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를 다듬어 본 사람은 안다. 멸치에게도 얼굴이, 표정이 있다는 것을. 펄펄 끓는 가마솥, 죽음을 기다리는 최후의 순간, 체념을 하고, 다소곳이 눈을 감고, 입을 다문 멸치들 속에 있는, 한껏 입을 벌린 불가해한 존재를. 그 순간 내질렀을 비명, 아우성, 외침, 흐느낌의 덩어리가 확하고 달려드는 불가해한 느낌을. 오늘, 저녁 반찬거리를 준비하면서 신문지 위에 펼쳐 놓은 한 무더기의 잔해 속에서, 나는 아주 기이한 존재들을 만났다. 살아서는 은빛으로 찬란했을 아름다운 꼬리와 총기로 번뜩였을 눈동자가 이제는 공허만을 담고 있음에 ‘가련하다’ 하면서, 나는 시뻘건 고추장에 너를 찍어 통째로 씹어 삼킨다. 애초에 죽인 것은 내가 아니라고 발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