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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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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문학관이라 어설프게 드러내기 두렵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동기는 권태에 있다. 시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장황한 묘사와 관찰 그리고 방대한 상상 등은 아무래도 권태롭지 않고서는 한 인간의 머릿속에 펼쳐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기는 그렇다 할지라도 그 결과물은 상반된다.

 

김중혁의 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일요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목의 소설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이 작가의 일상이 얼마나 권태로울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분주하거나 무엇엔가 열중하는 모습으로 위장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작가의 의식은 정말 권태로워서 이것저것 별 의미도 없는 것에 몰두하는 것만 같았다. 예컨대,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보이지도 않는 천장 위의 별들을 세는 것과 같은 행위다.

 

그런데 그런 권태로운 작업의 결과는 의외로 흥미롭다. 그래서 소설이 되기도 하겠지만. 김중혁의 소설은 아주 한가한 사람조차 너무 바빠서 당연히 놓치거나 관심조차 주지 않은 일상의 실오라기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문장이 무엇보다 특징적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소설가적인 문장이 어떻게 적합한지 아닌지는 다소의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어쨌든 김중혁의 소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수월하게 읽으면서 매순간마다 나를 부끄럽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용을 겪어야만 했다. 아무리 작가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상에 대해서 얼마나 생략과 무관심을 발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이 소설은 어떤 사람들이 죽은 후에 세상에 자신의 흔적들을 지워달라는 청탁과 그것을 맡아 하는 탐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사람들이 설마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반반의 공감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의 하나일 것이다. 죽으면 그만이지로 시작했다가 결국은 그럴 만도 하겠다로 끝나기를 작가는 의도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백퍼센트 수긍할 수는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소설이 준 흥미로운 취미가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주변의 평판에 신경을 곧추 세운다. 때로는 그것이 궁금하고, 두려워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민감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차마 생각지 못한 것이 내가 죽은 후에 비로소 숨겨져 있던 평판 혹은 비밀들이 까발려질 때의 당혹감이다. 살아있을 때라면 변명이나 혹은 거짓말이라도 해서 최소한 무마시키려는 노력이라도 해본다지만 죽은 후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죽었으니까 상관없을까?

 

오죽 심심하면 이런 발상을 했을까 싶기도 한 엉뚱한 일들을 쫓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어쨌든 읽기는 무척이나 수월한 소설이다. 약간은 추리소설 같기도 해서 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 기대하게 되는 촌스런 감동은 그다지 느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소설 혹은 문학이라는 그럴듯한 감흥보다는 마치 낯선 사람이 불현 듯이 내가 모르고 있는 내 일상의 문제를 툭 하고 지적해주는 당황스러움과 고마움을 얻을 수 있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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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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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우선 형식에서 일반 소설과 다른 점을 갖고 있다. 전체가 하나의 단락으로 뭉쳐 있다는 것이다. 자주 시가 시의 형태라는 것을 탈피해 산문의 모습을 한 채로 독자들을 당혹시키는 것처럼 이 소설 역시 문장의 형태면에서 특별함을 추구하고 있다. 물론 이 소설에만 국한되지 않은 이 작가의 독특하거나 혹은 괴팍한 특징이다. 그래서 책을 단번에 독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띄엄띄엄 읽는 사람이라면 이어서 읽기가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을 읽어가면서 끝까지 이 형태의 이유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었지만 한 편의 소설로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저 짐작 정도나 가능하면 모를까.

 

그러나 그 낯선 형태를 불편해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또 다른 흥미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것은 문장과 연관된 흥미로움이다. 어떤 소설가의 문장은 산문이면서도 운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베른하르트의 소설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아무리 번역이라 할지라도 문장에서 느껴지는 시적 기법이 느껴진다. 광기에 관한 사적 고찰이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만한 것이 이 소설인 만큼 은유와 상징이 많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단 하나의 단락에 묶인 이 소설의 문장이 의외로 운율감이 넘친다는 것이다.

 

이 형식의 특징은 작가가 카라얀을 숭배한다고 표현할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소설 속 화자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소설을 좋아한다면 분명 카라얀을 숭배한다는 화자의 고백에 어느 정도 공감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질투심을 느낄 법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 운율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도저히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모를 이 소설의 읽는 맛에 가속이 붙었다.

 

소설 비트켄슈타인의 조카는 광기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싶다. 도대체 광기와 우정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광기라는 것이 소설이 될 정도면 세상 무엇과도 결합하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아니 이 작가의 작품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냉소적 태도 또한 이 우정을 말하기에 어색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색하거나 혹은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기에 남에게 읽혀질 만한 특별함이라 생각할 수 있다.

 

화자와 비트겐슈타인의 우정은 각별하다. 아주 심각한 수술을 받아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화자는 온통 친구가 입원해 있는 정신병동까지 가는 생각과 실행에 골몰한다. 어쩌면 거기까지 가는 길에, 그 무리한 행동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어할 정도면 그 우정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런 자극적인 동기가 아니더라도 이 소설 전체가 화자와 친구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 우정은 정말로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친구가 죽자 화자는 그의 장레식은 물론 후일 언제라도 그의 무덤조차 찾지 않았다. 마치 지금까지 장황하게 묘사한 우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정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결국 이 소설은 내가 (온전히) 갖지 못한 광기와 우정에 대해서 때늦은 갈망을 안겨주었다. 광기라면 웬만한 작가라면 다 갖고 있을 것이겠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이 화자처럼 조금도 위험하지 않은 광기지만 거기다 냉소의 태도까지 갖추니 이보다 근사한 지식인의 모습이 없을 것만 같다. 물론 정작 광기에 사로잡힌 본인은 고통스러운 것에 불과하겠지만 어쨌든 소설이라는 문학적 성과가 될 수 있었으니 나쁠 것도 없다. 또한 우정도 그렇다. 사랑 때문이라면 죽을 각오로 보고 싶은 열정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우정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특별한 우정이 광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거꾸로 우정 때문에 미쳐버린 것일 수도 있다. 그처럼 이 소설은 무수한 의문을 품게 한다. 또한 광기의 우정이라는 것이 뭔가 훔쳐보고 싶게 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길지 않은 소설인 탓에 그 호기심을 채우기에 많은 인내가 필요치 않은 것은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가장 친절한 부분일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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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사도세자는 역사에 무관심한 한국인일지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둘러싼 비밀은 풀리지 않고 있다.

특히 사도세자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그의 아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한을 풀어주려 많은 애를 썼지만 복잡한 정치관계에 막힌 바 크다. 도대체 사도사제 이선은 어떤 사람일까. 한동안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 사도세자에 관한 진실로 여겨졌지만 근래에 와서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의 무엇이 아버지 영조를 진노케 했는지 혹은 두렵게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또한 그것은 당시 집권세력인 남인이 가진 두려움과 일치한다. 사도세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작가의 상상력에 기대어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구현의 펙션 빙애는 그래서 꼭 읽어보고 싶은 소설이다.


 

독일 작가 에바 로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너무 미칠 것만 같은 세월을 지나고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나 말고 또 누군가 미칠 것만 같다면 그것은 아마도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제목에 끌려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읽어봤더니 현대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병증인 우울증 그리고 번아웃 신드롬 등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겪는 8주간의 기록이라는데, 그것이 마치 내게는 8주간의 색다른 여행으로 여겨졌다. 다행히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이 호감을 갖게 한다. 요즘의 내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박범신의 사랑은 과격하다. 그리고 극적이다. 그런데 이번 그가 내놓은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은 제목처럼 은은할 것 같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이 사는 도시 이름마저 소소다. 그리고 이름도 제대로 지어주지 않은 인물들 ’ ‘’ ‘의 사랑이야기라고 한다. 주인공인 라는 온전한 단어를 줄 정도로 뭔가를 많이 생략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한다. 그 사람들의 아주 비밀스러운 사랑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도진다. 오아시스가 아름다운 것은 사막에 있어서가 아니라 다른 종족에게는 그것이 비밀이기 때문일지 모른다는 작가의 말은 이 소설의 비밀에 대한 직설적인 유혹이다. 은교 이후 찾아온 박범신의 사랑, 과연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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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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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신비한 나라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다. 많은 보도와 다큐멘터리가 그들의 고된 삶과 역사를 아무리 역설해도 인도에 대한 인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 기대와 인상은 심지어 인도의 고난마저 신비주의로 포장하려 든다. 석가와 요가 그리고 겐즈지강까지 인도의 모든 것은 직접 가보지 못한 내게 질긴 신비주의로 쌓여 있을 뿐이다. 그런 속에서도 내 그런 인상과 선입견이 반드시 한 번은 깨어질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다. 인도계 미국인 줌파 라히리가 그 길을 안내하지 않을까 싶다. 쌍둥이 같은 형제 그리고 그들의 아내인 한 여자의 이야기라는 상징이 주는 유혹이 매혹적이고 또 강렬하다. 4월에 가장 먼저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일본드라마 심야식당은 코믹하며너도 따뜻한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이 소설은 그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는 것 같다. 게다가 단편집이다. 작가가 3년간 수상자가 없던 추리문학 단편 및 연작상을 받은 작가라 책 읽기 힘겨워 하는 요즘 사람에게 다시 챌읽기로 들어가기 위한 적당한 에피타이저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어떤 학자는 인류가 밥을 지어먹는 본능 때문에 문명이 만들어졌다고 한다.뭔가 부족한 주장 같은데 이상하게 공감이 된다. 음식에 담긴 사람이야기. 혼자 읽고 나중에 조용한 자리에서 이야기 거리가 될 것 같다.  









한 대학에 걸린 대자보 한 장이 우리사회에 커다란 반향과 반성을 불어왔었다. 그도 이제는 복잡한 사회 속에 다시 묻혀버렸지만 여전히 일상이 굼뜬 사람들에게는 화두로 간직되고 있을 것이다. 30대 초반의 소설가라면 아마도 그 현상에 대해서 좀 더 화력 있는 응시를 가졌을 것이다. 문학동네 문학상을 수상한 안보윤이 보는 우리사회의 건강상태는 그래서 궁금하다. 한 기사는 안보윤의 단편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모른 척 해봐야 결국 그 안에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면 이 사회의 불행과 병리에 대해서 알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결국은 움추리고 외면하고 살고 있는 자신의 죄의식을 인정하라는 꾸짖음이 되겠지만 그렇게라도 매를 맞고 정신 좀 차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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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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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어릴 적 소위 세계명작전집에는 프랑스 문학이 아닌 것도 프랑스 것으로 착각하면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유럽이라는 혹은 세세하게는 독일이나 영국 문학이라는 제대로 된 기억 대신 그저 프랑스 문학이라는 인상이 더 오래 남아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그러다가 조금 더 커서는 전집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얼마나 자유로울지는 미지수지만) 책에 대해서 선택할 수준이 되서 접한 프랑스 문학은 다소 고리타분하다는 느낌을 주겠지만 그래도 뭔가 한국문학에서 느끼지 못할 막연한 기대감을 채워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 문학을 접한 기억이 아주 희미한 것을 보니 기껏해야 영화로나 본 정도일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것도 두 권씩이나 프랑스 소설을 읽게 됐는데, 그중 이야기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한 대단히 발칙한 상상의 <육식이야기>는 오랫동안 가져왔던 프랑스 문학의 인상을 많이 바꿔놓게 될 듯하다. 처음 육식이야기라는 책제목만으로도 흥미로웠다. 사자가 고기를 먹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꽃이 고기를 먹는 것일까? 하는 상상을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심지어는 사자를 한입에 꿀꺽 집어삼키는 어떤 무시무시한 꽃의 이야기일까 하고도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육식이야기는 그런 식이다. 비록 사자를 집어삼키는 어마어마한 꽃이 나오진 않지만 그것쯤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흥미진진한 발상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단편소설 14개로 구성된 육식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로운 상상 혹은 공상을 전달하고 있다. 거기에 프랑스 남자에 대한 전인류의 선인견인 에로틱까지 겸비해서 읽는 이의 은밀한 욕망까지도 자극해주니 읽는 일이 매우 신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에로티시즘이 말초만을 자극하는 싸구려가 아니다. 다소 직접적이고, 디테일한 묘사가 동원되고 있지만 그것에는 문학적 연민과 낭만으로 잘 포장되었다.

무엇보다 신선했던 것은 한국문학을 끔찍히도 사랑하는 독자가 쉽게 경험하기 힘든 외식 같은 맛을 주고 있다는 점이 좋다. 물론 한국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이런 류의 소설이 문학지향을 바꿀 것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주 훌륭한 손맛을 가진 어머니의 밥상을 매일 대하면서도 가끔은 김밥집 단무지에서 달콤한 맛을 느끼듯이 이 낯선 프랑스 단편집은 그 김밥 이상의 재미를 주고 있다. 이 책은 너무도 차가운 도시생활에 굳어진 현대인에게 은밀한 상상을 제공하는 공을 세우고 있다.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만족을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단편집은 유행가 가사처럼 십점 만점에 십점을 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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