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이 개편으로 오락가락 하는 동안 나는 죽도록 앓았다. 날 잡아 농사일을 돕는답시고 일요일 하루 새벽부터 저녁까지 막노동을 한 결과다. 뭐, 처음부터 몸살이 날 각오는 단단히 하였지만 정작 앓아누우니 딱 죽을 것 같았다. 여름, 가을에 걸쳐 그 힘든 노동을 하시는 부모님 앞에서 주름을 잡을 수도 없고 설마 죽기야 하겠냐고 큰소리 탕탕 쳤는데, 역시나 몸은 정직하다. 팔과 다리에 알이 밴 것은 물론이고 목과 가슴까지 욱신거린다. 하도 호되게 앓아서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모를 정도다.


성큼 다가온 겨울의 느낌에 몸은 움츠러들지만 마음은 꽝꽝 언 호수처럼 고요한 것이, 이럴 때 떠오르는 것은 한적한 산사다. 들리는 건 바람소리, 들짐승과 벌레소리가 전부인 깊고 깊은 산 속의 작은 절. 원하지 않아도 사람에 치이고 치이는 생활이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 떠나는 일종의 몽상이지만 심신을 다스리는 데 큰 힘이 된다. 지금은 몸이 아팠던 탓으로 맘이 약해져 있어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감이 차오른다. 여행을 동경하나 쉬이 떠나지 못하는 내가 즐기는 이를테면 영혼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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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를 다듬어 본 사람은 안다. 멸치에게도 얼굴이, 표정이 있다는 것을. 펄펄 끓는 가마솥, 죽음을 기다리는 최후의 순간, 체념을 하고, 다소곳이 눈을 감고, 입을 다문 멸치들 속에 있는, 한껏 입을 벌린 불가해한 존재를. 그 순간 내질렀을 비명, 아우성, 외침, 흐느낌의 덩어리가 확하고 달려드는 불가해한 느낌을. 오늘,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하면서 신문지 위에 펼쳐 놓은 한 무더기의 잔해 속에서, 나는 아주 기이한 존재들을 만났다. 살아서는 은빛으로 찬란했을 아름다운 꼬리와 총기로 번뜩였을 눈동자가 이제는 공허만을 담고 있음에 ‘가련하다’ 하면서, 나는 시뻘건 고추장에 너를 찍어 통째로 씹어 삼킨다. 애초에 죽인 것은 내가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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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4-10-2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린 감성이십니다요.. 그저 먹을거리로밖에 보아지지 않는 이 무감동함을 저는 어찌하면 좋습니까..ㅡ.ㅡ;;

프레이야 2004-10-2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사념입니다.^^

잉크냄새 2004-10-29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고추장에 찍힌 멸치를 떠올리며 술한잔 생각나는 이 사념은 또 무엇인가요^^

겨울 2004-10-2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자고 쓴 얘기입니다.^^
 


새벽 다섯 시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할 말을 잃었다. 꽤 긴 시간을 병석에 누워계셨다. 곧 큰일을 치룰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訃音의 알싸하고 먹먹한 느낌은 남은 잠을 쫓기에 충분했다.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일생은 고약한 술버릇과 함께 일년 사계절을 놀면서 먹기가 전부였다. 명색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논일 밭일로 허리가 구부러지는 동안에도 뒷짐을 지고 동네 어귀를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다니셨다. 어린 시절, 기억에 박힌 모습도 돋보기안경을 쓰고 신문을 읽거나 붓글씨를 쓰거나 아니면 곤두레만두레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는 거였다. 할머니를 상대로, 아들을 상대로 혹은 며느리를 상대로 한 주정은 온 동네가 다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러니 할아버지 하면 떠올리는 감정이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었다.




몇년 전, 할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후, 그 죽음의 원인으로 할아버지의 지독한 구박을 꼽으며 얼마나 원망과 미움을 쏟았던지. 슬하에 8남매를 두었지만 온전히 가르치고 보살핀 자식도 없고, 비교적 건강하셨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아버지조차 할아버지가 덜컥 앓아누우셨어도 이렇다할 감정 표현이 없으셨다. 그 뒤로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고 계신 할아버지는 고립무원이었다. 이미 인심을 잃을 대로 잃어서 누구도 선뜻 할아버지를 동정하고 애달파 하지 않았다. 나도 시골집엘 다니러 가면서도 지척에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뵙는 기특한 생각은 싹조차 틔우질 않았다. 




할아버지의 부음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다. 가을걷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부모님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가할 타격이 걱정이다. 그리고 그 혼란의 와중에 계실 외할머니의 건강. 노인들은 주변의 죽음에 대해 민감한 까닭이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아버지인데 내가 이렇게 몰인정해도 되는 건가. 속으로는 몰라도 겉으로는 눈물도 흘리고 슬퍼하는 연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예전 기억 속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천년 만 년이라도 살 줄 알았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 뒷짐을 진 커다란 체구로 집 앞을 지나가시던 그 분이 병들어 일생을 마감하셨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은 아직도 내게 생경하기 짝이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큰아버지가 간암으로, 이제 할아버지가 운명을 달리 하셨다. 무의식중에 다음 차례를 헤아리는 내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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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2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들 나이를 먹어가면 무의식중에 다음 차례를 헤아리는 경우가 있는것 같습니다. 친구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전부 비슷한 연배의 부모님들을 둔 친구들의 마음은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코스모스의 계절이 오니,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속절없이 가슴을 후려친다. 희고 동그란 얼굴의  두 소녀가 흐드러진 코스모스 속에 서 있는 사진이다. 하늘이 붉은 빛인 걸 보니 해가 저물고 있다.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서서 정면을 응시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하다못해 수줍은 미소조차도 없이 둘은 그렇게 서 있다. 인생에서 가장 혹독했던 시절을 함께했던 동갑내기 친구와. 그러나 지금은 생사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저녁 불쑥 사진기를 들고 와서 밖으로 나가자고 재촉을 하던 친구를 따라서 간 곳은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등하교 길. 카메라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마냥 곧았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던 열다섯의 가을, 집과 가족을 멀리 두고 있는 소녀들에게 계절의 정취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병든 아버지 이야기, 철없는 남동생 이야기 혹은 짝사랑 하던 동네의 오빠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입을 꾹 다문 친구를 따라서 잡초가 우거진 황량한 공터를 향해서 서 보라고 손짓을 하고. 그때는 몰랐는데 우리들이 나눈 대화는 참말과 거짓말이 절반씩 섞인 것이었다. 고달픈 현실을 잊기 위한 방편으로 과장과 포장은 필수였다.


멋진 친구였다. 세상의 온갖 사랑이 그녀의 몫인 듯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한밤중에 찾아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에서 보낸 편지를 읽다가 잠이 들고, 배고플 때를 알아서 먹을 것을 챙겨주고, 순진하게 살면 손해라는 둥의 충고도 거침없이 건넸다. 삶에 대한 그녀의 자세는 치열하고도 전투적이었으며 약자를 배려하는 섬세함까지 갖추었다. 그녀는 나의 요령 없음을, 나약함을 수도 없이 지적하고 나무랬다. 세상을 그렇게 살면 손해라고. 자신의 상처는 보이지 않게 감춰놓고 나를 살피고 돌보기에 바빴다는 것을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내 감정을 추스르기도 벅차서 허덕이던 나와는 달리 태엽 감긴 인형처럼 웃고 떠들고 노는 친구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손을 놓아버린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기이할 정도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각인된 이름 세 글자와 동그랗고 하얗던 얼굴은 아직도 선명한데 어째서 마지막 날들에 대해서는 백지상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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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기분 좋은 선물을 듬뿍 받고 나니, 겁이 없어졌나. 동생에게 현이 원이의 선물로 뭐가 좋을까 물었더니, 만화로 된 삼국지가 어떠냐고 한다.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이 책 저 책을 비교 검토해 보니 <이문열 이희재 만화 삼국지>가 그 중 제일로 낫다. 만화책이니 책읽기에 관심이 덜한 원이도 덩달아 읽지 않을까?


내 기억에 <삼국지>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할아버지 댁에서 세로로 인쇄된 백과사전 두께의 책을 빌려서 겅중겅중 건너뛰면서 읽었다. 그때가 아마도 <삼국지>를 제대로(?) 읽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다. 이제 외딴 무인도에 갇히지 않는 이상 저 책을 쉽게 꺼내 읽을 리가 없다. 왜냐면 너무도 쉽고 재미나는 읽을거리들이 지천에 널렸으니까. 그토록 오래된 일이지만 읽은 것은 읽은 것이니 누군가 물으면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나다. 만화 드라마를 통해 반복 학습을 받다 보니 인물들의 태반이 머리 속에 생생히 살아있다. 이번 기회에 만화부터 시작할까? 입맛이 당겨 소설을 덜컥 살지도.


장담컨대 지현인 저 책을 무진장 좋아할 거다. 다음주에 보는 시험이 끝나는 날에 맞춰 선물하면 신나라 할 터이다. 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만큼 예쁜 것이 세상에 또 있을까. 내 어린 시절은 늘 읽을 책에 목말랐다. 책은커녕 굶지 않고 겨울을 나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으니까. 교실에는 까만 꽁보리밥으로 도시락을 채운 아이들이 실제로 있었고 겨울에도 양말이 없어 맨발인 아이가 있었다. 6년을 다닌 초등학교 근처에서 책을 파는 곳은 구경도 못했다. 중학교에 가서야 서점을 처음 봤으니. 이런 옛날이야기를 지현인 안 믿을 거다. 하지만 사실이란다, 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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