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기다려 봐. 볼거야.
휙휙 채널을 돌려대는 옆지기를 툭툭 치며 정작 내가 보려고 했던 것은.
물론 잉글랜드와 독일의 16강전이 진심으로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중년의 알랭들롱을 연상시키는, 그 필드에서도 검은 가디건을 시크하게 받쳐 입고
검은 긴 앞머리를 흩날리며 작전지시를 하는 그 감독이었다.
평론이란 고루하고 깐깐한 훈장이
'웅혼하다', '유현하다' 같은 진부하고 어려운 한자어로
똑같은 얘기를 은근슬쩍 공그르기 하는
졸림을 유발하는 독백이라 생각했던 이들에게(나포함)
작품을 곱게 조물조물해서 그 결마다 배어 있는
작가의 숨결을 그러모아 우리의 진부하고 그날이 그날같은 삶의 여백에
하나하나 끼워넣어 다시 돌려주는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사려깊게 보여준 평론가 신형철의
<몰락의 에티카>를 읽다 칠백 페이지를 넘는 이 평론집의
매력에 취하여,
그러나 이윽고 그가 아직도 아내의 밥이 아닌,
어머니의 밥을 먹고 있다는 고백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는
그 응큼한 마음과도 통한다.
그렇다면
지독하게 예쁜 신입여직원의 프로필을 줄줄 읊던
그 유부남 직원에게
갸가 남친이 있답니다,라고
바람을 좀 빼주자
결혼할 남자는 아닐거야,라고
자위하는 그 모습에 경악했던
그 축축한 기억도
결국 그와 나는 오십 보, 백 보 차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나는 응큼한 여자였다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