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 & 버클리 :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지식인마을 2
최훈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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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의심하라. 의심하라.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런데, 이 문구를 아는 사람은 많지만, 이 문구가 어떻게 도출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철학자들의 언명만을 줄줄 욀 뿐 그들의 이름만큼이나 유명한 그 문구들이 왜 어떻게 뽑아져 나왔는지 과정엔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내 입에서 내뱉으려면 최소한 그들이 거쳐왔던 사유과정을 나 또한 거쳐야 할 것이다. 

  단순히 지난 철학자들의 말씀을 달달 외움으로써 철학을 했다고 하면 그건, 철학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철학사를 공부한 것에 불과하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철학사는 필요없다. 칸트가 이랬어요, 플라톤이 이랬어요, 레비스트로스가 이랬어요, 하고 그들이 했던 말을 외우고 반복해서 말 할  필요 없다. 물론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이 철학을 하는데 있어 필요하다. 하지만 공부가 끝난 뒤에는 철학사는 잊어라.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해라. 결과는 필요없고, 과정이 중요할 뿐이다. 내가 지금 내뱉고 있는 말이 어떤 사유과정을 거쳐서 나왔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철학함'이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철학은 의심으로부터 시작한다. 의심은 철학만의 소유물은 아니지만 철학은 타분야와 의심의 차원이 다르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촛농이 뚝뚝 떨어지는데 왜 그럴까, 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를까, 머리를 안감으면 왜 떡이질까, 등등의 의심을 하면서, 의심을 풀어나가면서 과학은 발전해왔다. 하지만, 철학은 이러한 의심과는 다르다. 어떤 현상을 보고 저게 왜 저럴까, 의 차원이 아니라, 나는 왜 저걸 보고 저럴까 라고 의심을 할까, 의 차원이다. 내 남자친구가 어젯밤 외박을 했는데 어디에 있을까, 가 아니라 내 남자친구가 어젯밤 외박을 했는데 어디에 있을까 라는 질문은 어떻게 가능하지, 의 차원이랄까. 

  다시 한번 묻자.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물의 현상을 가리켜 저건 왜 저럴까 라고 묻지 않는다. 우리는 그걸 인식하고 있고, 그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를 묻는다. 내가 오늘 아침 고기를 기름에 찍고 상추에 싸서 쌈장 듬뿍 발라 입안으로 넣었는데, 아 맛있더라. 그런데 이건 정말 지금 내가 느끼는 맛일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느낄까, 내가 지금 입으로 뭔가를 넣었다는건 확실한가. 의심하라. 그것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의미다.

  철학에서는 이를 인식론이라고 한다. 서양의 근대에는 데카르트라는 철학자와 버클리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데카르트로부터 흔히 합리론이라고 불리우는 철학이 시작했고, 버클리로부터는 경험론이라는 철학이 시작했다. 둘의 공통점은 모든 것을 의심했다는 것이며, 둘의 차이점은 데카르트는 사고의 결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고,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사유과정을 마무리지었다. 결과는 엄연히 다르다. 

  두 사람의 차이는, 내가 보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먹는 것, 만지는 것, 냄새 등등 모든 것들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없다. 이런 악마녀석 나에게 마법을 걸다니. 그런데 아! 내가 지금 이렇게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확실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난 존재하는구나. 와  경험한다고 다 존재하는건 아니야. 빨간사과를 봤다. 그런데 내가 본건 '빨간사과'가 아니라 '사과의 빨감'이다. 정말 확실한건 지금 내 눈에 빨강이라는 것을 경험했다는 사실 뿐이다. 사과를 봤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과를 본게 아니라 사과의 시각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표상을 보고 있는 것 뿐이다. 그것조차도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정리해보자. 우리는 외부 세계의 대상을 지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관념만을 지각한다(실재는 확실하지 않으니까). 고로 외부 세계의 대상들은 관념이다. 사과의 색깔도 냄새도 크기도 모양도 죄다 관념이다. 로 정리해볼 수 있다.  

  데카르트에게 문제는, 끝까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사고를 더 밀고가면, 결론은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다. 5분전 나는 분명 이와 같은 의심을 했다, 그런데 5분 뒤의 나는 5분 전의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없다. 그 생각을 한 것이 나라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 5분 전의 나를 의심하는 나는 나지만 그전의 나는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또 시간이 1,2초 흐르면 1,2초전의 나는 지금의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없다. 이걸 끝까지 밀고 간 이가 흄이다. 흄은 그건 우리가 확실하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가설일 뿐이라고 한다. 버클리는 데카르트의 한계를 지적했을 뿐이다. 같은 빨간 사과를 봐도, 데카르트는 '빨간사과를 봤다'고 하겠지만 버클리는 '사과의 빨감'을 봤다고 할 것이다.

  이쯤 되면 일반인의 눈에는 데카르트나 버클리나 흄이나 다 미친놈으로 밖에 안 보일 것이다. 이런 미친. 먹고 맛있으며 되고, 보이면 보이는대로 말하면 되지, 얼어죽을 의심은! 그래 우리 눈에는 저들이 미친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방에 가둬놓고 혼자서 천장 바라보면서 어 왜 천장은 위에 있고 평평하지 라고 생각하거나 평평하다는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지면 증명가능할까,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알아,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게 놔둬야될 거 같다. 저자 최훈은 이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안겨준다.

  "철학의 임무가 상식을 보존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과학 이론이  상식과 어긋난다고 해서 잘못된 이론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철학 이론의 장점과 결점도 상식과 부합하느냐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른 확립된 이론과 충돌하지 않는가, 충돌한다면 더 그럴듯하게 설명해낼수 있는가, 그 이론 내부에 모순은 없는가 등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철학이 아무리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는 이유이다. 끊임없이 의심하라. 그리하면 지금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 속을 하얗게 비우고 처음부터 단계를 쌓아나가자. 그럼 나름의 결론에 도달할테니. 철학을 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 삶에서 겪는 온갖 고민들은 처음부터 의심함으로써 해결된다. 고민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으면서 머리를 아프게 하는건,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가 복잡할 땐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의심하라. 그리하면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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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1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보고, 만지고, 느끼고, 먹고, 마시고, 숨 쉬고, 듣는 세상 모든 사물과 현상들에
대해서 '왜'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항상 접하는 모든 것에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은 -
그저 학습된 기억능력에 의해 매일매일 인형처럼 사는 로봇과 무엇이 다른가.
하다 못해, 동물들도 이따끔씩 자신의 거처 주변을 세심하게 쳐다볼 때도 있는데-
소위 '사고가 있는' 고등동물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사는 세상이 무엇으로 가득차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그건 고등동물이 아니라 차라리 고등어입니다.

그러나 -
흔히들, '철학' 하면 '나와는 상관없는 먼 먼 먼 나라의 이야기' 라고들 생각하도록
조성한 문화가 잘못입니다. '철학'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고 아주 어려운 영역이다'
라고 인식하게 만든 잘못된 교육 탓도 있겠죠. 더 세심하게, '주입식 교육' 제도에
토를 달아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입시 전쟁에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역사의 사건을 접하고도, 위인의 이야기를 접하고도, 위대한 철학자의 멋진 격언을
접하고도 청소년들은 '왜 그 사건이 날 수 밖에 없는 역사였는지, 어떻게 이런 위인이
태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이들을 위인이라 칭하는지,
철학자의 말에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지 -
시험문제의 답을 채우느라 급급해 그 많은 지식정보를 더 많이 ! 남들보다 더 많이 !!
먹기 위해 몸부림치는 우리의 청소년들은 그것들을 소화도 못 시킨 채 어른이 되었겠죠.
어릴 때부터 수업 시간에 어떤 것을 배우든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도록, 혹은
토론하거나 발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서양의 교육 체제와 비교해 보아야 하는
현실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청소년도 있지만 말입니다.

갑자기 우울해질 때 '왜 나는 우울한가? 아, 그것 때문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그것
때문에 우울한가' 라고 간단히 고민하는 것도 철학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철학'은 '생각을 모아놓은 학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으로 인해, 더욱 구체적인 형상이나 '정답이다' 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만. (웃음)

오랜만에, 시원한 글 읽고 갑니다.

마늘빵 2007-05-1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엘신님 이 기나긴 댓글에 추천을 누르고 싶은데, '삭제' 버튼 밖에 없군요.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어디에 추천을 눌러야 한단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자라왔고, 뒤늦게 바꿔버린 과에서 책을 읽으며 수업을 들으며 철학을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비해선 많이 풍토가 바뀌고 있는 듯 합니다. 철학이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는 쪽으로. 누구나 해야하는, 살아있는, 머리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하는 것이 철학이란걸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이란 두 글자를 내뱉는 동시에 학생들 입에선 탄식과 함께 제발, 이라는 말이 입언저리에 나올락말락하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누누히 선문선답 던지고 누누히 이야기하지만, 철학이 대중화된 현실에 살고 있는 학생들조차도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애써 설명하려 하지는 않으렵니다. 그저 내 주변에서 철학의 흔적을 느끼고, 접하길 바랄 뿐입니다.

철학이 대중화되고 있는 반면, 자라나는 청소년 입장에선 더더욱 바빠지고 있는 게 현실이죠. 학원을 두 세개씩 다니고 밤늦도록 공부하거나 아님 오락하거나 하다 잠들고, 책을 많이 읽자고 하지만 생각하긴 싫으니 쉬운 책들만 골라 읽고.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마음의 여유도 생기는 법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야 또 주변의 사물에 차근차근 관심갖고 홀로 사색하게 되는 법인데. 환경조성이 안되어있습니다. 성적을 높이려고 학원을 보낼게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부모입장에선 냅두면 애가 또 무슨 짓할지 모르고 사고치지나 않을까 학원 안가면 성적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고 결국 남들 하는대로 똑같이 따라하는건데, 부모들부터 자기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들부터 철학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자연히 철학하는 자세를 갖게 될테니까요. 기나긴 댓글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05-1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세기 후반의 철학은 '인식론(분석철학)'의 시대였지요.




비로그인 2007-05-1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hy'에대한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에대한 논증이
'Why'라는 의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재인식한 결과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한국의 철학자 박이문 교수님의 주전공 분야가 분석철학이지요.


드팀전 2007-05-1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나는 내가 보는 것 내가 만지는 것을 믿는데요...물질을 믿어요.^^(물질을 믿어요 그러니까 '물신주의자'라고 하더군요. 푸하하) 사과와 빨강(물론 파란 사과도 있겠지만 파란여우도 있는데)을 구분할 수 있는 것부터가 대단한 공력이지만 전 '빨강 사과' 자체의 물질성을 믿는데요...유식하게 말하자면 '인간의식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성'

최근 읽는 책에 데카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네요.
"계몽주의의 일차적 과제는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수많은 주체들을 훈육시킬 수 있는 선험적 장치를 구축함으로써 중세 문화의 절대적 이원론을 재생산하지 않고 내재성 관념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인본주의적 주체성 원리에 의해 개방되었던 잠재성의 영역은 초월적인 규칙 및 질서의 부과에 의해 선천적으로 제한된다.데카르트는 인본주의가 명확히 했던 지형 위에서 신학을 은밀하게 다시 제안하며, 그 신학 장치는 단호히 선험적이다.데카르트가 제시하는 선험적 장치는 유럽 계몽주의 사상의 뚜렷한 상표이다.경험론적 흐름과 관념론적 흐름 모두에서 선험론은 배타적인 이데올로기의 지평이었으며 이후 세계들에서 철학의 거의 모든 주요흐름들은 이러한 기획에 빠져 들게된다.''

재밌지요^^ 가방끈 짧은 회사원의 철학하기여서 푸푸푸...
어쨋거나 철학은 총체성이란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거 아니겠습니까...그리고 삶과 철학을 일치시키는게 가장 중요하구요.최근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 처럼...
그분의 반전,평화,생명사상을 좌파질이라고 믿고 완전히 반대길로 가는 친자본,친미,개발론자들도 그분의 죽음을 애도합니다.그분의 시골 교회종지기 공력이 대단하시긴 했나봅니다.

마늘빵 2007-05-1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 네. 저때부터 인식론이 시작되었죠. 학부시절 인식론과 분석철학을 분리해서 배웠는데, 어떤 차이가 있다고 확실히 말하긴 힘듭니다. 저는 둘의 차이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으므로. 사회철학과 정치철학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

드팀전님 / 아 긴 댓글. 드팀전님은 감각을 믿으시는군요. :) 의심하십시오. 근데 무슨 책을 읽는데 저렇게 어렵게 말을 한답니까. 무슨 소리인지 도통.

302moon 2007-05-1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그 밑에 달린 여러분의 댓글도 꼼꼼히 보아야 할 것 같아요. L-SHIN님의 말처럼, 아프락사스님의 말처럼 철학(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건 아닌데, 주위에 누군가 그런 류의 책을 가지고 다니고, 펼쳐서 읽고 있으면 갑자기 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죠.
참 우스운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주입식 교육에 불만을 터뜨리고, 학교와 선생에게 반감을 가진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정말 시간은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 제 전공과 관련이 없는 배움을 시작하면서, 주위에서는 그런 쓸데없는 것에 어째서 관심을 가지냐 말들이 터져 나와요. 자기 의지로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게 중요한 것일 텐데,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모든 걸 판단했다고 믿고, 자신의 관점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무작정 나쁘게만 보죠. 사람의 생각이란 게, 밤하늘의 별 가루, 샴페인의 무수한 방울처럼 다양한데, 소소한 생각이라도 펼치는 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저 자신 그리 잘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고, 도전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서 마냥 혼자서 뿌듯해하고 있습니다.(-_-)
저는,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 게임만 자꾸 하려 드는 아이의 부모인, 제 주위 지인에게 부모가 모범을 보여야 아이도 따라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지인이지만,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건 나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너무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좀 뒤죽박죽인 글이었는데, 불쑥 끼어들고 싶었습니다./적극 공감하는 리뷰, 그리고 댓글이었어요. 감사합니다. ^^
책, 리스트에 담아두고, 물러갑니다.

마늘빵 2007-05-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2moon님 / 리뷰에 달린 댓글 덕분에 사유가 점차 깊어지고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사고과정은 끝이 없다해도 싫지 않습니다. 그쵸. 사람은 누구나 다 다양하고 각자의 관심이란 것도 누구의 영역이 따로 정해져있지 않고 여기저기 분산되어있을텐데 사람들은 '일반'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누군가를 보면 이상한 눈초리로 보죠. 그런 점에서 제가 철학을 전공했던건 잘한 일이지 싶습니다. :) 저도 생각하기 싫어하고, 책을 멀리하는 학생들, 강요하지 않습니다. 책 읽으라고, 생각하라고. 그러나 가끔씩 이야기해줍니다. 생각이 왜 중요하고, 어떤 것인지를.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하죠.

드팀전 2007-05-1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훗...감각을 믿는다...감각은 강력한 왜곡대상이지요.감각을 믿는다는 말로 이해하신 건 ..^^ 대략난감. 아주 근본적으로 말해야한다면-별로 좋지도 옳지도 않은 방식일수 밖에 없는데-전 유물론자라는 겁니다.'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성' 이라는 말은 유물론의 기본적 테마입니다.대학교 1학년때 하는 세미나처럼 이야기하자면 '인식에 선행하는 사물의 본성' 정도 아니겠습니까.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이후 끝임없이 회의되고 도마에 올려지기도 했다는 것은 철학을 전공하신 아프님이 더 잘 아실테지요.^^
인용한 내용은 전후 설명이 빠져서 실제 내용보다도 더 난해해 보이는 것 같군요.

마늘빵 2007-05-19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ㅋㅋ 네. 유물론 알겠습니다. 철학을 전공했다지만 학부시절 3년이 고작이고, 현재 대학원에선 윤리학(엄밀히 '윤리교육학'이지만 교수님들이 철학과 교수신지라 제 맘대로 뒤에 '교육학'을 뺐습니다) 을 하고 있으니 인식론에 대해선 그다지 배운 건 없습니다. 홀로 뒤늦게 찍접대고 있을 뿐입니다. 데카르트는 제가 좋아하는 철학자 중 한명입니다. :) 근데 읽고 계신 책 제목이 계속 궁금합니다.

2007-05-20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2moon 2007-05-2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 뒷북인데, 리뷰 퍼가겠습니다.(웃음)

마늘빵 2007-05-2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퍼갈거까지야. 그냥 추천 한방 때려주시면 그걸로 고맙죠. :)

2007-05-22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2moon 2007-05-2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추천 꾹 눌렀고요, 퍼간다는 걸 깜빡해서
어제 행동으로 옮긴 거랍니다.^^

마늘빵 2007-05-2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감사합니다.