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11월
구판절판


사람마다 애도 반응이 다른 것은 그의 내면에 이미 이별에 대응하는 저마다 다른 정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러나 애도하지 못한 이별의 경험이 내면에 들어 있는 사람은 새롭게 만나는 이별 앞에서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한다. 당면한 이별이 묵은 상실의 감정들을 솟구쳐 오르게 하기 때문이다.-29쪽

애도작업은 내면에서 작동하는 낡은 삶의 플롯,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내면의 자기를 함께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게 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타인도 잘 알아보게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커진다. 애도 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이해력이 커진다.-44-45쪽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맛볼 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함께 죽는다. (베레나 카스트)-59쪽

이별 앞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취하는 태도는 부정과 부인일 것이다. 사랑이 끝났을 때, 그리하여 상대방이 이별의 신호를 보내올 때 우리는 대체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약속을 몇 차례 펑크 내도, 전화를 받지 않거나 문자를 씹어도, 이메일을 읽지 않아도 그것을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신호라 믿지 않는다. "바쁜가 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합리화한다. -64쪽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떠난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 역시 애도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애도 작업이 완료되면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옛 연인이 더 이상 멋져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73쪽

이별이나 상실 앞에서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묻지 않는다. 사건의 내막이나 헤어진 이유를 낱낱이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그 답을 찾으려 현실 너머의 영역까지 기웃거리지 않는다. 왜냐고 묻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픈 마음을 다스리며 현실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일이다. 사실 떠난 사람조차 자신이 왜 떠났는지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1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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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요 2009-12-20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렸어요.^^
김형경님의 글..꽤 좋아하는 데, 좋은 이별은 예전 글들만큼 많이 빠지지를 못하고 있네요.
잘..읽고 다녀갑니다.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요.

마늘빵 2009-12-20 22:3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분 <사람 풍경> 참 좋았는데. 제목이 너무 기대를 품게 했나봐요. 아라리요님도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 ^^ 벌써 새해 인사를.

아라리요 2009-12-20 22:50   좋아요 0 | URL
김형경님은 자기 아픔을 참.. 잘 이겨낸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사람 풍경>은 너무 좋아서 한달쯤을 끼고 살았죠.^^

얼마 전, 알라딘 메인에 책소개를 보고 <천개의 공감>하고 <좋은 이별> 두권이나 샀는데.. 다는 못 읽었어요. 사람풍경 읽을 때보다는 감동이 좀 떨어지네요.

올 한해 내내 안좋은 일이 많았는데.. 새해 인사를 아프님에게 벌써 받게되니..아마 좋은 일일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요.

아프님도 해피뉴이얼 하세요.^^

비로그인 2009-12-20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늘 `평균'을 유지해주는 작가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박민규처럼 업, 다운이 그리 심한 작가는 아닌 거지요. 아,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그와 함께 죽는다'라는 인용은, 그 죽은 다음 어떻게 깨어나지요, 하고 묻고 싶게 만듭니다.

마늘빵 2009-12-20 22:33   좋아요 0 | URL
지난 작품들 다 좋았는데, 이번건 예상 밖이었어요. 나빴다는 건 아니고 기대한 내용이 아니었다는 거. '이별'을 떠올릴 때 보통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저 책을 샀을까, 생각해보면 살짝 저처럼 기대가 어긋나는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요.

펠릭스 2009-12-23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별'을 지난주에 읽었죠. 추천하고 싶습니다. 에너지가 발생하면 그 에너지는 어디론가 이동 하는데, 바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늦게 이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을 외치지만 정작 사랑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윈윈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던데요. 특히 가족간의 이별은 꼭 찾아 오잖아요.

마늘빵 2009-12-24 14:09   좋아요 0 | URL
네, 김형성의 이전 작들이 참 좋아서 저도 이번에 읽었는데 기대한 내용과는 사뭇 달라서 실망은 아니지만, 좀 어긋났죠 저랑은. ^^ 사람이 겪는 모든 이별을 고루 엿본 것은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