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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책 선물을 즐긴다. 최근에는 지인의 발령을 축하하며 <하워즈의 선물>같은 자기개발서나 베스트셀러를 선물하고, 군대간 조카의 인문학적 지식을 높이기 위해 <책은 도끼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나 카레니나>처럼 평소에 읽기 어려운 책을, 돌된 아기를 위해 <사과가 쿵> <누가 내머리에 똥 쌓어> 같은 리듬있는 그림책을 선물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주문하니 다소 딱딱한 워드 메모를 삽입하지만, 인터넷 서점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손글씨로 적다가 오자가 되면 하트를 그려 넣기도 하고 나뭇잎 모양으로 배경그림도 넣는 등 고민하면서 내용을 적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선물했던 책의 메모중 일부가 이렇게 책으로 나온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헌책방을 운영하는 저자가 책의 원주인이 쓴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주로 대학가 주변 서점에 있던 책들이기에 마치 비밀 일기장처럼 고독, 사랑, 인간관계, 삶, 철학에 대한 고민한 흔적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졸업하는 선배에게 수줍게 건넸을 시집 한 권.

책에 고이 담은 축하의 말 속에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던 한 사람의 마음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짐짓 명랑한 척 작별 인사를 하지만, 일부러 서점에 가서

찾아낸 시집이 <고통의 축제>다.

마음을 표현할 길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p. 35    

  '밥값으로 책을 사고는 이틀간 밥 안먹기 책 읽기 두렵지만 그래도 읽고 싶다'는 삐뚤삐뚤한 글을 쓴 가난한 대학생이 황지우의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를 구입하며 책에 적은 내용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막심 고리키 <어머니>등 가볍지 않은 책들이 주를 이룬다.

1996년 4월 15일 시작. 봄이다. 만물이 깨어나 생기를 얻고 있듯이 나도 그래야 한다. 봄의 화려한 자신감을 나도 닮고 싶다. 지금껏 봄처럼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하냐. 그늘, 뒷자리, 밑바닥만 찾아다니며 살아온 게다. 이젠 양지로 햇살로 나가 몸을 따숩게 해야지. 그동안 너무 추었다.

                                                                     p.86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서지는 못하고 그가 아르바이트했던 매장을 찾아 괜히 기웃거렸던 기억, 운동권 남자를 좋아했지만 먼발치에서만 바라 보았던 기억......그들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조차 건네지 못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취업 걱정으로 몸무게가 빠져 엄마에게 이끌려 한의원에 가서 한약 먹고 기운 차렸던 대학 4학년의 힘들었던 기억들....... 어디엔가 끄적거렸던 메모가 남아있겠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 책, 가을이랑 참 닮았다. 

모든 것에 서툴고 힘겨웠던 시절,

가장 남루했지만

가장 눈부시게 빛나던 그때,

 

그곳에 두고온 건 없었느냐고.

                                            p. 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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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9-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에 뭔가(제 느낌이나 생각을) 써 가면서 책을 보는지라, 이런 책이 당기는군요.
남의 비밀 일기장과도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겠군요.
책 내용이란 것도 알고 보면 참 다양한 것 같아요. ^^

세실 2013-09-09 08:32   좋아요 0 | URL
밑줄 쫙! 포스티잇 붙이기, 심지어 접기. ㅎㅎ
시대의 아픔도 느낄 수 있고, 책 내지에 적던 느낌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니......참신합니다^^

페크님 행복한, 즐거운 한주 되세요~~~~~~

순오기 2013-09-10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글들이 한 편의 시 같아요~~
나도 표지 안쪽에 끄적거렸던 것들을 모아 볼까요.^^

세실 2013-09-11 09:07   좋아요 0 | URL
굿모닝 오기언냐^^
그쵸. 깊이가 있는 글들이네요.
요즘 제 글이 자꾸 가벼워져서 고민입니다.
오기님 글 모아 모아서 책을 내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