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도피 여행이기도 했지만, 사실 늘어져서 책과 영화를 벗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고 먹고 하느라 생각만큼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집중해서 보니까 아주 좋았다.



조국교수. 그리고 오연호기자. 그 둘의 만남은 절묘했다. 조국교수는 누가 봐도 엄친아라서 잘 생기고 키크고 멋지고 서울대법대 교수에 똑똑하고...그런데 그 무엇보다 그 생각들의 진보성향이 아주 좋았다. 생각보다 직선적인 부분도 있었고 생각의 방향에 일관성이 엿보여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다음 2012년 혹은 2017년의 대선을 준비하자는 이야기. 진보 개혁성향의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20대와 30대와 40대가 각각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집결하고 흩어져있는 정치인들의 힘을 모으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때의 실패담이 있다면 그것을 온고지신으로 삼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 아주 감명깊었다. 이 사람의 권력의지가 이대로 가기를.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이렇게 정치인을 떠받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주기를 강렬히 바라게 되었고. 학문하는 사람이 누구나 다 정치인이 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제발 진흙탕 속에 빠지지 말고 제대로 끝까지 한번 그 사상적 토대를 굳건히 해나가길 바래본다.


교고쿠 나츠히코의 책, 웃는 이에몬, 이전의 책들에 비해 훨씬 말랑말랑해진 책이었다. 실제 있는 전설을 나름대로 각색했는데, 아름답게 각색했다고나 할까. 처연하게 묘사했다고나 할까. 암튼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마음이 많이 아파지는 글이다. 이전에 나왔던 요괴들은 간 곳없고 좀더 현실감 넘치는 사람들로 차 있는 책이기도 하고.










지금 읽고 있다. 아마 여기에서 반 정도 읽고 내일 올라가게 될 것 같다. 조지 오웰. 역자가 선택한 29편의 에세이들. 조지 오웰이 에세이에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그렇게나 험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의 사회주의적인 경향, 권위에 대한 저항심 등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음을. 그리고 앞의 몇 개의 에세이만 보아도 그의 글의 예민함과 단순하면서도 강렬함이 느껴진다. 에세이의 장점은 작가의 개인적인 감성들이나 경험들이 그대로 묻어난다는 것이고 그래서 잘못 쓰면 굉장히 저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조지 오웰의 글은 하나하나가 아주 주옥같다.  

 

 


이 영화는 도대체 몇 번이나 봤을까. 아마 개봉할 때 극장에서 본 이후로 dvd 사서 적어도 크리스마스 때에는 한번씩 봤던 것 같다. 이번에도 여행 오는데 dvd를 챙기면서 이걸 빠뜨릴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봐도 새로 본 듯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영화가 흔한 게 아니니까. 역시나 보면서 아아..뭉클해 너무 좋아...이런 영화 어떻게 만들지? 막 이렇게 된다는 게지. 사랑에는 참 여러가지가 있다. 부부의 사랑, 피 하나 안 섞인 새아빠와 자식간의 사랑, 친구의 아내에 대한 사랑, 혹은 중년 남자에게 다가오는 불륜스러운 사랑, 수십년간의 동지에 대한 사랑, 오빠에 대한 사랑....사랑은 참으로 많은 양태를 가지지만 그 힘은 놀라운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 참으로 담담하게 그런 것들을 그려내고 있어서 사는 게 뭔가 허무하다가도 괜한 힘을 얻게 된다.




1973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의 작품이다. 알파치노와 진해크먼이 나온다. 이 영화 선전할 때 알파치노의 허수아비라고 선전하지만, 난 사실 진해크먼 때문에 이 영화를 기억한다. 40년쯤 전의 영화이지만, 인생의 변방에 머물게 된 두 남자의 로드무비가 인상깊게 펼쳐진다. 거칠고 단순하고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세차장 차린다고 허세를 부리는 맥스(진해크먼)과 여자와 사귀다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 무서워 배를 타버리긴 했지만, 그 여자에게 계속 돈을 부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이제 램프 선물을 사들고 찾아가고 있는 프란시스(알파치노)는 우연히 어느 길에서 만나 함께 여정을 하게 된다. 둘은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서로의 인생을 이해하게 되고 변화하게 되고. 마지막에 진해크먼이 울며 얘기하는 부분은 늘 감동이다. 그리고, 중간 부분. 폭력을 휘두르려다 말고 웃음으로 무마하는 진해크먼이 허수아비 춤을 추는 부분..그 모습을 처음에 막 웃으며 보다가 나중엔 안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알파치노...그 장면은 절대 잊지 못할 장면이다. 다시 봐도 마음에 깊이 박히는. 이래서 칸느에서 상도 주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알파치노와 진해크먼 같은 배우들은, 이래서 명배우라고 하는구나. 하는.  


이 좋은 책들과 영화를 벗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삼일이었다. 내겐 책과 영화가 늘 큰 위안인데, 요즘 힘들다고 그걸 잠시 잊었었나 보다. 그래. 이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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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12-22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수아비는 아주 가끔 EBS에 주말에 편성되곤 합니다...^^

비연 2010-12-22 13:21   좋아요 0 | URL
아. EBS에서도 하는군요. 요즘엔 tv로는 영화를 잘 안 보게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