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황문성 사진 / 비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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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도서관에서 정호승시인 강연회가 열렸다. 시인은 강연시간보다 2시간 먼저 도착해 직원 몇명과 함께 식사하고, 햇살 좋은 카페에서 차도 마시는 여유를 가졌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데 시인에게서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나이듦의 아름다움, 고요한 마음으로 관조하는 여유로움을 느꼈다.

 

행사는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강의 주제는 '10대에게 힘이 되어주는 한마디' 였다. 10년 뒤에 내가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지금 항상 생각하라, 인생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된다,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어라는 내용이다. 시인의 시와 노래가 어우러진 강연에 학생들은 감동하고 몰입했다. 같은 이야기를 부모가 말하면 잔소리가 되지만 시인의 말 한마디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도서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정호승 저, 비채)'는 시인의 강연 내용을 풀어 놓은 책이다. 시인의 산문 읽는 즐거움은 군더더기없는 간결함과 따뜻한 시선이다. 추천사에 남긴 이해인 수녀님의 글은 이 책을 대변한다. "세상을 끌어안는 따스한 마음, 현실을 깊이 통찰하고 재해석하는 예리한 시선, 탁월한 시적 표현으로 가득한 다양한 빛깔의 이야기는 읽는 이를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진솔하고 정직한 자기성찰,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랑을 다시 배우며 우리도 좀 더 올곧게 살고 싶은 갈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가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해 보라는 첫 제목은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와 작고 미미한 존재인 나를 대입하며 욕심을 버리라는 말을 한다. 눈앞의 사소한 일로 고민할 때 우주와 지구의 크기를, 나의 존재를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마음만은 우주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품자. 견딤이 있어야 귀하게 쓰이는 결과를 가져오고, 지금 이 시간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 중에 가장 젊은 시간이라는 말도 와 닿는다. 고등학교 3학년인 내 아이는 요즘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 책에 나온 진주를 품은 조개이야기를 들려주며 상처와 고통을 인내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진주가 만들어진다고 위로했다. 천국을 맛보기 위해서는 네가지 양념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들어온 '단순함, 절제, 소박함, 작은 것에 만족함' 이다. 종교를 떠나 현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기억하면 좋을 구절이다.

 

76개의 글 제목이 각각 한 편의 시다. '삼등은 괜찮지만 삼류는 안 된다,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인생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나만 뒤쳐지는 느낌일 때, 울고 싶은 마음일 때 책을 펼치면 위로가 된다. 우리집 서가 한 켠에는 내가 뽑은 '아름다운 책' 코너가 있다. 신영복의 담론,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안도현의 백석평전,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이 있다. 이 책도 포함해야겠다. 좋은 책 한 권은 삶의 멘토가 될 수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강연회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시인의 전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책을 한권씩 나눠줬다. 강연이 끝난뒤, 학생들은 여운이 있는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0여명의 학생들은 선생님의 사인을 받으려고 긴 줄을 섰다. 선생님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밝은 미소로 한명 한명 정성스러운 사인을 해주신다. 내가 받았던 감동 이상으로 학생들도 감동했으면 좋겠다. 지칠 때 펼쳐보면서 힘을,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다음 강연회는 큰별샘 최태성선생님이다. 학교에 공문을 보냈는데 150명 접수에 당일 선착순 마감되었다. 도서관이 단순히 개인 책을 가져와 공부하는 곳이 아닌, 좋은 작가를, 좋은 책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으면 좋겠다.     

 

젊은 느티나무에게 고백함 / 정호승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젊은 느티나무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아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무량수전 무거운 기와지붕을

열여섯개 배흘림기둥이 받치고 선 까닭이

천 년 전

느티나무가 사랑했던 모란 때문임을

늦어도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오늘 홀로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느티나무 무늬로 남은 모란꽃을 쓰다듬어봅니다

오늘부터 다시 천 년 동안

무량수전 열일곱 번째 배흘림 기둥이 되어

당신을 받치고 서 있겠습니다

 

 

봄  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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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5-07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 강연회를 하셨군요. 청소년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었을 듯~ 멋져요!♥

순오기 2017-05-07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광주 강연에서 조근조근 하시는 말씀에 인품이 묻어나듯 잔잔한 감동을 받았어요! ^^

세실 2017-05-07 15: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조근조근, 따스한 미소.....여운이 있는 분이세요.
학생들이 많이 좋아했고, 많이 행복해했어요. 덕분에 보람도 있었구요^^
편안한 오후되세요!

yureka01 2017-05-07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하는 시인중에 한분이랍니다.^^

세실 2017-05-07 15:19   좋아요 0 | URL
만인의 연인 같은....
가까이서 뵈니 더 좋아지는 시인입니다.
아련한 추억도 떠올리게 하는....ㅎㅎ

단발머리 2017-05-08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강의가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일텐데... 정호승 시인님의 따뜻한 마음이 학생들에게 잘 전해졌나봐요~~~ ㅎㅎㅎㅎ

세실 2017-05-10 22:16   좋아요 0 | URL
그쵸? 시인님이 아이들 속으로 쏙.....마치 아이돌 가수를 대하듯 반응이 뜨거웠답니다.
요즘 도서관 인기가 많아졌어요. 기분 좋은 현상이죠.ㅎㅎㅎ

페크pek0501 2017-05-13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오디오북으로 들었어요. 위의 책도 형식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둘 다 제목이 참 좋죠?

세실 2017-05-18 22:34   좋아요 1 | URL
이런 댓글을 이리 늦게 답니다~~
네 두 책이 먼저 나오고 늦게 나오고의 차이랍니다. 힘이 되어준 한마디가 좀더 임팩트 있어요.
쉬우면서 간결하고, 기억하면 좋을 구절들이 많아요.
힘들때 꺼내보면 좋을.....
환절기 잘 지내시지요?

펠릭스 2017-06-04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세실 2017-06-04 20: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 글도 잘 읽었습니다. 내공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