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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시인할 수는 없으니까. 물론 도발을 해 오는 상대가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머리속은 온통 상대에게 치명적인 어떤 단어나 문장을 찾아서 분주하다. 한마디라도 지기 싫어하고 부당한 말에 반격을 해야 하고 두 눈은 똑바로 적을 응시하면서.....

그러한 나를 구경꾼의 눈으로 관찰한다고 치자. 아, 무섭고 슬퍼라. 평소의 무던함, 소박함, 신중함과 냉철함은 다 어디로 도망가고 저렇게 무시무시한 여자가 누구냐고 지나가는 이에게 묻고싶다.

그 놈의 욕심이란 것은, 자존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란 것은 사람을 참 불쌍하게 만든다. 그래, 당신이 이겼소이다라고 한마디 하기가 어째서 그리 힘든지 모르겠다. 독오른 뱀처럼 머리를 빳빳이 들고 거칠은 욕설은 삼간다고 하면서 비위를 거슬리는 비겁한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란 참으로 징그럽다.

오늘,  승리하였다고 우쭐댔던 싸움에서 만신창이가 된 정신은 우울증에 걸려 비틀거린다. 다시는 득없는 말싸움 따위는 하지않겠다 다짐하면서 이마를 찧어댄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겸허히 고백한다.

타인에게 준 상처는 결국 내게 돌아온다. 내 입에서 무심코 튀어나간 흉칙한 괴물들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힌다. 그리고 그들이 망각의 강을 건널 때가 되면 난 기진맥진하여 앓아눕는다.

슬프고 지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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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은 하지 않으련다.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삶 혹은 상황에 놓여진 나를 냉정히 바라보고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름기 빠진 메마른 피부와 총기 잃은 눈빛, 야윈 볼과 다크서클의 선명함이다. 생에 대한 달뜬 기대보다는 체념과 달관에 익숙하고 절대로 서둘러 걷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잡아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이 듦과 신년은 모순이다. 그 아이러니가 심술궂은 장난끼를 발동시킨다. 오너라, 살겠다. 어디 끝가지 살아보겠다. 도망치지 않겠다. 오만하고 도도하게 낡아빠진 스커트를 부여잡고 앞을 응시하겠다.

어쨌든 자학은 싫다. 차라리 도취가 낫지. 생에 대한 집착이 필요한 때인가. 점점 무뎌지고 한편으론 독해진다. 역시 고집인가. 아니면 빌어먹을 자존심.

요즘 읽고 있는 프리다 칼로가 떠오른다. 온 몸이 부서져라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살다가 살다가 죽어버린 여인이 가슴을 세차게 친다. 그녀의 혼이 고스란히 녹아내린 그림들, 참혹하고 슬픈 무표정의 자화상이 뇌리를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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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가끔씩 한 마리의 새가 되거나 한 포기의 풀이 되거나 혹은 한 방울의 빗방울이 되어 머나먼 옛날부터 살아오다가, 우현히 이번엔 인간이 된 것은 아닐까?

과학적으로 생각해서 생명을 머금고 있는 물질순환이라는 굴레의 속에 지금의 자신을 넣어본다면 꽤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는 아주 조그만 '생명'이 무의미하게 흩어지는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두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생명'을 구성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계는 부조리가 서로 얽혀있는 광주리 속 같아서 이즈미처럼 똑바로 살고 있더라도(사회적인 의미로)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필사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하자면, 타인이 지닌 고독의 사슬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정도일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압도적인 외로움을 껴안고 있으면서도 , 주이치는 마음을 깊이 '생명'의 인연을 행복하게 믿으면서 이즈미를 영원히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조그만 구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서문인용)

 작가: Seiki Tsuch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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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사는 일이 필사적이 되었다.

내 삶의 단위는 하루가 되었고, 오늘만 무사히를 부르짖었다.

어느날은 남들은 히히낙낙 잘도 사는데 유독 나만 땅을 파고드는 두더지같아서 죽을까 궁리도 하고, 생각의 잔가지를 잘라내지 못하고 천리만리 질질 끌며 이고 지고 살았다.

지금은 적당히 나이도 먹었고 등에 짊어진 짐의 무게도 훨씬 가벼워졌다. 사는게 다 그렇지 누구만 별난가, 냉소도 칠줄 알고 아무튼 어른다워졌다는 자각을 하는 참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구경삼아 충고라고 던지기도 하고 더딘 걸음을 기다릴줄도 알고 고통에도 불운에도 적당히 응수하면서 살고있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늘 헷갈린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늘 정확하지도 않다. 흑이나 백보다는 회색지대의 적당함을 옹호한다. 낮아진 목소리, 힘이 빠진 주장이라도 느리게 꺼내본다.

생은 절반의 절반도 멀었다. 어쩌면 여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뛰기 싫다. 앞만 보는 달리기 대신에 뒤로 걷는 삐따기처럼 남루한 옷차림에 바람이나 불어왔으면 좋겠다. 꿈을 꾸고싶다. 말을 걸고싶다. 나무나 풀 혹은 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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