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퇴근을 하는데 정말이지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서 이 몸이 (심지어!) 날아가는 줄 알았다. 여기저기 나무가 뚝뚝 꺽이기도 하고... 정말 이 정도면 버스도 날아가겠어 라는 심정으로 옷을 여미고 굳건히 걸어야 했다. 도대체 날씨가 왜 이런 것이냐. 4월인데도 손이 시리게 춥지를 않나 (이게 꽃샘추위?) 갑자기 바람이 확확 불어대질 않나.

 

아침에 출근한다고 현관을 나서면서 엄마한테

"아 정말, 어제 바람 넘 불어서 짜증 엄청 났었어." 라며 투덜거렸더니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러게. 이맘때면 꼭 그렇게 바람이 불어서 꽃들을 기어이 떨어뜨리는구나."

 

흠? 순간 놀랐다. 이 짜증많고 까칠한 딸은 바람 분다고 육두문자(ㅜ) 쓰면서 욕을 하고 다음날 아침까지 그 짜증을 못 버리고 있는데 엄마는 그 바람이 봄꽃을 떨어뜨린다고 말씀하시다니... 우리 엄마, 너무 시적이시다. 어떨 때 보면 우리 엄마가 문학 공부를 해서 글을 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고 이미 훤해진 (요즘은 새벽 6시에도 훤하다) 길을 걸으며 나무들을 바라보니 아.. 정말 꽃이 많이 떨어졌고 그 위에 잎새들이 달리고 있었다. 봄이.. 지나가고 있구나....

 

그렇게 바람을 뚫고 삼성역 어느 인근에서 만난 사람들은 십 몇년 전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지인들이었다. 간간히 연락하긴 했지만 만나기는 참 오랜만인 분들이었다. 여전한 모습.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들은 언제 봐도 느낌이 그냥 그리움, 친숙함인 것 같다. 그 당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 근황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웃고 떠들고... 사람 사는 게 참... 알 수 없다 라는 생각도 하면서 앞으로의 인생도 알 수 없어 그런 생각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때 그 직장의 사람들은 참 우수한 사람들이었고 개성이 뚜렷했었다. 대부분이 바라바라 다른 데 가서 근무하고 있고 몇몇은 몇 번이나 직장을 옮겼고 또 어떤 사람은 지리산에 도를 닦으러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조기 퇴사를 해서 사업 비스므레한 걸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40 넘어 박사 받아 학교로 가기도 하고.... 얘기해보니 다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일면 안심이기도 했다. 안심. 내가 알던 사람들이 별탈없이 안녕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대한 괜한 안도감.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예전 사람들 소식도 많이 궁금해지고 (할머니냐..ㅜ) 앞으로 제 2의 인생에서는 이들과 가끔씩으 교류하며 지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쭈욱 가는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왠지 그 때 그 사람들이랑은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때 다들 나이대가 비슷비슷해서, 저녁마다 자주 모였더랬다. 우리 아지트도 있어서 늦게 끝나고 가도 거의 매일 거기 사람들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는 잘 기억 안 나지만, 어느 날은 기억이 난다. 김광석의 '그날들'이라는 크게 틀고 (그 날 그 아지트에 우리 밖에 없었다) 같이 부르던 날. 또 어느 날도 기억 난다. 데낄라 시켜놓고 보드게임 같은 거 돌아가며 하면서 (칼 꽂다가 어느 순간 인형이 튀어오르는 그런 거) 걸리는 사람한테 술 먹이며 깔깔거리던 날. 또 어느 날도 기억나네. 술을 한껏 마시고 나왔는데 그 중 한 명이 거스름돈 받아 나온 지폐를 하늘에 막 던지던 그 날... 어제 만나고 오면서 이런 저런 날들에 대한 기억으로 뭉클해졌었다. 물론 세찬 바람과 비에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걷는라 지금처럼 부드러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 따뜻했다.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시간을 어느 이상 같이 보내는 사람들은 대충 어느 정도나 될까. 하는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내 곁에 두고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싫어도 만나지는 사람들은 몇 명 안되겠지... 그 사람들이 누구냐가 내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일 테고. 그 안에는 가족도 포함일테고... 그래서 가족이 제일 중요한 지도 모르겠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대상은 대부분 가족일 것이니... 지금 내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얼마나 자주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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