직역한 책이라 문장이 좀... 번잡하지요?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후지따 쇼오조오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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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성숙이 어려운 사회상황이 되어 있다. 온몸이 통째로 소속되는 보육기관이 계단처럼 쌓아올려진 형태로 사회기구가 만들어져 있어서 성숙의 모태인 자유로운 경험은 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보육기로부터 다른 보육기로 옮겨질 때에는 지나치게 격렬한 경쟁시험이 부여되어 있는데, 그 '시험'은 관료기구의 특징인 문서주의 원칙에 따라서 미리 서식이 정해진 필기시험이기 때문에 특정한 일면의 능력만을 묻는다.-18쪽

그들 보육기 속에서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지나칠 정도로 일하고 지나칠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직 그 캡슐 속에 들어가 있음으로써만 비로소 작은 안정과 작은 풍요가 보장되도록 되어 있으므로, 근로나 고생의 유무와 상관없이 정신세계에서는 사회기관의 대부분이 보육기화되어 있다. 현대의 압도적인 '중류의식'은 아마도 이러한 보육기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18-19쪽

사물은 원래 사람 쪽의 자의적인 의도를 넘어선 독립적인 타자이기 때문에 물건이라든가 일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불리며 그것과의 만남과 교섭을 통해 우리들은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인데, 현대의 '선험주의'는 사물의 그러한 타자성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나타나는 문제는 모두 사전에 완전히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물건이나 일에 대한 가공할 만한 전체주의!)이므로 그러한 의식의 틀 내에서는 사물과의 사이에 경이에 찬 그리고 고통을 수반하는 상호교섭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20쪽

모든 생활자료를 대량생산 대량유통의 거대 체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에는 '고래 뱃속에' 꼴깍 삼켜져버린 상태라는 점을 (후략).-28쪽

거기서는 세계는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물(物)이 아니라 오로지 소비되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될 때까지만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가상물에 지나지 않게 된다. (중략) 물건 목록으로까지 폄하되어버린 세계다.-31쪽

안락에의 예속 (후략).-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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