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몽타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품절


이데올로기적 편향성 면이나 계몽적 태도에서 절제를 했다는 점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큰 미덕이 아닌가 합니다.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민족주의를, 특히 한국인의 과도한 민족주의 성향을 몹시 두려워하는 쪽입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 각본에서도 의열단원들이 독립운동의 차원을 넘어 무산자 혁명을 추구하는 무리임을 강조해던 것이고요. 그렇다고 본능적으로 우러나는 민족 감정까지 억눌러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통일의 당위성을 강변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분단 상황을 몹시 불편한 것이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통일을 논하기에 앞서 전쟁의 회피가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싶군요. 잘 못 느껴서들 그렇지, 한반도는 언제라도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거든요.

('나를 죽이다' 中)-163쪽

각자의 개성을 평가한다면?
이영애는 관찰자 역할에 잘 어울리는 크고 아름다운 눈을, 이병헌은 대한민국의 가장 건강하고 평범한 젊은이를 연기하는 데 적합한 건치를 가졌죠. 송강호의 매력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캐릭터임을 단박에 드러내 줄 수 있는 짝짝이 눈에 있구요. 김태우의 그 커다란 귀는 유약하고 섬세한 성격을 표현하는 데 제격이고, 신하균의 송아지 같은 눈망울에는 선량함과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건 내게 있어 기적과도 같은 행운이었죠.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中)-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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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6-01-2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어요. 워낙에 밀린 책들이 많아서리..^^
 
자유의 감옥 올 에이지 클래식
미하엘 엔데 지음, 이병서 옮김 / 보물창고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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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자유의 감옥> 리뷰를 쓰려고 컴퓨터를 오늘 세번째 켜고 있다. 켤 때 마다, 쓸 때 마다 이놈의 노트북이 벅벅 예고도 없이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미치고 환장하지만, 이제 이런 것도 적응 됐다. 그냥 응 꺼졌구나 그래 그래. 다시 켜면 되지. 괜찮아. 자식. 많이 열받았나보네. 근데 오늘 너 별로 쓰지도 않았는데 열받고 그러니 속으로 그렇게 달래며, 다시 전원을 켜고 또 켜고 그런다. 날리면 어떠니. 아까 그 글이 그대로 나오진 않겠지만 뭐 내가 언제 대단한 글이나 썼니. 그냥 허접하게 다시 쓰면 되지. 이번 또 꺼지면 가만 안둔다아아.

  환타지. 환타지. 환타지. <자유의 감옥>은 환타지 소설이다. 그러나 중고딩들이 교실에서 몰래 몰래 훔쳐보는 그런 환타지가 아니라 약간은 고급스런 환타지라고나 할까. 뭐가 고급이고 뭐가 저급인지 따지는게 참 우습긴 하지만 말야.

  내가 지금껏 읽은 환타지 소설은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전부였다. 흠. 문제있나? 너무 편식했나. 편식이라고 할만큼 다른 분야의 책들을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니니, 이것 찍접 저것 찍접 했달 밖에. 드라마 삼순이가 지난해 시상식을 화려하게 휩쓸어버리고, 약 한달이 못지났다. 삼순이 때문에 뜬 책이 바로 <모모>라는 환타지 소설인데, 이 책이 아마 <자유의 감옥>의 저자와 같다고 하지? 미하엘 엔데. 1995년 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출판사들은 그의 사망 10주기를 기념하여 작품 복간에 들어갔다. '독일 문학의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미하엘 엔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모모>를 보기 전에 <자유의 감옥>을 접해 순서가 뒤바뀐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읽었으니 어쩌랴. 아마도 <모모>가 더 재밌고 쉬운 모양인데, <자유의 감옥>은 너무나 어렵고 좀 지루하고, 결과적으로 재미 없었다. 미안하게도.

  <자유의 감옥>안에는 여덟개의 각기 다른 작품들이 숨어있다. '긴 여행의 목표' '보로메오 콜미의 통로' '교외의 집' '조금 작지만 괜찮아' '미스라임의 동굴' '여행가 막스 무토의 비망록' '자유의 감옥' '길잡이의 전설' 이렇게 여덟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았고,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내는 반면, 나를 포함한 일부 몇몇 사람들은 재미없어, 지루해 라는 반응으로 일관. 아니 도대체 머리 속에서 어디에 이상이 있길래 많은 이들의 감상과 나의 감상이 다른 거지? 흠. 내가 아직 환타지 입문자이기 때문인가. 나도 인정한다. 미하엘 엔데의 그 순수함과 기발한 상상력, 끊임없이 뽑아져나오는 아이디어. 좋아 인정해. 그런데 재미는 없어. 이야기가 너무 어려워. 혹자는 철학적인 환타지라고도 하는데. 음 맞다. 철학적이다. 그가 이 짧은 환타지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바가 분명히 있고 그것은 비판이기도 하며 교훈이기도 하다.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그런 의도들을 숨겨놓았다는 점에서 분명 가볍게 볼 수 없고, 철학적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냐고. 난 재미가 없다고.

  굳이 재밌는 작품을 골라보라면 '긴 여행의 목표' 와 '교외의 집'이 괜찮았다. '긴 여행의 목표'에 등장하는 순식간에 갑부가 되어버린 부도덕한 싸가지 없는 녀석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궁금증을 가지며 읽었고, '교외의 집'에서는 공간을 차지 하지 않는 집이란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이를 풀어가는 과정이 괜찮았다. 어려워서 후딱 읽고 끝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정말 후딱 읽어버렸지만, 전 국민이 본 그의 또다른 작품 <모모>는 좀 더 기대를 해봐야것다. 나에게 재미를 선사해줘. 보니깐 초등학교 5학년 이상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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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마마 자마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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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각적으로 두 눈을 강렬하게 자극하는 저 멋드러진 표지. 내가 이 책을 손에 들고 있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어머 표지가 너무 이쁘네요. 빨간색으로 시선을 확 잡아끄는게..." 정말 내가 봐도  표지 이쁘다. 검정색으로 육감적인 여성을, 빨간색 드레스를 길게 늘어뜨리며, 나 섹시해요, 나 당신을 원해요, 라고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비록 말은 없어도.  

  "사랑? 그런 식으로 솔직해지면 안되지." <배드 마마 자마>의 표지 문구다. <배드 마마 자마>는 솔직한 사랑, 솔직한 성을 이야기한다. 옮긴이 김난주는 책의 맨 앞에서 작가 야마다 에이미에 대해 이런 설명을 붙여놨다.

  야마다 에이미 -

  여자의 성을 누구보다 아름답고 당당하게 그려내는 작가. 새로이 선보이는 작품집 <배드 마마 자마>는 육욕에만 허우적거리는 천박한 성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사랑하고 그 육체를 찬미하고 즐길 줄 아는 성숙한 여자의 성을 이야기한다.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을 접한 건 이 책이 처음이며, 매우 육감적이고, 자극적이며, 당당하다. 이 책 안에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의 전체 제목인 '배드 마마 자마'라는 소설, 그리고 '캔버스관' '입냄새'. 앞의 '배드 마마 자마'가 너무나 강렬했던 나머지 뒤의 두 작품을 읽으면서도 머리 속에서는 검정, 빨강, 땀, 육체의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색깔을 참 잘 활용한다. 머리 속에서 그녀의 글은 그림이 되어 나타난다. 검정은 빨강과 매우 잘 어울린다. 둘다 자극적이고, 비밀스러우며, 때로는 천박하기도, 때로는 고급스럽기도 하다. 흑인과 빨간 옷을 입은 여자도 잘 어울린다.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에는 외국인 남성이 등장한다. 그것도 흑인이. 대개 외국남성을 등장 시킬 때는 외모가 멋드러진 이탈리아나 프랑스 남성을 끌어들이는데 비해, 그녀는 흑인을 선호한다. 흑인은 너무 육감적이고, 섬세하며, 부드럽다. 그것은 곧 여성이다. 여성을 잘 이해하는 남성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그녀는 흑인을 손꼽은 것이다. 실제로 흑인이 그러한지 어떤지는 모를 일. 흑인과 대화를 하고, 함께 어울리고, 섹스를 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일. 또한 한 명의 흑인과의 경험을 전체 흑인의 일반화로 단정지을 수도 없는 일.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지 않더라도 흑인 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이자 책 속의 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배드 마마 자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어로 '배드'는 '나쁜'이라는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 작가에게 있어 배드는 '얄미운'에 더 가깝다. 소설 속에서 '배드 마마 자마'라는 클럽에서 틀어주는 노래가 있다고도 했지만, '배드 마마 자마'가 의미하는 것은, '남자의 혼을 쏙 빼놓는 얄미운 여자'를 의미한다. 춤을 추며 클럽에 들어서고 추파를 날린다. 섹시하고 육감적인 몸매와 의상, 나 작업걸어주세요, 라고 써붙였다. 남자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여자 당차다. 직접거린다고 받아주지 않는다. 쿨하게 거절하고 나오는 당당함. 당연히 얄미울 밖에. 실컷 혼을 빼놓고는 내빼다니. 그런 여자가 즐기는 인생을 살다가 한 외국인 남자를 만났고 결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남자가 지겨워질 밖에. 여자는 이 남자를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에게도 필 꽂혔다. 안돼 안돼 하며 친구에게 소개해주고선 자기가 만나며 결국 섹스를 했다. 하지만 어 이런 느낌이 아닌데, 몸은 느꼈으나 마음은 느끼지 않았다. 아 '키스'는 아냐, '데이빗'이 보고 싶다. 결국 그녀는 하룻밤의 불놀이로 끝내고 마음으로 사랑하는 데이빗에게로 돌아간다.  

    여성의 성에 대해, 여성의 사랑에 대해 솔직하게 까발린 소설이다. 쿨하긴 했지만 가슴으로 와닿는 감동은 없는, 어쩌면 쿨하기 때문에 그런 감동을 배제한 소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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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 마마 자마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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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애쓰는 것이 연애의 시작이라면 상대방을 슬프게 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은 공모자들의 규칙이라는 것을 그녀는 지금 깨달았다. 그리고 공모는 사랑의 한 가지 형태이다. ('배드 마마 자마')

* 밑줄그은 이 주 : 공모란 결혼한 유부녀 A가 남편 B 몰래 C 남성과 연애하려는 것 -33쪽

"사랑을 하면 욕심쟁이가 되나봐."
"마음을 확인하면 그 다음은 몸이야."
"아마 다시 마음으로 돌아가겠지."
"그럼 우리 이렇게 계속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배드 마마 자마')-74-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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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필립 빌랭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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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이어 거침없이 읽어 내려간 소설이다. 두 권 모두 분량이 짧기도 하고, 이야기를 비비꼬거나 수많은 등장인물로 인해 정신없이 진행되는 소설도 아닌지라 쉽게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아니 에르노가 연하의 유부남과 바람(?)을 핀 뒤 가슴 속에서 그를 떠올리며 써내려간 <단순한 열정> 이나 또 이 소설을 우연히 읽고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만나고 사랑한 필립 빌랭이나 대단한 위인들이다. 아니 에르노는 사랑한 연하의 유부남에게 A라는 호칭을 돌려준 데 비해, 필립 빌랭은 노골적으로 아니 에르노의 약자 A.E를 소설 속에 등장시키고 있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소설로 보기 어렵듯, 필립 빌랭의 <포옹> 또한 소설로 보기 어렵다. 모두 명확한 구체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포옹>은 <단순한 열정>의 뒤를 따르고 있다. 필립 빌랭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대개의 소설가들이 자신의 문체를 가지고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 비해, 필립 빌랭은 자신의 것을 모두 버렸다. 아니 어쩌면 아니 에르노의 그것이 처음부터 필립 빌랭의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20살. 대학 입학 한 뒤 새내기 시절,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그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둘은 이후 5년간 사랑을 했다.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하며 아직 작가 지망생이었던 필립 빌랭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녀의 소설 속 문체들로부터 본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유명한 피아니스트라고 할지라도 그가 어린시절부터 흠모해온 이전의 피아니스트가 있고, 유명한 가수라고 할지라도 그가 어릴적부터 따라불러온 이전의 가수가 있듯이, 그는 막 문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그녀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완전한 그녀의 그림자가 되어 문단에 데뷔식을 치뤘다. 필립 빌랭이 자존심을 버려가며, 자기만의 것을 버려가며, 아니 에르노를 따랐다고 보기보단, 아니 에르노의 문체를 본 받아 그만의 문체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아니 에르노가 이를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는 그녀와 헤어진 필립 빌랭이 몇년 뒤 그녀가 예전에 내놓은 <단순한 열정>과 너무나 흡사한 작품을 내놓았을 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지 않았을까 싶다. 혹은 대담한 그녀가 의연하게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줄 알았다 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필립 빌랭은 <포옹> 에 뒤이어 낸 다른 작품에서도 아니 에르노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단지 상업적인 이유로, 혹은 헤어진 그녀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서, 그녀를 따라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는 신인의 데뷔작치고는 확실하게 매스컴의 이목을 끌었고, 소설의 작품성과는 별개로 확실하게 떴다. 이전에 이미 충격적 소설 <단순한 열정>으로 한바탕치룬 아니 에르노와의 사건이었으니 어찌 안뜰 수가 있으랴.

  필립 빌랭은 그녀를 사랑했을까? 정말로? 아니면 아니 에르노와 같이 '단순한 열정'이었을까. 필립 빌랭은 소설의 말미에  그녀와의 이별 이후 몇 달간의 글쓰기가 그녀와의 '결정적 종말'을 위한 작업이 될 것이라 말했다. "글쓰기는 그녀와 나 자신을 향한 위협이다. 이별 장면을 쓰면서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다시 되살려, 필경 한 사람은 죽여야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죽어야만 하는 원형 경기장 속에 두 인물을 내던진 것이다." 라고 말한다. 만남과 이별을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통해, 이별을 선고받은 필립 빌랭이 현실에서 죽고, 아니 에르노가 죽여야만 하는 인물이었다면, 이 소설은 반대로 필립 빌랭은 죽여야만 하고, 아니 에르노는 죽어야만 하는 역할의 뒤바뀜을 경험하게 만든다.

  한 바탕 열정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녀의 마음에서, 뒤이어 그의 마음에서. 그리고 남은 것은 회상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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