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전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가 그대로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받고 다시 중앙분리대를 받는 순간까지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하지만 고속도로 한 중앙차선에 반대방향으로 서 있는 차 속에서 앉아있는 순간엔 정말 죽음이라는 것이 몇센티미터 곁에서 지켜보고 서 있는듯했다. 뒤에서 쫓아오던 차들은 바로 옆으로 빠져나가고 나서도 계속되는 차들의 엄습. 밤 12시에 가까운데다 차의 밧데리가 나갔는지 헤드라이트도 약해져가니 누군가가 우리차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정말... 

다행히 10분후 레카차가 왔다. 아저씨 왈 '이거 목숨걸고 하는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아예 도로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을걸요' 이런, 난 그 속에서 10분을 버티고 서 있었는데.

차는 폐차처리되고 친구와 난 응급실로 실려가 종합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외상은 없었지만 허리와 목 그리고 머리가 어제와 다름을 알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입원과 정밀검진, 퇴원.

살아있음에 감사하며(글쎄 이걸 누구에게 감사드려야 할지 병원에 누워서 한참을 생각했지만 해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젠 제 2의 인생, 한번 더 사는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연듯 든다.

하지만 

다시 회사로 출근하는 날.

난 여전히 똑같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것인가 보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마냥 발버둥쳐보지만, 그리고 혹 그 그물이 찢어져 다시 바다속으로 돌아갔을 때 물고기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헤엄치는 것 말고...

그러나 분명 무엇인가 달라져 있을게다. 바다는 그대로일지 모르나 내가 헤엄쳐 가려던 그 곳으로의 길이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작은 꿈틀거림을 느낀다. 그것이 큰 파동으로 다가와 파도를 일으키고 폭풍우를 몰고와 언젠가 나의 행로를 바꾸리라는 예감이 자꾸 든다. 다시 돌아온 바다는 예전보다 한결 투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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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2004-02-19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큰일날 뻔 하셨군요.
다행입니다.

gracina 2004-02-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돌아온 바다는 예전보다 한결 투명해보인다.'
이 말로 많은 것을 알 것만 같네요. 이 일을 뭐라할지...무척 힘드셨기에 돈 주고는 못 살 경험이라고 하기엔 (경험 없는 저로서는 건방진 말이나)그렇고. 삶을 보는 시각이 전과 달라지실 것 같아요. 이런 말 물어도 될지...사고 순간 어떤 것이 떠오르셨나요? 아니면 생각이나 이미지...실례의 말이라 생각 듭니다 _._ 인터뷰도 아니고. 죄송+궁금+다행

하루살이 2004-02-25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같은 것을 보면 죽음의 순간에 과거의 모든 영상들이 스쳐가던데, 저는 살려고 그랬던지 전혀 그런 영상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혹시 PAVV광고를 기억하시는지요, 자동차가 달리다 트럭과 부딪히기 전 미끄러지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장면을 실감나게 텔레비젼으로 보고 있는 그 광고 말입니다. 꼭 그것과 같았습니다. 눈속에 찍힌 광경이 생생하게 살아나고 나중에 차가 한바퀴 반 돌고나서 멈췄을때 저에게 다가오던 차들의 공포는 이틀정도 잠을 못자게 만들기도 했지요. 마치 공포영화를 찍은듯한 기분이었죠.

gracina 2004-02-2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스티븐 킹의 소설 속 장면같은걸요. 엄청난 일을 소설로 비유하여 죄송하지만 저 역시 한바퀴 반-한바퀴=반바퀴를 돌았던 기억은 생생합니다. 좁은 경사가 진 도로인데 살얼음 때문이었죠. 님처럼 사고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이제 죽었구나'뭐 이런 생각이 아니라 기분이 들었어요. 광고의 비유가 확 와 닿네요. 다시금 오싹하기도 하고 하여튼 우리모두 힘 냅시다. 힘! ^^ 답글 감사합니다~
 

가을, 도로위 나무 그림자는 심하게 흔들린다.

바람이 그리 심하게 불지 않는데 왜 그것은 그렇게도 거친 몸짓을 하는가

하늘을 쳐다본다.

가로등 옆 나뭇잎은 바싹 붙어있다.

조그만 움직임에도 그들 사이가 너무 가까운 탓에 그리도 크게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가깝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사소함마저도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고슴도치의 사랑마냥 우리는 그렇게 거리를 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휘청거리지 않고 서 있으려면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때론 우린 그렇게 휘청거리고 싶어하지 않은가? 마치 술에 취한듯이, 술에 취하고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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