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수영을 시작했다. 시작했다고 말하기에도 뭣한 게 한 번 갔다. (죄송) 하지만 8월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첫 걸음을 제대로 떼었다고 할 수 있다. (흠흠) 예전에도 수영을 여러 차례 시도해보았었지만, 늘 잘 뜨지도 않고 호흡도 안 되고 물만 먹고 힘들고 괴롭고... 그래서 포기하곤 했었다. 그러니까 수 차례의 시도 끝에 남은 건... '왕초보' 라는 타이틀 뿐이라는 분하기까지 한 결말이다 이거다. 그래서 이번에 시작할 때는 적쟎이 고민을 했었는데 아 나이들어 건강에 도움이 될 운동은 (내가 생각하기에) 요가와 수영이야. 라는 절박한 마음에 수영복이랑 수경이랑 수모를 사고 심지어 수영가방까지 사면서 결심을 굳혔다. 돈을 썼으니 적어도 시작을 하겠지 싶어서. 막상 가보니, 초초초초초보라고 얕은 물에서 (발이 닿는!) 어푸어푸만 시켜서 두려움이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전과는 좀 다르게 시원하다, 스트레스가 풀리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이 먹어 뻔뻔해져서인가. 어쨌든 잘 시도한 거야 스스로에게 가득 칭찬을 퍼부으며 첫 수업을 잘(?) 마쳤다.

 

이 책을 펴면서, 나도 '수영하는 여자' 라는 자각을 가졌더랬다. 수영하는 여자가 어쨌다는 건가. 라고 궁금해하면서. 그런데 알고보니 원제는 'The Lido'. 그러니까 영국 브릭스턴이라는 곳에 있는 야외수영장을 둘러싼 이야기였다. 수지가 안 맞는다고 폐쇄하고 파라다이스 리빙이라는 거대기업이 여길 다 메꾸어 테니스장을 만든 후 회원제로 운영하겠다 라는 이야기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에, 케이트와 로즈메리가 있다.

 

그 거리 건너편에서 케이트는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케이트의 직업은 <브릭서튼 크로니클>의 기자이다. 지금 그녀는 채소들을 살펴볼 여유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저 뭘 살펴봐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봄이라 해도 케이트의 머리 위에는 구름이 끼어 있다. 그 구름은 그녀가 어딜 가든 따라붙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사람들을 헤치고 계속 걷는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케이트에게 침대는 일이 없는 날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거리 위의 그녀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어떻게든 떨쳐내려 한다. 그 소리에 휩싸여 짓눌리지 않으려 애쓴다.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닥만 쳐다본다. - p8~9

 

케이트는 대학원을 나오고 지역신문의 기자로 일하는 20대 젊은이이다. 런던에 나와 공부하면서 위축감과 공황발작이 생겨버렸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어려움마저 느끼게 되면서 외롭게 시간을 때우는 청춘이다. 신문사에서도 반려동물 이야기를 쓰면서 원래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게 뭐인지도 가물가물한 상태이다. 온종일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산다.

 

로즈메리는 거의 평생을 이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곳으로 함께 이사한 사람은 남편 조지였다. 당시 이 아파트는 막 새로 지어진 건물이었고 로즈메리와 조지 커플도 막 결혼식을 올린 참이었다. 현관은 거실로 곧장 연결된다. 거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른편 벽을 가득 메운 책장이다. ... (중략) ... 로즈메리의 집 발코니와 가까운 공원 가장자리에는 붉은 벽돌로 된 나지막한 건물이 완벽한 푸른색 사각형으이 물을 감싸고 있다. 레인을 표시하는 로프들이 줄무늬처럼 나 있는 수영장이다. 수영장 테크에 띄엄띄엄 깔린 수건들도 보인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꽃잎처럼 물 위에 떠 있다. 로즈메리에게도 익숙한 공간이다. 그곳은 리도, 로즈메리의 리도이다 - p12~13

 

로즈메리는 86살의 노부인으로, 평생 이곳을 벗어난 일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따뜻한 교감을 나누고 무엇보다 살아오는 내내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리도를 사랑한다. 64년을 함께 했던 남편 조지를 2년 전에 하늘나라로 보내고 나서도 수영장에 와서 수영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동네가 다 변해도 리도만큼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리도를 없앤다는 소문이 들린다. 참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케이트와 로즈메리는 만난다. 처음으로 기사다운 기사를 쓰겠다는 설레임을 안은, 하지만 사람과 만나서 얘기하는 걸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케이트와 기자에 대한 불신이 있는 로즈메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떤 관계가 될 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로즈메리가 "인터뷰할게요, 당신이 수영을 하겠다고 한다면." 이란 말을 던지면서부터 케이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로즈메리의 인생도 달라지게 된다. 이런 관계.. 아 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어린 관계. 그렇게 수영장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지게 된다.

 

로즈메리에게 있어서 리도는, 전부다. 수영을 사랑했고 남편 조지와 함께 하는 수영을 더욱 사랑했다. 아무도 없는 수영장 담을 넘어와 함께 수영을 하고 첫 경험을 한 것도, 어디 피서갈 것도 없이 일상적으로 가서 물 속에 몸을 맡기는 생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편을 바라보며 행복해한 것도, 전부 리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로즈메리의 직장이었던 도서관이 없어졌을 때는 힘없이 그냥 그렇게 무너졌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다.

 

로즈메리 주변의,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따뜻한지. 작은 서점을 운영하는 프랭크와 저메인. 게이 커플이고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는 두 남자. 수영장을 지키는 제프, 거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시험을 준비하는 아메드. 청과물 가판대를 운영하는, 로즈메리가 자주 들러 야채랑을 사는 곳의 주인인 엘리스, 그리고 그의 아들 제이크. 로즈메리의 어릴 적 친구인 베티. 도서관에서 함께 근무했던, 주 1회 만나 커피 마시는 친구인 호프. 다들 로즈메리를 사랑하고, 리도에 얽힌 추억들을 사랑한다. 케이트에게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따뜻한 사람들 투성이다. 같은 신문사의 필과 제이. 늘 케이트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홍보전문가 언니 에린. 이들이 리도라는 야외 수영장을 중심으로 하나 되고, 서로의 인생을 받쳐주는 모습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케이트는 달라진다. 움츠러들었던 어깨를 펴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맹렬히 돌진하고, 서툴렀던 감정표현도 하고, 숨겨두었던 공황장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인생이란 이래서 지낼 만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치 잘 살게 된다. 이 중심에 로즈메리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리도를 위해 열심을 다 하는 케이트와 로즈메리,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인생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이다. 그래서 읽는 내내 참, 좋았다.

 

제이는 케이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사무실 계단에서 그를 스쳐가거나 길 건너편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던 예전의 그녀 모습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다른 모습인지. 사랑스러운 모습이야 똑같지만 지금은 꼭 그녀 안에 불이 켜진 것만 같다. 제이는 빛나는 케이트의 온기를 느끼며 서 있다. - p327

 

이 책의 마지막은 감동이다. 로즈메리와 케이트 다운 결론이라고나 할까. 슬픔보다는 다정함과 즐거움이 함께 하는 마무리였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아 나도 수영 시작하기 잘 했어. 라고 갑자기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서 로즈메리 같은 분을 만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도 해방감을 느끼고 나를 찾는 과정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희망감이 생긴다.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다가온 소설이었다.

 

"리도에는 너무나 많은 우리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바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곳은 그들의 여름이며 자유입니다. 부모들에게 그곳은 아이가 처음으로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제 아이가 날아오를 수 있게 보내주어야 하는 순간들이 담긴 추억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저에게 그곳은 제 삶입니다." - p167

 

추억은, 머릿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장소들, 물건들 하나하나에 배여 있게 마련이다. 평생을 잊지 않고 찾는 곳이나, 평생을 두고 가까이 하는 물건들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대상 이상의 것임을... 기억한다.

 

*  이 리뷰는 구픽에서 책을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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