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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아침에 일어나면 물 한 컵 들고 손바닥만한 베란다로 나가 화분을 들여다본다. 여름내 피고 지던 빨간 시클라멘, 작은 알멩이같은 초록잎이 몽글몽글 달려 있는 타라, 한겨울 추위도 견뎌낸 강인한 아이비 넝쿨, 비 오던 날 인심좋은 커피숍 사장님한테 얻어온 커피나무, 좀처럼 꽃을 보여주지 않는 고고한 군자란, 이제 조금씩 주홍빛을 보이는 부를 가져다 준다는 남천, 선물받은 난화분, 다육이들.....몇년이 지나도 한결같이 초록의 싱그러움을 보여주는 그들은 이미 나의 친구다. 
그리고 알라딘 지인의 표현처럼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을때 삶이 무료하거나 권태로울 시간도 없이 늘 아쉬움에 목이 마른다. 선물중에 알라딘 박스가 가장 반가운 것을 보면 책 읽는 것도, 쌓아두는 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이 책은 <데미안>, <유리알 유희> <수레바퀴 아래서>로 우리에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에세이이다. 제목과 저자만 보고는 동명이인이라 생각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책과 자연, 혼자있는 시간을 즐기는 그의 삶은 여유와 고요가 흐른다. 얼마전 잠깐 고구마를 캐고는 마치 고구마를 심을때부터 참여한 듯한 생각으로 밭을 가꿀까 했던 마음에 웃음이 난다.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은 여름목련나무 예찬이다. 목련에 대해 이렇게 섬세하고 자세한 묘사는 마치 목련을 옆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는 실제 정원사처럼 하루의 일상을 조근조근 들려준다. 자신의 방에서 바라본 정원의 풍경은 단순한 식물의 개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소중한 친구이고 이웃이다.

 

소설가인 그는 그림에도 탁월한 재주가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집과 주변 풍경, 목련꽃, 나무, 백일홍 꽃다발, 정원등을 수채화로 그린 삽화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나에게 감명 깊은 세 권의 책을 꼽으라면, 그 안에 이 책이 있다."고 말한 법정스님이 그리운 밤이다.  

 

가장 좋은 교제상대를 들자면 내 작은 아파트 방 벽 책꽂이를 가득 채운 많은 책이다. 그것들은 내가 깨어 있을때나 잠이 들었을 때, 식사할 때나 일할 때, 날이 좋거나 궂거나 가리지 않고 나와 함께 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친근한 얼굴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함께 있으면 마치 고향 지에 있는듯한 기분 좋은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중략)

내 방에서 바라본 풍경들, 정원의 테라스와 덤불 숲, 그리고 나무들은 내가 앉아 있는 방과 그 안의 사물들보다 더 가까이 내 삶에 속해 있다. 그것들이야말로 진정한 내 친구들이고 내 이웃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그들은 나를 지탱해주는 믿을 만한 존재이다.

                                                                      p. 128-129

 

우물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비롯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탄하고, 베일에 감춰진 삶의 마지막 비밀에 경외심을 갖게 되는 이 길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 이 한밤중의 시간에 더 인내심을 가지며 주의 깊고 진지해진다.

이런 식으로 잠 못 이루는 모든 사람은 분명 힘겨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가치를 얻는다. 나는 그들이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인내심을 갖고 가능하면 치유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경솔하게 살아가면서 건강을 자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실오라기 같은 졸음도 느끼지 못한 채 다만 누워서 내면의 삶을 나무라듯, 겉으로 드러내는 밤을 보내는 날이 언젠가 한번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p. 41

 

여름이 한창이다. 벌써 몇 주 전부터 커다란 여름목련나무가 내 방 창문 앞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아수엉이다. 언뜻 보기에는 느긋하고 무관심하고 느린 듯하지만, 사실은 다급하면서도 흥청거리듯 풍성하게 꽃을 피워댄다. 눈처럼 하얗고 커다른 꽃받침 가운데에는 늘 몇 개 안되는, 많아야 여덟 개 내지 열 개밖에 안되는 꽃잎이 동시에 피어난다. 나무에는 약 두달간 꽃이 핀다. 그동안 꽃들은 항상 같은 크기로 피어 있는 듯 보이는 이 멋지고 커다란 꽃송이들은 피어나자마자 너무나 허무하게 지고 만다. 어느 것도 이틀 이상 버티는 꽃잎이 없다.

 

                                                                        p. 53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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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9-26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 님, 저는 오래전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어요.
옛날 생각 나네요. 수레바퀴~의 주인공 소년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가 느낀 고독을 사랑했죠.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그 소년을 만나기 위해서...

이 에세이는 감성적일 것 같아 저처럼 드라이한 글을 쓰는 사람한테 꼭 필요한 책일 듯해요.ㅋ
하지만 저도 아파트 베란다에 화초 많이 배열하고 테이블도 놓고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곤 했던 촉촉한? 적도 있는 사람이에요. 화초 감상을 즐겼죠.
지금 사는 이 집은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집이라 베란다가 없어서
화초의 수를 줄여서 실내에 들여 놓았죠. 아쉽게도...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멋진 정원을 꾸며 놓고 살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찜합니다. ^^

비밀 댓글 : 아, 세실 님은 부지런하시다. 매일 출퇴근하시면서 이렇게 리뷰를 올리시다니...
(아, 이 댓글이 첫 댓글이 될 것 같아 기분 좋아요.ㅋ)

세실 2013-10-01 17:31   좋아요 0 | URL
러블리 페크님^^
이제 축제가 끝나고 조금 여유로워 졌습니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를 즐기며 내일 떠날 제주도 여행지 계획하고 있답니다. 지난 겨울에 다녀오지 못한 우도에 가려구요.

전 데미안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를 읽으며 마음을 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때 베란다에 꽃이 즐비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은 초록만 가득합니다. 꽃이 피지 않아요. ㅠㅠ

이 책 구입하지 않으셨으면 보내드릴게요^^
비밀 댓글로 주소 남겨 주세요. 책 표지에 제 이름 적혀 있어도 괜찮으시죠? 느낌 아니까~~~~~

페크pek0501 2013-10-04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우도에 간 적이 있는데 바닷물 빛깔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죠.

책을 보내 주시다니... ㅋㅋ 횡재한 느낌이네요.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주소는... 비밀댓글로...
(물론 낙서가 있어도 괜찮아요. 아예 사인해 주세요.)

2013-10-04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13-10-05 11:21   좋아요 0 | URL
우도 바다는 참 이국적인 풍경이죠. 어쩜 그리도 투명하고 고운지..... 한참을 들여다 봤습니다.
제주에서 한달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도에서도 한 이틀쯤 살고~~~~
오케이! 헌책이...랑 정원에서....두권 보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