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정숙하지 못한 여자를 가리키는 “화냥년”이란 말은
환향녀(還鄕女)에서 왔다고들 한다.
전에 내가 듣기로도 고려 시대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라 했던 데서 나온 말이라고 했고,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에서는 고려 시대가 아니라
조선 시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던 여자를 가리키던 말이라고 한다.
고등학교 때인가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만약 여성이 약하고 순결해야 하는 존재라면
남자들은 그 여성들을 지킬 의무가 있지 않은가,
지켜주지도 못했으면서 피해자인 여성에게 “정숙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는가,
자신들이 지켜주지 못한 걸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나 분하게 여겼다.
그 뒤 생각이 바뀌어,
여성은 약하고 순결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도,
그래서 남성이 여성을 지킬 의무가 없더라도,
지배층의 권력다툼 때문에 전쟁이 나면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 극에 달하므로,
성폭력 피해를 예방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집단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야비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 21세기 세종계획의 일환으로 연구, 배포한
“2003 한민족 언어 정보화” CD에 국어 어휘의 역사 프로그램이 있어
이 말을 검색해 보았더니, 화냥년은 환향녀가 아니라 “화낭”에서 나온 말이란다.
품사 명사
현대 뜻풀이 화냥년
관련 한자어 화낭(花娘)
종합 설명
중국에서는 송대 <남촌철경록(南村綴耕錄)> 권14에 “창부왈화낭(娼婦曰花娘).”이라 하여 기녀를 ‘화낭(花娘)’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예문은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와 <금병매(金甁梅)>에도 나오는데 예문은 다음과 같다.
“正寅又想道: ‘這花娘吃不得這一棍子.’” <初刻 31>
“這花娘遂羞訕滿面而回.” <金甁 12>
‘화낭(花娘)’이 창녀의 뜻이었음을 지봉(芝峰)은 이미 알고 있었고, 조수삼(趙秀三)의 <송남잡식(松南雜識)>에도 그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에서 ‘화냥’이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 17세기 역학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1677)에서였다. 여기서는 중국어 ‘양한養漢’을 ‘화냥년’으로 풀었다. 이는 ‘화낭(花娘)’을 중국어 발음을 차용하여 ‘화냥(huning)’으로 읽은 것이다. 참고로 ‘양한’이란 여자가 남자와 눈이 맞아 혼외정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 역학서에는 ‘관가인(慣嫁人)’ ‘양한적(養漢的)’ 등을 ‘화냥이’로 옮겼으며 19세기에는 우리말 한자어로 읽은 듯 ‘화낭’ 또는 ‘화랑’ 등으로 읽고 있다. 특히 중국 통속소설 <홍루몽> 번역본에는 ‘우령(優伶)’을 ‘화랑’으로 옮겼다.
민간 어원은 때로 그럴듯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민간 어원을 보면,
그 시대에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상식이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
화냥년이 환향녀에서 왔다는 풀이가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상식에 비추어 가히 그럼 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